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적인 사람 중 가장 외향적인 사람 - 까꿍TOON
최서연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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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읽다가 커피를 뿜기 일보 직전에 겨우 정신 차리니, 옆자리 사람이 나를 째려보고 있더라. , 나 정말 그렇게 진상이었어? 나도 모르게 첫 페이지에 등장한 지하철 빌런을 읽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옆자리에 앉은 모르는 아줌마가 내 거 이어폰 한쪽을 당당하게 끼고 있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막 화내도 되는데 순간 너무 당황해서 할 말을 잃은 듯한 느낌. 남의 이어폰을 마치 자기 것처럼 당당하게, ‘너 한쪽 이어폰 안 듣잖아?’ 하면서 자기 귀에 꽂는 사람은 뭐냐? 이것뿐만 아니다.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에피소드가 웃음 폭탄이다. 왜 까꿍의 일상은 이런 건가 싶으면서도, 까꿍에게 이런 재미난 일상을 끌어당기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궁금했다.



까꿍의 주변에는 웃음유발자가 가득하다. 친구, 가족, 그 밖의 사람들. 아르바이트하면서 만난 진상들은 왜 그렇게 다 특이한지, 멀쩡하게 잘 신고 가던 구두는 왜 하수구에 끼어서 그녀를 절름발이로 만드는지, 학원 수강하는 초등생에게 나눠 먹으라던 비타민은 왜 발치한 이가 되어야만 했는지. 독서실의 불청객 비둘기를 쫓지 못하는 사장님 대신에 그녀가 나서야만 했던 일, 버스에 탄 커플의 셀카에 당당하게 중심을 차지한 그녀의 얼굴은 어쩔. 레이어드 커트로 세련미를 폭발시키겠다는 계획은 시간을 거스르는 자가 되어 인생 역주행하고 있었다. 인생 사진은커녕 기본 사진에서조차 대충 찍으면서 자기와 다른 얼굴로 의심의 도가니를 만들고, 뷔스티에 원피스의 수명을 한방에 꺾어놓는다. 돼지껍데기집사장님의 서비스는 공포 그 자체였고, 음식을 남기고 뛰쳐나가게 만드는 일상의 특별한 기억이 아무에게나 찾아오지는 않는다.



, 생각만 해도 웃기다. 다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웃기고, 어이가 없어서 웃긴 이야기들에 푹 빠져 있다 보면 이 여름의 더위는 생각나지도 않는다. 가만히 듣다 보면 까꿍의 이런 천연덕스러운 긍정 마인드와 당황할 순간에도 무던하게 넘기는 자세는 이 가족에서 물려받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LA 여행에서 살아남으려고 중국인 여행객 속에 뛰어든 모녀는 너무 기발했다. 자전거 도둑이 극성일 때 꽁꽁 묶어둔 까꿍 엄마의 자전거는 안심되었다. 이 정도로 꽉 묶어놨는데 누가 훔쳐 갈 수 있으리. 하지만 웬걸. 자전거를 못 훔친다면 안장이라도 가져가 보겠다는 도둑의 집념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런 도둑 따위 별거 아니라는 듯이 엄마는 또 그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어떻게? 뒷자리에 타고 허리를 바짝 수그리며 두 팔을 쭉 뻗어 자전거 손잡이를 잡고 괴상한 자세로 힘껏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도둑이 아니라 이 가족의 집념을 이길 수 없다는 게 맞는 말. 오호, 까꿍 어머님 최고!



어디 가족뿐이겠는가. 그녀의 옆에 있는 친구들은 이 웃음에 절대 빠질 수 없었다. 비밀 생일 파티를 망쳐버리는 것은 기본이고, 같이 공부하자면 카페에서 만나면 책의 표지에 빠져들다가 헤어지기 일쑤였다. 만나기로 찰떡같이 약속해도 귀찮음과 게으름, 추위가 뭉개버린 약속은 너무 쉽게 취소되었다. 누구도 이 약속 취소에 딴지를 걸지 않았고, 오히려 기쁨의 안도를 만끽했다. 역시, 비슷한 사람은 통하는 게 있는가 보다. 비슷하지 않다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겠어? 기가 막힌 상황은 언제나, 계속 펼쳐진다. 친구의 남친을 만나러 갔다가 못 볼 꼴을 보고야 말았으니, 친구는 남친의 웃기지도 않은 얘기에 격하게 리액션 해주다가 사레가 들었고, 급기야 콧구멍으로 쫄면을 내쏟는 마법을 펼쳤다는. @@ 절대 안 먹겠다고 서로 다짐하면 헤어졌는데, 야식 배달을 잘못 받고 아무렇지도 않게 건너온 친구. 민망할 것 같은데 민망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지우고 천진난만한 표정을 쏘아내는 이 친구들이 어쩌면 좋으냐.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까꿍은 내향인 49% + 외향인 51%’ 성향의 소유자라고 하는데, 이 책에서만 보자면 까꿍은 그저 완벽한 외향인이 아닐까 싶다. 아무렇지도 않게 드립의 끝을 보여주는 그 표정과 몸짓 발짓 손짓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이 만화가 재밌는 이유는 간결하게 그려진 한 컷에 그 많은 말을 충분히 담고 있다는 것(몇 마디 말에서 모든 상황 파악하고 결론까지 다 보게 해주지 않나?). 거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멘트가 이 만화를 더욱 몰입하게 한다.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굳이 더 찾아보고 싶게 하는 이 마성의 매력은 뭐냐고 대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게 아쉬울 정도로 실컷 웃고 유쾌함의 끝을 보게 했다.


그렇다고 웃음만 남긴 건 아니다. 코로나 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오늘도 공감을 더 한다. 마스크 속에서 움직이던 입술의 흔적은 또 다른 자국을 남기고, 어느새 비대면 수업은 익숙해졌다. 오랜만에 시험을 치르러 학교에 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늦잠으로 잠결에 비몽사몽 온라인 수업 듣는다고 카메라를 켜기도 한다. 초등학교 조카 아이 온라인 수업 듣는 거 보니까, 상의 티셔츠만 갈아입고 하의는 여전히 잠옷인 채로 책상 의자에 앉아 있더라. 이제 온라인 수업이 편하고 익숙해서 오히려 일주일에 한두 번 학교 가는 날이 귀찮단다. 집에서 뒹굴뒹굴하다 보니 살이 쪄서 고무줄 바지밖에 안 맞는다고. ㅠㅠ 까꿍의 코로나 일상도 다르지 않았다는 게 너무 공감된다. 히잉.


평범한 2000년생 대학생인 저자가 자기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그려서 SNS에 올리면서 시작된 까꿍TOON은 인기 인스타툰이라고 한다. 미술을 전공하거나 만화를 배운 것도 아니라니 더 놀랍다. 캐릭터 표정 하나에 많은 말이 담겼고, 특유의 유머 감각은 짧은 멘트로 발휘한다. 왜 이걸 아직 몰랐는지 아쉬울 정도로 일상의 웃음유발자였다. 남의 이야기라 웃긴 건가 싶다가도, 이거 내 얘기인가 싶어 두리번거리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하루를 지켜보면서 이렇게 웃을 수 있다니, 오랜만에 실컷 웃고 얼굴 주름살 늘리는 일이 행복했다.



#내향적인사람중가장외향적인사람 #최서연 #까꿍툰 #까꿍TOON

#일상만화 #코믹 #긍정의최고봉 #까꿍 #비채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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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7-30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이 코미디라니, 무슨 일이든 재미있게 봐설지도 모르겠네요 저라면 안 좋게 여길 일도 이걸 그린 사람은 재미있게 여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사람한테는 그런 친구가 있는가 봅니다


희선

구단씨 2021-08-03 00:51   좋아요 1 | URL
재밌어요. 웃음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저와 웃음 코드가 다른 사람도 분명 있더라고요. ㅎㅎㅎ
 
우리는 안녕 - 박준 시 그림책
박준 지음, 김한나 그림 / 난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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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는 주문을 외우며, 그리움을 쌓고 이별을 누른다. 볼 수 없어도 그리면서, 눈에 담고 마음에 새기며 다정하게 안녕을 말한다.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이렇게 또 안부를 묻는다. ˝안녕, 사랑하는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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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린 가이드
김정연 지음 / 코난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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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코트 메뉴 앞에서 서성이던 기억, 메뉴판 앞에서 뭘 골라야 할지 몰라서 시간만 보내던 일. 나만 있는 거 아니지? 선뜻 메뉴 선택이 어려울 때 도움을 받는 건 메뉴의 설명도 있지만, 눈으로 보이는 음식 모형이다. ‘, 내가 이 음식을 주문하면 이렇게 나오겠군!’ 이런 기대를 하고 주문하곤 하는데, 언제나 역시나 늘 그렇듯 음식 모형과 똑같이 나오는 법은 없었다. 게다가 기대감 때문인지 맛으로 만족하는 때도 드물었다. 그저 배고픔을 좀 달래준다는 정도면 되겠지 싶은 포기? 가짜인 걸 알면서도 음식 모형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 모형의 맛에 기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나는 정말 아직도 잘 모르겠단 말이지.


워낙 입소문을 탄 작가의 전작 때문인지, 이 책은 읽기도 전에 기대감에 부풀었다. 소개 글 따위 읽지 않았다. 표지와 제목만 봐도 다 알 수 있는 거 아녀? , 아냐, 아니었어. 미슐랭 가이드의 한국판으로 생각했다. 이세린 가이드로 우리에게 맛의 천국을 열어줄 거로 믿었지 뭐야. (, 나는 작가의 이름을 알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 이름이 이세린이라고 계속 생각했다. 대체 뭐야?) 작가는 맛의 천국을 열어주긴 했다. 맛집 투어 같은 소개가 아니라, 음식점에 진열될 음식 모형을 만들면서 이야기를 담았다. 그 음식에 관한 기억, 슬쩍 과거로의 여행, 먹는 일의 고됨과 의미까지. 그러고 보니 음식을 만드는 우리 엄마의 이야기이면서, 음식 모형을 만드는 직업으로 가기까지의 성장 과정, 인생사에 끼어드는 온갖 웃음과 눈물까지 담았네그려.


보지 못한 시간만큼 달라지는 사람들.

그렇더라도

오랜만이다.”

함께하는 식사라서 생기는 관계의 빈틈에

음식은 고맙게도 늘 할 것이 되어준다.

내가 너희의 갈 길 잃은 눈과 손을 구해줄게! 빈틈을 메꿔줄게!’ (272페이지)


이세린은 음식 모형 만드는 일을 하는데, 조직에서 나와서 혼자서 일한다. 이른바 자영업자. 따로 작업실에서 일하고 집으로 퇴근한다. 제법 오래 이쪽 일을 해서 그런지 꾸준한 재주문도 있고, 섬세한 작업도 있다. 우리가 음식점에서, 혹은 어디 박물관이나 전시관에서 봤던 음식 모형을 생각하면 금방 이세린이 떠오를 것 같다.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든다. 먹음직스럽게, 사실과 거의 흡사하게 만드는 작업이 쉽지는 않다.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들어내듯, 이세린의 음식 모형도 그러하다. 집중하고 또 집중해서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집중력에도 틈틈이 끼어드는 게 있다. 그녀의 이야기다. 오빠들 밑에서 딸이라는 이유로 존중받지 못하던 시절, 너무 마른 체형에 엄마도 본인도 괴로웠던 순간들, 유전처럼 아버지에게 모형 만드는 일을 물려받은 남매들. 왜 하필 그녀는 음식 모형일까?


자연사박물관 쪽으로 모형의 꿈을 키웠던 그녀가 직장에서 음식 모형으로 처음 시작했던 게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모형이지만 그녀가 음식 만드는 장면을 보면 온 마음을 다한다. 음식에 이어진 먹는다는 일에 생각한다. 프로 정신으로 모형을 만들면서, 누구보다 따뜻하고 애틋한 음식의 기억이 있다. 더불어 그 음식을 먹고 성장하는 그녀에게 눈물과 웃음이 배어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당연히 음식 모형이다. 음식 모형 제작자의 삶을 처음 봤다. 음식점에서 흔하게 보던 게 이런 과정으로 만들어진다는 게 놀라우면서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을 반성했다. (아마도 내가 그걸 보고 음식 주문하고 먹은 후의 배신감을 너무 자주 느껴서 그런 건지도. ㅠㅠ) 모형이지만 그 음식에도 나름대로 역사와 사연이 있다. 누구와 먹었는지, 그 음식 먹으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개인이 아닌 풍습처럼 계속된 음식의 역사가 줄줄 들려온다. 그렇게 듣는 음식의 역사는 사실인 듯 풍문인 듯, 믿거나 말거나 하는 식이기도 하지만, 낯설지 않다. 이세린의 상상이든 아니든, 음식으로 엮어낸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맛있다. 내가 지금 입으로 넣는 이 작은 조각 하나에도 역사가 있다고 생각하면 다시 보이지 않나? 맛도 달라질지 모른다. , 어쨌거나 맛있으면 그만. ^^


그런 다양한 음식 모형을 만들면서 이세린은 어떤 이야기를 떠올릴까? 알맹이는 없고 보이는 부분만 채워 넣어서 보기 좋게 만드는 걸 보면 모형과 이야기의 진심 사이는 멀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눈에 보이는 음식 자체에는 모든 게 담긴 듯하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열다섯 가지 메뉴는 흔하면서도 특별하다. 캘리포니아 롤, 와플과 번데기, 비빔밥, 배추김치, 곶감과 굴비, 떡국과 미역국, 매운라면, 녹차크림 바움쿠헨, , 한상차림, 모둠 튀김, 청주와 탁주, 인절미빙수와 팥빙수, 불고기 도시락, 주말 전골. 이 음식들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했는데, 우리집에서 보고 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닮은 이야기와 세상의 이런 사연도 있구나 싶은 이야기가 겹쳐진다. 비슷한 듯 다른 듯,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를 것 같은 이야기들이 가슴속으로 들어온다.



몇 가지만 떠올려보자면, 맨 위에 올려지는 양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 것 같은 인절미빙수와 팥빙수. 잘 만들다가 재채기 한 번에 콩가루가 다 날려버리는 장면을 상상하다가 인상을 썼다. 이거 치우려면 힘들겠군, 다시 만들려면 괴롭겠어. 똑같은 거로 여겼던 가래떡과 떡국 떡의 차이를 이제야 알았다. 장수를 기원하는 가래떡, 잘리는 모양으로 엽전을 연결했다던 떡국 떡은 재물을 의미한다지. 새해에 장수와 재물을 기원하는 마음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 시작은 몰라도 계속하게 되는 습관처럼, 우리는 내년 설날에도 가래떡을 뽑고 그 가래떡을 잘라서 떡국을 끓여 먹고 있겠지. 곡물에 곰팡이를 번식시킨 누룩으로 술을 만드는 일. 발효가 끝난 술독에 용수를 박아 거르면, 맑은 부분은 청주 탁한 부분은 탁주가 된단다. 두 가지 술이 한꺼번에 만들어지네? 교도소에서까지 수감자들이 술을 만들어 먹을 정도라고 하던데, 술이 그렇게 간절한 게 되어버리는구나.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작품은 배추김치가 아닐까. 주문받은 일 때문에 대용량으로 배추김치 모형을 만들면서 엄마를 생각하는 건 당연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힘드니까 김치 담그지 말아라, 조금씩만 하셔라, 안 먹으니까 안 보내주셔도 된다, 그러다가 툭 배송된 김장김치 택배. 안 먹는다, 싫다, 보내지 말라 하면서도, 막상 일 끝나고 동료와 먹겠다고 선택한 저녁 메뉴가 묵은지 김치찜이다. 김포족(김장을 포기한 사람들)들도 김치를 먹기는 한다. 김장을 안 할 뿐이지. 암만. 해마다 엄마랑 둘이 김장을 하는 나는 이제 둘만의 김장을 당연하게 여긴다. 딱 먹을 만큼만, 식구들 조금씩 보내줄 만큼만, 무리하지 않게 적당히. 그러다가 어느 해는 김장을 안 하기도 했다. 하기 싫으면, 못하겠으면 안 하면 되지. 그해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준 김장김치 몇 포기로, 온라인으로 주문한 김치를 먹었다. 그래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잖아? 아직도 나는 김장에 목숨 걸듯이 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김장 안 하면, 작년보다 조금만 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아는 사람들. 김장김치,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먹고 살아집니다. 큰일 나지 않아요.



하루 세끼 먹고 사는 일은 고단하다. 그저 먹기만 하면 되는 것 같지만, 단순하지 않다. 그러니 음식이 음식으로만 기억되지 않고 좋고 나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거겠지. 삐쩍 마른 딸이 잘 먹지 않는다고 오히려 엄마를 나무라는 일이 빈번하고,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먹는 데 자꾸만 잔소리하고 혼내고. 먹는 일이 왜 먹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을까. 하나하나 더듬어보면 참 많은 이야기가 음식에 쌓이고 쌓였을 것 같다. 이세린은 그런 일들, 그런 마음을 음식 모형을 만들면서 독백한다. 마치 누가 옆에서 듣고 있는 것처럼. 읽으면서 나도 옆에서 끄덕이고 있었다. ㅎㅎㅎ 같이 이야기하듯 들으면서 웃고 욕하고 그랬다. 허를 찌르는듯한 말에는 더 쓰라리고, 아픈 기억도 꺼내 봤다. 명절 음식 남은 거로 비빔밥을 질리도록 먹었다는 이야기에는 괜히 밥상을 엎고 싶기도 했다. , 정말 싫다. 당연하게 차별하던 시절의 이야기에 울컥하고 원망스럽고. 소개된 음식이 열다섯 가지가 아니라 더 많았더라면, 더 많은 이야기가 푹푹 녹아 있겠네. 할 말이 더 많아졌겠어. 음식으로 천일야화 한번 쓰는 거 아녀?


참고로 우리 집은 더 이상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엄마가 암 진단을 받고 투병을 시작하게 되면서

일할 사람이 없어지자 가족회의가 있었고

"흐음."

"뭐 어쩔 수 없지."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 할 만큼 했으니 우리도 이제 그만해도 될 거야."

남자들의 차례가 되면 세상은 바뀐다. (180페이지)


음식을 만들고, 차리고, 먹는 일에 관해 생각한다. 단순히 먹는 행위에 비할 수 없는, 많은 것이 담긴 게 음식일 테다. 이야기가 담긴 음식이 앞으로의 시간에 더 쌓이겠지. 앞으로 어떤 음식에 어떤 이야기가 더 쌓여갈지 기대된다. 눈물이나 분노보다는 웃음이나 행복이 쌓이는 음식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음식 앞에서는 맛있게 먹는 게 가장 먼저라고 본다. 아님?


그러고 보니 나는 내일 엄마 집에 김치 담그러 간다. 전라도에서만 먹는다는(근데 요즘에는 다른 지역에서도 종종 보이던데?) 고구마순(고구마 줄기) 김치. 여름의 별미지. 예전에는 정말 많이 먹었는데, 언젠가부터 잘 안 먹게 되더라. 일단 더운 여름에 김치 담그는 게 귀찮기도 하지만, 고구마순 그거 껍질 벗기는 거 장난 아니거든. 손끝이 까매지니까 일단 손에 짝 붙는 비닐장갑 하나 끼고 까야 한다. 허리 아프게 그 단순노동에 푹 빠져 있어야 일의 끝이 보인다. 그렇게 힘들게 까고 김치 담그고 나면 양이 얼마 안 된다. 이런 슬픈 일이. 그래도 그거 맛 좀 보겠다고 그 힘든 노동을 시작하는 게 참 아이러니. 먹고 싶은 걸 어쩌겠어. 맛있게 먹을 그 순간을 기대하며 기합 한번 넣고 작업 시작해야지. 나중에 엄마 안 계시면 고구마순 김치 어디서 구해 먹냐. 에이, 아무래도 나중에 나의 음식 역사에는 고구마순 김치가 슬픔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군.




#이세린가이드 #김정연 #만화 #코난북스 #음식 #음식모형

#인생 #진짜 #가족 #홀로서기 #성장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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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1-07-23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구마 순 김치... 정말 별미죠.ㅎ 생각만으로 군침 도네요.^^
김치로 볶음 나물로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 식재료 같아요.^^

구단씨 2021-07-24 11:25   좋아요 1 | URL
여름에만 맛 볼 수 있어서 정말 별미네요.
껍질 까는 작업은 힘들지만, 다 하고 나면 만족감이... ^^
 
이세린 가이드
김정연 지음 / 코난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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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에 담긴 진짜 삶을 생각하느라, 모형으로 변신한 음식이란 걸 잊고 자꾸 먹고 싶었다. 음식 만화인 줄 알았는데, 사람 이야기였네. 마음의 허기를 이렇게 채우다니. 다 읽고나면 포만감에 배를 두드리게 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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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더워. 더워..... ㅠㅠ

에어컨을 켜고 있는 것도 한계가 있고, 에어컨 켠 곳에만 있자니 움직임이 줄어들고.

책을 손에 들기는 했으나 페이지는 안 넘어가고... 나만 그래? 

그래도 재밌는 책 찾아서 읽고 싶은 갈증은 남았으니...


며칠 전에 웹서핑 하다가 발견한 페이지.


무섭다, 재밌다, 놀랍다… 답답함 날릴 오싹한 이야기들 - munhwa.com


스릴러 전문가 10인이 고른 10권의 책. ^^

재밌을 것 같다면서 살펴보니, 으아.... 읽은 책이 한권도 없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더 궁금한 책들이구만요.


테러호의 악몽 1,2 / 과외활동 / 영혼의 심판 1,2 / 스완 /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영원의 밤 / 얼굴 없는 살인자 / 이별의 수법 / 여름의 시간 / 로스트 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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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1-07-21 1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중에 과외활동 하나 읽어봤네요. 가볍고 스피디해서 요즘 읽기 딱입니다. 적당히 재미있고요🙂

구단씨 2021-07-22 21:46   좋아요 2 | URL
과외활동 앞부분 읽다가 포기했는데, 그걸 잘 넘겨야 했던 거네요. ^^
물감님 말씀 듣고 나니 재도전의 의욕이 뿜뿜~!

얄라알라 2021-07-21 1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중복‘ 위세를 보여주는 폭염이네요!

구단씨 2021-07-22 21:47   좋아요 3 | URL
작년에도 이렇게 더웠던가요? ㅠㅠ 완전 헉헉.
오늘의 더위는 내일의 더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거라는 생각에 두렵습니당.

scott 2021-07-21 14: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여름에 만나는 스릴러 공포!
공포-스릴러-추리-미스터리 -사회파 추리물까지 골고루 담겨 있는 리스트네요
댄시먼스-도나토 카리시-미야베 미유키-와카타케 나나미-로스트 케어
요렇게 읽어 봤는데
[로스트 케어]는 단순히 일본 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의 초고령화 문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하마나카 아키 필력이 대단합니다.

구단씨 2021-07-22 21:48   좋아요 2 | URL
읽은 건 없지만, 목록에 넣어둔 도서가 보여서 괜히 반가웠습니다. ㅎㅎㅎ
특히 말씀해주신 <로스트 케어>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라 왠지 찌찌뽕 느낌이... ^^

징그럽게 무서운 더위가 계속되네요. 건강 조심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