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시골에 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나는 소설가니까, 여러명이서 사는 것보다 혼자서 사는 것이 더 편하다. 물론 관공서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은 혼자 살기 때문에 불리하다. 전기도, 물도, 교통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있는 것보다 불편하다.

 

기왕이면 마을에 가서 사는 게 좋았겠지만, 내가 작업실로 정해놓는 조건과 하나도 맞지 않았다. 사람들도 참견쟁이들같았고, 더더군다나...

 

 

“세미!”

 

 

그녀는 나를 매미라고 부른다. 예전에 선배가 붙여준 별명인데, 그녀가 한국어 사전을 뒤져서 찾아낸 모양이다.

 

 

“그래그래.”

 

 

그녀는 오래 전에 종교적인 문제로 이곳의 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

행복한 결혼이었다.

 

 

“세미는 왜 이렇게 혼자 동떨어져 있어?”

 

 

“하루가 찾아와주잖아.”

 

 

하지만...하루의 남편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었다.

중혼은 범죄까지는 아니지만, 불법이다.

 

 

“그거야 나도 심심하니까...”

 

 

23살의 젊은 아가씨가 그저 종교적인 열망으로 결혼을 했는데, 상대는 그걸 기만한다.

그와 그의 아내는 불임이라고 했다. 대리모를 원한다는 그 말에 하루는 완강히 거부했다.

사랑하고 믿어서 한 결혼이 아니었던가? 그런 그녀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그 말들.

 

 

“하루...”

 

 

“응?”

 

 

하루는 나이보다 좀 덜 떨어져 보이긴 해도 성숙한 어른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와 어른이 반쯤 섞인 모습이 내게는 한없이 편해보였다.

 

 

“손가락 이리 줘봐.”

 

 

“어...그래.”

 

 

“이건 클로버야. 일본에도 그런 말 있던가? 네잎 클로버는 행운을 의미한다고...”

 

 

중혼이라고는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어차피 동시에 결혼하는 건 안되게 되어 있으니...

말이 좋아 결혼이지, 속여서 데려온 거다.

 

 

“응. 일본에도 그런 말 있어.”

 

 

“...빨리 일본에 돌아가면 좋겠다.”

 

 

“...왜?”

 

 

“왜냐니? 하루, 계속 그렇게 살 순 없는 거잖아. 그 아저씨는 이미 부인이 있고...”

 

 

“세미, 이건 신의 뜻이야. 대리모가 되는 건 나쁘지만, 난 이미 남편의 아내인걸...”

 

 

“하루...종교가 삶의 전부는 아니잖아...”

 

 

하루는 시무룩해져서 돌아갔다. 나는 그날 하루가 입고 있던 면티하고 청바지를 생각하면서

그 단순함이 그녀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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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그녀는 내가 옆에 있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이거 이름이 뭐야?”

 

아, 일본하고 우리나라는 무덤 모양이 다른가? 난 한번도 일본에 가지 않아서 잘 모른다.

납골당에 데려갔으면 이해는 더 빨랐겠지만 그건 이 무덤 주인에게 미안한 노릇이다.

 

“...무덤이야.”

 

“무덤 이름이 뭐야?”

 

그녀의 말에 난 잠시 침묵했다. 그래. 무덤에 이름이 없을 리가 없지. 있을 거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꽃무덤...”

 

“그럼 공양을 꽃으로 해야겠네. 다자이 오사무처럼...”

 

“...그래...”

 

은빛 선이 어깨부터 발끝까지 내려오는 천을 일직선으로 가르고, 옅은 청색이 점점이 박힌 기모노. 화려하게는 보일 수 있어도 그다지 기품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럼 꽃은 뭐로 해야 하지? 아, 난 참 귀국하지...그럼...안되겠다.”

 

그녀는 살짝 내 손을 잡았다. 나는 놓진 않았지만 그녀가 눈치챌 수 있을만큼 살짝 손가락을 쥐었다.

 

“세미 시구레 할때쯤이면...”

 

“여름...여름 꽃무덤이구나...기왕이면 봄이면 좋았을 걸...”

 

“봄이라도 상관없을 거야...꽃무덤이니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따스한 봄바람.

그리고 마치 일부러 그런것처럼 벚꽃잎이 무덤에 톡 하고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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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해왔다.”

 

 

털보의 말에 지윤은 아궁이에 꺼져가려는 불씨를 가늠했다. 나무가 잘 말라있으면 차주전자 하나쯤은 끓일 수 있으리라. 아직도 그들은 형과 자기를 감시하고 있을 터였다.

돌아가면 죽지는 않더라도 소문 하나 내지 않고 감금될 수도 있을 터였다.

이게 다 눈치없는 형 때문이다. 라고 생각은 하긴 했지만 형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답이 안 나오는 현실에 절망하고 말았으리라.

두 사람은 닮은 구석이 많았다. 병률과 길준.

그 두사람이 지향하는 것은 달랐지만 자신 위주로 해결한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신문도 갖고 오셨네요.”

 

 

지윤이 힐끗 돌아보면서 말했다.

 

 

“음. 연합통신이지. 넌 대부분의 신문기사들이 연합통신에서 나온다는 건 알고 있겠지? 이 친구들이 쓴 걸 보면 그날 그날의 중심을 알 수 있지.”

 

 

“형, 죽을지 어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직 그걸 읽을 만한 배짱이 있군요. 형다워요. 내가 그래서 형을 좋아하지만.”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다.”

 

 

털보는 지윤에게 나무를 넘기고는 의자에 앉아 그날치 통신을 읽었다.

 

 

“주가는 상승세. 얼마 전 사람이 없는 주택을 털려다가 총알에 관통당해 다친 흥신소 직원 몇 명이 발견...그 당시 약제를 투여받았는지 기억이 없음...경찰은 마약상습투약여부를 조사중.”

 

 

“......”

 

 

지윤은 세상사에 염증이 났다. 이기적이기로 따지자면 병률이나 길준이나 다 똑같았다.

그걸 해결해보려고 잠깐 나왔더니 병률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덤벼들었고...

이젠 신부가 뭔가를 할 수 있는 건 아닌 듯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요. 흥신소 직원?”

 

 

“어, 그렇다만?”

 

 

“형, 혹시 형 가게 부근에 왔던 사람들하고 관련은 없을까요?”

 

 

“아서라. 아무리 세상이 막나가도...그럴 수도 있겠군.”

 

 

털보는 아궁이에 나무를 넣으면서 불꽃을 지그시 응시했다.

 

 

“상대는 보통 상대가 아니었군. 그렇다면 이젠...”

 

 

털보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적거리더니 아궁이속에 휙 하고 던져넣었다.

 

 

“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까.”

 

 

“형?”

 

 

“이젠 진지하게 싸워야겠다. 이젠 맨 몸 하나가지고는 싸울 수 없어. 그리고 너와 내 힘만으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면...”

 

 

“역시 그 남자를 만나러 가는 건가요?”

 

 

“음...어쩔 수 없겠지. 넌 일부러 거길 나왔지만.”

 

“아니오.”

 

 

지윤은 항상 옆에 두던 로만 칼라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형이 뭔가를 집어넣은 그곳에 그 옷을 집어넣었다.

 

 

“전 이제 신부로 살지 않겠습니다. 기왕 뛰어든 거 흙탕물도 백비탕도 다 마셔버릴 각오로 뛰어들겠습니다. 형한테만 폐를 끼칠 순 없죠.”

 

 

“그래?”

 

 

털보는 빙긋 웃었다. 그리고 아궁이 옆에 있던 부젓가락으로 집어넣었던 것을 꺼내들었다.

 

 

“그럼, 이제 진짜로 이야기해볼 수 있겠군. 고맙다. 지윤아.”

 

 

지윤은 눈앞에 있는 그 무언가에 글자가 잔뜩 새겨져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만 있으면 우린 무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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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어느 글에선가 언급했겠지만 저는 가끔 음악의 편식을 막기 위해서 가끔 아무 단어나 쳐보는 버릇이 있습니다.(이번에는 주제어가 이지성이었군요. 저런.)

아마 다음번쯤에 쓸지도 모르지만, 제 8극장의 대항해시대(이건 대항해시대 게임때문에...주제가 찾다가...)도 그렇게 듣기 시작했죠.

이지형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음악 전문 평론가가 아닙니다. 수집가에 더 가깝고, 수집가라기보다는 방랑자에 가까울 겁니다. 딱히 즐겨듣는 음악도 없고, 장르도 없습니다.

클래식도 좋아하고 힙합은 아직까지는 확 좋아하진 않지만 에미넴은 좋아합니다.

락도 좋아하고 재즈도(이건 좀 무리군요.)아직까지는 확 싫어진것도 아니구요.

 

 

이지형은 네이버 라디오를 순례하다가 만난 새 친구입니다.

물론 가수가 제 친구란 소리는 아니고, 음악이 친숙하게 느껴졌다는거죠.

제법 유명한 가수인가본데, 저는 잘 모릅니다. 음악을 이어폰끼고 듣기 시작한게 대학생때부터니까 잘 모릅니다.

엔하위키에 가면 있을까? 싶지만 그건 잘 모르겠네요.

이지형의 청춘 마키아토의 챙챙거리는 기타음이 좋았습니다.

보컬도 크게 거슬리지 않았고(제 기준에서 그렇다는 겁니다. 초코크림롤스는 괜찮은 그룹같은데도 제 취향에서는 좀 벗어나 있었거든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꽤 유명한 그룹이었나봅니다...)

가사도 굉장히 호소력이 있었어요. 얼핏 하는 젊은 시절 하는 소리인가보다 하기에는 노래에 무게감이 있어요. 그래도 주제에 노래가 짓눌리지 않았으니 마음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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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워서 침묵을 읽는다.

밤은 내 허리에 앉아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

 

 

어둠은 아주 어둡지 않고

밝음도 아주 밝진 않다.

밤의 경계에서

그림자는 내게 이야기를 한다.

 

 

나는 듣지 못하는

읽지 못하는 그 이야기들을

밤은 얼마나 더 해주고 싶어하는 것일까.

 

 

나는 네 얼굴을 읽지 못하는데

밤이여, 넌 나의 얼굴을 읽고 있구나.

네 얼굴에는 수천만의 눈길이 있고

난 네 얼굴을 아직은 읽을 수 없다.

 

 

불면의 밤에

나는 너를 가끔 읽으려 하는데

너무 많은 길이 있어

길을 잃어버렸다.

 

 

넌 누구냐.

밤이여, 넌 누구냐.

침묵의 경전을 읽지 말고

내 얼굴을 읽으라 하는 너는 누구냐.

 

 

어둠이 지고

다시 해 떠오르면 잊을 망집.

그러나 밤 또한 돌아오기에

나는 또 다른 침묵의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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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불면이죠.(ㅡㅜ)

본래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밤잠이 깊었는데, 언젠가부터 점점 밤에 자는 시간이 늦어지더니

지금은 불면에 대해서 걱정할 정도가 되었습니다...저런.

이 시는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생각나서 다시 일어나서 쓴 시입니다.

일부러 글 쓰려고 잠 안자는 거 아니에요. 잠을 못 자서 쓰는 겁니다...시간이 아까우니까요.

불면의 동지들이여...(계시다면 말이겠지만.)언젠가 잠을 푹 잘 그날을 위해서 전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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