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토라 : 일본은 어떻게 아메리칸 스타일을 구원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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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플리카
불변의 진리를 찾아 나선 옷 탐험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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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과 다리의 가격 - 지성호 이 사람 시리즈
장강명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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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을 느껴본 적이 얼마나 있던가. 일부러 굶거나 끼니를 챙길 겨를이 없었거나. 아마도 내가 경험한 배고픔은 이 두 가지 중의 하나였던 경우가 대부분일 테다. 아니, 어쩌면. 오랜 세월 가난을 끌어안고 사는 우리 가족에게 배고픔은 부모님의 희생으로, 가까스로 피해온 경험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유롭지 못했으니, 식구가 많았으니 밥상 위에 오를 밥그릇 숫자만 봐도 부모님의 고생은 엄청났을 거다. 그래도 굶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 책에서 말하는 목숨을 건 배고픔과 탈출을, 아는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한다.

사람이 굶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려 한다. 우선 매우 배가 고파진다. 몸에 축적한 지방층이 없는 상태에서 두 끼 이상을 연속해서 거르면 그때부터는 허기가 통증에 가까운 감각으로 바뀐다. 처음에는 급성 위염이나 위궤양처럼 속이 쓰린 느낌인데, 특히 성장기 어린아이들, 청소년들이 이 고통을 견디기가 힘들다고 한다. 육체가 비명을 지르며, 신경 신호를 통해 뇌에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먹을 것 외에 다른 일 따위는 생각하지 말라고, 식량을 찾는 작업에 집중하라고. (10페이지)

어른들은 총살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 집단농장의 종자보관소를 습격한다. 아이들은 옥수수 몇 알에 목숨을 건다. 훔친 음식을 먹다 걸린 아이를 사납게 때려도 도망치지 않는다. 손을 들어 매질을 막지도 않는다. 입안에 있는 음식을 삼키는 데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먹으면서 맞아 죽는다. (14~15페이지)

책의 목차만 봐도 숨이 막힐 것 같다. 작가는 이 책을 쓰는 이유를 말하자마자 굶는다는 것에 대해 너무 적나라하게 적어놨다. 얼마만큼 굶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차례로 언급한다. 한 청년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까지 온 젊은이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려고 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았다. 소년에게도 부모님이 있고 친척들이 있었다. 넉넉하진 않아도 부족할 게 없이 살았다. 고위직에 있는 친척들의 기세를 등에 업기도 했다. 부모님은 일하고, 소년은 공부하고 동네 친구들과 뛰어놓았다. 누구나 비슷한 삶이었을 거다. 그 나이에 무엇을 알고 무엇을 더 할 수 있으랴. 나조차도 흘려들으며 넘겼던, 그다지 관심 두지 않았던 북한의 그 시기, ‘고난의 행군’이라고 했다. 누가 처음 만들었을지 모를 그 말을 듣고 나는 무슨 빡센 군사훈련을 말하는 줄 알았다. 지독한 훈련의 시간을 북한 주민 모두에게 경험하게 했다고 여겼다. 이 책을 읽고서야 그 시기가 혹독한 가난과 굶주림이었다는 걸 알았다. 탄광 마을에 사는 소년이 본 모든 것을 이렇게 듣는다.

처음에 아사(餓死)는 소문이었다고 했다. 굶어서 죽는다는 말을 그들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가 보다. 그러니 믿지 못했겠지. 카더라 통신으로 들려오는 죽음의 소식은 소문이 아니었다. 가까운 이들이 하나둘 죽은 걸 보고 실감했다. 장애인과 노인들이 죽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운 이들이 먼저 죽은 거다. 소년의 가족도 다르지 않았다. 배급이 줄거나 끊기면서 먹을 것이 없었다. 먼 지역의 친척에게까지 가서 먹을 것을 구해왔어도 굶주림은 끝나지 않았다. 소년과 가족은 그 지역의 탄광에서 실려 나가는 석탄을 훔치기에 이른다. 달리는 열차에 몰래 올라타고, 어두컴컴한 상태로 포대에 손에 잡히는 석탄을 마구 담는다. 적당한 때에 열차에서 뛰어내려야 한다. 그 위험한 일을 몇 번을 했다. 그렇게 훔친 석탄을 먹을 것으로 바꾸는 일을 해야만 했다. 너무 굶어서 발을 헛디딘 소년은 한쪽 팔과 다리를 잃었다. 소년의 비명을 어떻게 잊을까.

한쪽 팔과 한쪽 다리로 목발을 짚고 또 살아간다. 소년은 꽃제비가 되었고,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국경을 건너 중국과 라오스를 거쳐 대한민국에 왔다. 이 글은 그 소년을 만난 작가가 기록했다. 자칫 정치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내용을, 작가는 한 사람의 생을 들려줌으로써 아직도 그곳에서 살아갈 이들의 굶주림을 먼저 떠올리게 했다. 꿈을 갖기도 전에 생존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삶. 내일이 아니라 오늘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버티는 인생. 소년은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었다. 자기 몫을 지키기에 혈안이 된 상황에서 자기 것을 타인에게 나눠주며 같이 고통받았던 이들을 떠올린다. 아무 잘못 없이 비참하게 굶어 죽어가야만 했던 이들의 슬픔을 공유하게 된다. 잃은 것이 아닌, 아직 남은 한쪽 팔과 다리로 살아가는 희망을 말한다.

읽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겼나 싶을 정도였다. 결국은 살아야겠다는,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그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그는 북한을 탈출했고, 자유를 갖고,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의 삶에 적응하면서 그는 또 다른 어려움과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세상은 겪으면 겪을수록 새롭고 어렵고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가 경험할 시간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여전히 북한의 인권은 달라지지 않았을 테지. 폐쇄된 그 안에서 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자기 이야기를 한 지성호 씨도, 그 이야기를 이렇게 적어놓은 작가도, 읽고 있는 우리도, 아마 바라는 건 하나가 아닐까 싶다. 북한이 단단하게 쌓아 올린 그 장벽이 조금씩 무너지기를. 그렇게 그 안의 실상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듣게 되기를. 우리에게 있는 팔과 다리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을 생각한다.


#팔과다리의가격 #장강명 #책 #에세이 #문학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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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벽지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 내로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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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일기에 적는 건가 보다. 가장 은밀하고 가장 솔직한,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거나 할 수 없는 말을 차곡차곡 모아놓을 수 있는 것. 여자는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 남편에게 더는 말할 수 없었다. 자기 상태를 진료하던 의사에게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솔직하게 털어놓았는데도 그녀는 회복될 수 없었다. 누구도 진실하게 진료하지 않았고, 그녀의 마음을 듣지 않았다. 그러니 침묵할 수밖에. 말할 의지를 잃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남편 존은 아내의 정신적 질병을 알고 있다. 다른 의사도 그랬지만, 남편 역시 아내에게 내린 처방은 참 단순하고도 무심했다. 절대적으로 휴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내의 신경 쇠약이 쉬어야만 낫는 병이라고 말이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시골 마을 외딴 저택으로 간다. 여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아내의 정신을 환기하겠다고 말이다. 아내를 위해 통풍이 잘되고 채광이 좋은 꼭대기 층 넓은 방을 부부가 사용하기로 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자신의 결정에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토록 세심하게 돌봐 준다며, 은혜를 알아야 한다고. 남편이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는 시대를 상상할 수 없었다. 물론 21세기인 지금도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을 호의로 여기며 생색내는 사람이 있기는 할 테지만, 소설로 보는 작가의 경험담이 더 생생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 시대를 대신 읽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남편은 자기 역할이라 여기며 아내를 돌보는 방법이 오직 휴식 치료법이라고 여겼기에 그렇게 했을 텐데, 그게 정말 치료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몰랐나 보다. 몰랐던 게 아니면, 무시하고 싶었거나.


존은 신중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내가 나서지 않도록 나를 보호해 줘. 하루 종일, 매 시간 내가 할 일을 처방해 주지. 이토록 세심하게 돌봐 주는데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면 응당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거야. (33페이지)


흔히 휴식 치료법이라고 불리며, 19세기 초 여성에게 히스테릭하고 신경질적인 성향이 내재하여 있다고 믿던 시기. 간혹 그런 성향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휴식 치료법이라는 이름으로 가두고 관리하려 드는가. 육체를 옭아매고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게 휴식 치료법이었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성의 주장을 제압하고, 단속하려 들었다. 여성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아내답지 못하고, 엄마답지 못하고, 불평불만이 많고, 바라는 게 많다는 거였고, 그렇게 많은 여성이 휴식 치료법의 대상자가 되어 목소리를 잃었다. 삶을, 인생을, 미래를 잃었다.


남편은 아내의 완벽한 휴식을 위한다며 모든 지적 활동을 금지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생각도 하지 말고 상상도 하지 말고, 뭔가를 적는 일도 하지 말고. 오직 숨만 쉬고 먹고 자는 일만 허락했다. 방 밖으로 나오는 것도 금지했다. 아내는 꼭대기 층 방에 갇힌 채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자기 마음을 말해도 부정당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갇힌 생활이 길어질수록 아내의 증상은 깊어졌다. 남편은 아내의 상태가 호전되었다며 자기 처방을 믿었다. “내가 의사잖아.” 의사라는 전문가의 말을 믿어야겠지만, 때로는 오진도 있고 잘못된 처방도 있지 않은가. 출구 없는 감옥에 갇힌 아내가 매일 보는 것은 누런 벽지다. 노란 것도 아닌 누런 벽지. 누워도 보이고 앉아 있어도 보이는 그 벽지에 점점 시선을 빼앗긴다. 아내의 모든 시간은 이제 한쪽 벽을 뒤덮은 누런 벽지에 잠식당한다. 휴식을 위해 만들어진 시간과 장소에서 병은 더 깊어만 간다.


뭔가 이상함을 눈치챌 정도면, 아내는 정말 아픈 게 아니다. 내 몸의 이상을 나 자신이 느낄 수 있다는 건 지극히 정상이고, 지금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건 당연하다. 그녀가 아무도 듣지 않는 자기 말을 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 몰래 글을 쓰는 방법뿐이었다. 누군가 오는 기척이 나면 얼른 숨기고, 아무도 없을 때 조용히 자기 생각을 적곤 했다. 그렇게 자기 방식으로 치유를 하는가 싶었는데, 그마저도 누런 벽지에 빠져들면서 힘을 잃었다. 혼자 있는 방, 보이는 건 누런 벽지뿐. 아내는 점점 벽지에 빠져들면서 벽지를 보고 읽는다. 벽지의 무늬에서 사람을 보고, 움직임을 느낀다. 심지어 벽지와 대적하는 지경에 이른다. 아내에게 휴식을 주겠다며, 아내의 병을 치료하겠다며 선택한 방법이 옳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드디어 탈출했어, 당신과 제니는 막으려고 했지! 내가 벽지를 거의 다 뜯어냈으니 다시 나를 가둘 수 없을 것이야.” (115페이지)


총 열한 개의 일기가 담겨 있다. 그녀가 머물던 저택의 꼭대기 층 방에서 머문 시간이 고스란히 적혔다. 아무도 듣지 못한, 듣지 않으려 했던 그녀의 말을 유일하게 꺼낼 수 있던 방법. 읽을수록 바라게 된다. 그녀가 빨리 그곳을 탈출했기를, 남편이 그녀의 말을 더 새겨듣게 되기를, 갇힌 방에서 있는 게 휴식도 아니고 치료도 아니라는 것을.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기에 더 와닿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기 안에 있는 많은 것을 억압당하고 살아야 하는 게 어떤 결말을 만드는지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분출을 막는 강요로 지성이 스러지는 과정을 생경하게 그렸다는 말이,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원인과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문학이라는 게 뭔지 알 것 같다. 여성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그들이 믿는 치료법이 잘못된 방법이었다는 것을 증명한 작가는, 거대한 벽 하나를 무너트렸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평등을 위한 외침은 계속된다. 19세기에 이뤄낸 여성 인권 신장을 이 소설로 확인하게 된다. 소설의 결말은 끔찍했지만, 작가는 독자는 물론이고 오늘을 사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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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모네이드 할머니
현이랑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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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있으면! 그래, 다른 거 다 없어도 돈만 있다면 노후 생활이 편해질 거로 생각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다. 나이 먹고 돈 없으면 누가 나에게 밥을 줄까. 다른 가족이 있거나 자식이 있다면 그들과 비비며 늙어갈 수도 있겠지만, 자식도 없다면 혼자 늙어가다가 죽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말이다. 돈도 있고 자식도 있지만, 가족과 함께 살아갈 수 없는 때도 있더라. 치매라는 병 앞에서 선뜻 가족이니까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은 꺼내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여긴 모든 게 다 가짜다. 바다처럼 보이려고 바다 색으로 칠한 수영장, 잠금장치도 없는 가짜 방문, 마을도 아니면서 마을이라고 붙인 가짜 이름, 여기 사는 사람인 척하지만 돈 받고 일하는 어른들, 어른들의 가짜 웃음, 아이들의 가짜 친한 척, 이젠 아기가 되어 버린 가짜 할아버지 할머니들……. (45페이지)


도란 마을은 치매 환자들을 위한 병원이다. 하지만 누구도 병원이라고 느낄 수 없게 구성되었다. 넓은 집을 분양받듯 한 채씩 가지고 있고 그 안에서 각자 생활한다. 식사 시간이나 공동 운동 시간에는 함께 모이기도 하지만, 원한다면 사생활을 유지하며 살 수도 있다. 아프면 진료해주고, 배고프면 밥 주고, 필요한 게 있으면 마을 안 마트에서 산다. 카페도 있고, 미용실도 있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마을 안에서 해결된다. 의료진과 직원들은 자기 자리에 맞는 유니폼을 입고 있다. 의사 가운이나 간호사 복장은 아니다. 마치 마을의 주민처럼, 어느 레스토랑의 직원처럼 입고 있는 직원들. 치매에 걸린 노인들은 자기 세계에 빠져 살면서도 쉽게 공포에 떨고 놀라기도 한다. 환자들의 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이 구성이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아 보인다. 단 한 사람만 빼고.


평화로운 곳이다. 고요하고 큰 소리 한번 난 적이 없다. 그런 곳에서 갑자기 들려온 비명은 까칠한 할머니 탐정을 탄생시킨다. 최고급 리조트 같은 도란 마을의 쓰레기장에서 비닐봉지에 싸인 아기 시체가 발견된다. 도란 마을의 원래 땅 주인이었고 현재 도란 마을 입주자인 까칠한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이 사건에 관심이 많다. 도란 마을의 의사 아들인 꼬마는 할머니와 팀이 되어 이 사건을 파헤친다. 사람도 싫고 아이도 싫어하는 할머니가 어떻게 꼬마와 팀을 이루었을까 싶지만, 원하는 게 같으면 원수도 아군이 되는 법. 할머니는 이 무료한 곳에서 사건을 추적하며 즐거움을 찾고, 꼬마는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으로 가슴에 있는 상처를 하나씩 치유해나간다.


여기가 그렇다. 이게 일상이다. 깨끗이 씻겨 놓은 노인들은 아기 같이 예쁘지만 그 똥은 아기의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자주 씻겨 준다 해도 죽음과 고통의 냄새는 가시지 않는다. 여기 일하는 모두가 말한다. 나는 이 병에 걸린다면 상태가 악화되기 전에 죽겠노라고.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어도 치매는 치매다. 누구도 도망가지 못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뇌는 날로 쪼그라들고, 몸은 날이 갈수록 약해진다. 더 괴로운 건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땐 흘릴 눈물조차 없어진다. 왜 슬퍼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114페이지)


비닐봉지에 버려진 아기 시체를 시작으로 사건이 발생하고, 경찰까지 불렀지만 별일 없이 묻혀버린 상황을 보니 이곳이 참 수상하긴 수상하다. 치매 노인을 위한 완벽한 천국 같은데, 이 수상쩍은 분위기는 뭐란 말인가. 이 찝찝함을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할머니와 꼬마의 활약이 필요했다. 모든 것을 기억하기 어려운 할머니는 수첩에 수사(?) 상황을 꼬박꼬박 적는다. 꼬마는 눈치 빠르게 할머니의 조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구린내가 풀풀 나는데...


이야기를 들을수록 왜 이렇게 씁쓸해지는지 모르겠다. 처음 했던 생각은, 돈만 있으면 노후가 그나마 덜 불행할 거로 여겼다. 틀리지 않는다. 노후가 그나마 행복하려면 돈을 필수 조건이다. 그런데 돈이 아무리 많아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여기서 새삼 느낀다. 최고 시설에 최고급 대우를 받는 곳이지만, 외로웠다. 가족이 있다고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고, 가족이 없다고 외로운 것도 아니다. 레모네이드 할머니처럼 가족이 없어도 자기 삶을 잘 마무리하고 떠나는 사람도 많을 테지. 하지만 많은 이가 외로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치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또 그 틈을 이용해 부정부패와 비리를 저지르는 이들이 활개를 친다.


각자의 사정을 숨긴 채로 도란 마을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외로움과 슬픔은 더 깊어진다.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 겨우 회복되려는 모자, 가난이 죄는 아닐진대 가난하다는 이유로 무시와 차별을 당하는 청년, 돈에 가려진 가족의 모습을 유지하며 불륜을 저지르는 부부, 아무리 못된 짓을 하고 다녀도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텅 빈 머리의 부모들, 당연하게 권력을 휘두르며 마약을 즐기고 마약 밀매까지 하는 권력자들, 이 사건의 시작이 되었던 아기 시체 유기까지. 세상에서 들려오는 온갖 나쁜 짓이 도란 마을 안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도대체 도란 마을은 어떤 곳인가?


남들에겐 흔한 비극이라도 자기가 당하면 서러워지는 게 인간이지.” (59페이지)


챕터마다 화자가 바뀐다. 그들의 속내를 듣는 일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내일을 살기 위한 오늘의 몸부림 같아서 말이다. 기쁨과 희망보다 감춰진 고통을 듣는 일이 쉽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할머니의 까칠한 말투나 세상 관조하는 읊조림은 사이다 같기도 하고 은근한 바람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해서 많은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못된 사람들에게 벌을 주고, 애쓰고 노력하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할머니의 삶의 태도가 몸부림치는 것 같다. 우리는 각자의 나이에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이 있다. 그런데도 그 상황과 나이를 넘어서서 해야만 하는 일도 있는 듯하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감춰진 거짓을 드러낼 줄 아는 용기. 꼬마가 어쩔 수 없이 할머니 옆에 있었던 것이지만, 그 시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누군가는 감추려고 애썼던 범죄를 훌륭하게 들춰냈으니까. 어쩌면 어른이 더 배워야 할 태도가 아니었나 싶다.


심장 쫄깃해지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추리소설이었다. 도란 마을을 떠올리면 영화 <트루먼 쇼>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결말이 다르니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본인은 모르는 본인의 삶이 다른 이들이 지켜보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내 일상을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데, 정작 나는 내 인생을 잘 모르는 시간. 끔찍했다. 그게 치매 노인의 시선이고 시간일 거로 생각하니 더없이 우울해졌다. 우리 자신도 정확히 모르는 우리의 최후가 어떤 모습일지 두렵기도 하고. 한 달에 1천만 원씩 내는 요양 시설에 가지는 못할 것 같고, 그러니 더 건강하게 살아보려 애쓰는 수밖에. 그래도 레모네이드 할머니처럼 살고 싶기는 하다. 멋지고 심플하게, 당당하게. 그 마지막 모습마저 레모네이드 할머니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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