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내 옆에 책이 있었으나,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다 읽었어도 후기를 남기지 못하거나 하는 시간의 반복이었다. 늘 그렇듯, 바쁘기만 한 마음에 시간이 협조해주지 못한 게 아닐까 핑계를 대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게으름이다. 좀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지 못한 습관의 결과라고 해야 하나. 생각해 보니 이게 최근의,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구나 싶어서 할 말이 없기도 하다. 꽤 여러 해 동안 이랬던 것 같기도 하고, 말하고 보니 반복된 게으름에 부끄럽기도 하고. 머릿속을 빙빙 도는 하고 싶은 말을 더 생각하게 하지 못하는 저급한 체력,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게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정신을 갉아먹게 하는 일상, 그러다 보니 지친 몸을 뉘고 싶은 간절함만 남은 마음을 달래주는 방법은 그냥 눕는 것뿐이었다. 최근 만났던 책들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왜 연속적으로 그 재미를 이어가는 게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읽었으니 몇 마디는 하고 싶어서 남겨본다.
『쌈리의 뼈』
해환의 엄마 윤명자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윤명자는 자신이 치매에 걸리자, 자기가 쓰던 작품을 딸 해환에게 이어서 쓰게 한다. 윤명자의 말에 의하면 소설은 그녀의 인생이었다고 하니, 해환 역시 엄마의 인생을 이어가게 하는 이유를 거부할 수 없었으리라. 엄마가 쓰던 그 작품 <쌈리의 뼈>를 이어가고자 하던 그때, 쌈리의 재개발 과정에서 사람의 뼈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엄마 윤명자의 소설과 지금 일어나는 일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으며, 과거 엄마가 살아온 생을 마주하면서 해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때 많은 사람이 오갔으나 지금은 폐쇄된 집창촌 쌈리. 소설가인 엄마가 그곳과 어떤 연관이 있어서 쌈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썼을까 궁금하던 것도 잠시, 계속 발견되는 뼈는 엄마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한다.
도대체, 치매는 무슨 병일까. 의학적으로 설명되는 거 말고, 우리가 겪는 하루하루의 장면에서 어떤 작용을 하기에 이렇게 위협적인 느낌부터 생기는 걸까.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진짜 어려운 병이라는 게 맞는 듯하다.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공감이 이 소설에 묻어나서 그런지, 주인공 해환이 정신을 잃어가면서 엄마의 몸에 상처를 내는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했다. 소설은 미스터리하면서도, 지금은 치매에 걸려서 현실과 과거를 오가는 한 사람의 역사를 보여준다. 과거 어느 시점의 이야기는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누군가의 죄는, 시간은 또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묻기도 한다. 처음에는 윤명자와 지금 발견되는 뼈 사이에서 범인을 찾으며 읽기에 급급했는데, 과거의 어떤 시간이 현재를 흔들기도 하는 흐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슬프고 아프지만, 불안과 혼란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이해하고 싶다.
『돈가스 : 씩씩한 포크와 계획적인 나이프』
누군가의 힐링 음식이 될 수도 있는 돈가스. 가끔 먹기는 해도 나의 최애 음식은 아니건만, 이 책을 읽고 나면 돈가스를 찾아 여행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돈가스 맛집을 찾기도 하지만, 늦은 귀가에도 어김없이 찾아내는 냉동실의 돈가스는 어지간한 애정이 아니면 가까이하기 어려울 것도 같은데, 이만한 보상에 웃음꽃을 피울 수 있다면 이것도 행복이겠지. 함께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부부 디자이너, 돈가스 앞에서는 더없는 화합을 보여주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일에 지치기도 하고, 통장을 스치고 지나가는 월급에 서글프기도 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돈가스가 위로해주고 있으니 마냥 슬픈 것만도 아니었다.
돈가스가 그냥 돈가스지, 하는 생각을 가진 나에게 색다른 방식의 접근을 보여준 책이었다. 아니, 돈가스 종류가 이렇게나 많은가 싶기도 했고, 돈가스와 다른 재료(음식)를 더해 새로운 버전으로 먹는 돈가스가 태어나는 것 같기도 했다. 게다가, 음식으로 위로받을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폭발적으로 살이 찌고 맞는 옷이 없어서 우울하기도 하지만, 맛있는 음식 앞에서 행복해지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매일 다이어트를 생각하면서, 사흘 만에 한 번씩 다이어트를 시작(첫날 식사조절 – 둘째 날 치팅데이 – 셋째 날 요요)하면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사실이 꼭 슬픈 것만은 아니었다. 이 책 읽고 나면 며칠 동안 돈가스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테니 조심할 것.
『우리는 결국 부모를 떠나보낸다』
이런 소재의 책이 처음은 아니지만, 읽을 때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누구나 부모를 떠나보내는 과정이 똑같이 찾아온다는 사실, 죽음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마음은 조금씩 다를 수도 있다는 이해. 죽음으로 부모와 이별하게 되는 것이 너무 당연하니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게 또 말처럼 쉽지 않아서 여러 가지 감정이 충돌한다. 저자는 언젠가 우리가 마주할 이 과정에서 겪어야 할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반드시 직면할 이별을 의미 있게 준비하도록 돕는다. 지금 이 과정(나이 든 부모를 돌보는)을 겪는 사람들, 혹은 다른 가까운 이와 이별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 시간을 잘 건너갈 수 있는 현실적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병원을 자주 드나들다 보니 환자와 보호자의 모습을 자주 본다. 어느 순간부터 자주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는데, 60대의 자녀가 80대 이상의 부모를 모시고 진료받으러 오거나 입원 생활을 하는 거였다. 말 그대로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시대가 와버린 거다. 나 역시 병원에서 봤던 그들과 다르지 않다. 80대 엄마를 모시고 다니면서 버거움을 느낄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감정이 파도를 치고, 지금 이 상황을 부정하고 싶어진다. 내가 왜? 왜 나만?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화들짝 놀라곤 한다. ‘언제까지’가 끝나면 진짜 이별이라는 사실이 무서워서. 저자의 말을 새기면서 이 과정, 이 시간을 잘 건너가야겠다는 마음을 다잡아본다. 이 시간을 더 의미 있게 써야 하는, 지금이 아니면 못 할 것들을 더 소중하게 대해야겠다는 다짐을 그려본다. 다시 못 올 시간이기에 말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읽어도, 읽은 책보다 못 읽은 책이 더 많을 거다. 구매한 책이 지금도 옆에 쌓여 있고,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은 다 못 읽고 반납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꾸준히 희망 도서를 신청하고 있다. 그렇게 또 대출 가능 알림이 오면 도서관으로 향하곤 한다. 이게 무슨 시간 낭비인가 싶어서 가끔 멍해지다가도 습관처럼 반복하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보면, 어쩌면 이런 반복은 내가 나를 위로하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차피 못 읽을 거 알면서 외출할 때 가방에 책을 챙겨 넣는 것처럼, 다 살 것도 아니면서 신간 카테고리를 계속 기웃거리는 것처럼, 그러면서 또 무슨 책을 사면 좋을지 궁금해하면서 책 소개 글을 읽고 있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이런 반복, 이런 습관이 엄청난 위로일지도 모르니, 그저 이해해달라는 말로 변명을 하면서, 다음 달 희망 도서는 또 어떤 책을 신청할지 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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