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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노 요코의 글을 많이 읽지 않았다. 온전히 한 권을 완독하지도 않았다. 이런저런 책들을 조금씩 들춰보면서 만난 게 전부다. 내가 접한 저자의 전작들을 보면, 조금 연륜 있고 조금 더 느긋한 느낌이 많았다. 할 말 다하지만 밉지 않은, 가볍게 말하는 듯하지만, 무게가 있는, 그렇게 세월의 흔적이 많이 쌓인 사람이기에 가능한 분위기를 만들곤 했다.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는 사노 요코가 40대에 쓴 수필집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들어서 그런지, 좀 더 나이 있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이상하게 조금 더 발랄하게 들리는 말이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의 전작들과 큰 차이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순간순간 느껴지는 어떤 것들이 저자의 젊음(?)을 더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솔직한 게 저자의 매력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듯하다. 때론 그런 게 모든 병의 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나는 저자가 쏟아내는 말들에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했다. 어느 순간 꽉 막혀버려 답답함이 가득 채운 내 안을 툭 터트리게 해준다고 해야 할까. 때로는 까칠하고 때로는 푸근하기도 한 저자의 말에 시원해지고 즐거워진다. 마음의 여유로움이 찾아올 때가 많다. 자기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추억에 잠기게 하고,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놓으며 웃게 한다. 이런 창피함 따위 뭐 별거냐 싶게 툭툭 털어내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자유로운 저자의 마인드가 부러워서 배우고 싶어질 정도였다. 인간적인 면모가 저자를 참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고, 가볍고 편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 저자만의 삶의 깊이와 사색이 가득하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금 오버해서 말하자면, 가끔은 찾아가서 상담받고 싶은 때도 있다. 강하고 직설적인 호된 말로 회초리를 맞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그게 필요해서 그 앞에서 말문을 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우리 살아가면서 필요한 게 참 많지만, 말과 마음으로 어루만져주는 어른의 통찰이 필요한 경우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사노 요코다. 물론 내가 만난 건 저자의 글이 전부지만, 그 글로 저자의 진심과 솔직함이 느껴졌다면, 그거면 된 거 아닌가. 비싼 돈 내고 진료받는 전문의의 처방보다 저자의 한 문장이 직방의 효과를 거두는 처방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아는 나이니까.

 

저자의 말투가 익숙하다. 시크한 것 같은데 너무 건조하지도 않고, 무심한 듯한데 다정한 기운이 풍기는 느낌. 요즘 말로 츤데레 같은? ^^ 저자의 추억 속 이야기부터 일상, 소소한 경험들까지 솔직하게 꺼내면서 하는 많은 말이 전하고 싶었던 건, 너무 애쓰며 살지 않아도 즐거울 수 있고, 급하지 않게 여유로운 삶을 그릴 수 있다는 말 아니었을까. 그렇지. 인생 뭐 있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사는 게 인생이지. 오늘 울었다고 내일 울지 말란 법은 없잖아.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을 그리는 듯한 저자의 이야기가 그런 즐거움을 준다. 숨 막히게 달리듯 뭔가에 쫓기듯 살지 않아도 뭐, 괜찮아요, 같은 말.

 

그녀에게 속한(?) 많은 대상. 남자, 가족, 친구, 소설과 영화, 여행 같은... 보면서 흥분하고 열이 나는 감정 이입도 재밌고, 소소하게 들리는 가족 이야기는 괜히 뭔가 더 그립게 하고, 인생 잘 살게 도와주는 친구의 존재는 듬직하다. 누군가는 한 마디 할지 모를 그녀가 사는 방식이 즐거워 보인다. 그녀가 들려주는 평범하게 살면서 즐겁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살짝 닮고 싶기도 하다. (내 성격상 그녀와 닮을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존재하므로 살짝만... ^^)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별거 아닌 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기가 가져야 할 무게와 신뢰 같은 게 어떤 인생을 만드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그녀만의 삶의 방식이 재밌다. 어떤 한마디 말보다 그저 평범하게 들려오는 이런 이야기에서, 울고 웃으며, 진지하고 심각해지지만 부담 없이, 용기를 얻는다. 산다는 건, 어떻게든 살아지는 거 아닐까 하는 무한 긍정의 결론을 얻게 하는 그녀만의 메시지가 듣기 좋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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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고 봤을 때 영화 포스터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신간 도서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콜라보에디션.

책표지가 영화 속 한 장면을 표현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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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그렇게까지는 1
이쿠에미 료 지음, 한나리 옮김 / 애니북스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분명 호기심 생길 소재이긴 하나, 즐길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끌린다. 만화를 잘 안 읽어서 관심 없었는데, 인기 작가라는 이유가 궁금해서라도 읽고 싶었던 작품. 다음 이야기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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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6-05-07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가게에 있을까요?^^

구단씨 2016-05-08 15:52   좋아요 0 | URL
신간인데 모르겠습니다. 제가 만화가게를 이용하지 않다보니... ^^

보물선 2016-05-08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보긴 민망해서요~ (한 소리 들을까봐 ㅋㅋ)

구단씨 2016-05-08 20:00   좋아요 1 | URL
하나도 안민망합니다.
까르르~~~~~ ㅎㅎ
 

 

10가지 질문의 답변을 생각하기 전에 질문을 쭉 읽어보다가 든 생각은, 내가 정말 평범하게 책을 읽는다는 것과 오랜 시간 그 질문들의 답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거다. 익숙하게, 때로는 어떤 목적을 두고, 때로는 그냥 페이지 넘기는 재미로, 때로는 가볍게 읽는 습관들. 문제가 많은 책 읽기 습관인데, 그게 또 잘 고쳐지지 않아서 포기하는 부분들이 생겨나고, 그럭저럭 여전히 책을 가까이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까지 그대로다. 별거 없네...

 

 

Q1. 언제, 어디서 책 읽는 걸 좋아하십니까?

아무 때나 집에서든 밖에서든 상관없이 책을 한 권씩은 들고 다니는데, 주로 집에서 읽는 시간이 많고, 가끔 시간이 여유로우면 밖의 커피점 같은 데서 읽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 방바닥을 뒹굴면서 읽기를 좋아한다. 자세가 불량이어서 그런지 가만히 앉아서 읽는 거 어렵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그냥 뒹굴면서... 그런데 이런 습관을 고쳐야 하는 절실함이 찾아왔다. 엎드려서 책 보는 습관이 눈에 상당히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무시했는데, 더는 그런 무시를 하면 안 된다는 걸 얼마 전 알았다. 내 눈 상태가 그러하므로... 심각하다. 그 습관을 고치려고 애쓰고 있는 지금이다. 의자에 반듯이 앉아서 읽지는 못해도, 적어도 지금은 엎드리거나 뒹굴뒹굴하면서 읽지는 않는다. 거의 2주 정도 이러고 있는데, 습관이란 게 정말 무섭다. 안 하던 자세로 책을 읽으려니 허리가 아프다. 그래도 어쩌겠어. 고쳐야지.

 

 

Q2. 독서 습관이 궁금합니다. 종이책을 읽으시나요? 전자책을 읽으시나요? 읽으면서 메모를 하거나 책을 접거나 하시나요?

종이책을 주로 선호하는데, 요즘엔 가끔 전자책도 읽는다. 전자책은 주로 가벼운 로맨스소설 정도 읽는데, 요즘 인터넷서점에서 전자책 구매할 수 있는 상품권을 많이 주기에 타이밍 맞으면 그 상품권 내려받아서 한두 권씩 사면서 즐겨 읽는다. 문제는, 사기는 하는데 읽는 속도가 따라주지 못해서 읽지 못한 책들이 더 많다는 거... 가끔 진짜 여유롭게 어디 처박혀서 가벼운 소설들 읽고 싶다. 적어도 읽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안 나게.

읽으면서 메모를 거의 하지 않는다. 일단은 포스트잇을 붙여 놓고 읽고, 나중에 책을 다 읽고 나면 포스트잇 붙여놓은 부분 다시 펼쳐본다. 그때 필요하면 메모를 하기도 하지만, 주로 리뷰 작성할 때 열어놓은 한글 파일 안에 붙여 놓는다. 그마저도 안 하면 그냥 잊기도 하고... (여기서도 게으름이 표가 난다.)

 

 

Q3. 지금 침대 머리맡에는 어떤 책이 놓여 있나요?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와 <치킨의 50가지 그림자>가 손닿는 곳에 있다. <치킨의 50가지 그림자>는 너무 궁금해서 구매했는데, 문학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실상은 요리책이다. 요리 좋아하는 사람은 즐길 수 있는 책인데, 나에게는 두 번 읽힐 책은 아니다.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는 술로 가는 그 길이 궁금해서 구매했다.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 라고 말할 정도면 얼마나 술을 좋아해야 하는 걸까. 요즘 술 못 마시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더 끌리는 책이다. 말술로 마시던 친구가 생각나는 책이기도 하고, 진짜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생각나는 요즘이기도 하다.

 

 

 

 

 

 

 

 

 

Q4. 개인 서재의 책들은 어떤 방식으로 배열해두시나요? 모든 책을 다 갖고 계시는 편인가요, 간소하게 줄이려고 애쓰는 편인가요?

구분 없다. 그냥 높이나 공간이 맞으면 아무 데나 끼워 넣는다. 그러다가 책을 못 찾는 경우가 많은데도 이 버릇 안 고쳐진다. 책을 배열해두는 방식이고 뭐고, 사실 책 정리를 거의 안 한다. 필요한 책 찾다 보면 어디 책탑 밑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정리하지 않은 택배 박스 안에서 나오기도 한다. 내가 하는 책 정리는 딱 두 가지다. 책을 사고 아무 데나 꽂아두거나, 안 읽거나 한 번 읽은 책은 내보내는 거. 내보내는 방식도 두 가지, 중고로 팔리면 팔거나 기증센터에 보내거나. 엊그제도 늘 보내던 기증 센터에 책 한 박스 보냈는데, 박스를 가만히 살펴보니 대부분 신간이다. 담당자분 말씀이, 이용자들 반응 좋은 책으로만 꾸준히 보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한 번 읽은 책을 두 번 읽는 경우는 거의 없는 터라 책이 쌓이면 바로바로 보낸다. 거의 두세 달에 한 번씩인데, 그때마다 한 박스씩, 보통 한 박스에는 책이 대략 20~30권 정도. 그때 한 번씩 하는 일이 있는데, 이 책이 나중에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다. 그때는 도서관 자료검색을 하고 비치된 자료라면 바로 기증으로 보낼 박스에 넣고, 도서관에 없는 자료라면 한 번 더 고민하기도 한다.

결론은, 간소하게 줄이려고 애쓰는 편.

 

 

Q5.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무엇입니까?

어렸을 때 책을 안 읽고 살았다. 우리 집에 유일하게 있던 책이 계몽사 세계문학이었는데, 그게 있어도 나는 책을 안 읽었다.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한 건 대학 졸업하고 나서부터다. 웃기게도, 대학 때도 전공 서적 외에는, 리포트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면 책 거의 안 보고 살았다. 키다리 아저씨나 어린 왕자 같은 책도 나는 몇 년 전에야 읽었으니, 뭐 더 할 말이 있으랴... 내 주변의 독자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은 사람들이던데, 나는 그게 가장 부럽더라. 그런 환경이 부럽고, 그렇게 오랜 시간 책을 읽어왔으니까 지금도 책을 좋아하는 거구나 싶어서 말이다.

고로,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없다. 그런데 만약 내가 어렸을 때 책을 읽었더라면, 아마 성인이 되어 읽은 <키다리 아저씨>를 가장 좋아하지 않았을까?

 

 

 

 

 

 

 

 

 

Q6. 당신 책장에 있는 책들 가운데 우리가 보면 놀랄 만한 책은 무엇일까요?

별로 없을 것 같은데... 나는 그냥 시집 몇 권, 소설 몇 권, 인문서 몇 권. 뭐 그 정도이고, 누가 놀랄 만한 책은 없는 것 같다. 아, 그런 건 있다. 같은 책이 두세 권씩 되는 책. 예전에 누가 왜 같은 책을 여러 권 사느냐고 물었는데, 그때는 이유를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았다. 내가 그렇게 산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더라. 누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는 질문이 가장 난감하다. 취향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걸, 특히 책에서는 그게 크게 작용한다는 걸 알아서인지 책 추천 거의 안 한다. 누군가에게 선뜻 어떤 책을 권하고, 내 취향의 책을 선물하는 편은 아닌데, 가끔 사람들이 내가 두 권씩 가지고 있던 그 책을 궁금해하면 선물하곤 했다. 그리고 디자인이 예뻐서 두 권 세 권 구매한 책이 있다. 특별판으로 나와서 지금은 살 수 없다거나 하는 책들. 그런 책은 지인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보내는 내 마음이 괜히 더 좋아서. ^^

 

 

Q7. 고인이 되거나 살아 있는 작가들 중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만나면 무엇을 알고 싶습니까?

이상하게도 나는 책을 읽으면서 어떤 작가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독자와의 대화나 작가 팬 사인회 같은 행사도 많던데, 나는 굳이 그런 거 바란 적이 없는 듯하다. 그냥 책으로만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이 질문을 받고 보니 오히려 내가 궁금하다. 나는 왜 작가나, 작가에게 궁금한 게 없을까, 하고...

 

 

Q8. 늘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있습니까?

돈키호테, 안나 카레니나, 나쓰메 소세키 전집, 등등 너무 많은데... 주로 고전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잘 읽히지 않아서 매번 포기했다. 다른 책에 밀리기도 했고... 아무 책도 안 읽고 오직 그 책만 읽어야 한다면서 독방에 갇히지 않는 이상 지금 그 책들을 읽는 건 쉽지 않을 듯하다. ‘이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도 자꾸 눈이 딴 데로 가서, 다른 책들에 손을 댄다. 깊게 읽지도 않고, 끝까지 읽지도 못할 거면서 매번 그런다.

 

 

 

 

 

 

 

 

 

 

 

 

 

 

 

 

 

 

 

 

 

 

 

 

Q9. 최근에 끝내지 못하고 내려놓은 책이 있다면요?

<바닷 마을 다이어리>를 영화로 못 본 터라, 책으로 읽어보려고 한꺼번에 주문했는데, 금방 읽힐 줄 알았는데 쉽게 안 읽히더라. 주변의 반응은 참으로 좋더만, 나에게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집중해서 읽을 수 없는 지금의 환경 때문인지도 모르겠는데, 이 책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게 읽고 싶다. 새로 출간된 7권도 샀단 말이다.

 

 

 

 

 

 

 

 

 

Q10. 무인도에 세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가시겠습니까?

세 권이나 가져가야 하나? 아니면, 세 권밖에 못 가져가는 건가?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했는데, 세 권만 가져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다. 꼭 안 가져간 책들이 더 생각나기 마련이라 고르고 골라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책들로 챙겨야 할 텐데 걱정이다. 차라리 전자책으로 몇백 권 가져가야겠다, 고 생각했는데 전기가 안 들어오는 것도 문제겠다. 충전을 못 하니 전자책도 못 볼 거고, 종이책으로 가져가자니 너무 무겁고... 그래도 고르라니 일단 종이책으로 골라보는데, 선택의 기준 가장 첫 번째가 이거다. 집중해서 읽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방대한 분량이 엄두가 안 나서 그동안 미루기만 했던 책들을 가져가야겠다. 그곳에 딱 그 책만 있다는데, 그 책을 읽기 싫어도 그 책밖에 없다는데 어쩌겠어. 고를 수 없으니 있는 책으로 읽어야지. 오직 그 책만 읽을 수밖에 없다니 얼마나 좋은 기회일까. <돈키호테>, <주석 달린 월든>, <국어사전> 이렇게 세 권. <돈키호테>는 정말 언젠가 한 번은 꼭 완독하고 싶은 책인데, 신간에 밀리고 게으름에 밀려 아직 펼쳐보지 못했다. 도서정가제 시행된 이후로 가장 먼저 산 책인데 말이다. <주석 달린 월든> 역시 마찬가지. 그 유명한 <월든>을 읽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책이 그렇게 안 읽히더라. 무인도에 갇혀 있으면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어사전>은 언젠가 한 번은 꼭 처음부터 끝까지 사전에 실린 모든 단어를 읽어봐야지 싶었다. 어휘가 꽝인 내가 가장 궁금한 책이기도 하다. 한 번 읽고 시간 남으면 또 읽고 해서 늙어가는 기억력 속에서도 단어의 저장이 깊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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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정원 - 제15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오늘의 일본문학 17
시바사키 도모카 지음, 권영주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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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건조하게 살아서 그런 걸까. 그리움이란 단어 속에서 오래전 어떤 기억을 떠올려보려 하니 금방 떠오르는 게 없다. 오늘도 매일 다니는 거리, 자주 보는 사람들, 익숙한 건물. 그냥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채우는 평범한 모습으로만 보인다. 언젠가, 지금보다 시간이 더 흐르면 다르게 보일까? 선뜻 어떤 대답을 꺼낼 수가 없다. 그렇다는 대답이 금방 나오지 않는다. 곰곰 생각해보니, 항상 보는 곳들이라 특별함을 느낄 겨를이 없는 건 아닐까 싶다. 아마도 장소나 시간이 아니라, 그 장소 그 시간에 포함할 사람이 함께한다면, 그 대상이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무언가를 함께한 기억이 머문다면, 나는 지금의 건조함과는 다르게 오늘, 이 장소를 더 기억할 것 같다. 나의 일상을 채우는 배경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 것들을, 좀 더 소중하고 애틋한 기억으로, 그리움으로 저장해놓을 것 같다.

 

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다가간 그 장소도 마찬가지겠지. 어떤 시간의 기억이 머물러 있는 곳, 그게 비록 호기심일지라도 확인하고 싶은 간절함으로 채워져 있다. 오래된 연립주택에 머무는 사람들. 전직 미용사 다로는 얼마 전에 이혼했다. 같은 연립에 사는 여자 니시가 이웃집 '물빛 집'을 몰래 들여다보는 걸 알게 된다. 니시는 그 집 안으로 들어가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걸까. 니시는 다로에게 '물빛 집'을 찍은 <봄의 정원>이라는 사진집, 20년 전에 그 집에 살던 광고감독과 여배우 부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사진집으로 니시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이사할 집을 찾던 니시가 '물빛 집'을 바라보고 싶어 그 옆의 연립으로 이사와 살게 된 것까지. 그렇게 물빛 집을 관찰하던 니시를 발견한 다로가 그녀의 계획에 동참한다.

 

별것 없어 보였다. 니시의 기억 속의 생각들과 현재 눈앞에 보이는 물빛 집을 향한 호기심이 전부인 것 같았다. 오늘을 사는 여자가 과거의 기억으로 이어져 온 집을 보고 싶은 간절함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참 희한하지. 사진집 <봄의 정원>의 두 사람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제 와 사진집에서 발견하지 못한 것을 찾아내는 독자의 마음은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건지, 한때 누군가 행복하게 살던 장면을 보는 기분은 어떠한지...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에 이사하게 눈길이 더 머무는 건, 그 안에서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표정을 발견하기 때문이 아닐까. 광고업자와 여배우 부부는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거라는 흐뭇함이 우리가 바라는 삶을 비춘다. 물빛 집 정원의 나무들이 자라고 가꿔지는 시간 동안 그들의 시간도 함께 자랐을 거다. 변한 것 없어 보이는 욕실의 모습에서 그들의 일상을 엿본다. 니시가 손에 피를 보면서까지 그 집 욕실을 확인하고 싶었던 건 그녀의 마음속에 그려놓은 젊은 부부의 시간을 새기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은 것 같지만, 지금은 확인할 수 없는 사람들의 한때를 그렇게 저장해놓고 싶었는지도...

 

이 소설의 첫 페이지를 열었을 때는 몰랐던, 생각나지도 않던 일들이, 소설이 끝나갈 무렵에는 하나씩 내 머릿속으로 찾아왔다. 책상에 줄 그어놓고 넘어오지 말라고 싸우던 짝은 어떤 아줌마가 되어있을지 궁금했다. 세상 그따위로 살지 말라며 싸우고 헤어진 옛 남자는 지금 어느 거리를 걸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갑자기, 10여 년 전 요리학원에서 만난 언니의 안부를 묻고 싶어졌다.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던 일들이었는데, 그날그날 살아가면서 겪고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일 뿐이었는데, 이제는 그리움과 섞여 마음속의 풍경으로 그려진다. 지금 이 거리를, 이 시간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그러하다는 것을 소설로 듣는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품고 있어도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어떤 모습일지 전혀 알 수 없는 일로 머물지 몰라도, 떠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오늘 이 시간의 풍경이 된다.

 

아무렇지도 않은 오늘이다. 주말의 낮에, 조금 늘어지게 늦잠을 잤고, 뒤늦은 아침을 먹고 다방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쌓여있던 잡지를 몇 권 뒤적거렸고, 읽고 싶은 책을 꺼내 놨다. 온 집안의 창을 열고 청소를 하고, 밀린 빨래를 넣고 세탁기를 돌렸다. 빨래가 다 되는 사이 오랜만에 친구랑 통화하면서 며칠 전 내린 비로 다 떨어져 버린 봄꽃 이야기를 했다. 짧은 봄이 가는 게 아쉽다며 곧 시간 내서 얼굴 보자는 말로 인사를 했다. 나의 이런 오늘 하루가 누구나 비슷하게 보낼 수 있는 평범한 주말의 하루인지도 모른다. 매일 똑같이 보내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런 오늘이 특별해지는 순간이 찾아올 거라고 미리 말해주는 소설이 시바사키 도모카의 『봄의 정원』이다.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소소한 일상이 우리의 소중한 시간으로 저장되는 순간이다. 바로 지금.

 

바쁠 때도, 시간 여유가 있을 때도, 빠르다는 이유로 KTX를 선호하곤 했다. 기차 좌석에 오래 앉아있으면 허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어디를 가든 빨리 출발하고 일찍 도착하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은 KTX가 아니라 지금은 사라진, 모든 기차역에 정차하던 완행열차가 떠오른다. 천천히 가면서 창밖 풍경을 놓치지 않게 하고, 모든 역에 정차하면서 내리고 타는 사람들을 보고,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느긋하게 앉아있던 그 불편한 좌석이 그리워진다. 다시 만나지 못할 기억과 시간이어서, 오래된 앨범에서나 찾을 수 있는 사진처럼, 마음속에만 머물 수 있어서 더 그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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