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보는 술집을 닫았다. 호언장담했던 그 부자를 만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신부의 말에 의하면 그 대리인은 왔었다. 그 말은 그 부자가 그에게 어느정도는 관심이 있다는 뜻이었다.

왜 그냥 보냈냐는 말에 지윤이 대답했다.

 

“그 사람은 형이 찾는 금괴는 가지고 있지도 않아요.”

 

그 말에 털보는 망연자실해졌다. 200만원만 날린 거 아닌가 싶었다.

 

“금괴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그러니까 형이 그 사람을 만나면 금괴에 대해서만 알려주게 되는거죠.”

 

금괴의 행방에 대해서 그 부자가 모른다면 만나봤자였다. 괜히 눈길만 끌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윤이 덧붙였다.

 

“형, 심부름센터의 사람이 몇 명 왔다갔어요...오토바이를 끌고 왔다갔다하는 걸 봤으니, 아마...”

 

“병률이 말이냐?”

 

“......”

 

“그 놈은 무서워할 것 없어.”

 

딱 잘라 말했지만 지윤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형은 진짜 무섭다는 게 뭔지 몰라요.”

 

“그러면?”

 

길준은 천천히 상의를 벗었다.

그리고 수술자국을 털보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병률형이 한 짓이에요. 형에게도 같은 짓을 할 수 있어요...”

 

“...그 자식이 그 정도로 악독한 놈...”

 

털보는 말을 흐렸다.

 

“걱정마라.”

 

“.......”

 

“난 기자다. 신문에 올려버리고 말테다.”

 

“형.”

 

잠시 한숨을 쉬었다가 뒤이어 말했다.

 

“형은 정의를 추구하지만, 이미 기자들의 정의는 없어요. 지금, 가장 센 건 정치와 돈이에요. 형. 형은 돈이 없잖아요...정치인도 아니고...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짐을 다 정리해서 멀리 도망가는 것 뿐이에요.”

 

“그 부자에게 가는 건?”

 

“그 사람도 똑같은 사람일뿐이에요.”

 

지윤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형은 권력과 싸우기 위해서 기자가 된 거잖아요. 그 사람 편에 서면 형은 또 다른 권력을 위해서 펜을 쓰게 될 거에요.”

 

“알았다.”

 

털보는 그렇게 대답하고 담배를 물었다.

 

“도망가는 수 밖에 없는...거군. 어쩔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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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는 지윤이 치료를 해달라며 보내준 노파를 보았다.

길준에게 이야기했지만 길준은 알아서 하라면서 만나는 걸 거절했다. 노파가 어떤 사람이건 자기하고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의사를 불렀지만 의사의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누가 이 노인에게 마약을 투약한 모양입니다. 그것도 굉장한 양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아직까지 숨이 붙어 있군요...뭔가 간절히 바라는 거라도 있는 모양입니다만...”

 

자식이 보고 싶은게 아닐까...준구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도 가족과 떨어져 있지 않은가.

노모는 아직도 자신이 보고 싶은지 찾는다는 소식을 얼핏 들었었다.

그래서 그는 의사가 간 후 노인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두근.

 

노인의 손에서 맥이 느껴졌다.

 

두근.

 

“어머니...”

 

준구는 가만히 불러보았다. 노인의 눈이 잠시 떨리는 것 같았다.

 

두근.

 

맥이 느껴지는만큼 준구의 마음도 떨렸다. 왜 자신은 길준의 말 때문에 가족을 만날 수 없는 것일까. 길준의 역할을 대신 하기 위해서 자신은 여기 있었다.

물론 애초에 길준에게 이야기했었지만.

언제까지 그에게 어깨를 빌려주겠다고 이야기했지만.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은 그에게 형벌이었다.

 

“어머니...”

 

준구는 다시 나직하게 노인을 불렀다. 이 노인을 보면서 자신은 노모가 너무 보고 싶었다.

아마, 만약 자신이 길준의 곁을 떠난다면 그건 가족때문이리라.

파산상태였기 때문에 떠나온 가족이었지만, 그 사태가 해결된 후였으니 이젠 만나도 되리라. 단 한번이라도, 잠깐만이라도 노모를 만나고 싶었다.

그는 노인의 손을 꼭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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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준은 재테크 전문가에게 강의를 들었다. 한동안 법인을 만들려던 계획이 어그러졌으니 차라리 잘 되었다고 할 수도 있었다.

소설가를 꿈꾸면서 법률을 외우며 집행하던 경찰은 이제 더 이상 없었다.

그는 이제 막대한 부를 운용하면서 때를 기다려야했다.

사회복지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지금은 핵심실무진이 빠져나가 있어서, 곧바로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 빈 시간동안 길준은 그 알맹이를 채워넣어야 했다.

물론 실무는 이준구가 보겠지만. 이준구가 언제든지 빠질 수 있다는 것도 최근에 확인했다.

은미에게서 배우는 사회생활 매너도 잊지 않았다.

적에 좀 더 가까운 인물이지만 은미는 절도를 지켰고, 길준도 거기에는 불만이 없었다.

 

 

경영자는 만능일 필요는 없었다.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고 자신의 뜻에 맞게 움직인다.

그에게 그 재능은 충분히 있었다. 이제 그 기본틀을 만드는 것만 하면 되었다.

혹시 모를 적의 공격에 대비해 길준은 병률이 익혔을만한 것들은 모두 마스터하기로 했다.

단순한 육체공격만이라면 경찰 시절에 가지고 있던 태권도, 유도, 검도 단수로도 충분할 터였다. 그리고 그만한 돈을 가진 사람에게 최고의 공격무기는 호신술이 아니었다.

다만, 팽팽 돌아가는 머리와 뱃심만이 그 세계를 지배했다.

 

“아직도 못 찾았습니까?”

 

그는 개인적으로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는 심부름센터 사장에게 말했다. 물론 진실을 다 말한 건 아니었다. 찾는 대상도 어머니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네. 행방이 잘 잡히질 않는군요.”

 

이준구는 직접 찾지 않고 심부름센터를 이용한다면서 불쾌해했지만 그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예전의 길준이 아닌 것이다. 그랬으니 방법도 달라야했다. 돈 있는 사람에게는 돈 있는 사람의 사람 쓰는 법이 있다고... 물론 그 말을 하면 준구는 싫어할테니 그는 미소만 지었을 뿐이었다.

물론 위험성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충실히 일에 몰두하다가 찾지 못하면 의뢰인을 살해도 할 수 있다. 물론 그는 그 사실도 잘 알았다. 이 심부름센터의 주인은 전직 조직폭력배이기도 했던 것이다. 경찰 시절 입수한 정보가 이렇게 쓰일 줄은 그도 몰랐다.

 

“못 찾으면 50%는 반납하셔야죠?”

 

그의 말에 주인의 어깨가 순간적으로 위로 치솟았다 내렸다. 아마 돈을 반납할 여유도 없으리라.

 

“그건...”

 

“계약대로 해야죠. 설마하니...”

 

길준이 다시 미소지었다.주변 사람을 공포스럽게 만드는 그 미소.

 

“위약금 대신에 밤중에 내 목을 조르러 오는 건 아니시겠지요? 흐흐.”

 

“아...아...아닙니다.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저택에서 심부름센터 주인이 나가자 은미가 뒤를 이어 들어왔다.

 

“자알 하시는군요.”

 

“음.”

 

“정신 좀 차리시죠.”

 

“뭡니까.”

 

길준은 은미를 보고 단 한마디만 했을 뿐이지만 은미는 무척 화가 나 있었다.

 

“왜 자기 어머니를 찾는데 조직폭력배까지 동원하시죠?”

 

“...그 사람들이 발이 넓으니까.”

 

“잘 하시는 짓이십니다. 저 남자가 뭔 일 하는 남잔줄 은 아세요?”

 

“내 걱정 하지 말고 병률이 걱정이나 하지 그러십니까?”

 

“네. 그렇게 하고 있어요!”

 

탕! 하고 그녀는 한쪽 팔로 안고 있던 파일들을 내려놓았다.

 

“k빌 심부름센터! m하우스 심부름센터! 그 중에 저 심부름센터도 있는 건 아셨을 것 아니에요.”

 

그녀는 평정을 잃었다.

 

“병률씨는 종류별로 심부름센터를 부리고 있어요. 그리고 저 심부름센터 사장은 바로 당신을 찾고 있구요.”

 

“나도 그 인간을 찾고 있는 중이죠.”

 

길준의 말에 그녀가 버럭버럭 화를 내기 시작했다.

 

“찾으실려면 다른데서 찾으실 필요 없잖아요. 지역구에서, 전국구에서 찾으시면 돼요. 그 돈 많은 건 어디다가 쓰시게요. 정치권에 돈 좀 뿌려주면 쉽게 찾을 것을. 하다못해서 지역사회 행사에 참가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찔러죽이던지, 사람 시켜 황산 테러라도 하던지...”

 

“......”

 

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 이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길준이 부드럽게 그녀를 불렀다.

 

“은미씨. 재단 전면에 설 신부님과 목사님은 찾으셨습니까? 찾았으면 이제 시작해도 될 것 같군

요... 그리고, 내 복수는...”

 

빙긋. 하고 그가 웃었다.

 

“그 친구가 -아니, 이제 친구가 아니지.- 제 손으로 제 몸을 찌르게 될 겁니다. 심부름센터를 여러개 운영하는지는 알았지만 그렇게 많이 운영할 줄은 몰랐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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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엔야를 듣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였던 서양 판타지를 읽기 시작하면서 작가 후기에 붙은 프로그레시브 락 가수들의 소개를 보면서였던가...

엔야는 물론 프로그레시브 락 가수는 아니다. 아닌데, 그 가수들의 테이프를 하나씩 수집하면서 따라가다보니 나중에 엔야도 2개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잔잔한 것보다는 시끄러운 음악을 좋아했던 당시였기에 엔야는 취향밖이었지만, 어쩌다보니 2개씩이나 사게 된 것이다.

사실 그 정도밖에 안되면 포르테라고 붙이기 민망하지만, 이젠 말할 수 있다.

단 한곡만으로도 포르테라고 부를 수 있다고.

요즘은 음반을 사지 않고 음원을 구입하고 있어서 더 그럴 수도 있었겠다.

당시에도 엔야는 인기가수였지만...요즘도 베스트니 리마스터링이니 하면서 곡이 제법 되어서 헷갈리게 만들곤 한다.

그 중에 내가 포르테!라고 지정할 수 있는 곡 하나.

엔야는 서양풍의 서정미를 가진 가수지만, 아프리카에 부는 바람?(정확한제목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이라는 곡은 서양미 이전에 아프리카의 음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곡의 첫머리에 아프리카풍의 타악기 음과 잔잔히 흘러가는 목소리가 들린다.

발을 구르는 듯한 소리가 아, 기우제를 지낼 준비를 하는구나...라는 느낌이 들게 하고.

천천히 대기를 흐르는 듯한 엔야의 목소리가 곡을 흐르게 만든다.

그리고 타악 소리는 점점 높아져가고, 기우제를 지내는 사람의 발구름소리도 점점 커져간다.

엔야의 목소리는 대기를 타고 흘러 폭풍이 되고, 거기서 기우제를 지내는 사람의 목소리도 끝을 향해 달려간다.

광란도 아니며, 그렇다고 슬픔도 아닌 그 목소리들은.

오로지 비를 오게 하는 그 순간까지 길게 이어진다.

이곡때문에 나는 엔야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근 15년만에.

엔야의 곡을 15년만에 다시 생각하면서 그 곡과 반대되는 엔야의 본원인 켈트를 튼다.

엔야는 정말 대단한 가수이다. 이렇게 첨부하지 않아도...단지 라이브가 없음이 슬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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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률은 심부름 회사에 그 위치를 알려주고 누가 거기 있는지 사진을 찍어오라고 했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거기는 이틀에 30만원 주기로 하고 빌린 점포였다.

한 사람당 삼천원 주기로 했다는 거기에 간 사람은 한명밖에 없었다는 보고까지 듣고 나서야 병률은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 한명이 어떻게 생겼냐는 심부름 센터 직원의 말에 잠시 빌려주고 감시했다는 건물주는 뚱하게 대꾸했다.

 

“어떻게 생겼는지 내가 어떻게 감시하고 있느냐고.”

 

“우리도 일이니까 좀 협조 좀 해주소.”

 

안면이 없는 것도 아닌 상대인지라, 주인은 한참 생각해보더니 자세한 대답은 전혀 아닌 단 한마디를 내뱉었다.

 

“대머리.”

 

“대머리? 그리고?”

 

“대머리는 여자 하나를 여기서 데려갔는데...취했는지 어쨌는지 여자가 정신을 잃었더라고. 늙은 여잔데...”

 

“늙은 여자?”

 

“대머리가 데리고 가는데, 그 대머리를 바래다주던 남자보고 그 대머리가 그러더라고 신부님. 이라고.”

 

“...신부가 이런 사기극에?”

 

“사긴지 아닌지 난 모르지. 뭐야. 뭔 신고라도 하려면 나하고 이야기는 하지도 말어. 재수없으니.”

 

“여기 빌리겠단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털이 텁수룩한 남자였어. 온 전신이 털같은 남자야. 그러고보니 전직 기자라던가. 요즘은 술집 한다던데. 술을 몇 개 좋은 거 갖다줘서 내가 장사 안되는 김에 빌려준거지. 뭐...”

 

심부름 사원은 그대로 그 자료를 병률에게 넘겨주었다.

병률은 약속한 돈을 넘긴 후 그 자료를 파일에 넣었다.

형제라도 용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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