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는 눈앞의 광경에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과연 이 정체절명의 순간에 길준은 어떻게 행동할것인가? 아내의 원수가 보낸 자들에게 무릎을 꿇을 것인가. 아니면...

 

“이 여자 죽이기 싫으면 당장...”

 

“당장 뭐 어쩌란 말이냐.”

 

한 손에 단도를 든채로 길준이 무미건조하게 대꾸했다.

 

“그 칼 버려.”

 

“잠깐 이 화면으로는 네놈들이 거짓말 하는 걸로 보인다. 칼은 여자를 확인하고 나서 버리지.”

 

의외로 순순하게 나오는 그였기에 심부름센터 직원들은 그가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천천히 내려가서 확인해라. 그리고...얌전히 죽어라.”

 

하지만 그게 그들의 자충수였다. 길준은 단도를 든 채 밑층으로 내려가 은미와 그 상대방을 확인했다.

 

“확인했지? 이 여자를 살려주는 댓가로...”

 

“확인은 확실히 했다.”

 

은미는 길준의 눈동자에서 차가움을 느꼈다.

 

“...그럼 칼을 버리고...”

 

그 말과 동시였다. 길준은 총을 들고 자신의 뒤를 따라온 자의 어깨를 단도로 그은 후 그 총을 탈취했다. 그리고 뒤이어 품에서 잽싸게 모의권총을 꺼낸 후(모의권총이라지만 총알의 위력은 실제와 거의 같았다.)은미를 향해서 쏴버렸다.

은미는 비껴간 총탄에 귀에서 피를 흘렸고, 그 뒤에서 목을 조르던 남자는 총탄에 오른쪽 팔을 관통당해 팔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너...여...여자는...”

 

“내 목적은 분명하다. 내 저택을 침범한 네놈들을 그대로 경찰서로 보내버릴 거다. 그리고...”

 

모의권총의 위력이 강했는지 뒹구는 그들의 총을 발로 밟으면서 그가 말했다.

 

"내게는 지금 여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동료, 아니면 적 그뿐이다. 네놈들은 적이 되었으니 그 댓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주마. 다만, 협조만 잘 한다면 경찰에게 넘기기 전, 조금의 호의는 베풀어 줄 수 있지.“

 

그리고 그는 천장에 있던 샹들리에를 모의권총으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샹들리에에서 뭔가를 들어올리고는 총으로 그것마저 깨뜨려버렸다.

 

“내 집에 쥐가 한 마리 있었군.”

 

그는 총으로 비서를 겨냥했다.

 

“...이...이사장님.”

 

“이준구 사장이 휴가를 줬을리 없지. 나하고도 충분히 이야기가 끝난 걸, 네 녀석이 저 놈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일부러 거짓말을 한 거 아니냐. 세콤도 네 녀석이 풀었을테고...”

 

탕!

 

모의 권총이 불을 뿜었다.

그리고 비서는 총탄이 자신을 스쳐지나 유리벽을 뚫었다는 걸 깨달았다.

 

“자, 기회를 주마.”

 

“...네...네에?”

 

“넌 경찰에 보내지 않겠다. 죄질은 네 놈이 더 세지만, 다 죽여버려서야 의미가 없지.”

 

“뭐야...우린 죽어도 된다는 말이냐?”

 

언제 정신을 차렸는지 심부름센터 직원들이 항의했다. 하지만 길준은 냉소했다.

 

“사람 죽이러 온 놈들이 죽는 건 굉장히 겁내는군.”

 

“젠장. 당신이 돈을...”

 

“그 돈 때문에 사람 죽여도 된단 법은 없지.”

 

길준은 그들의 총을 한데 모아서 발로 그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치웠다.

여전히 귀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은미는 어느새 치워진 총들을 관리하면서 길준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자, 내려가.아, 이 친구들에게도 기회를 줘야겠군.”

 

“예...예엣?”

 

“총으로 널 먼저 죽이느냐, 아니면 네가 이 친구들을 피해서 멀리 도망가느냐... 승부 난 쪽에게 경찰에게 넘기지 않겠다는...이야기지.”

 

“뭐야. 저 놈을 죽이면 우린 경찰에 안 가도 되는거냐?”

 

“속고만 살았나보군. 자. 여기 모의권총이 있다. 이걸로 쏴 봐.”

 

길준은 그렇게 그들에게 모의권총 하나씩을 쥐어주고 비서에게 눈짓을 했다.

 

“어서 가. 밖에 창문에 밧줄이 있을 거다. 그거 타고 꺼져.”

 

그와 동시에 모의권총 1정은 비서가 막 타고 내려가던 밧줄을 끊었고, 나머지 총탄은 길준에게 향했다. 길준은 막 뒤돌아선 상태였기에 그것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은미는 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탕!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요란한 폭죽소리같은 것이 울리고, 침범했던 범인들은 피를 흘리며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갑자기 뛰어나와 길준을 감싸던 하얀 여인도 목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길준도 그녀와 함께 쓰러졌는데, 은미는 그 순간, 천사가 길준을 구하기 위해 내려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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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률은 느긋한 표정으로 와인 한 병을 땄다.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그와는 달리, 양심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나니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총으로 비서를 죽일 때와, 그 이전에 아내 이상으로 사랑했던 그녀를 죽이던 그때와는 달랐다. 물론 그녀의 유령이 그를 괴롭히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 유령조차도 그의 사랑에 보답해 나타난 것으로 보였다.

 

“보이나?”

 

그는 유령을 상대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기 네 남편이, 다른 여자 때문에 무릎을 꿇은 채로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지. 잘 보이지? 날 잡겠다고, 날 죽이겠다고 길길이 뛰던 놈이 복수한다고 제 정체마저 감춘채로 뛰어다니다가 결국 내 덫에 걸렸지...하하, 이젠 죽고 나면 내 머리에 유령이 두 개겠군.”

 

“.....”

 

그는 비싸다고 소문난 와인을 물 들이키듯 들이켰다. 병째로.

만약 섬세한 소믈리에라도 한 명 있었다면 아까운 짓 한다면서 병을 빼앗을 정도의 난폭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그는 숨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순간적으로 화면이 꺼져버렸다.

 

“총?”

 

그럴 리가. 싶었다.

민간인에게 총소지 허가가 내려진다고는 해도...

아니, 아니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복수에 눈이 멀었다면 총기소지도 가능하지...젠장.”

 

방심했다. 정체를 감추기 위해서라도 총은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치이이익.

소리와 동시에 화면이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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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기란 눈앞의 찻잔

찻잔속에 차를 부어

잔안에 폭풍이 부네.

차라는 이름에

폭풍이 부니

그 어떤 정취란 말인가.

 

 

 

금으로 찻잔을 삼든

흙으로 찻잔을 삼든

폭풍이 빙글빙글 도는 것은

항상 있어온 일.

 

 

 

내 맘에 폭풍 하나

내 앞에 선 사람 앞에 폭풍 하나.

차조차도 마음을 잡지 못하니

다도속에 정숙을 가지기 이리 어렵구나.

 

 

 

다두여.

이제야 다도가 어렵다는 그 말을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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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 다도에 매력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정식으로 배우진 않았지만, 한때 차에 취미를 가지려고 한 적도 있었죠.(라지만, 실제적으로는 차는 대충 우려먹어도 된다고 생각한 적도 많습니다.) 국내다도를 익히는 게 더 나았을테지만, 정작 저는 어린 시절에 읽은 센노 리큐에 대한 일화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센노 리큐는 한동안 제 위인 서열 중에서도 제법 높은 위치에 있었죠.(물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반대한 사람이라서 그런 거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얼마 전에 온 에어에 올렸던 다도를 다룬 글만 한권이 된 모 저자에게 푹 빠져, 나중에는 위작이라는 설이 도는 남방록도 전자책으로 구입하기도 했었구요.

왜 이렇게 사적인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저 시에 나오는 다두가 바로 센노 리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한국 사람이지만, 소설이나 영화 등등에서 나온 리큐의 일화는 그가 한국은 몰라도 일본에서는 정말 다두라고 불릴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는 사실 독후감이기도 합니다. 드디어 대망 7권에 들어갔는데,하필 리큐가 죽기 직전이군요...리큐를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아서 이렇게 시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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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회를 기점으로 2부로 들어갈까 합니다.

사실은 2부고 뭐고 없었습니다. 제목 자체를 바꿀려고 했었거든요.

그림자의 햄릿으로 제목을 다 바꾸려고 했는데 수정하려니 손이 너무 많이 가서...

그냥 울새를 누가 죽였나로 하고, 1부, 2부 제목만 달리하는 걸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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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준은 밤중에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옛 상처를 들춰서 어떻게 될까...싶었다.

복수라면 복수이리라. 자신에게도 상해를 입히는 복수. 아니, 그 이전의 사건의 복기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안 주무십니까?”

 

비서로 들인 청년이 그에게 물었다.

 

 

“아직, 안 가고 있었나?”

 

 

“은미씨가 가보라고 해서...”

 

 

“은미씨도 아직 안 가고 있었나?”

 

 

“예. 이준구 사장님이 가지 말라고 하셨답니다.”

 

 

“아...”

 

 

“안 주무신다면 더운데 에어컨이라도...”

 

 

“아니. 됐어.”

 

 

자리에서 일어난 길준은 건물의 유리창 너머로 반짝이는 뭔가를 보았다.

 

 

“자네.”

 

 

그는 천천히 비서에게 물었다.

 

 

“경비한테 바깥 불 켜라고 했었나?”

 

 

“아니오? 경비하시는 분들이 오늘부터 휴가라고...사장님이 휴가 주셨다고 하던...아."

 

 

"휴가?“

 

 

길준이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세콤 걸어둔 거 돌려.”

 

 

“예. 알겠습니다.”

 

 

일시적으로 해제가 되어 있었던 듯, 비서가 원격으로 세콤을 조정하자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길준은 그와 동시에 박차고 들어온 심부름 센터 직원의 칼을 피하고 돌려차기로 그 칼을 공중으로 날려보냈다.

 

 

“그만 움직여. 이 새끼야. 네 여자 목숨을 받아놨다.”

 

 

하지만 그 동작은 이내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은미가 그 중 한 놈에게 목이 졸린 채 버둥거리는 모습이 화상 시스템을 통해서 보였기 때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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