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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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었는데, 마음이 불안하고 약한 사람에게 귀신이 들어온다고. 귀신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 사람을 장악하려고 든다고 말이다.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리는 걸 나는 그렇게 해석했다. 지금 내가 안고 있는 불안과 걱정이 자는 동안 나를 침범하고 찍어누르는 거라고. 자꾸 그 걱정에 머무는 내가 악몽에 잠식당할 수밖에 없어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불안을 내려놔야 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어느 정도 맞았다. 근심이 사라지면 악몽도 찾아오지 않았다. 마음이 불안하지도 않았고, 제법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궁금해진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마음이 약하고 불안한 사람들인 걸까?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이 악령에 씌어 대불호텔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그들에게 다가온 게 정말 귀신인 걸까?


액자 구조 형식으로 써진 이 소설에서, 작가 강화길을 연상할 수밖에 없는 화자인 <니콜라 유치원>을 집필 중인 소설가다. 어렸을 적부터 씐 악령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소설을 쓸 때마다 악의에 찬 목소리가 공격하고,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녀는 위축된다.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기에, 그녀는 다짐한다. 더 깊은 악의를 담은 소설로 복수하리라, 이 저주를 끝내리라. 그러던 중에 듣게 된 대불호텔 이야기에 빠져들고, 급기야 대불호텔의 저주에 깊게 관련된 그 여자, 고연주를 보기에 이른다.


복수가 복수를 낳듯이, 악의가 악의를 낳는 과정이 그대로 보였다. 대불호텔의 그들이 살아온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아프면서도 무섭다. 인간의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 싶어 두려우면서도, 어쩌면 나도 모르게 살아온 시간을 되짚는다. 나 역시 이런 마음을 가진 인간이었던 건 아닐까 싶어 괴롭기까지 했다. 인간의 마음이 그렇지 않은가.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것들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끊어내고 싶은 간절함이 부풀어 오를 때, 이성은 날아가고 독한 감정만이 남는다.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 힘을 갖고 싶은, 기어코 버티려는 오기 같은 것. 이런 감정은 누가 만드는 게 아니다. 내 안에서 저절로 태어난다. 막으려고 애써도 스멀스멀 피어오를 수밖에 없는 감정이다. 고통받는 인간에게는 스스로 치유하고 싶은 바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악의야말로 그 치유법으로 생존한다.


이제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안다. 말할 수 있다. 절대 풀리지 않는 원한. 그리하여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망치고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마음.

악의. (49페이지)


나는 살아 있는 것들은 무서워하지 않아요. 살아 있는 것들이 남긴 것을 두려워하죠. 그건 무엇일까요. 원한, 고통, 절망. 그런 것들일까요. 무엇에 원한이 있는 걸까요. 알 수 없죠. 그렇기에 두렵죠. 실체를 알 수 없으니까요. 자신이 왜 원한을 가졌는지조차 잊어버린 존재들. 그래서 오직 원한만 기억하는 존재들. 지우고 지워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들. (141~142페이지)


고연주는 생존하고 싶었다. 대불호텔이 아니라 그 어디에 머물렀어도 그녀는 생존의 이유가 가장 컸을 테다. 셜리 잭슨도 마찬가지. 오직 쓰려는 마음, 그녀가 애타게 완성하고 싶은 저주에 걸린 저택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을 뿐이다. 뢰이한도 다르지 않다. 어떤 사명감처럼 화교의 삶과 자리를 유지하고 싶었겠지. 모두 미국으로 떠났지만, 그만은 남아야 했던 이유가 있다. 지영현이라고 다를까. 어렸을 적부터 바랐던 제법 괜찮은 삶을 갖고 싶었을 그녀에게 지영현으로 살아가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하지만 이들 네 사람 사이에서도 싹트는 악의는 여전했다. 대불호텔의 수상함을 느끼는 이들과는 다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영현은 이들에게 또 다른 악의를 품는다. 왜 이들에게만 악령이 나타나는 걸까? 나는 왜 이들과 같은 삶으로 스며들지 못하는가? 심지어 귀신마저 고연주를 보호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질투하고 흠모하던 고연주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하는 그 벽을 무너뜨리고야 말겠다는 다짐은 잔인한 결말을 그린다.


대불호텔은 실존했던, 1888년 인천에서 문을 열고 성업했던 조선 최초의 호텔이라고 한다. 서울이 아닌 인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을 보다니 놀라웠지만, 그 성업도 오래가지 못했다. 경인선이 놓이고 숙박객이 줄면서 대불호텔은 1918년 중국음식점으로 바뀌었고, 화교의 경제적인 압박 정책으로 곧 문을 닫으면서 1978년 건물이 헐렸다고. 이런 역사 때문인지, 원한이 서린 공간으로 대불호텔은 너무 잘 어울렸다. 한 생애가 끝나가듯 쇠락해가는 그곳은 이들의 음침하고 우울한 이야기가 제법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죽고 다치고, 쓰러지고 무너지는 게 일상이 된, 그래서 나쁜 기운이 더 느껴지는 곳. 쫓아내려고 해도 기어코 들러붙어 나가지 않는 고연주의 존재는 이 호텔의 으스스한 생존력과 결을 같이 한다. 오히려 고연주 때문에 이곳의 원한이 배가 되고 깊어졌다고 해야 할까. 고연주의 공간에 셜리 잭슨과 뢰이한, 지영현까지 함께하게 된 걸 보면, 대불호텔은 원한의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곳이라는 걸 부정할 수도 없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흠칫하면서도 애써 그 슬픔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지점을 통과하게 된다.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슬픔이 한곳에 모여있는 곳이 대불호텔이라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작가는 대불호텔에 슬픔과 고통이 가득한 이들의 한을 다 불러모았나 보다. 단순히 망해가는 호텔이 아니라,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사건으로 악의를 한곳에 모아 뿜어내고 있었다. 무엇을 쓰는지 모르지만, 대불호텔에 온 지 두 달 만에 피폐해진 셜리 잭슨의 변화는 어떤 악령이 자기를 둘러싼 공포였다. 동양의 억울한 자매가 있다고, 죽은 자매의 억울함을 풀어주려 고을의 한 수령이 그 이야기를 다 듣고 있다고, 나쁜 것들을 처단함으로써 자매의 억울함은 풀어졌겠지만, 또 다른 원한이 생긴 것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들도 나름의 억울함을 갖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에 억울한 영혼이 아닌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싶다. 원한을 풀어주려는 이가 있다면, 그 원한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원한이 생기기 마련인, 그렇다면 원한은 쳇바퀴 돌 듯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고연주를 동경하던 지영현이 결국 고연주에게조차 마음이 돌아서 버렸던 것을 보면 말이다.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까. 삶이 그들을 그곳으로 이끌었던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서럽고 외로운 고아가 되었다. 세상 속에서 약자로 남았으며, 여러 가지 이유로 차별받고 핍박받는 존재였다. 무력한 희생자가 되어 버텨냈을 뿐이다. 공포로 가득한 그들을 견디게 해주었던 게 증오와 원한이었는지도 모르지. 그렇게 도달한 감정의 끝에서 마주한 것은 악의의 본질이었다. 우리 삶에 깊게 뿌리내린 혐오와 적대감, 감정의 폭력과 이방인을 향한 배척 같은, 약자를 바라보는 태도였다. 소설 속 화자가 찾아낸 것을 여기에서 멈췄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 악의만 보았을지도 모른다. 다행인지, 작가는 그들의 파국 같은 결말에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악령에 시달리며 괴로웠던 화자가 <니꼴라 유치원>을 완성함으로써, 매번 달라졌던 박지운(뢰이한의 아내)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그 건물에 남아 있는 원한을, 현재에 사는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바꾸려고 한다. 화자가 변했듯이, 그 역사 속 인물들의 마지막을 다르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들에게 슬픔과 악의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어차피 그 감정은 양면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던가. 애정과 증오가 하나일 때가 대부분이듯, 악의와 호의, 원한과 사랑이 하나로 존재할 수 있다고 풀어낸다.


결국 이야기를 쓴다는 건, 살아가는 일과 비슷한 것 같다. 매일매일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냥 계속 살아가는 것. 삶을 그런 식으로 지속되는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그 마음이 결국은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해준 것이라 믿는다. (301페이지)


유령 같은 호텔에 갇힌 목소리가 날아가면서 자유로워졌기를, 실체 없는 악의에 계속 빠져 있지 않기를. 내가 버티고 살아가게 하는 것은 원한이나 악의가 아니라 사랑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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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8-27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나오는 대불호텔이 제가 아는 곳이 맞다면
대불호텔은 지금도 있는데, 지금은 아마 호텔로 쓰이지는 않고 전시관인 것 같았어요.
구단씨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좋은 금요일 보내세요.^^

구단씨 2021-08-31 19:54   좋아요 0 | URL
네. 거기 맞다고 합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저는 그 전시관에 가보고 싶어요.
그 시대의 대불호텔을 재현한 장면 눈에 담고 싶습니다. ^^

비가 많이 온다고 예보를 하네요. 듣기 좋은 빗소리지만, 너무 과한 건 별로... 조심하세요. ^^

scott 2021-08-27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왠지 이 리뷰 👌등수 안에 들 것 같은 느낌이 사알짝 ~*
주말 멋지게 보내세요 ^ㅅ^

구단씨 2021-08-31 19:55   좋아요 1 | URL
이 책 후기가 다양해서 흥미로웠어요. ^^ 저는 재미있었는데요.

희선 2021-08-29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는 자세가 조금 이상하면 가위 눌리기도 해요 걱정 때문일 때가 많기는 하지만, 걱정을 해서 자는 자세가 조금 굳어서 가위에 눌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힘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살기 힘들겠습니다 덜 생각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희선

구단씨 2021-08-31 19:57   좋아요 1 | URL
저는 신경 쓰는 일이 생기면 잠을 설쳐요. 물론 자는 자세도 안 좋고요.
정말 피곤하지 않으면 깊은 잠을 잘 못 자요.
이 소설의 내용을 제가 완전히 파악한 것 같지는 않지만, 인간의 모습이 이럴 수도 있구나 싶어서 재미있었어요.

오후즈음 2021-08-30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내용이 그래선지 표지가 참 오묘하네요.

구단씨 2021-08-31 19:56   좋아요 0 | URL
작가의 전작 <화이트 호스>와 자매처럼 보이는 표지입니다. ^^
 



마루야마 마사키의 법정의 수화 통역시리즈를 읽으면서 우리 신체의 일부(혹은 아주 많이)가 불편해지는 상황을 자주 생각했다. 반년 전에 다리 시술을 받은 엄마는 아직도 편하지 않다고 하면서 살짝 절면서 걷는다. 통증이 아주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런 엄마의 일상이 변했다. 외출을 꺼린다. 본인이 불편하고, 그러다 보니 같이 다니는 사람이 자기를 챙기느라 불편해질 것을 느껴서 웬만한 일에는 잘 나가지 않는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불편함이 외출을 못 하게 하니 이제는 마음까지 우울해졌다. 갑자기 닥친 불편함이 이 정도인데, 오랜 세월,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이들의 세상이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첫 번째 이야기 데프 보이스의 시작이다. 구직 활동을 하던 아라이 나오토는 일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중 그렇게도 싫어했던 수화로 새 직업을 찾는다. 그는 농인 부모 밑에서 자란 코다(CODA : Children Of Deaf Adult) 이다. 부모와 형은 농인이었고, 그는 청인으로 살았다. 농인 부모에게 태어난 청인 아이의 삶이 쉽지는 않았다. 자라면서 힘들었던 기억은 뒤로하고 그는 이제 침묵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너무 익숙하게 봐왔던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그의 시선에 새로운 건 없었다. 은행 업무를 돕기도 하면서 누군가의 일상에 스며들던 그때, ‘해마의 집현재 이사장이 공원에서 살해당했다. 범인을 찾지 못했지만, 어느 농인이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그런데 이 사건 뭔가 이상하다. 17년 전에도 해마의 집이사장이 살해당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그 아들이다. 혹시 이 부자에게 원한이 있는 건 아닐까? 아무리 그래도 같은 상황, 같은 방식으로 살해를? 농인을 위한 해마의 집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던 것일까.


읽으면서 순간순간 그의 지나온 삶을 떠올리게 되는데, 우리가 너무 쉽게 말했던 정상의 의미를 생각했다. 부모와 형은 들리지 않는 사람, 그 사이에서 유일하게 듣고 말할 수 있는 그의 정체성의 혼란이 전해졌다. 밖에서는 농인의 가족이라고 시선을 받고, 집안에서는 그보다 형을 더 챙기는 부모님에게 서운하고. 그가 듣고 말할 수 있으니 걱정을 덜었다고, 오히려 형이 살아갈 인생을 더 걱정하던 부모님의 태도를 그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부모님의 걱정을 모를 것도 아주 아니지만, 평범한 아이였던 그가 받은 상처는 누가 돌봐줄 수 있을까. 그러니 그가 밥벌이를 위해 농인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는 걸 잘 보여준다. 그러면서 점점 더 보이는 그들의 상처와 고충을 알고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는 이제 그의 업무 이상의 것에 다가간다. 그들이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진실의 장면을 찾아다닌다. 농인의 가족으로 살면서 청인이었던, 농인의 세계를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던 그의 시간에 새로운 세계를 쌓는다. 그가 살아간 진짜 세상을 이제야 열었다.


처음 나오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드는 생각은 외면하고 싶었던 삶에 다가간 기분이 어떨까, 였다. 그가 택한 직업으로 그동안 보려고 하지 않았던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그가 점점 미궁에 빠진 사건에 관심을 두고 하나씩 밝혀지는 진실에 접근하면서 느끼는 것들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그의 삶이 점점 변해가는, 그 변화의 의미와 깊이가 앞으로의 그의 인생을 어떻게 만들어줄지 기대되는 마음. 나오토를 앞세워 그동안 우리가 살면서 안 들리는 척, 모르는 척했던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읽는 이의 시선 역시 변하게 된다. 나오토가 예상하지 못했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들의 언어를 그들의 생각을 정확하게 통역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그래서 법 아래에서 평등이 실현될 수 있다. 그들의 침묵의 목소리가 모두에게 들릴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다. (데프 보이스, 318페이지)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 용의 귀를 너에게는 통역 수화를 하게 된 아라이 나오토의 2년 후를 이야기한다. 여전히 그는 통역 수화를 하고 있으며, 지금은 애인 미유키, 미와와 한집에서 살고 있다.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인 그의 정체성을 확립해가고 있고,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다. 여전히 법정에 선 농인을 대변하며 법정 통역도 하고 있지만, 혼란의 순간은 찾아온다. 그의 마음에 무슨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걸까.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농인이 강도 사건의 피의자가 되어 기소된 사건, 농인이 농인에게 사기 치고 기소된 사건, 어느 주택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미와의 같은 반 친구에게 찾아온 선택적 함묵증까지.


농인이라고 해서 말을 아주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농인의 말이 청인의 말과 똑같이 들리는 것도 아니다. 피의자로 기소된 농인을 만난 나오토는 그가 말을 못 하는 농인이라고 하지만, 그가 내는 소리는 누군가에게 말이라고 들릴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그의 경험상, 그의 어머니가 큰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고 목소리를 낸 기억을 꺼낸다. 농인이 사용하는 말은, 말일까 소리일까. 이 사건을 들으면서 정말 가슴이 아팠다. 그들에게 언어가 어떤 역할인지 새삼 생각하게 되고, 농인을 위한 교육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많은 이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농인 사기 사건의 피의자가 통역을 동반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이즈모리의 부탁을 받은 나오토는 피의자 진술 자리에 참석한다. 수화가 다 똑같은 거로 여겼는데, 수화도 소리를 내 하는 말처럼 거친 언어가 있다는 걸 알았다. 피의자에게 같은 방식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나오토의 역할이 이 사건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미와는 같은 반 친구 에이치가 등교하지 않는 일을 알게 되고 나오토에게 도움을 청한다. 에이치는 점점 말을 하지 않게 되고,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게 되었다. 어린 소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동시에 이 이야기는 어린아이의 말이 얼마나 신뢰성을 가지며 법정 증거가 될 수 있는지 되물으면서, 정신적 질환을 앓는 아이가 하는 말의 깊이를 생각한다. 우연히 살인사건의 목격자가 된 소년은 점점 더 깊이 자기 방으로 숨어든다. 나오토와 미와, 루미 씨는 소년이 방 밖으로 나오기를 바라면서 마음을 어루만진다. 소년의 특성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진정한 대화라는 것을 증명하며, 이들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이들과 마음으로 대화하는 법이 얼마나 중요한지 증명한다. 특히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말하지 못하는 함묵증(緘默症)이 있는 에이치에게 수화를 알려주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했다.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자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바보 취급할 때 반드시 그 신체적 특징을 모방한다. 뇌성마비를 앓는 사람, 하지에 장애가 있는 사람,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 그 동작과 표정을 과장스럽게 흉내 내는 것이다. 농인의 경우는 수화가 그 대상이 된다. 아라이의 어린 시절에는 원숭이 흉내를 내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농인의 빠른 손동작이나 때때로 발성하는 목소리가 원숭이와 비슷하다고 여겼다. 얼굴까지 원숭이의 흉내를 내며 바보 취급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까운 곳까지 와서 노골적으로. 어차피 저들은 모른다며.

모를 리 없다. (용의 귀를 너에게, 173페이지)


이번 책에서는 장애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특히 정육학을 부르짖으며 장애가 있는 아이가 부모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해서 생겨났다는 이상한 논리를 사람들이 제법 신뢰했다는 것. 심지어 법으로 지정까지 하면서 부모의 책임을 설파하고, 장애를 가진 이들을 더 고립시키려는 나쁜 의도로까지 보였다. 전작에서 문제가 많았던 해마의 집이 폐쇄되었기에, 더 나은 농인 교육 시설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했다. 새로운 시설을 만들기 위해 기부를 받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 더 위기에 빠질 것 같았는데 많은 이의 노력으로 다행히 무마됐지만 끝난 건 아니다. 이들에게는 아직 새로운 농인 교육 시설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숙제로 남았다.


전작에서부터 등장하는 농인 교육 시설 해마의 집이름이 궁금했는데, 이번 책에서 그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용은 뿔로 소리를 감지하기 때문에 귀가 필요 없고, 쓸모가 없어진 귀는 바다로 떨어져 해마가 되었다는 이야기. ‘()’이라는 글자는 그래서 용의 귀가 된다. 이렇게 또 한 가지 배워간다.



<장애인 차별 해소법이 생기고, 장애인 고용 촉진법으로 합리적 배려는 법적 의무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이런 일은 끊이지 않습니다.>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244페이지)


법정의 수화 통역사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더 이어질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이 책이 이 시리즈의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오토는 미유키와 결혼하고 미와까지 새로운 가족으로 살아가던 중 딸 히토미가 태어난다. 혹시나 아이가 태어나면 귀가 들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자신의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던 나오토는, 미유키를 만나고 함께 살면서 그 걱정은 뒤로하기로 한다. 만약 농인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건 또 그대로 살아갈 방향을 잡으면 되니까. 이 모든 변화는 미유키를 만나면서였다. 그리고 그가 수화 통역 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겪고 느끼는 게 많아져서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과거의 그와 현재의 그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환경도, 생각도.


이 책에는 4가지 이야기가 연작소설처럼 이어진다. 모두 농인의 등장이고, 청인 세계에서 농인으로 살아가는 불편함과 고통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첫 번째 이야기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에서는 의료 시설 이용 중 들리지 않고, 말하지 못해서 겪는 슬픔이 표현된다. 농인 부부가 임신으로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면서, 정확한 의료 정보는 소통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이 부부에게는 불행이 닥친다. 진료받는데 필담만으로 모든 궁금증이 해소될 수 없었다. 묻고 싶은 것을 말할 수도 없었다. 의료 전문 통역도 아니었기에 전문적인 정보를 주고받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예를 들면 좌약<앉다>,<>이라고 통역해서 잘못 이해한 농인이 약을 앉아서 먹으려 한 일은 통역사들 사이에서 유명한 일화이다. 이런 일들을 청인이 들으면 설마 좌약을 먹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농인의 이해 부족을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 사람들리는 사람사이에 예전부터 자리하고 있는 정보의 격차를 유념하지 않으면 자칫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지도 모른다. 아라이는 항상 이러한 우려를 품고 있었다.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47~48페이지)


농인이 아니어도 어렵기만 한 병원 진료가, 농인에게 더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진다. 그런데도 농인이 더 세상 속에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른 방향의 활동을 보여주는 이가 있다. 쿨 사일런트에서는 청인 부모에게 태어난 농인인 젊은 청년이 나오토에게 통역을 부탁하면서 농인으로 살아가는 또 다른 어려움을 보여준다. 독화도 발음도 좋은 청년. 제대로 된 수화를 배우려고 나오토와 친해지지만, 그의 연예계 관계자는 청년에게 다른 것을 요구한다. ‘쿨한수화란 무엇일까. 그들에게 농인의 수화는 언어라는 생각이 없는 걸까.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손짓,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듯한 신기함, 쟁점이 될만한 소재로만 여기는 건 아니었을까? 정작 그 수화를 사용하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기는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만큼, 청인들이 바라보는 농인의 세상은 너무 단편적이었다. 그 단편적인 마음을 증명하듯 보여주는 게 법정의 웅성거림이다.


회사에 취직한 농인 여성이, 근무 조건을 지켜주지 않는 회사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 의뢰가 들어온다. 쉽지 않은 재판이 될 것이고, 의뢰인이 받을 상처가 걱정되기도 했다. 일할 때 수화 통역을 지원해주겠다고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필담 역시 상대가 귀찮아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점점 회사에서 외면당하는 의뢰인의 마음이 저절로 읽혔다.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 자기의 고충이 다른 이에게 전달되지 않음이 상처가 된다. 그러다 보니 의뢰인 역시 회사 일에 적극적이지 못했지만, 무엇보다 모든 내용과 공지가 전달되지 않았다. 재판 중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들은 말한다. 알고 있는 줄 알았다고, 이 정도는 들리는 줄 알았다고, 본인이 싫어서 안 하는 줄 알았다고. 그들이 알게 모르게 외면했기에 의뢰인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그들에게 섞이지 못했다는 걸 정말 모르는 걸까.


소리가 들리는 청인중심 사회에서 들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강요된 불편함은 비단 지금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생명에 관해서만큼은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 재해시 송출되는 긴급방송이나 사고시 교통기관의 안내 방송도 그들에게는 가 닿지 않는다. ‘그 지진당시 많은 장애인의 피난이 늦어지고 지원을 못 받는 현실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는데, 그중 들리지 않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방재무선 방송을 듣지 못할 뿐 아니라 피난 생활 중에 커뮤니케이션도 충분하지 못하여 고생했다고 들었다. 큰 재해만이 아니다. 앞서 말한 휴대전화의 표현을 빌려 갈라파고스상태에 놓은 상황이 여전히 그들 일상 속에 만연한 것은 아닐까.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41페이지)


조용한 남자사건에서는 수화 역시 사투리처럼 그 지역 특유의 언어로 자리 잡는 경우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사망 사건 해결과 동시에 새로운 언어를 향한 나오토의 열정도 의아했지만, 이즈모리가 그 열정과 타인의 일에 직접 나서는 모습이 따뜻했다.


말을 하지 못하고, 듣지 못 하는 일이 그냥 신체의 불편함 정도가 아니었다. 농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의료, 복지, 노동 현장의 거대한 장벽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는 것과 같다. 이 장벽은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너무 선명하게 우리 앞에 보이는 게 아이러니다. 나오토에게 태어난 딸 히토미 역시 청각장애가 있다. 농인 가정에서 청인으로 살아온 그가, 이제는 청인 부모에게 태어난 청각장애 아이를 키운다. 전혀 새로운 방향에서 농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배울 것이다. 그가 겪어오고, 지금도 배워가는 중이다. 전혀 쉽지 않을 일이 그에게 닥쳐왔다. 하지만 과거의 그가 힘들었던 때와 다를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그의 옆에 미유키와 미와, 센터의 다른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혼자서 그 모든 상황을 감당하던 때와는 다르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그 역시 스스로 느끼고 있을 테지. 그의 걱정과 고민을 함께 나눌 이들이 옆에 있다는 게 얼마나 힘이 되고 든든한지.


읽다가 정말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미유키가 딸 히토미의 청각장애를 알고 고군분투하다가, 이제 인공와우 수술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고민하던 장면이다. 수술만이 이 상황에서 제일 나은 선택으로 알았던 미유키의 마음이 변하는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나 역시 당연하게 인공와우 수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들릴 수 있게, 시간이 지나서 후회하지 않게 하려면 그것만이 답이라고. 하지만 청인으로 살면서 청각장애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전문가의 시선을 알게 된 후 그녀는 딸에게 속삭인다. ‘있는 그대로의 너로 괜찮다는 말이 그렇게 포근하게 들릴 수 없었다. 아마 그녀 마음에 큰 변화가 있었겠지. 혹시 들리지 않는 아이가 태어날까 봐 주저하던 나오토에게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들리지 않으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자신만만했던 그녀가, 막상 들리지 않는 아이가 태어나니 감당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을 터.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들리게 노력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전혀 들리지 않는 삶을 조금은 알고 있었으니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그러기에 미유키의 선택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도 보인다. 그런데도 따뜻하게만 들렸던 그 한 마디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먼저 보고 느껴야 할 것들을 생각한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말하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며 서로 섞이고 이해해야 한다고. 그렇다고 서로를 온전히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 그것도 안다. 하지만 나오토의 시선이 변하는 걸 계속 지켜보면서 농인의 세계를 알아가는 게 마냥 어려운 일은 아니며, 필요한 일이라는 것도 알겠다. 이 시리즈가 많이 읽혀서 우리가 다른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더 넓은 시야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데프보이스 #용의귀를너에게 #통곡은들리지않는다 #마루야마마사키

#법정의수화통역사 #수화 #통역

##책추천 #황금가지 #추리소설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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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8-25 0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데프 보이스 일드로 먼저 보고 나서 원작 까지 읽어 봤습니다
법정 수화 통역 이야기도 생소 했지만 일상 생활은 물론 의료 복지 일반 교통 이용 하는 것도 너무나도 힘들다는 것!

이들을 위해 우리 사회의 거대한 장벽이 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시리즈가 이렇게 많이 나온거 구단님때문에 알게 되었네요 ^ㅅ^

구단씨 2021-08-25 00:58   좋아요 2 | URL
저는 데프 보이스를 좀 늦게 알았어요. ^^ 최근작 읽으려고 하다가 시리즈 마지막 책인 걸 알고 처음부터 찾아서 읽어봤네요.
진짜 일반적인 생활 거의 모든 게 어려울 거라는 걸 이렇게 듣고 알게 되었어요. 막연하게 생각만 하던 것과 너무 달라서 놀랐습니다.

희선 2021-08-29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번째도 나왔군요 본래는 한권만 쓰려다가 한권 더 썼다고 하던데, 다음 이야기도 있군요 아라이 나오토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다니...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를 낳을까봐 처음에는 아이도 낳지 않았는데, 많이 달라졌네요 세상은 장애인이 살기에 힘듭니다 생각한다고는 하지만 아직 멀지 않았나 싶어요 더 생각하고 도움이 주면 좋겠습니다


희선

구단씨 2021-08-31 19:53   좋아요 1 | URL
네. 첫번째 이야기 끝의 작가의 말에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두번째 세번째 이야기가 여러 사람의 도움과 작가의 노력으로 출간되었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의 변화와 나아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한 농인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더 섬세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

희선 2021-09-02 00:17   좋아요 0 | URL
얼마전에 라디오 방송을 들으니 <코다>라는 영화 이야기를 하더군요 예전에 그 영화 말한 적 있는 것 같은데 했더니, 코다는 프랑스 영화 <미라클벨리에>를 미국에서 리메이크한 거였어요 부모님이 듣지 못하는 것과 딸이 가운데서 다른 사람한테 말하는 것은 같지만, 조금 다르기도 하답니다 <코다>는 음악 용어도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 영화 이야기 들으니 이 책이 생각났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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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까칠한 백수 할머니 - 마흔 백수 손자의 97살 할머니 관찰 보고서
이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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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을 바라보는 손자는 백 세를 바라보는 외할머니를 피 여사로 부르며 돌본다. 이 돌봄이 처음부터 기꺼이 시작한 일은 아닐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고, 저자 역시 코로나 상황으로 시간이 생긴 그때. 저자는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할머니를 시청하며 그 기록을 남긴다. 마냥 평범하기만 했다면 이야기가 되지 않았으리라. 거동이 불편하고, 몇 번의 병원 신세와 수술을 거쳐, 이제는 휠체어에 의지해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노인의 일상이 요즘 세상에 그저 평범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조합, 백 세를 바라보는 외할머니, 일흔을 바라보는 딸 박 여사’, 마흔을 바라보는 미혼의 외손주가 한 집에서 부대끼는 일이 흔하지는 않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어쩌면 이 조합,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흔한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 기록을 읽으면서 내 가슴이 조금 이상해졌다. 뭐랄까, 내가 경험했던, 지금도 겪고 있는, 어느 날 더 힘들게 마주할 순간을 자꾸만 떠올리고 있었다.


저자는 지난 2년 동안 어머니 박 여사와 함께 외할머니를 지켜봤다. 그냥 지켜만 본 게 아니라, 피 여사의 일상을 책임지는 역할이었다. 먹이고 씻기고, 외출에 동행했다. 말로 하고 보니 굉장히 단순해 보이지만, 경험해본 사람은 알 테다. 환자 한 명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는 환자라면 더더욱 힘들다. 그나마 남자의 힘이어서 다행인 걸까. 육체적인 힘으로 도움을 준 것은 물론이고 저자는 피 여사의 옆에서 오늘의 일상과 지나온 세월을 들으면서 그녀의 건강을 돕는다. 돕는다는 표현이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는 저자가 피 여사의 몸 상태 유지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고 믿는다. 육체는 물론이고, 그 육체를 유지하기 위한 정신까지 말이다.


어머니 박 여사의 일 때문에 어린 저자를 돌봐주던 피 여사였기에, 저자에게 피 여사는 단순히 외할머니가 아니다. 그런데도 무심히 지내던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는 피 여사의 삶이 궁금해졌다. 가난한 살림이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시집가고,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까지 겪은 피 여사다. 한국 근현대사의 시간을 그대로 몸으로 겪은 존재다. 시대가 그랬고 여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스무 살에 결혼했다. 책임감 없는 남편 때문에 고생은 당연했고, 그마저도 남편은 한국전쟁 때 죽었다. 아들 둘을 데리고 재혼했지만, 두 번째 남편 역시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니었다. 아이 셋을 더 낳고도 피여사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행복은커녕 오늘을 견디는 삶에 급급했다. 피 여사의 인생에 드리운 고단함이 세월이 흘렀다고 변할 리 없다. 고생하고, 힘들고, 외로움과 불행에 찌든 세월이었다.


피 여사는 하루하루를 견디듯 보냈다. 피 여사의 삶에선 딱히 즐거운 일이 없었다. 고통과 고독과 권태가 날마다 습격하듯 찾아왔다. 나이가 든다고 미래에 대한 염려가 수그러드는 것은 아니었다. 노인이 된다는 건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 없이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는 일이었다. (65페이지)


우리는 모두 늙는다. 우리는 모두 그들처럼 된다. 노인이 되면 젊어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고통이 들이닥치는데, 이 고통은 전 세계 공통이다. 외로움, 생계 곤란, 건강 악화, 배우자와의 사별, 자식 문제, 시대 변화 부적응 등등.

피 여사는 이 모든 걸 겪으면서 노후를 맞았다. (17페이지)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다고, 그 시절의 모든 삶을 다 똑같이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각자의 마음속 삶의 방향은 달랐을 것이다. 행복을 꿈꾸며, 시대의 불운을 비껴가고 이겨내고자 애썼겠지. 그토록 노력하고 버티며 사는 이유는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 아이들과 지금과는 다른 삶을 만들고 싶어서. ‘행복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결국은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서. 그런 바람은 오늘,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옆에서 대소변을 받아줘야 하는 인생으로 변했다. 그걸 견디는 마음이 뭘지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 병원 생활을 했던, 지금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의 우울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


무릎 연골 시술을 받고 엄마는 한 달 가까이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고서도 혼자서 움직이기를 힘들어했고, 나는 혹시나 엄마가 몇 걸음 걷다가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옆에서 돌봤다. 식사를 챙기고, 옆에서 계속 대화 상대를 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우울해했다. 어느 날에는 밤에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어느새 자기 몸은 이렇게 늙어버렸고, 몸이 제 기능을 못 해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고, 노쇠한 몸이라도 그나마 잘 돌아다녔는데 이제는 하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고. 엄마는 잘 걷지 못해 집 밖으로 나가기를 무서워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예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순간순간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몸과 마음이 다르게 움직이는 그대로를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한 듯했다. 한때 집안의 가장으로 모든 것을 책임지며 살아왔던 엄마의 삶이, 몸이 이제는 혼자 견딜 수 없게 되었다는 게 서글펐다. 엄마도 나도.


피여사의 인생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정정한 몸으로 자식과 손자를 돌봤던 그녀의 현재는 혼자서는 지낼 수 없다는 거였다. 한쪽 눈은 감겼고, 화장실도 혼자 가기 힘들게 되었다. 이는 거의 씹지 못할 상태였고, 음식도 잘 넘기지 못한다. 위가 망가져서 소화도 어려웠다. 혈액순환도 잘 안 되어 다리에 쥐가 나서 아팠고, 잘 움직이지 못하니 배변 활동이 안 좋았다. 온몸은 순환하듯 아팠다. 다리가, 팔이, 무릎이, 호흡이, 피부가, 심장이... 잠시 후 숨이 멈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 그런 그녀가 꿋꿋이 생명을 이어가며 다른 이의 죽음을 지켜보는 시간이 거듭되자 이제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이 아프기 시작한다. 형제자매가 한 명씩 죽고, 자식이 죽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어떤 것일까. 최근에 한 달에 한 번씩 장례식을 다녀온 내가 느끼기에도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듣는 일은 설명할 수 없이 가득한 슬픔과 고통이었다. 내 가족이 죽고, 언젠가 내가 맞이할 죽음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언젠가의 모습을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 저자와 피 여사가 지켜본 죽음의 모습도 다양했다. 가까운 이들, 가족과 친척이었지만 그 마지막은 편하지 않았다. 가족의 배웅조차 받지 못한 죽음도 있었으니, 그 죽음을 바라보는 피 여사의 마음 역시 편하지 않았으리라.


백 세를 바라보는 노인의 지난한 삶을 듣는 일은 힘들었다. 살아온 시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서, 오늘의 일상을 보는 일이 괴로워서, 이 노인의 마지막이 어떨지 걱정하느라. 무엇보다 새벽 6시부터 시작되는 손자의 병간호가 육체적인 피로를 넘어 정신적인 피폐까지 완성하는 과정을 보는 게 괴로웠다. 나만 보고 생각하며 살아도 힘든 세상인데, 가족이라는 이유로 한 사람을 돌보며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버거웠다. 자꾸만 나의 경험과 비춰 생각하다가도, 언젠가 내가 더 겪을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에. 그렇다고 내가 피해갈 수도 없는 일이 될 것을 알기에 겁부터 나지만, 또 당연하게 감당하게 될 것도 알아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누구도 고통 없이 사는 사람 없을 테고, 누구도 자기 죽음의 모습을 다 알지 못할 것이기에, 모른 채로 그렇게 또 살아가야 하겠지만, 그래서 겁나는 것 또한 당연했다.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힘든 건 사실이고, 그렇게 또 견디는 게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건 결국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피 여사의 외롭고 괴로운 시절을 듣다 보면 저절로 나의 지난날이 떠올랐다. 피 여사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살아온 여정을 되돌아봤다.

그렇다. 모두가 각자의 사정이 있고 슬픔이 있는데, 홀로 견뎌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외롭다. (181페이지)


한 편의 소설로 읽히는 게 신기한 책이었다. 한 사람을 돌보는 것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당연한 예상처럼 그 과정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결과를 궁금해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피 여사의 현재가 너무 궁금했다. 이 책의 흐름으로 보면, 자꾸만 들려오던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생각하면, 피 여사의 몸 상태가 변화할 때마다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는 짙어졌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 피 여사가 저자의 옆에 없을 거로 여겼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런 흐름과 결말을 당연하게 기다리고 있던 걸까 싶지만, 오히려 마지막에 확인한 피여사의 안부에 마음이 놓여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지. 그래야지.


참 많이 애썼다. 고생했다. 힘든 시간 속에서 행복도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이 상황에 적응하느라 고된 시간을 보냈을 텐데, 그 후에 맞이한 또 다른 마음이 이 관계에 탄탄하게 쌓여가고 있을 것 같다. 저자는 긴 시간 피 여사를 지켜보면서, 타인의 삶을 담담하게 이해하고, 때로는 귀찮고 버거웠을 존재를 더 사랑하고 애틋하게 여기게 되었다.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일, 삶을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작가가 된 저자가 배웠을 행복이 어떤 것일지 그대로 느껴진다. 힘들었지만 더 돈독하게 된 관계, 마냥 어렵기만 했는데 그 안에서 찾아낸 행복의 조각들이 이 가족의 공간에 흩어져 있었다. 이제 그 조각들 하나하나 더 찾아가면 꿰어맞추는 재미를 찾고 있을 것 같다.


피 여사가 밥 잘 먹고 침대에 누웠을 때 행복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뜻밖에 피 여사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박 여사와 내가 옆에서 챙기는 게 고마워서 한 말이겠으나, 피 여사가 한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답변이었다.

그렇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그 안에 행복이 있다. (294페이지)


덧붙임)

제목에 쓰인 백수는 놀고먹는 사람을 뜻하는 백수白手가 아니라 아흔아홉 살을 뜻하는 백수白壽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나의까칠한백수할머니 #이인 #에세이 #한겨레출판 ##책추천

#간병 #돌봄 #노년 #외로움 #행복



** 한겨레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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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8-20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이런 이야기가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 예전에도 있었는데 잘 몰랐던 건지... 몇 해 동안은 죽음을 말하는 책을 보기도 했는데, 그것도 아직 더 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다고 해서 그런 일이 찾아오면 제대로 뭘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아파도 살아 있는 게 좋을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나름대로 기쁨을 찾으면 좋을 텐데 싶어요


희선

구단씨 2021-08-31 19:52   좋아요 0 | URL
점점 이런 경험이 많아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고령화 시대에 살고 있고, 혼자인 삶이 많아지니...
어쩌면 각자 혼자인 3대가 한집에서 사는 이런 일을 자주 보게 될지도.
외로워 보이면서도 할머니와 손자의 동거, 투닥거림, 돌봄이 애틋합니다.
 
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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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랐다. 엄마의 목소리가 커서도 아니고 화를 내서도 아니었다. 발음이 너무 좋았다. 식탁에 둘러앉아, 과일을 앞에 두고, 차를 마시며 가족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면 항상 아버지가 의견을 내고 엄마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리고 오빠들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의 이사, 누군가의 진학이나 취업 같은 중요한 결정도, 여행지, 회식 메뉴, 텔레비전 채널 같은 사소한 결정도 결국은 아버지 뜻대로 되었고 엄마는 늘 중얼거리는 사람이었다. 엄마도 저렇게 간결한 문장과 정확한 발음으로 의견을 말할 수 있구나. (95~96페이지, 가출)


누군가의 간절한 버킷리스트를 완성하는데 동행한 이가 시어머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 놀라웠고, 그 불편한 동행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궁금했다. 작가가 여성의 연대를 말하려는 건가 싶으면서도, 왜 하필 그 연대의 한편이 시어머니였던가 의아했다. 이 단편을 읽고 한참 생각하다가 내가 범한 오류를 찾아냈다. 나는 시어머니를 한 사람의 인간, 여성의 삶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지금껏 내가 생각한 시어머니로만 봤던 거였다. 생각의 시작이 틀렸던 거다. 시어머니가 시어머니 이전에 한 사람으로 살아온 세월, 그 사람 고유의 인생을 들여다봐야 했던 것을. 그래서 단편 오로라의 밤을 다시 읽고 다시 생각했다. 세 여성이 살아온 흔적을 되짚어보면서 이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됐는지 지켜봐야 했다.


남편이 죽은 후에야 말녀라는 이름을 동주로 개명한 여성은 그 이후 어떻게 살았을까? 남편의 말처럼, 다 늙어서 이제 개명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그 단순한 이름 하나에 누구는 행복과 자신감을 얻는다. 언니 금주, 은주의 이름대로라면 셋째딸인 그녀의 이름은 동주여야 했다. 그런데 왜 말녀인가.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시절에 딸은 이제 그만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 말녀. 남동생이 둘이나 태어났는데 왜 말녀냐고 물어도 대답해줄 사람이 없다. 매화나무 아래의 동주는 요양원에서 죽어가는 금주 언니를 보러 다니면서 과거를 회상한다. 이름만큼이나 차별받으며 살았던 시간과 싸우듯 그녀는 늦게라도 삶을 바꾸려 애쓴다. 그 증거가 개명이었고, 동주라는 이름이었다. 이어지는 시간은 단편 오로라의 밤으로 들려준다. 아들을 잃은 후 며느리와 같이 사는 시어머니가 되었고, 며느리와 오로라를 보겠다며 캐나다로 향한다. 말녀의 삶과 너무 다른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동주의 오늘이 상상되는가? 읽으면서 너무 신났다. 남편도 아들도 없는 지금이 그녀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된 것 같았다. 그게 더 슬펐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후의 웃음이 그녀의 진짜 미소 같아서 말이다. 고부 사이가 아니라 룸메이트처럼 살아가는 이 고부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누군가는 이 조합을 보고 웃을지도 모른다. 여든을 바라보는 시어머니와 예순을 바라보는 며느리가 오로라를 보겠다며 그 추위를 견디고 있다고? 이 늙은 여자들 따뜻한 아랫목에서 일일드라마나 볼 것이지 뭐 한다고 그 길을 나서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두 과부가 저지른 일이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였다. 이것부터가 나의 잘못된 인식을 드러냈다. 나이 든 여자가 뭐? 남편 없는 여자가 뭐? 이들은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다. 자기 일을 하고, 자식을 키웠고, 보고 싶은 것을 보러 간 것뿐이다. 노년의 삶을 손주를 보면서 보내는 게 어느새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세상에서 이들의 행보는 낯설면서도 너무 늦게 찾은 당연함이었다. 자기 삶에서 자기가 주인공이어야 했던 당연함을 잊고 살아왔던 시간을 되찾은 기분. 딸이 엄마에게 아이를 봐주지 않는다며 서운해했을 때, 내가 미처 놓치고 있던 것들을 떠올렸다. 엄마가 처음부터 엄마였던가? 여자아이에서 여자가 되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왜 항상 엄마여야만 했던가 묻게 되었다. 그러다 그 물음은 꼬리를 물고 다시 묻게 된다. 한 여자의 인생은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에서 끝나는가.


82년생 김지영을 몰입해서 읽었는데도, 순간순간 가슴을 두드리는 장면에 숨을 죽이곤 했는데도, 여전히 나는 그 김지영의 인생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듯하다. 이 소설집은 그 김지영의 확장판이라고 말하는데, 나처럼 봐야 할 것을 놓친 독자들에게 던지는 김지영의 생애였다. 8편의 단편을 통해 10대부터 80대까지 여성이 겪는 삶의 다양한 면을 드러냈다. 여자아이는 자라서에서 삼대의 모습은 페미니즘을 겪는 세대 차이를 그대로 보여줬다. 30여년 전 지방 소도시의 가정 폭력 상담소를 운영했던 엄마를 보고 자라면서 대학에서 페미니즘 관련 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했던 ’. 이제 의 중학생 딸은 그 아이만의 방식으로 성추행 남학생들을 응징한다. 같은 뜻을 가지고 살아왔어도, 살다 보니 변하는 세상에 흡수되느라 외면했던 것을 딸의 한마디로 소환한다. "그러니까 어쨌든 예쁘기는 해야 할 것 같잖아. 예쁘지 않아도 된다고 해 줄 순 없어?"(290페이지)


그 여자아이는 자라서 자기 의지대로 세상에 맞서며 살아가다가도 현남 오빠에게의 화자처럼 은근한 불빛으로 가스라이팅 당하는 여성으로 성장하는 건 아닐까 염려스럽기도 하다. 나를 위해서, 나를 편하게, 나를 보호하려고 애쓰는 남성 보호자로 여겼던 대상이 어느 순간 들여다보니 나를 조종하고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절망과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 절망에서 벗어났고, 진짜 자기 삶을 찾아가고 있다. 깍듯하게 존칭하며 불렀던 그 이름은 끝은 개자식이었다. 이렇게 당당하게 자기 인생을 찾아가는 여성에게 응원을 보내면서, 미스 김은 알고 있다에서 마주친 성차별은 그 당당함에도 물리치지 못할 거대한 벽이었다. 직급도 없는데 그 회사의 모든 일을 맡아서 하는 미스 김. 그녀의 영역이 넓어지자 미스 김의 자리는 사라진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그 능력에 의지하던 인간들의 연대로 밀려난 미스 김의 활약은 그 이후에 드러난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력 갑이었던 그녀가 회사에 있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이, 유령처럼 그녀는 존재감을 뽐낸다. 학연과 혈연으로 뭉친 어느 중소기업에서 횡행한 성차별의 결말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미스 김이 떠난 자리에 또 다른 미스 김으로 존재하는 화자의 선택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이런 여성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는 매도당하기도 한다. 오기의 초아는 한 편의 소설로 악플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 시도를 꺾고 싶지는 않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는 오해를 받는다. 그때야 비로소 꺼내지 못한 자기 이야기를 쏟아낸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상처 입고 고통받은 사람은 어느 한 명이 아니었다고. 나는 내 사유의 영역 밖에도 치열한 삶들이 있음을 안다고, 내 소설의 독자들도 언제나 내가 쓴 것 이상을 읽어 주고 있다고 쓴다. 그러므로 이제 이 부끄러움도 그만하고 싶다고, 부끄러워 숙이고 숨고 점점 작게 말려 들어가는 것도 그만하고 싶다고, 그만하고 싶은 이 마음이 다시 부끄럽다고 쓴”(79페이지)다며, 작가가 여성의 삶을 계속 쓸 수밖에 없음을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비슷한 흐름으로 읽다가 분위기 전환하듯 양가감정을 느끼게 한 작품이 가출이었다. 어느 날 편지 한 통 써놓고 가출한 아버지 때문에 엄마와 두 아들, 화자인 막내딸이 자주 모인다. 처음에는 사라진 아버지를 걱정했지만, 이상하게 이 가족은 부재중인 아버지의 자리에 익숙해진다. 항상 중얼거리듯 말했던 엄마의 목소리가 정확하게 들린다. 아버지의 권위에서 벗어난 엄마가 이제야 편안해진 모습이다. 동시에 아버지의 생애를 본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책임지고 지켜야 하는 의무로 살아온 세월에 퇴직하고 이제는 좀 편안해진 아버지. 가출한다고 하고서 가족들을 놀라게 하지만, 정작 본인은 딸의 카드를 사용하면서 잘 지내고 있음을 알린다. 앞서 읽은 작품들이 억눌리고 차별받아왔던 여성의 삶을 보여줬다면, 가출은 여성과 남성 모두가 겪어온 세대의 흔적이고 살아가는 일의 고충이었다. 이 지점에서 다시 떠올리게 되는, 우리가 누군가를 볼 고 생각할 때 한 인간의 생을 보는 일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여자 남자, 어머니 아버지, 딸 아들, 이런 구분 말고 그냥 인간, 사람, 인생을 보는 일에 먼저 시선을 던져야 한다고 말이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을 때도 그랬는데, 결국은 같이 살아가는 세상인데 잘살아 보자는 메시지로 읽힌다.


. 흐릿하지만 분명 빛이었다. 하얀 별들이 콕콕 찍혀있는 까만 하늘에 파란빛과 노란빛이 규칙 없이 섞인 한 줄기가 연기처럼 흩날렸다. 그러다가 줄기가 여럿으로 갈라지고 넓어지고 너울거리기 시작했다. 지난가을, 서울에서 보았던 바로 그 빛. 하지만 더 크고 선명하고 역동적인 빛. 누군가 빛의 깃발을 들어 올리는 것 같기도 하고 천천히 우주의 창을 여는 것 같기도 했다. 살이 있는 무엇.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움직이는 지적인 영혼. 눈도 깜박이지 못하고 빛을 올려다보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내가 흐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얼어 버릴 틈도 없이 두 눈에서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245~246페이지, 오로라의 밤)


다양한 여성의 삶을 보여 주면서도 다시 보고 새롭게 보기를 바라는, 함께 여행하는 고부가 수평적 관계가 되고,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페미니스트 삼대가 업뎃하고 균형을 이루는, 우리가 쓰고, 우리가 아직 쓰지 않은 것을 보게 하는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첫사랑 2020이 써 내려갈 내일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이 어린 영혼들이 펼칠 내일의 이야기들은, 얼마나 달라지고 있을 한 사람의 인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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