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아니면 어떡합니까. 선거가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이렇게 위험한 패는 쓰지 않는게 좋을텐데요.”

 

한때 자신의 상사였던 보좌관이 얼굴에 주름을 잡았다. 맞는 말이었다. 선거일은 이제 석달 남았을 뿐이었다. 그 기간을 이렇게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내 말대로 하십시오.”

 

그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어조로 보좌관을 재촉했다. 보좌관은 입에 재갈이 물린 길준의 모친의 얼굴에 천을 뒤집어씌웠다.

 

어머니.”

 

클로로포름을 맡아 정신을 잃은 길준의 모친에게 병률은 부드럽게 말했다.

 

아드님이 많이 보고 싶으시지요? 곧 보게 해드리지요. 같은 병원에 있으면 정말 사이가 좋아지실겁니다. 그리고 아들을 거기에 처박았다고 후회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아직 의원도 아니신데 이렇게 위험한 수를...”

 

닥쳐.”

 

차분한 어조로 병률이 말했다.

 

난 당신처럼 단순한 욕구로 정치를 하려는 게 아니란 말이야.”

 

“......”

 

당신이 정치인이 되고 싶다면 얼마든지 도와주지. 내가 어떻게 해서 의원직까지 노리게 되었는지 알아? 이런 일을 통해서라고. 젊은 의원들의 대부분은 몸싸움까지 해서 자리보전을 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러는군.”

 

“......”

 

보좌관은 울먹거리면서 외쳤다.

 

당신은 정치인 할 자격이 없어. 아니, 인간으로서의 기본 자격이 없어! 이게 무슨 짓이야! 난 당장 그만두겠어! 너같은 인간이...”

 

그만둬?”

 

병률이 빙긋 웃었다.

 

그만둘 수 있나 어디 보지. 네 머리에 총알이 박혀도 그럴 수 있나.”

 

보좌관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길준의 모친을 업어들고 병률이 총으로 가리키는 m의장의 별장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들이 별장으로 들어가고 난 얼마 뒤 총성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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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를 거칠게 찢어라.   
키보드를 두드려라.
펜으로 휘갈려라.

분이 풀리도록
상대를 자근자근
씹을 수 있도록

네가 종이를 구기고
펜으로 적의 심장을 찌를 때도
세상은 돌아간다.

쓰는 게 무슨 소용이랴.
해적 방송을 
손으로 빚어낸들 

하지만 네 마음의 칼날은
언젠가 상대의 뒤통수를
뒤로 보게 만들 것이다.

칼날은 날카롭게 벼리고
복수의 그날을 위해
눈빛도 새로이 하라.


날카로운 칼날이 아니면
상대는 썰리지 않는다.
그러니 칼을 벼리고
흐리멍텅한 눈대신 날카로운 눈으로 
상대를 봐라.

그리고 말하라
오늘이 바로
복수의 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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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내지 않고 살아간다면

언제까지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도

욕심이다.

 

풀 뜯으며

와인잔 기울이며

담배 피우지 않고

육식하지 않으면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서서히 노쇠해간다.

얼굴의 검버섯, 흰 털이 반백되어

뼈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건강하게 살지 못한다면

그 나이 되기 전 죽겠다고 말하는 이들.

단 한번도 저물어가는 아픔을 맛보지 않겠다고 하는 이들

나 또한 이들 중 하나였으니.

 

위대한 늙음이 아니면 내게 죽음을 달라 한 이들에게

그저 한떄의 치기였으니 웃고 넘어갈 일일지도 모를.

그 순간은 몇십년 후의 아픔으로 남게 되리.

 

반백된 머리, 언젠가 완전히 하얗게 되고

검버섯 핀 얼굴에는 더 이 상 필 자리도 없게 되는.

뼈는 흙속에 완전히 사그라져 움직이지도 못하고 파묻히는 그 순간.

그 순간이 언젠가 오리라.

 

그 순간 오면

우리 젊었던 이들이여.

자기 자신의 젊은 쾌락에

울게 되리라.

 

껴안지 못하고

울지 못하고

웃지 못하고

눈 마주치지 못하는

그 암흑의 순간이 오게 되면

 

우리는 살아있던 꽃을

투명한 수반위에 띄우듯

그렇게 삶을 죽음으로 포장하게 되리라.

 

그러니 억지로 젊음을 꽃꽂이 하지 않고

늙음을 숨기지 말고

나, 삶을 즐기리라.

 

 

삶이 죽음을 포장 하든

죽음으로 삶을 포장하든

결말은 같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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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텔레비전에서 스웨덴 노인들의 행복한 삶에 대해서 방송하는 걸 보다가 중간에 나왔습니다.

다큐치고는 화사한 색감이어서, 꽤 즐겁게 보았습니다. 인터뷰도 짤막하면서도 주제를 부각시키는 면이 좋았어요.

그런 노인이 되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진짜로 10대에는 40에 죽으면  참 좋을 것 같았는데 말이죠...철없는 생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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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실종신고는 안 하려고 한다.”

 

병률과 마주한 길준의 모친의 말이었다.

 

...어머니.”

 

사태의 시작은 병률의 집에서 길준이 칼을 휘두른 것이 원인이었다. 모친은 칼을 휘둘렀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악했지만 경찰이 개입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즉각, 아들을 설득해서 병률이 잘 안다는 요양원에 넣었다.

길준의 아버지가 일찍 죽어 그녀는 오랜 세월을 일에 찌들려 살아왔다.

 

증상이 심해지건 약해지건 길준이는 내 아들이야. 그 애는 이 나이 먹도록 단 한번도 내 말을 어긴 적이 없어. 사람 보는 눈도 정확하고...잠시나마 의심했던 게 후회스럽네. 자네가 소개해 준 요양원도 정식 인가를 받은 요양원이 아니었다고 하던데...”

 

실종신고를 하라는 병률의 권유가 있자, 길준의 노모는 경찰서 앞까지 갔다고 돌아선 것도 여러번이었다. 차마 아들을 실종으로 해둘 수가 없었다.

 

,...”

 

병률은 한숨을 쉬었다.

 

전들 어쩌겠습니까. 미친 건 아닌 것 같고, 이런 불찰이 생기긴 했지만 제가 그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을 겁니다. 어머니 마음 편하신게 낫지, 불편한 게 전들 낫겠습니까.

실종신고를 하자는 것도 저번에 나온 뒤에 같이 탈주했던 노인이 끔찍하게 자살해서 그렇지 않겠습니까. 제 마음도 알아주시면...“

 

잘 알았다.”

 

길준의 모친은 처음에 병률을 어려워했다. 사람의 기본이라는 건 어디 감추거나 변화시키기 어려운 것이어서,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는 병률을 좋아하게 될 날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럼 잘 들어가십시오. 저는 좀 있다 회의라서...”

 

병률은 그렇게 인사를 하고 두 사람이 있었던 커피숍 문을 열고 사라졌다.

길준의 모친은 막막할 따름이었다. 하나밖에 없던 아들이 요양소를 떠나서 어디를 헤매고 있는 걸까. 그런 마음으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을 때였다.

띠리리리리!

커피숍의 전화기가 울렸고, 종업원이 곧 전화를 받았다.

 

. 가로 3번째 뒤에서 5번째 테이블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전해드리겠습니다.”

 

무심함인지, 아니면 포기였는지 모를 그 어슴프레한 순간.

곧 뭔가를 쓴 종이가 그녀앞에 놓여졌다.

 

[1분뒤에 핸드폰이 울리면 전화를 받으십시오.당신이 가장 만나보고 싶어하는 사람의 전화입니다.]

 

그리고 핸드폰 벨이 울렸다.

 

띠리리리리릿!

 

날카로운 핸드폰의 울림이 그녀의 어설픈 평정을 비웃는 것 같았다.

핸드폰에는 발신자 미확인이라고 떴다. 길준의 모친은 주저했다. 하지만 그녀는 천천히 핸드폰의 폴더를 열었다.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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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밑에

기다리는 것

만큼이나 지루한 일

 

나무뿌리 옆에서

토끼 오는 것

기다리는 만큼이나 어리석은 짓

 

기약없이

10년을 기다리며

마냥 행복만을 추구하는 일

 

숫자만을 맞추며

혹은 영원히 나오지 않을 명작만을 기다리며

인생의 명작을 만들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는 일

 

시간은 가는데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서

행복이 저절로 오길 바라는 것만큼이나

행복을 쫒아내는 일들.

우리는 오늘도 그렇게 살고 있는가?

 

숫자풀이는 재미있지만

인생의 숫자풀이는 재미가 없네.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인생.

 

이제 일어나.

숫자 풀이는 접고

주변을 돌아보자.

 

행복한 삶이

그대를 감나무 밑에서,

토끼가 치어죽은 나무뿌리 옆에서

조금만, 아주 조금 옆에서

그대 움직이기를 기다리며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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