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 라이
프리다 맥파든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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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작정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프리다 맥파든의 작품을 계속 읽고 있다. 이번에는 네버 라이. 분량은 적은 편이라 그만큼 빨리 읽히기도 하지만, 앞서 만났던 작품들과 사뭇 다른 주인공의 등장으로 악인의 전성시대같은 느낌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들려오는 이야기는 3년이라는 시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상하게 하면서, 처음부터 범인 추적에 열을 올리게 한다.


결혼 6개월 차 부부 이선과 트리샤. 이 부부는 맨해튼을 떠나 교외에 집을 구하고 있다. 부동산 중개인 주디와 약속하고 어떤 집을 보러 갔는데, 네비게이션도 정확히 알려주지 못하는 곳에 있는 저택에 가까운 집에 다다른다. 부동산 중개인 주디는 아직 오지 않았고, 폭설은 내리고 있고, 추위를 피하고자 주인 없는 집에 들어가게 된다. 어쩌다가 이런 집이 매물로 나왔을까. 집안을 살피던 이선과 트리샤는 내부의 모든 것이 그대로인 것을 보고 놀란다. 단순한 매물이 아니었다. 이 집의 주인은 3년 전에 실종된(이미 죽었다고 판단되는) 유명한 정신과 의사 헤일 박사다. 죽은 사람의 집을 사도 되는지 고민에 빠지기도 했지만, 우선은 배고픔과 추위를 달래는 게 우선이다. 두 사람은 집안을 살피면서 남겨진 음식을 먹기도 하고, 벽난로에 불을 지펴 집안의 온기를 채우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헤일 박사는 사라진 지 3년이나 되는데, 그동안 이 집은 계속 비어 있었는데, 유통기한이 남은 음식이 이 집에 남아 있었다. 이거 무슨 일인가.


몸이 떨리는 이 긴장감은 단순히 추위 때문은 아닌 듯하다. 집 안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꺼림칙한 기운이 맴돈다. 마치 누군가 이 집안에서, 두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기분이다. 뭔가 자꾸 시선이 따라붙는 것 같고, 벽에 걸린 초상화를 누가 손을 댄 것 같기도 하고. 트리샤는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서 남편에게 말하지만, 이선은 그녀가 너무 예민한 거라고 말한다.


3년 전 헤일 박사는 이 저택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상담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책도 썼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정받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헤일 박사의 상담 내용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었는데, PL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로 큰 사건을 겪고 그 시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EJ는 자기애가 넘치는 인물로 인격적으로 큰 장애를 안고 있다. 피해망상 환자 GW는 누군가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며 괴로워한다. 이들 모두 헤일 박사와 꾸준히 상담했지만 금방 좋아지지 않는 듯했다. 헤일 박사의 애인 루크는 헤일 박사가 실종되자 그녀를 죽인 용의자로 지목된다.


읽으면서 내용이 현재와 과거 사이를 오갈 때마다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애썼다. 굳이 이렇게 보여주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과거의 헤일 박사와 환자들, 현재의 이선과 트리샤. 아무리 봐도 이 사람들 사이가 무엇으로 연결되어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즈음, 헤일 박사가 상담 내용을 기록할 때마다 환자 이름을 이니셜로 적은 것을 떠올렸다. 실명이 아닌 이니셜, 그녀가 책에 상담 사례를 담으려고 일부러 실명을 숨길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것 말고도 이유가 있을 거다. 소설의 초반부가 조금 지났을 때, 나는 범인을 확신했다. 이 사람이 범인이다. 하나씩 드러나는 단서에 이 사람이 분명 연관되어 있다고 믿었다. 3년 전과 지금, 연결고리가 이어진 사람은 단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이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갈수록 나의 확신은 의문이 되어 갔다. 아닌가? 저자가 다른 작품에서 보여준 등장인물의 특성이 어떤 식으로 그려질 것인지 예상했었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물론 의심은 계속 이어졌고, 그 의심 속에서 또 다른 이유와 상황으로 범인은 밝혀지지만, 뜻밖의 인물이었다. 아직 추리소설을 더 읽어야 점쟁이 빤스를 입을 수 있나 싶기도 하면서, 범인으로 밝혀진 인물의 인격에 헛웃음이 나는 걸 보면, 역시 세상에는 갱생이 안 되는 나쁜 인간이 분명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그 와중에 선한 사람도 분명 있었지만, 그들이 가진 힘으로 보면 역시 악이 선을 이기는 게 되는 건가?


도심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교외의 저택이 배경이 되면서 음산함과 공포는 더욱 커진다. 이선과 트리샤 두 사람 모두 이 집에 처음 온 것일 텐데, 의외로 의연하게 이 집을 편하게 살피면서 꼭 이 집에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의심스러웠다. 트리샤는 이 집이 주는 분위기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집 안의 이곳저곳을 확인하듯 하나씩 열어보는 게 수상했다. 한밤중에 헤일 박사의 초상화를 걸었다가 다시 내려놓은 사람은 누구일까. 마치 조금 전까지 이 집안에 사람이 머물렀던 것처럼 보이는 흔적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폭설에 고립되듯 갇힌 두 사람이 무사히 이 집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헤일 박사는 실종일까 사망일까. 갑자기 이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 알 듯 모를듯한 단서의 조각들을 어떻게 맞춰야 이 소설의 결말이 완성될지 궁금해서 끝까지 읽게 되는 건 당연했다. 누구나 거짓말을 하지만, 누구도 그 거짓말에 완벽히 속지 않는다.


두 사람이 비밀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 사람이 죽어서 사라지는 것뿐이다. (340페이지)


우리나라에서의 출간 기준으로 보면 이 작품은 프리다 맥파든의 세 번째 작품이다. 아직 핸디맨은 못 읽었고(곧 읽을 예정), 그다음 출간작 하우스 메이드를 읽었을 때는 너무 재미있어서 바로 하우스 메이드 2를 펼쳤으나, 시리즈의 첫 작품을 뛰어넘지는 못한 것 같다. 어느 정도 기대치를 내려놓고 읽어서 그런지 더 코워커도 만족스럽지는 않았으나 크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저자의 어떤 작품이든 가독성은 뛰어났다. 읽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동안 저자의 작품을 계속 읽어오면서 갸우뚱하게 만드는 게, 주인공의 삶의 자세가 악인인지 의인인지 알 수 없이 흘러오는 느낌도 있었는데, 이 작품은 그냥 이기적이고 나만 아는 악인의 탄생을 보여준 듯하다. 하우스 메이드의 밀리의 범죄가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한 이유였다고, 더 코워커내털리나 돈 쉬프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구석이 있었지만, 이 소설의 범인은 그냥 나쁜 인간인 거였다. 그러니 살아가면서 매 순간을, 모든 사람을 의심하게 만드는 습관이 저절로 생기는 건지도 모르지. 에휴, 세상 왜 이러냐.



#네버라이 #프리다맥파든 #밝은세상 #소설 #추리소설 #공포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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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다가, 울컥 - 기어이 차오른 오래된 이야기
박찬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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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지은 밥에 버터와 간장을 넣고 비벼 먹는 거예요. 요리를 하지 않는 당신도 그 정도는 하겠죠. 버터가 얼마나 훌륭한지 가장 잘 알 수 있는 음식이에요.”

(중략)

버터는 냉장고에서 막 꺼내서 차가운 채로 넣어요. 정말로 맛있는 버터는 차갑고 단단한 상태에서 식감과 향을 맛보아야 해요. 밥의 열기로 바로 녹으니까 반드시 녹기 전에 입으로 가져가야 해요. 차가운 버터와 따뜻한 밥. 일단 그 차이를 즐겨요. 그리고 당신 입속에서 두 가지가 녹아서 섞이며 황금색 샘이 될 거예요. , 보이지 않아도 황금색이란 걸 아는, 그런 맛이죠. 버터가 엉킨 밥 한 알 한 알이 자기 존재를 주장하고, 마치 볶은 듯한 향기로움이 목에서 코로 빠져나가죠. 진한 우유의 달콤함이 혀에 감기고…….” (버터유즈키 아사코, 39~40페이지)


유즈키 아사코의 추리소설 버터를 읽다가 마주한 장면, 책을 다 읽고서도 책의 내용보다는 이 버터를 녹인 밥을 오랫동안 기억했다. 우리의 추억 돋는 간장 달걀밥과 비슷한 구절이어서 말이다. 달걀 한 알도 귀한 시절의 기억은 저절로 소환된다. 따로 반찬을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아이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엄마가 준비하는 최선은 갓 지은 하얀 쌀밥에 달걀노른자 하나를 올려주고, 간장을 두르고 참기름을 살짝 끼얹어 주는 것. 그 고소함에 취해 밥 한 그릇 뚝딱하면서 배 속이 꽉 찬 기분을 느꼈더랬다. 엄마가 나에게 그런 밥을 만들어주시던 기억은 벌써 과거의 일이고, 한참 아이였던 그때의 감정이 떠오를 때면 지금도 가끔 엄마의 간장 달걀밥을 흉내 내어 먹곤 한다. 갓 지은 하얀 쌀밥에 달걀노른자를 올리고 간장을 몇 방울 떨어뜨리면서 참기름을 살짝 뿌린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유즈키 아사코의 소설에서처럼 버터를 한 조각 넣는 거다. 이미 참기름으로 코를 자극하던 감각은 뜨거운 밥에 녹아내리는 버터의 풍미를 추가하면서, 1980년대와 조금 다른 간장 달걀밥이 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무리 고소함이 배가 되어도, 엄마가 해주시던 그때와 같은 맛은 아니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뭐가 빠진 걸까.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밥인데, 늘 먹던 밥이고 메뉴가 달라도 밥이 그냥 밥일진대, 가슴 속에서 뭔가 끓어오르게 하는 밥이 있다. 기억 속의 밥이다. 언제, 누구와 함께, 어떤 사연을 나누며 먹은 밥인지, 그 시간을 불러오는 방법도 참 여러 가지다. 저자가 기억하는 밥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다. 그의 삶을 거쳐 간 사람들과의 추억은 아름답고, 슬프고, 아팠다. 그 시절의 많은 사람이 그랬듯 많은 게 모자란 환경이었다. 사는 게 서럽고 고달픈 게 일상이었고, 가난이 버거웠다. 듣고 있자면 이게 추억인지 고통을 끄집어내는 일인지 모를 정도로, 나도 모르게 힘들었겠다라는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그의 세월을 동정하는 게 아니다. 내가 그보다 여유롭게 살았다고 하는 말도 아니다. 사는 일이 참 고단하다는 생각에, 이렇게 서럽다가도 좋은 날 오겠지 하는 기대를 품고 듣고 있게 되더라. 한 번씩 엄마의 간장 달걀밥이 생각날 때마다 그 시절의 이야기가 따라오듯, 그에게도 살아온 날들의 추억은 추위에 떠는 마음을 연신 쓰다듬는 것만 같았다. 사라져 가는 것들, 서늘하게 돌아가는 세상의 모습들, 조금 기대고 싶어도 갑자기 얼음을 맞는 것처럼 긴장하게 되는 순간들이 고단할 때마다 그리움을 불러온다. 다정하고 고마웠던 음식들과 그 음식을 함께 나눴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의 그리움 속에 가득하다.


저자가 이탈리아 타향살이에 눈물이 나도록 힘들 때, 후배가 보내준 멸치와 고추장을 눈물 흘리면서 먹었던 일. 갑자기 날아든 세무서 독촉장에 잊고 지냈던 조선족 동포와의 시간이 떠올랐다. 결혼식장의 뷔페가 성행할 때 상승세를 타던 친구는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하늘로 갔단다. 돈을 빌려달라는 말이 마지막 대화였다는 걸 알았을 때는 먹먹하기도 했다고. 친구가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자신보다는 직원 월급을 해결해주려고 애쓴 사람이었으니, 보내는 사람의 마음은 무너진다. 고생 끝에 빵집 일급 기술자가 되었지만 프랜차이즈 빵집에 골목 빵집은 망했고, 이제는 도배 기술자가 되어 먹고 사는 이를 기억하면 빵 굽는 냄새가 난다. 팔에 동그랗게 기름이 튄 흔적(중식), 팔뚝의 칼날에 베인 듯한 상처(양식)로 누군가의 밥벌이를 알게 된다는 게 새삼 울컥한다. 지금 내 눈앞의 음식이 어떤 이의 손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게 되니, 음식에 의미가 쌓이는 기분이다. 경상도 해안의 해녀들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성게 잔가시와 내장을 빼내는 뒷모습에, 성게가 목에 걸린다고 했다. 따뜻하게 배달받은 시장의 백반은 산재 처리도 못 받는 이의 몸을 상하게 했다. 남에게 밥을 해주겠다고(물론 그게 자기 장사이고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지라도) 고생하는 이들의 사연에 설명하기 어려운 고마움이 저절로 따라왔다. 이런 장면들, 어디서 많이 본 것도 같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냥 생각이 났다. 저자가 살아가면서 마주친 음식 속 많은 사람과 사연 속에 엄마가 있었다.


엄마의 왼쪽 검지 끝은 아직도 손톱이 잘 자라지 않는다. 식당 주방에서 칼질하다가 베였다. 검버섯처럼 거뭇거뭇한 흔적이 엄마의 손을 밉게 보이게 한다. 통닭집을 하다가 얻은 기름 튄 자국들이다. 연골이 다 닳아버린 무릎과 제대로 펼 수 없는 허리는 백반집을 하면서 배달하다가 쌓인 통증을 참아낸 시간의 흔적이었다. 식당에서 사용할 밑반찬을 만든다고 멸치 배를 따고, 느타리버섯을 한 상자 사서 갈래갈래 찢고, 손님상에 내놓을 동태탕을 끓인다면서 얼린 동태를 손질하면서 찬물에 담겨있던 손은 지금도 일년내내 차갑다. 저자에게는 많은 음식을 떠올리면서 그 시간에 함께 했던 사람들이었지만, 음식과 연결된 많은 사람의 사연들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많은 음식에 그대로 엄마가 있는 게 이상했다. 저자가 만나고 사연을 들려주는 그들의 시간 속에, 그 자리에 엄마가 있었다. 희한하게도, 안 그래야지 하고 매번 다짐하는데도 잘 안된다. 그동안 세상을 돌면서 밖에서 먹은 음식보다 엄마가 집에서 내어주던, 엄마가 식당을 하면서 손님상에 내놓던 음식들이 눈에 선명해서 그렇다. 그 많은 음식을 준비하던 시간 대부분에 내가 있었다. 교복을 입고 엄마의 식당에 갔고, 손님상으로 음식을 날랐다. 그렇게 살아야만 했던, 할 줄 아는 게 음식밖에 없어서 그랬던 것을 알아서, 그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말이다. 저자가 떠올리는 서글픈 순간들, 눈물 나게 고마웠던 사람들, 지금 앞에 둔 음식에 저절로 떠올라서 울컥해지는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비슷한 기억을 가진, 너무 닮아서 등을 쓰다듬고 싶은 순간을 간직한 이들의 이야기였다.


평생을 살아도 옛날만 사는 것 같다는 저자의 말이 왜 이렇게 안쓰러운지, 아마도 많은 것이 부족하던 시절을 견디듯 살아낸 마음을 아직 제대로 위로받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모두가 가난하고 어렵게 성장한 시절, 그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과 또 다른 사람들을 추억하는 방법으로 저자는 이 글을 쏟아낸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혹시 잊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닐까. 마음이 허기지고 힘들어서 뱃속에 뭔가 채우고 싶을 때마다 떠올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닐까 하고.


4월쯤이었던가, 시간이 나서 엄마한테 갔다가, 텃밭에 아직 남아 있는 쑥을 캐왔던 날의 기억이 따라온다. 우리 집에서 가장 큰 솥을 꺼내고, 냉장고에 남은 묵은지를 잘게 썰고 쌀뜨물을 넣고 끓였다. 된장을 풀고 깨끗하게 씻은 쑥을 가득 넣고 조금 더 끓이다가, 개운한 맛을 내려고 청양고추 몇 조각, 고춧가루 살짝 뿌려서 계속 끓이다 보니 맛있는 냄새가 난다. 냉동실에 넣어둔 멸치를 꺼내어 멸치 조림을 하고, 그즈음 사다 둔 냉이가 아직 괜찮아서 데쳐서 무쳤다. 남아서 처치 곤란했던 무로 생채를 만들고, 미나리를 잘못 샀는지 너무 질겨서 전으로 부쳐냈다. 엄마가 어렸을 적에 자주 해주던, 음식 재료를 넉넉하게 살 형편이 안되는 집에 그저 남아 있는 재료들로 만들어내던 음식을, 이제는 내가 만들어서 엄마에게 가져다준다. 함께 살면서 엄마의 어깨너머로 본 기억으로 흉내를 내다보니, 이제는 그럭저럭 먹어줄 만한 수준이 되었다. 언젠가 엄마가 안 계실 때, 그 맛을 내고 싶을 때마다 우리 집의 주방은 분주해질 것 같다.




#밥먹다가울컥 #박찬일 #웅진지식하우스 #기어이차오른오래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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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의 끝
정해연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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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량제 봉투를 열고 쓰레기를 집어넣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돈을 주고 샀는데, 이왕이면 알뜰살뜰 쓰레기를 목구멍까지 가득 채워서 버려야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 것 같았다. 이것저것 다 채워 넣은 쓰레기봉투는 잘 묶이지 않았고, 결국 투명테이프로 쓰레기봉투 끝을 붙여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솔직히 이렇게까지는 아니다 싶어서 다시 쓰레기를 몇 개 꺼내고 묶어서 버렸다. 쓰레기봉투 디자인을 괜히 그렇게 만든 게 아니었겠지. 봉투 끝을 잘 묶어서 쓰레기가 쏟아지지 않게 버리라고, 쓰레기를 넘치도록 채워서 투명테이프로 붙여 절약 정신을 증명하라는 게 아니었을 거다. 매듭을 잘 묶어서 버리는 일, 어떤 일을 잘 마무리하고 해결하는 방식은 정말 중요했다. 그 중요한 방식이, 이 소설 속 두 모자는 대조적이었다.


박희숙은 성공한 사업가다. 혼자서 화장품 방문판매를 시작으로 걸어온 길 끝에 사업가로서의 정점이 눈앞에 있었다.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외국으로 화장품 판매의 길을 열 것이고, 이대로 잘 풀린다면 이 회사는 자신의 완성품이면서 동시에 아들 최진하에게로 이어질 것이다. 그 아들에게 갑작스럽게 걸려 온 전화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유일한 자식이라고 너무 감싸 안아서 키웠던 진하는 엄마의 돈만 믿고 살았다. 회사에서 자리를 마련해 주어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살았다. 정신 차리기를 바라고 지방 소도시인 재선시로 보냈지만, 어느 날 진하는 사람을 죽였다면서 엄마에게 전화한다. 엄마 박희숙의 선택은 한 가지뿐이었다. 아들을 살인자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


지금까지처럼 가만히 있어. 갑자기 어른이라도 된 것처럼 나대지 마. 내 뒤에 어린애처럼 숨어있어. 넌 그러면 된 거야.” (187페이지)


재선시에서 방화 사건이 일어난다. 화재 현장에서는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고, 담당 형사 이인우는 이 사건을 추적하던 중 단순한 화재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와중에 절연에 가까운 어머니는 한 번씩 인우를 찾아온다. 아들은 어머니를 거부하고, 어머니는 그런 아들도 봐야겠다는 마음인지 꾸준히 찾아온다. 오래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때의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로 성장한 인우는 어머니를 의심해 왔다. 아버지가 왜 죽어야 했는지 아직도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다. 게다가 어머니는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하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를 맞닥뜨린 인우는 어머니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화재 사건을 수사하면서 박희숙과 최진하 모자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 거로 의심하던 인우는 아직 이 추리를 완성하지 못했다. 의심을 사실로 증명하려면 증거가 필요한데, 그 증거를 찾지 못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용의자들은 알리바이가 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지. 인우는 모든 의심의 흔적을 찾아다니면서 수사에 매진한다.


이미 소개 글에서도 나왔지만, 사람을 죽였다는 아들을 감싸기 위해 엄마는 모든 것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안다. 내 자식을 살인자로 만들 수 없다는 부모의 마음,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는 결심이 앞선다는 것을. 그러면? 살인자인 아들을 살인자로 만들지 않으면, 그 이후 아들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자신이 저지른 살인은 기억에서 지우고 살아갈 수 있을까? 엄마가 이 사건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든, 엄마가 그 살인을 뒤집어쓰든, 어떤 식으로든 이 사건에서 본인이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게, 나는 너무 어려워 보인다. 세상 더없이 따뜻하고 완전하게 보듬어줄 수 있는 모성이란 게, 어긋난 방식으로 작용했을 때 어떤 결말을 만드는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고 이 소설의 재미는 단순하게 사건의 발단과 의심, 사건 해결이 말하는 진실에만 있는 건 아니다. 부모의 마음, 모성이 만드는 비극적인 결말의 바탕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게 하면서, 모성의 헌신과 성립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묻기도 한다. 솔직히 마지막 반전에서 보여준 진실을 완벽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까지 해서 내 자식을 지켜야 하는 게 맞는 건지 몇 번을 되묻기도 했다. 이런 진실, 모성을 갖고 살아가는 일은 어렵다는 생각만 들더라. 그러면서 다시 한번 묻게 된다. 나라면? 내가 이 상황 속 엄마라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내 자식을 감싸주고 위로하며 잘 헤쳐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이런 선택은 못 할 것 같다. 박희숙과 최진하, 이인우 형사와 그의 어머니, 두 모자의 사연과 사건 해결 과정이 너무 대조적이어서, 계속 듣고 있자니 부모로 살아가는 일은 정말 어렵다는 마음만 남는다. 만약을 상상하며 어떤 모성을 발휘하고 싶은지는 독자 개인의 몫일 테니.


네가 날 의심해도 괜찮았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307페이지)



#매듭의끝 #정해연 #현대문학 #소설 #추리소설 #장르소설

##책추천 #모성 #당신의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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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코워커
프리다 맥파든 지음, 최주원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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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 중 하나는 자라다.

생김새는 그렇게 무서워 보이지 않는다. 등 껍데기도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거북이와 다르다. 언뜻 팬케이크에 머리와 다리가 달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속지 말 것. 자라는 치명적일 때가 있다. 모래에 숨어 미동도 없이 먹잇감을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언제든 아주 날카로운 주둥이로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먹이를 잡으려면 필요한 것, 바로 인내심이다.

이렇게 자라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다. (313페이지)


잘 짜인 하루 시간표처럼 움직이는 여자가 있다. 내털리의 옆자리 동료인 돈 쉬프. 거북이를 엄청나게 좋아하고, 한 가지 색으로 구분된 식사를 한다. 매일 정확한 시간에 출근하고, 화장실 이용하는 시간마저 정확하게 짜여 있는 그녀의 하루를 들으면서 숨이 막히기도 했다. 사람이 5분 늦게 출근할 수도 있고, 다른 것을 하다가 점심을 놓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돈이 어떤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성향의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있다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의 영역에 침범할 이유도 없지만, 혹시나 그 성향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어쨌든 소설 속 인물이 가진 특성을 일단 지켜봐야 했는데, 내털리 역시 돈을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던 그녀가 오늘은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자리에 없다. 별일이네.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잠깐 자리를 비우는 정도가 아니라, 돈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내털리는 계속 일하면서도 틈틈이 돈의 출근을 확인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안부를 모른다. 한 번도 없던 일이 생기자 돈의 주변을 탐색한다. 그녀가 좀 독특하긴 했지만, 여러 사람과 편하게 교류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사라지는 이유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단 말인가. 언젠가 한 번 돈을 집에 데려다준 기억이 난 내털리는, 외근 후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옆자리에서 매일 같이 얼굴 보고 지냈던 동료가 출근하지 않았으니 안부를 확인하고 싶어서, 그것뿐이다.


돈의 집에 갔던 내털리는 피가 낭자한 집안의 모습에 놀라고 바로 경찰에 신고한다. 곧 경찰은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돈의 주변 인물, 그래봤자 특별한 교류가 없는 회사 동료들을 면담하면서 사건 해결에 힘쓰게 되는데, 상황은 점점 이상하게 흘러간다. 돈과 내털리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동료들의 제보, 돈이 유일하게 모든 일상을 공유했던 친구 미아에게 보낸 이메일, 이 모든 게 내털리가 돈을 살해했다는 증거로 작용하면서 내털리는 궁지에 몰린다. 돈의 살해 용의자가 된 거다.


정말로 내털리가 돈을 죽인 건 아닐까 의심하면서 읽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남성들에게 매력을 어필하면서 영업 실적을 올리는 내털리의 작업 능력에 의심을 더해야 하는지, 내털리의 주변에서 그녀와 가까워지기 위해 애쓰는 또 다른 사람들을 의심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그 중심에는 다른 사람을 때로 불편하게 하는 돈의 성격도 있었고, 돈의 방식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리를 두는 사람들의 방어적인 태도도 있었다.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독자에게는 용의자가 된다. 누구 하나 돈과 호의적인 관계였던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모두 돈을 살해할 동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 사건은 먼저 돈의 행적을 찾는 것, 돈의 집에 낭자했던 피가 무슨 의미인지 찾아내야 한다.


소설은 내털리와 돈의 시선에서 교차로 펼쳐진다. 돈이 사라진 날부터 시작된 내털리의 일상과 살해 용의자로 의심받는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하는 궁금증으로 읽게 되고, 회사 내 왕따처럼 보였던 돈은 모든 일상을 친구인 미아에게 이메일로 보고하듯 들려주는 방식이다. 돈이 회사 내에서 대화로 풀어내지 못한 동료들과의 관계를 미아에게 보내는 이메일에서 확인하게 되는데, 읽으면서 참 묘하더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돈의 마음을 알게 된다는 게 아쉬워서. 당사자와 대화하고 소통하고 풀어야 하는 문제들을 이 일과 전혀 관계없는 이에게 토로하듯 풀어놓는 말들이, 이 불편한 관계의 회복에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으니까.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하면서 읽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도 있었고, 혹시나 이렇게 되는 건 아닐까 추측했던 게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결말을 보면서 헛웃음이 나기도 했고, 이게 맞는 건가 싶기도 했다. 결말에서 보여주는 주인공들의 이런 설정 실화냐? 소설이니까 가능한 결말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요즘 세상에서 권선징악이나 인과응보는 우리 어렸을 적 읽던 전래동화에서나 어울리는 말인가 싶어서 씁쓸하기도 했단 말이지.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소설에서 눈여겨보게 되는 건,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혹은 누군가 어떤 의도를 품고 나쁜 짓을 저질렀을 때 그 이유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거다. 우리 살아가는 동안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결과)에는 반드시 그 시작(원인)이 있기 마련일 테니. 그러니까, 착하게 살자. 괜히 살인 용의자가 될 수도 있고, 살해당할 수도 있고, 좋은 사람 놓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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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내 옆에 책이 있었으나,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다 읽었어도 후기를 남기지 못하거나 하는 시간의 반복이었다. 늘 그렇듯, 바쁘기만 한 마음에 시간이 협조해주지 못한 게 아닐까 핑계를 대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게으름이다. 좀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지 못한 습관의 결과라고 해야 하나. 생각해 보니 이게 최근의,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구나 싶어서 할 말이 없기도 하다. 꽤 여러 해 동안 이랬던 것 같기도 하고, 말하고 보니 반복된 게으름에 부끄럽기도 하고. 머릿속을 빙빙 도는 하고 싶은 말을 더 생각하게 하지 못하는 저급한 체력,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게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정신을 갉아먹게 하는 일상, 그러다 보니 지친 몸을 뉘고 싶은 간절함만 남은 마음을 달래주는 방법은 그냥 눕는 것뿐이었다. 최근 만났던 책들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왜 연속적으로 그 재미를 이어가는 게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읽었으니 몇 마디는 하고 싶어서 남겨본다.



쌈리의 뼈

해환의 엄마 윤명자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윤명자는 자신이 치매에 걸리자, 자기가 쓰던 작품을 딸 해환에게 이어서 쓰게 한다. 윤명자의 말에 의하면 소설은 그녀의 인생이었다고 하니, 해환 역시 엄마의 인생을 이어가게 하는 이유를 거부할 수 없었으리라. 엄마가 쓰던 그 작품 <쌈리의 뼈>를 이어가고자 하던 그때, 쌈리의 재개발 과정에서 사람의 뼈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엄마 윤명자의 소설과 지금 일어나는 일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으며, 과거 엄마가 살아온 생을 마주하면서 해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때 많은 사람이 오갔으나 지금은 폐쇄된 집창촌 쌈리. 소설가인 엄마가 그곳과 어떤 연관이 있어서 쌈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썼을까 궁금하던 것도 잠시, 계속 발견되는 뼈는 엄마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한다.


도대체, 치매는 무슨 병일까. 의학적으로 설명되는 거 말고, 우리가 겪는 하루하루의 장면에서 어떤 작용을 하기에 이렇게 위협적인 느낌부터 생기는 걸까.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진짜 어려운 병이라는 게 맞는 듯하다.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공감이 이 소설에 묻어나서 그런지, 주인공 해환이 정신을 잃어가면서 엄마의 몸에 상처를 내는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했다. 소설은 미스터리하면서도, 지금은 치매에 걸려서 현실과 과거를 오가는 한 사람의 역사를 보여준다. 과거 어느 시점의 이야기는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누군가의 죄는, 시간은 또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묻기도 한다. 처음에는 윤명자와 지금 발견되는 뼈 사이에서 범인을 찾으며 읽기에 급급했는데, 과거의 어떤 시간이 현재를 흔들기도 하는 흐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슬프고 아프지만, 불안과 혼란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이해하고 싶다.



돈가스 : 씩씩한 포크와 계획적인 나이프

누군가의 힐링 음식이 될 수도 있는 돈가스. 가끔 먹기는 해도 나의 최애 음식은 아니건만, 이 책을 읽고 나면 돈가스를 찾아 여행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돈가스 맛집을 찾기도 하지만, 늦은 귀가에도 어김없이 찾아내는 냉동실의 돈가스는 어지간한 애정이 아니면 가까이하기 어려울 것도 같은데, 이만한 보상에 웃음꽃을 피울 수 있다면 이것도 행복이겠지. 함께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부부 디자이너, 돈가스 앞에서는 더없는 화합을 보여주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일에 지치기도 하고, 통장을 스치고 지나가는 월급에 서글프기도 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돈가스가 위로해주고 있으니 마냥 슬픈 것만도 아니었다.


돈가스가 그냥 돈가스지, 하는 생각을 가진 나에게 색다른 방식의 접근을 보여준 책이었다. 아니, 돈가스 종류가 이렇게나 많은가 싶기도 했고, 돈가스와 다른 재료(음식)를 더해 새로운 버전으로 먹는 돈가스가 태어나는 것 같기도 했다. 게다가, 음식으로 위로받을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폭발적으로 살이 찌고 맞는 옷이 없어서 우울하기도 하지만, 맛있는 음식 앞에서 행복해지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매일 다이어트를 생각하면서, 사흘 만에 한 번씩 다이어트를 시작(첫날 식사조절 둘째 날 치팅데이 셋째 날 요요)하면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사실이 꼭 슬픈 것만은 아니었다. 이 책 읽고 나면 며칠 동안 돈가스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테니 조심할 것.



우리는 결국 부모를 떠나보낸다

이런 소재의 책이 처음은 아니지만, 읽을 때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누구나 부모를 떠나보내는 과정이 똑같이 찾아온다는 사실, 죽음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마음은 조금씩 다를 수도 있다는 이해. 죽음으로 부모와 이별하게 되는 것이 너무 당연하니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게 또 말처럼 쉽지 않아서 여러 가지 감정이 충돌한다. 저자는 언젠가 우리가 마주할 이 과정에서 겪어야 할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반드시 직면할 이별을 의미 있게 준비하도록 돕는다. 지금 이 과정(나이 든 부모를 돌보는)을 겪는 사람들, 혹은 다른 가까운 이와 이별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 시간을 잘 건너갈 수 있는 현실적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병원을 자주 드나들다 보니 환자와 보호자의 모습을 자주 본다. 어느 순간부터 자주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는데, 60대의 자녀가 80대 이상의 부모를 모시고 진료받으러 오거나 입원 생활을 하는 거였다. 말 그대로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시대가 와버린 거다. 나 역시 병원에서 봤던 그들과 다르지 않다. 80대 엄마를 모시고 다니면서 버거움을 느낄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감정이 파도를 치고, 지금 이 상황을 부정하고 싶어진다. 내가 왜? 왜 나만?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화들짝 놀라곤 한다. ‘언제까지가 끝나면 진짜 이별이라는 사실이 무서워서. 저자의 말을 새기면서 이 과정, 이 시간을 잘 건너가야겠다는 마음을 다잡아본다. 이 시간을 더 의미 있게 써야 하는, 지금이 아니면 못 할 것들을 더 소중하게 대해야겠다는 다짐을 그려본다. 다시 못 올 시간이기에 말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읽어도, 읽은 책보다 못 읽은 책이 더 많을 거다. 구매한 책이 지금도 옆에 쌓여 있고,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은 다 못 읽고 반납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꾸준히 희망 도서를 신청하고 있다. 그렇게 또 대출 가능 알림이 오면 도서관으로 향하곤 한다. 이게 무슨 시간 낭비인가 싶어서 가끔 멍해지다가도 습관처럼 반복하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보면, 어쩌면 이런 반복은 내가 나를 위로하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차피 못 읽을 거 알면서 외출할 때 가방에 책을 챙겨 넣는 것처럼, 다 살 것도 아니면서 신간 카테고리를 계속 기웃거리는 것처럼, 그러면서 또 무슨 책을 사면 좋을지 궁금해하면서 책 소개 글을 읽고 있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이런 반복, 이런 습관이 엄청난 위로일지도 모르니, 그저 이해해달라는 말로 변명을 하면서, 다음 달 희망 도서는 또 어떤 책을 신청할지 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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