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공무원들은 총독부의 개들이었다. 총독부가 원하는 것은 한가지.

이 전쟁이 끝나도 제국의 영화를 누릴 수 있도록, 조선의 금들과 보물들을 폭포 안에 숨겨두는 것이었다. 몇몇은 성공했고, 몇몇은 중간에 탈취당했다.

그 중 몇가지는 폭포수 안에 있는 동굴에 파인 몇십, 아니 몇백미터의 구멍을 숨겨졌다.

개중에는 일제시대의 면사무소의 서기들이 높은 사람이 된 후 파내어 가지기도 했지만, 그것은 발견된 것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래서요?”

 

멀뚱한 지윤의 반응에 털보는 조금 화가 났다.

 

“그래서라니. 이건 엄청나게 대단한 일이야.”

 

“병률형이 노리는 것도 아마 그런 걸 거 같긴 하네요... 아니, 형하고 날 뺀 나머지 자식들이 가지

고 싶어하는 게 그런 건가?”

 

“하네요? 그 엄청나게 비꼬는 듯한 그 말투는...”

 

“...전 이해가 안 가요. 형도 이해가 안 가고.”

 

병률과 길준에게서 도망쳐나왔더니 그 앞에 또 다른 이해불가능한 자가 있다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 이건?”

 

털보가 부젓가락으로 집어든 두꺼운 잉크통에는 굉장히 복잡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 글씨체는 나한테는 굉장히 낯익은 거야. 어머니 글씨체지. 아버지가 쓴 건 아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한테 이 잉크통을 주시면서 선물이 3개가 있다고 말씀하셨어.

그리고 아버지 이름을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지.

 

<얘야. 넌 정말 내가 널 낳은 걸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멋진 애야. 난 너의 아버지를 정말 사랑했단다. 그래서 아버지랑 난 널 위해서 선물을 준비했지. 1개는 미리 받고 나머지 2개는 천천히 찾아보라고 말하고 싶구나. 하지만 이건 내 생각이고, 네 아버지 생각은 다를지도 몰라. 그럼, 다른 2명한테서 도움을 받아서 그걸 찾으렴. 꼭 도움이 될거야. 지금 내가 네 손에 쥐어주는 금괴 하나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래서 난 기자를 선택했지. 충분히 먼 곳을 다녀도 되는 직업이었으니까.”

 

“.....”

 

“그 보물을 가지고 싶건 아니건 간에 내겐 그 말자체가 매력적이었어. 그래서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지. 당연해. 아버지의 그 선물은 내게 마저 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젠 알겠어. 그 부자가 하나는 상속했을 테고, 나머지 하나는...”

 

“형. 꿈은 그만 꿔요. 그걸 다 알려줄 아버지는 죽었다구요.”

 

“죽어도 찾는 거야 어렵잖지. 그 보물들은 강원도에 있어.”

 

“형!”

 

“폭포수 어딘가 밑에서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지. 70년이 넘는 세월을...”

 

“.....”

 

“그 보물을 만지는 그 순간, 그 얼마나 짜릿할까! 아버진 아마 그래서 그 보물들을 파내지 않았을 거야. 멋진 일이지.”

 

멋진 일이건 아니건 상관없었다. 지윤은 잉크통 뚜껑부터 밑바닥까지 적혀 있는 황금의 깨알같은 글씨를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내...사랑하는 아들에게 남긴다. 내가 너에게...남길...

...강원도...................품목은 금괴...................와...................비취.........루비..........

......................................동양에서...............가장...............................

.........부디................에 목매지...........않고.........지혜롭게...................

상속...........은 세......명..............이

 

 

“어머닌, 잘 알고 계셨어. 왜냐하면 이 잉크통 내 눈에 굉장히 낯익은 거거든. 기사문 쓸때 쓰시던 잉크통이었어. 그리고 상속용 선물들도 어머니가 고른 것들이었지. 어머니 다른 너희들이 걸핏하면 모욕을 주던 기자나부랭이었다고는 하지만, 아버진 어머니만을 사랑했어.”

 

“그래서요? 그게 중요한...”

 

“어머니가 상속한 물건. 그건 모두 어머니 가방에 들어있던 것들이었고, 어머닌 그것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지. 한 개는 가톨릭용 성경책, 한 개는 가끔 성경책 페이지가 들러붙으면 떼낼  페이퍼 나이프, 그리고 성경책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펜에 묻혀서 성경책에 가끔 몇마디씩 쓰는 잉크통. 펜은 어머니가 나중에 잉크통안에 들어갈 수 있게 개조했지."

 

성경책이라면...지윤의 머릿속에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만약...그 성경책이라면...

 

“형 혹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소 엄마가 옛날에 성경책 안에 조립식 권총을 넣은 적이 있었나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제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외국인 대리모 이야기가  바탕이 된 이야기입니다.(저는 주로 신문에서 힌트를 많이 얻어서요...그림자의 햄릿에서도 모의권총에 대한 이야기를 포털에 올라온 신문기사에서 얻었습니다.)

물론 일본 사람을 일부러 허위 조작까지 해가면서 한국에 데려올 사람은 없을 겁니다만...

진행하다보니 일본인(통일교 신자)으로 설정하고 말았네요.

일본에는 통일교 신자들이 굉장히 열성적이라고 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신랑감, 신부감도 교주가 정해준 사람하고 결혼한다고 하지요.

실제로 시골에는 통일교 국제부부가 많습니다.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를 하루가 좋아하는 것으로 설정했는데

실제로 다자이 오사무 팬들이 일본 국내에 많아서, 다자이 오사무 기념비하고 무덤에는 꽃하고 앵두가  끊이질 않는다고 합니다.(앵두는 다자이 오사무가 살아생전 그렇게 좋아했었다고 하네요.)

 

주인공들 인명과 관련해서는 하루는 봄, 세미는 매미라는 뜻입니다.

세미 시구레...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그건 일본어 사전에 보면 매미가 울다. 라는 뜻이라는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루의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죽었다...

아이를 낳으면 그에 맞는 액수의 돈을 준다고 했던만큼 그녀의 남편과 아내는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하루는 결국 일본에 돌아가기로 했다.

그녀는 그에 맞는 기모노도 새로 맞췄다.

 

 

“기모노를 입고 돌아갈 거야?”

 

 

내 말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고향에 돌아가는 거니까...거기서 아버지 무덤에 성묘도 하고...”

 

 

“......”

 

 

“아까 전에 보여준 무덤.”

 

 

하루가 말했다.

 

 

“아기 무덤이지?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서 죽어버렸겠지...외로울거야. 저 아이는...”

 

 

“......”

 

 

기모노로 온몸을 갑옷처럼 감싼 그녀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단순한 옷차림으로 간극을 없앴던 그녀가 아니었다.

아이를 낳으면서 그녀는 조금 바뀌었다. 아니, 많이 바뀌었다.

 

 

“일본으로 돌아가면...”

 

 

그녀가 조금 힘을 들여서 말한다.

 

 

“내가 일본으로 돌아가면...꽃무덤에 꽃을 잔뜩 얹어줘. 혼자니까 외로울 거야.”

 

 

“하루...”

 

 

“세미, 세미도 외롭잖아. 외로울 때는 ...”

 

 

그녀가 천천히 내 손을 잡았다.

 

 

“하루, 하루도 돌아가면 외롭잖아.”

 

 

“이젠 외롭지 않아.”

 

 

그녀가 방긋 웃었다.

 

 

“그냥 외롭다고 생각만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았으니까...돌아가면 다자이 오사무 시비에 앵두라도 공양할 거니까...”

 

 

“하루...”

 

 

“세미. 외로우면...여름에 세미들이 우는 소리를 들어봐. 세미 시구레...하면 가끔은 덜 외로울거야. 세미도 매미잖아...”

 

 

그리고 그녀는 떠났다.

그녀의 남편이었던 남자와 아내는 또 다른 여자를 데려왔다.

그들의 가족관계등록부에는 하루가 낳은 아이가 그들의 아이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다들 알면서도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다들 하루를 곧 잊어버렸지만 난 잊지 못했다.

여름날, 살짝 맞닿은 입술의 감촉에 나는 점점 더 외로워진다.

하지만 괜찮으리라.

곧 매미들이 울 것이고, 그럼 난 외롭지 않을 것이다.

 

그녀도 돌아가, 그렇게 좋아하는 다자이 오사무의 묘비에 앵두를 공양하고 있을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앵두를 좋아해서 그의 무덤에 앵두를 공양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왜 그녀를 그때 붙잡지 않았을까...하는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나는 여름에 우는 세미일뿐이고, 그녀는 하루(봄)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루에게 아기를 낳게 하기 위해서 그녀의 남편과 그 아내는 온갖 회유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는 점점 힘들어했고, 힘들어할 때마다 나를 찾아왔다.

 

 

“세미.”

 

 

기왕 아이를 낳는다면 어차피 누구 아이인지 상관없지 않은가?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

 

 

“기왕 아이를 낳는 거라면...”

 

 

힘들게 하루가 입을 뗐다.

 

 

“그 아이가 세미 아이면 좋겠어.”

 

 

“넌 남편이 있잖아.”

 

 

내가 하루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걸 무서워한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을까?

사람과의 접촉을 거의 하지 않는 내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고?

 

 

“그 사람...”

 

 

하루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무서워.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어...나는 내 아인지 아닌지 모르는, 아버지도 모르는 그런 아이는 낳을 수 없어. 바라지 않아.”

 

 

“...하루...”

 

 

일본으로 돌아가봤자 가족은 아무도 없다.

그 외로움이 싫어서, 하루는 종교에 빠졌다.

그리고 아버지를 닮은 남자를 남편으로 삼기로 하고 그 종교 지도자가 허락한 그와 결혼하기로 했었다.

 

 

“아이를 낳으면 돌아가도 된다고 했어.”

 

 

“하루...”

 

 

하루의 가벼운 몸이 내게 의지해온다.

나는 기대어오는 그녀의 몸을 잡으며 그녀의 얇은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입술에서는 차가움만 느껴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슬며시 그녀를 밀었다.

 

 

 

그리고 몇 달 후 그녀가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외로움에 지쳐 자신의 난소를 이용한 아이인지 아닌지도 모른채, 병원의 힘을 빌려 임신했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얼마 뒤였던가. 의외의 광경을 보게 되었다.

하루의 남편과 하루, 그리고 하루의 남편의 아내가 셋이서 행복하게 장을 보는 모습을.

중혼이라서 문제가 될 뿐, 세 사람은 종교가 같았던 것이다.

 

 

“하루, 우메보시가 없어서 미안하긴 한데...내가 절임 해줄게.”

 

 

하루의 남편의 아내의 말에 하루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루는 우메보시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줌마. 그냥 우리 김치 먹어요.”

 

 

“하루. 착하군.”

 

 

남편이 하루의 머리를 스윽스윽 만져주었다.

나는 그들의 파국을 머리에 그릴 수 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의 눈에 띄지 않게 마트를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세미!”

 

 

하루의 약간 비음섞인 목소리에 하루의 남편이 나를 불렀다.

 

 

“소설가 양반. 이리로 오지 그래? 만난 김에 우리 넷이서 차라도 한잔 하자구. 이리와.”

 

 

“세미가 무슨 뜻이에요? 순수 우리말인가?”

 

 

그 두 사람의 눈매는 다정했지만, 어느 선 이상으로 접근하면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는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래서 고개를 가볍게 젓고는 그들에게서 떨어져나갔다.

 

 

“세미. 왜 부를 때 안 왔어?”

 

 

마트를 다녀온 후 하루가 내 집으로 놀러왔다.

 

 

“하루. 난 하루의 친구가 아냐.”

 

 

“놀러오고 놀러가고 그게 친구 아닌가?”

 

 

“세미는 외로운 곤충이야. 주변에 누가 오면 물을 끼얹고는 도망가 버리지.”

 

 

“저런...그래도 같이 있어주면 좋을 텐데...그런 외로운 곤충은 죽어도 슬퍼해줄 가족도 없겠네. 가족한테도 물을 끼얹고 도망갈 테니까. 그럼 나는 그 위에 꽃을 얹어 줄래...”

 

 

그래. 나는 할 말이 없어서 하루의 이마에 가벼운 알밤을 먹였다.

 

 

“내 무덤에는 꽃을 얹지마...”

 

 

“......”

 

 

“난 하루의 친구도 아니고, 하루의 오빠도 아니고, 하루의 남편도 아니야...그냥 세미야. 물뿌리고 도망가는 세미...나는 하루의 친구도 되고 싶고, 오빠도 되고 싶고, 남편도 되고 싶어...하지만 안되잖아...”

 

 

“그럼 애기 아빠는 되어줄 수 있어?”

 

 

하루의 말에 난 잠시 몸을 뒤로 뺐다. 가장 듣기 무서운 말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