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쓴 편지를 상대에게 온전히 전달하고 싶거든, 날이 밝은 다음에 절대, 다시, 펼쳐보지 말고 그대로 부쳐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그건 누가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설명해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뭐에 홀렸는지 캄캄한 밤에 스탠드 불빛 하나 의지해서 써내려간 몇 문장에 온 마음을 담았다. 그대로 봉투에 넣고 입구를 봉한 다음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는다. 그럼 다 끝난다. 안전하게 상대의 손에 안착하면, 끝. 반면, 혹시라도 맞춤법이 틀렸을까 쓸데없는 말을 하진 않았을까 염려되어 정신 차리고 다시 펼쳐보는 순간 부칠 수 없는 편지가 되고야 만다. 다시 읽어보며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차마 부치지 못하고 다시 펼쳐본 것에 안도한다. 아, 다행이다, 얼굴 붉어질 일을 만들지 않아서... 정말, 다행일까?

 

밤이라는, 마법을 부리는 시간에 적어 내려간 마음은 해가 뜨면서 저절로 풀린다. 신데렐라는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릴 때 마법이 풀리지만, 편지만큼은 아니다. 그 반대다. 밤에 마법이 걸리고 환해지면 마법이 풀린다. 이상한 건 유독 왜 밤에 책을 더 많이 읽게 되고, 말을 많이 하게 되고, 음악을 많이 듣게 되며, 누군가에게 전하는 말조차 밤을 이용하게 되는가, 이다. 물론 그 정도에 따라 개인적인 차이는 있다. 나를 비롯하여 내 주변의 사람들을 보고 느낀 얘기다. 하루의 일과가 마무리되는 시간, 조급했던 아침이나 나른함에 피곤한 오후보다 좀 더 여유가 생기는 시간이기에 그렇다는 물리적인 이유 말고, 감정적인 이유가 가장 적합하게 들린다. 눈앞의 것들은 불을 켜지 않으면 캄캄해서 안 보이고, 한낮의 소란스러움 대신 고요함이 차지한 자리. 끊기지 않고 흐르는 음악보다는 누군가의 사연 한 자락이 더 귀에 들어오는 라디오가 어울리는, 음악의 볼륨을 조금 줄여도 그 속삭임에 마음이 풀어지는 순간.

 

왜 그런 거지?

밤이 사람을 홀린다는 말 말고는 딱히 답을 찾기가 어렵다. 솔직히, 그 답을 굳이 찾고 싶지도 않지만... 밤에 잠들기 어렵다면, 잠들기 위해 몇 시간을 누워있어도 잠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잠을 청하고 싶지만 멀리 달아나버려 짜증을 불러오기 전에, 그래, 차라리 잠들지 않는 밤을 흘려보내는 게 낫다. 밤이 부리는 마법에 걸려들어도 좋은 거다.

 

 

 

 

 

 

 

 

그래서 이런 음악도 듣게 된다.

Meav - One I Love

누군가는 아일랜드의 정서가 우리와 많이 닮았다고도 하던데... 그래서인가? 메이브의 노래만큼은 나에게 잘 맞는다. One I Love는 아일랜드 출신의 팝페라 가수 메이브가 부른 노래다. 몇 년 전, 어느 길을 걷다가 우연히 내 귀에 들어왔다. 그때도 밤이었다. 지금 말하기 어렵지만 잔뜩 소란스러운 마음을 붙잡고 어딘가로 향하던 골목길이었다. 어느 상가에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방 열린 창을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였다. 어떤 노래인지 몰라 다음 날 온갖 검색을 통해 흥얼거리던 가사를 검색했다. 그렇게 알게 된 노래에 미치도록 빠져들었다. 이 노래 한곡을 몇 달 동안 반복재생해서 듣곤 했었다. 그렇게 밤낮 구분 없이 나에게 찾아들었던 노래다. 유독 밤에 들을 때가 많아 감정적으로 위험해지기도 했지만 중독처럼 끊을 수 없는 노래였다. 친구가 우연히 이 노래를 같이 듣고서는 무슨 장송곡 같다고 했다. 그렇게 들릴 지도 모른다. 워낙 우울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음악이란 게 듣는 사람의 기분이나 성격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 노래만큼은 친구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우울할 때, 더 우울해지고 싶어서 들을 때가 많았다. 나에게 이 노래는 고요한 침잠에 아무 것도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힘을 가진다. 노랫말의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 노랫말 자체도 유쾌하지는 않지만 - 멜로디가 주는 분위기가 스산하다. 그럼에도 무슨 고질병처럼 이 노래를 찾는다. 몇 달 내리 들었던 적도 있다. 가을에 이 노래가 찾아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서늘해지는 이 계절, 가을, 밤에 이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어떻게 출렁일지 눈에 훤히 보인다. 잠들지 못해서 뒤척일 때면 더욱 염려해야 한다. 이 노래는 달콤한 꿈속이 아닌 몽유병처럼 목적지 없는 발걸음을 내딛게 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One I love, two she loves, Three she's true to me...

One I love, two she loves, and three she's true to me...

 

 

 

 

 

 

 

 

 

 

 

 

 

한밤중에 빗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이런 영화도 괜찮다.

호우시절 2009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 혹은 “처음보다 설레고 그때보다 행복해” 라는 카피 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평범한 남자 동하(정우성)는 중국 출장 첫날에 우연히 관광 가이드를 하고 있는 유학 시절 친구 메이(고원원)와 재회한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만난 두 사람. 한때 연인이었던 두 사람은 지금 어떤 사이일까. 달콤했던 과거의 시간이 떠오르고 보이지 않게 감정이 오고 간다. 그때와 지금, 뭐가 달라져 있을까. 앞으로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 때를 알고 딱 맞춰 내리는 비가 좋은 비라고 하는 것처럼, 지금 이들의 사랑은 때를 알고 잘 찾아와 준 것일까.

내가 그동안 봤던 허진호 감독의 영화는 참 잔잔했다. 감정의 기복이 있는데도 파도 같지 않았다. 때론 밋밋해 보이기도 했다. 그 유명한 다른 영화들 놔두고 이 영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했던 것도 아니고, 특별하게 볼거리가 많았던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많은 요소를 골고루 갖춘 영화다. 지독하게 싫어하는 비, 내 눈에 그다지 매력 있게 보이지 않는 배우, 그저 그런 스토리. 그런데도 왜 이 영화가 생각나는지... 낯선 나라의 광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추는 춤마저 생생하게 떠오른다. 충동적(?)으로 사랑을 나누려다 멈춘 두 사람의 괴로운 모습도 생각난다. 다시 만나서 반가운건지 염려하는 마음인지 모를 그 혼란이 그대로 보이는 두 사람의 표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선뜻 그 손을 다시 잡을 수 없어서 망설이는 마음이 얼굴에서 읽힌다. 안다. 그 마음, 그 고민, 그 불안함. 그런 상황에서 내가 내린 결정과 반대의 결말을 보여준 두 사람 때문에 자주 떠오르는 영화다. 어느 날 메이에게 배달된 자전거가 시원하게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고 있을 것만 같아 내가 괜히 설렜다. 비를 싫어해도, 좋아하는 배우가 아니어도, 상투적인 스토리에도 이 영화를 이 밤에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 자꾸만 멀쩡해지려 애쓰는 내 마음을 흔들어서다...

“내가 아직도 널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달라지는 게 있을까?”

“때를 알고 내리는 비가 좋은 비야...”

 

 

 

 

 

 

 

 

 

 

이 분위기를 이어 서른 두 편의 단편영화 같은 이야기를 읽어도 좋겠다.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

영화감독 김종관이 쓴 두 번째 에세이다. 그의 첫 번째 글이 살짝 향수를 불러오는 느낌이라면 두 번째 글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은 수줍게 얼굴이 붉어져도 좋을 분위기를 만든다. 한낮보다는 밤에 읽기에 더 좋다. 저자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단편 소설 같은 느낌에 뭔가가 덧대어져 짧은 영화 서른 두 편을 본 기분이 든다. 남자와 여자, 딱 두 명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둘은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있고, 헤어진 사이일 수도 있다. 너 때문에 연애 불구가 되었다고 소리치던 여자가 남자를 괴롭히듯 늘어지던 장면은 찌질했던 연애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고 이야기 속 여자가 찌질해 보였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당당해 보였다. ‘너와의 연애가 이런 후유증을 남겼으니 내가 치유할 수 있게 너도 나를 좀 도와야 한다.’ 라는 목소리로 들린다. 연애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둘이 했으니, 그녀의 말투에서 전해지는 의미를 내 맘대로 해석해서 저렇게 들었다. 밑도 끝도 없이 지나간 연애가 떠올랐다. 나는 누군가와 헤어지고 나서 어땠나, 저 여자처럼 당당하게 연애의 끝을 볼 수 있었나, 알량한 자존심 세우느라 쿨한척 연기를 했었나...?

저자의 경험일 수도 있고 새롭게 태어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쨌든 사랑의 여러 장면이 어느 한 사람만의 일은 아니라는 것. 그러니 이 밤에 그들의 이야기에 같이 뛰어 들어도 좋겠다. 이건, 우리의 시간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술에 취한 듯 휴대폰에서 삭제된 전화번호를 기억해내지는 말자. 그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기적 같은 순간이 있었다. 잊지 말겠다고 다짐하던 아름다운 시간들이 있었다.

요즘은 굳이 기억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잠시 머무는 것에 좀 더 충실히 즐기고 싶어한다. 남기는 것보다는 즐기는 것이 추억이 된다. 관찰자의 시선을 버리고 내가 풍경 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가슴으로 받아들인 기억이 생긴다. 감정의 기억은 잘 잊혀지지 않아서 다시 오는 계절처럼 간간이, 그리고 오랫동안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 243페이지)

 

 

마음 깊은 곳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음악을 듣고도, 빗소리 같은 사랑을 봐도, 다양한 연애를 들었어도, 이렇게 밤이 부르는 상념을 이어가지도 내려놓지도 못하겠다면, 편지를 쓰자. 누가 받게 될지 모르겠지만, 수신인이 없을지 모르지만, 쓰자. 끼적여보자. 시간이 흐르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다시 그 글을 보게 되면 어떨지 모르겠다. 민망해지거나, 더 외로워지거나, 눈물을 흘리게 되더라도, 가슴에 담아두고 꺼내지 못했던 말을 해보자.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해보겠어. 혹시라도 누가 묻는다면, 왜 그랬냐고 나무란다면, 밤이 그랬다고 핑계라도 대면 되지 않겠나. 밤 11시가 마법을 부렸다고, 새벽 세시에 바람이 불어서 그랬다고, 지금처럼 비가 내려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이다. 세상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게 이유 없는 일도 일어나고, 대답할 수 없는 질문도 많은 거다. 밤이라고 그 범주에 들어가지 말란 법도 없지 않나. 그냥, 그렇다고 해두자고. 그런 이유로 이해가 허용되는, 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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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4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24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슴도치
한새희 지음 / 우신(우신Books)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에서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아니다, 어쩌면 울 핑계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집에서 같이 오래 살았던, 친구처럼 지내던 이모가 결혼을 결심한다. 했어도 진작 했어야 할 이모의 결혼. 이모의 15년 연애의 끝이 이별이 아니라 결혼이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안심이 되는지. 그런 생각을 할 찰나 이모가 선우에게 결혼을 결심한 이유를 들려주었을 때, 기어코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혼자 남겨질 언니(선우의 엄마)와 아직은 불안한 선우에게 향하는 마음을 끊을 수가 없어서 미루기만 했던 이모의 결혼이다. 그런 이모의 결혼 상대자인 세현 오빠까지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이런 인지상정을 당연하게 만날 수도 있지만, 조금은 세상을 경험한 내가 보기에 이런 마음 함부로, 아무 때나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더라. 그러니 선우 옆에 이런 사람들, 내 새끼가 최고라 여기는 엄마, 동생 같은 조카에게 스스럼없이 씩씩한 이모, 아빠이자 오빠이고 형부처럼 든든한 백이 되어주는 세현 오빠가 있는 선우는, 누가 뭐래도 행복한 사람이다. 어느 날 그런 선우에게 나타난 윤정후 역시, 같은 빛을 비추는 사람이기를 바라게 된다. 살만한 세상이라고, 사람 때문에 온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어지는 마음.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그걸 기대했다.

 

윤선우는 결혼을 두 달여 앞두고 이민재와 파혼한다. 3년이 넘는 시간을 연애라는 이름으로 함께 해온 사람과 헤어지는 일, 그냥 이별도 아닌 결혼이란 약속을 깨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야만 했다. 윤선우가 그 순간 해야 할 일은, 이해할 수 없는데도 이해하는 척 감당할 수 있는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이민재와 결혼하는 게 아닌, 이민재와 헤어지는 일이다. 결혼의 감정적 정의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만남이고 무엇을 위한 결혼인지 결정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인 거다. 잘 했다. 결혼이란 약속을 깬 것은 책임질 일이지만, 그 책임을 감당하면서까지 그 결혼을 깨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했다. 윤선우는, 윤선우다. 윤선우는, 누굴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 결혼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 윤선우의 행복의 기준과 정의는 이민재와의 결혼이 아니었던 거다.

 

빗물에 눈물을 가린 윤선우에게 웃는 모습뿐만 아니라 우는 모습까지 예뻐 보인다고 말하는 윤정후가 등장한다. 도끼질 몇 번에 나가떨어지지 않겠다고 한다. 완벽하게 도끼질을 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미 상처입고 흉터가 남은 윤선우에게 윤정후의 접근은 마냥 두 팔 벌려 환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과의 만남에, 신뢰에, 기대에, 그 어떤 것도 기댈 수 없는 상황을 경험했으니 두렵기도 하겠지. 사랑이 한 번 끝날 때마다 다음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갈 수도 있는 것처럼 누군가가 베푸는 호의나 감정을 쉽게 받아들이기 주저하게 된다. 그런 윤선우임을 알면서도 다가감을 멈추지 않는 윤정후이기에 내내 웃음이 난다. 삭막한 세상에서 파혼이라는 상흔을 가진 여자에게 명분도 없이 붙을 꼬리표를 생각한다면, 윤선우에게 다가가는 윤정후의 태도는 잘 만들어진 연고 같다. 흉터 생기지 않게 잘 발라지는, 연고.

 

화가 나게 하는 장면에서 시작하더니, 윤정후의 순수한 들이댐으로 피식피식 웃음이 나게 한다. 현실 속의 윤정후는 없으니, 그래서 판타지라 생각하면서 읽어가면서도 아직은 이런 인간적인 모습을 가진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이들의 이야기에 기대게 된다. 내가 경험한 사람은,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이민재나 이민재의 엄마의 모습에 가깝다. 이십대 중반에 만났던 한 친구는 당시 학생 신분이었는데, 그의 엄마는 그를 카이스트 여대생과 선을 보게 했다. 가난하고 백 없는 친구들을 사귀지 말라고 했고, 지역구 레벨 있는 모임에 참석하라고 했다. 그때 그 친구를 만나면서 결혼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인간적인 교류 그 이상을 기대했던 것 같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는 일은 이성적인 끌림이 기본이기도 하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나눌 수 있는 인간미가 많은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생각했던 그 기본을 배제한 채 누군가를 보고 있는 시간은, 아무리 그 시간이 심장의 떨림과 설렘을 준다고 해도 감당하기 버거웠다. 아마도 그때는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헤어졌겠지만, 나는 드라마에서나 봤던 캐릭터를 내 상처에 보태고 싶지 않았던 것도 같다.

 

그래서 내가 이들의 이야기에 순간적으로나마 감정을 몰입하게 된 게 아닐까, 싶다. 민재의 엄마에게 파혼을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를 할 때의 윤선우는 당당했다. 가슴 속에 상처 하나가 새로 새겨졌을 지언즉, 지켜야 할 것을 지킬 줄 아는 ‘인간’ 윤선우였다. 살아가면서 뭐가 먼저이고 우선인지를 아는 사람. 내 눈에 비친 윤선우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랬으니 윤정후 같은 남자가 한눈에 알아본 것이겠지. 앞에서도 말했지만 윤정후 같은 캐릭터를 현실에서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아직은 이런 인간미가 남아있는 세상이라는, 미약하지만 그 희망 하나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 바람이라고 해두자. 윤선우 이모의 모습이 그 증거일 수도 있겠다. 윤선우가 윤정후와의 결혼을 결정했을 때, 이모는 자신의 결혼을 결정했다. 이모가 떠나지 못했던 이유, 먼 거리도 아닌데 같은 공간에서 떨어져나간다는 거 하나도 할 수 없었던 이유를 표현했을 때는,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야 안심하고 자기 인생 조금 더 살아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이모의 마음이 그려진다. 그래, 그래서 아직은 정이 있고 감동이 남아있는,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존재들이 남아있다는 것에 안심을 하고 싶어진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이야기다. 하지만 음의 높낮이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고요하게 흐르는 이들의 이야기가 내 가슴 속에서는 높게 출렁이는 파도로 둔갑한다. 바로 옆에 누워계시면서 어깨가 아프다며 진료예약 확인하는 엄마를 보게 하고, 철없던 시절에 가졌던 시선들을 떠올리게 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선순위로 정해놓은 생각들을 각인시킨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상기시켜주는 이런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이야기, 잔잔한 여운으로 상당히 오래 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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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joker 2014-09-23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참좋습니다.~잘읽고 갑니다.

구단씨 2014-09-24 23:14   좋아요 0 | URL
공감하게 되어, 기뻐요... ^^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김정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상투적인 말이지만, 영원한 고전으로 남을 듯한 이야기. 한정판이기도 하지만 여러 버전의 영화나 드라마 말고 원작으로 읽어볼 생각에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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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알사탕 1200개의 유혹에 졌다. 소설이 아닌 산문으로 만나는 김영하의 글, 그가 하는 세상이야기에 공감하며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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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친 8주간의 기록
에바 로만 지음, 김진아 옮김 / 박하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거의 3년 전까지, 나는 잠잘 때도 손목시계를 차고 잤다. 그런 나를 보고 조카가 답답하지 않으냐고 물었는데, 오히려 나는 시계를 풀어놓고 자면 불안하다고 말했다. 손목에 시계가 없으면 무슨 큰일이 날 것처럼 불안하다고. 내가 손목시계를 차고 잠을 잤던 게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제법 오랜 시간을 그렇게, 시계를 차고 잠이 들었다. 일상을 지내고, 저녁에 씻고, 다시 시계를 차고, 잠을 자고... 이런 것,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한 상태를 강박증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나는 상당히 많은 강박증을 갖고 있다. 그중 하나가 시계에 관한 것이었다. 다행인지 그 손목시계에 대한 강박증은 없어졌다. 지금은 손목에 시계가 없어도 불안하지 않다. 그 불안이 언제부터 사라졌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강박증이 사라진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 원인을 제대로 찾지 못한 것은 개운하지 않다. 어떤 심리적인 문제로 보이는 것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시작점을 찾아야 한다고 들어왔던 터라, 오랫동안 나와 함께 했던 강박증이 이렇게 갑자기, 완전히 사라진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언제 어느 때 튀어나와 내 옆에 딱 달라붙어 있을지 알 수 없다. 가끔 그런 불안감이 나를 잠식하기도 한다. 『내가 미친 8주간의 기록』을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도 비슷하다. 주인공이 가진 어떤 불안감이 그 8주의 시간을 보내게 하였을까 싶은, 그 시작점은 어디였으며 어떤 결과로 그 8주의 시간을 정리했을까 하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몸의 감각. 사람들은 밀라(Mila)를 의사에게 데려갔고, 곧 정신병원으로 데려갔다. 무슨 일로 그렇게 되었는지 그녀에게는 기억에 없다. 그녀는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 그리고 그녀는 안심했다.

 

나는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가족, 친구와 수없이 많은 시간을 함께했지만 그들과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가까운 이들에게 느껴본 적이 없는 동질감을 막 알게 된 낯선 사슴에게서 느끼다니! (29페이지)

 

이상했다. 갑작스럽게 사라진 감각도,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도, 어쩌면 더욱더 큰 불안을 가져올 것만 같았는데 그녀는 오히려 안심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순간, 생각했다. 그녀가 진정 바라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오랜 시간 무기력함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고, 문득 흘러내리는 눈물은 그녀를 슬픔에 빠지게 한 듯하다. 규칙적으로 먹는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쯤 되면 그녀의 건강을 해치게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안심했던 게 아니었을까.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이유로부터 도망갈 기회가 생긴 듯하다. 출근하고, 직장에서 시달리고, 누적되는 피로에 지치는 하루가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상을 살아가는 주체가 자신이라면, 그런 생활을 선택하고 이어가는 목적이 자신이 정한 거라면 이런 상황까지 왔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것을 그녀가 입원한 그 8주의 시간이 들려주고 있다. 그녀가 살아가는 모든 시간의 주인공이, 때로는 견디기 힘든 시간을 살아가게 하는 이유가 자신이 아니었던 거다.

 

그녀가 처음 입원했을 때부터 퇴원하기까지, 그 안에서 생활하는 과정이 저자가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그 자체인 듯하다. 많은 것들로부터 피곤해진 그녀가 놓아버린 육체가 표현했다. 그 이상의 것, 즉 육체가 보낸 신호는 영혼의 소리가 보낸 신호였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들려온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원인과 증상들, 거식증, 폭식, 여자의 정체성을 가진 남자, 다중인격, 실연, 등등 많은 이유로 그곳을 찾은 사람들이 내는 고통의 소리를 밀라를 통해 듣게 한다. 그녀의 시선으로 그들의 모습까지 함께 보게 한다. 그 안에서 그녀의 원인 역시 그 많은 증상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 치료의 과정에서 함께 하는 전문가의 상담을 눈여겨보게 한다. 그저 환자가 하는 얘기를 듣고 있는 것만 같은, 그렇게 듣다가 시간만 보내고 다음 상담을 기다리게 하는 것 같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닌 듯하다. 그곳에서의 생활 자체가 그녀를 나아지게 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원인은 달라도 비슷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같은 고통을 나누면서, 전문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하나하나 그 원인을 찾아가는 여행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냥 행복해지라고요? 그게 얼마나 큰 요구인지 아세요? 행복해지라고요? 삶에 만족하는 균형 잡힌 인간이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220~221페이지)

 

그래서 그녀는 그 원인을 찾았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는 자신의 문제를 찾았다. 그리고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하게 했다. 원인을 찾았으니 이제 필요한 건 그녀의 변화와 용기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끊임없이 생기는 문제가 그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찾아오는 무기력함이 움직임을 멈추게 하고, 끝없는 피곤함을 가져왔고, 행복하지 않은 시간을 만들고 있었다.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들려주는 밀라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 같았다. 우울증이라는 간단하게 들리는 병명이 얼마나 많은 원인을 숨긴 채로 우리를 잠식해가고 있는지 보게 한다. 사회에서 보내는 관계와 시간, 자신의 인생에서 부모님이 차지하는 비중과 존재감, 인정받고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 그 안의 많은 원인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대부분 하나로 귀결되는 듯하다. 그 시간, 그 관계, 그 미래, 한 사람의 인생을 차지하는 중요한 많은 순간에 있어서 주인공이 빠져 있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일이어야 하는데, 지금 살아가는 우리 생활, 환경 대부분에서 그런 갈등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내가 해야만 하는 일, 나에게 좀 더 안정된 삶을 허락하는 일, 나보다 부모님이 더 기뻐할 일, 나보다 타인에게 더 괜찮아 보이는 일이 우선시 되는 것. 그래서 자꾸만 자기 자신에게 엄격해진다. 내가 그러면 안 되는 일들이 더 많아진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이루기 위해 안달하고 몰아친다. 그럼, 그게 다 이루어질까? 행복할까? 웃을 수 있을까?

 

8주라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가 입원해있던 8주라는 시간은 워밍업이었을 뿐이다. 이제 시작이니까. 그녀의 그 시간을 동행하면서 느꼈던 건,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그녀의 증상이나 원인이 정상인과 정신병자 사이의 차이점을 크게 느끼게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동시에 그런 내면의 이야기를(이 책에서는 영혼의 목소리라는 표현을 했다.) 아무에게나 쉽게 하지 못하는 현실 역시나 공감했다. 당연하게 생각하고 넘겨버리거나, 제대로 된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다거나, 그 증상의 해결방법도 모른다거나... 대부분의 일에 원인과 결과가 존재하는 것처럼 내 안의 문제도 그 시작점을 찾아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걸 간과해서 일어나는 일들이 내 정신을 얼마나 갉아먹고 있는지 보게 한다. 저자가 밀라를 통해 보여준 병원의 풍경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아닐까 한다. 잘해야 한다는, 자녀로서 해야 할 역할도, 연애도, 사회적 지위도, 어쩌면 삶 자체를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었을지도 모른다. 사회가 그걸 원하니까, 부모님이 바라니까, 그게 당연하니까, 라고 생각했던 것이 문제로 쌓여갔던 것.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 현실에 부응하지 못하는 모습과 삶에 대해 자신을 닦달할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먼저 보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이다. 겉으로 보는 게 전부가 아니니까. 지금 웃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행복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으니까.

 

알게 모르게 내가 만들어가는 강박증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아직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은, 언제 생겨날지 모를 그 불안이 얼마나 많은 강박증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보게 한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의 모습을 다르게 보는 시선을 만들어주는 듯하다. 불안하게, 초라하게, 안달하면서 볼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아직 내 곁을 떠나지 않은 강박증들을 천천히 살펴봐야겠다. 그 시작점을 찾아서,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그 시간을 만나기 위해서.

 

'삶이란 둘 중 하나다. 신나는 모험이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

그렇다. 내 삶은 신나는 모험이 될 것이다. 그렇다 해도 내가 다리 밑에서 잠을 자야 할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을 일도 없을 것이고 머리 위에 언제나 비 피할 지붕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머리로 내 살 길을 찾아낼 것이다. (23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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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8 22: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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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9 21: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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