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는 자신에게 배정된 방에서 이준구가 선물한 꽃다발을 손으로 매만지고 있었다.

병률이 자신을 보내면서 한 말을 떠올리면서 그녀는 꽃을 만지고 또 만졌다.

새빨간 장미와 수수하게 그것을 꾸며주는 안개꽃. 예전에는 사촌 언니가 장미고, 자신이 안개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괜찮은 직장을 잡은 후 들은 사촌언니의 소식은 그녀에게 약간의 우월감을 주었었다.

 

장미. 언니야. 난 이제 장미야.”

 

[은미씨.]

 

병률과의 첫만남에서 은미는 그에게서 호감을 느꼈다.

 

[오래간만이군.]

 

[. 정말 오래간만이에요. 더 잘 생겨지셨네요.]

 

고등학교 졸업 후 유학가기로 했을 때, 병률을 처음 만나고 다시 비서로 그를 만났을 때

은미는 그 감정이 여전히 살아있는 것을 알았다.

 

[정치인이 되기로 하셨어요? . 대단한데요?]

 

[대단하긴.]

[아니에요. 일반 경찰이 갑자기 후보로 나선다는 거 어지간히 자신 없으면 안되잖아요. 저는 m의장님 덕분에 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후보 지원 나서라고 하셔서...]

 

어쩌면 병률의 콤플렉스를 건드릴수도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병률은 선하게 웃었다.

 

[모자란 날 좀 도와줘. 내가 m의장님께 직접 부탁드려서 은미씨를 받은 거니까.]

 

[걱정마세요. 도와드릴게요.]

언니가 결혼한 사람이 일반 경찰이라는 말에 코웃음을 쳤지만, 그 남자가 병률의 친구 중 하나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다소 호감으로 바뀌었었다.

병률의 친구라면 그렇게까지 허당같은 사람은 아니리라.

그러다가 언니가 죽었고, 그 사실의 진상을 병률이 알려주었다.

 

누군가가 사촌언니를 죽인 건지 알려주세요.”

 

그날은 비가 많이 왔다. 자신이 그 진상을 알던 그 순간에.

죽어갈 때 아팠을까. 두려웠을까. 아니면 아기의 생명이 꺼지는 것이 안타까웠을까.

 

나론 알 수 없어. 하지만...”

 

병률은 그 예의 나긋나긋한 어조로 사태의 진상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범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남편에게도 책임이 있어. 모든 걸 방조했지. 적어도 자신의 위치는 지킬 수 있으니까 말이야...”

 

은미는 장미꽃잎 하나를 손가락으로 뜯어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결이 좋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그녀의 손가락에 스쳤다가 입바람에 다시 위로 올라갔다.

한숨은 머리카락을 다시 매만지고 사라졌다.

 

난 꼭 복수를 하고 말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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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 2014-01-26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분명히 한글에서 바로 붙여넣기를 했는데, 왜 이런 태그가 붙는지 모르겠군요...
하필이면 주말이라 알라딘 블로그에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우선은 보시는데 좀 불편하시겠지만 좀 참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1화도 요상한 태그가 달리는 바람에 지웠다가 내용첨가해서 다시 올렸거든요.
 

향원동의 교회는 비어 있을 시간이었다. 병률은 향원동 교회에 한동안 다닌 적이 있었다.

국회의원, 지방의원들은 모두 종교가 하나쯤은 있었다. 어떻게든 표심을 붙잡아야 하니 한가지 정도는 있는 게 유리했다. 그래서 그가 모신 상관들은 교회에 자주 나갔다.

그래서 병률도 교회의 분위기에는 익숙했다. 특히 아무도 없는 그곳의 분위기가.

그는 교회에 들어서자마자 아무도 없는 것을 우선 확인했다. 그건 오랫동안의 습관이었다.

병률은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를 보았다.

뭔가 기도같은 걸 해야할 것 같은데...그는 어색하게 손을 마주 모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양손이 마치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것처럼 합쳐졌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손만 모았을 뿐이지. 어느 기도에 가까운 말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간절한 아픔도 간절한 두려움도 간절한 소망도...그 어느 것도 단어로 발하여지지 못했다.

사실 이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는 이때까지 거의 모든 종교 사찰에 갈때마다 이것을 시도해보았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

말이 마음의 표현이라면, 그의 죄책감은 한번도 만들어진 적이 없었다.

그렇게 그가 자신의 마음을 무능하기 그지 없는 양심의 칼로 찌르고 있는 동안 하얀 빛이 교회의 벽을 환히 비췄다. 하얀 빛...

병률은 그 빛에 휩싸여 드디어 입을 열었다.

 

오래간만에 한번쯤은 나가보는 것도 괜찮지요.”

 

이걸 예측하고 있었던 것일까. 길준은 요한 신부, 아니 지윤을 이끌고 향원동의 교회로 향했다.

 

기독교는 천주교에서 떨어져나간 기형 종교일 뿐입니다. 제게 일부러 교회를 보여주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온화한 신부님 치고는 독설이 세시군요.”

 

당신이 그렇게 만든 거 아닙니까. 당신은 종교를 무슨 세일 품목처럼 생각하는 것 같군요,”

 

제가 당신의 아버지의 유언을 실행하고 있다는 건 생각하지 않으시는군요. 더더군다나 당신은 당신의 형님에게 목숨을 뺏길 뻔 했습니다. 당신의 원망은 그 형에게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

 

“......”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한 사람은 이제는 기세가 좀 수그러들긴 했지만 적대적인 감정을 여전히 가지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아직 의혹과 불신으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건 조개가 입을 꼭 다문 것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양쪽 다 강하게 다물리긴 하지만 억지로 벌리면 벌어지는 그런 틈. 그 틈이 그들에게 있었다.,.

 

당신을 죽이려고 한 건 당신 형입니다.”

 

한글자 한글자 독을 심는 것처럼 길준이 말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나를 정신병원에 처 넣었지요.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서.”

 

“...그건 당신의 추측일뿐이고, 주장일 뿐입니다. 전 총을 당신에게 건네긴 했지만 그 총을 드릴때는 쏘라고 드린 건 아닙니다.”

 

“...쏘지 않습니다.”

 

길준이 날선 어투로 대답했다. 그 대답은 얼얼할 정도로 차갑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지윤은 그에게 그 정도의 복수심이 있다는 사실에 조용히 몸을 떨었다.

 

내가 하는 일은.”

 

길준이 천천히 대꾸했다,

 

그 총구를 자신의 머리로 향하도록 조종하는 일이죠. 하지만 상대가 상대다보니 그렇게 될 일은 조금 힘들 것 같군요.”

 

됐습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절 더 이상 묶어놓지 말길 바랍니다. 피정도 이 정도면 지겨...”

 

순간적으로 지윤은 입을 다물었다. 향원동, 그 교회에서 형이 막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형은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겉모습만 보면 꼭 미친 것 같았다.

 

날 더 이상 괴롭히지마.”

 

약간 마비증상 같은 것이 왔는지 그가 주저앉는 것이 보였다.

 

도와줘. 살려줘. 미안해...”

 

그때 지윤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한번도 자신의 발로 서 있는 것에 회의를 느껴본 적 없던 사람이 주섬주섬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양말도 벗은 채 병률이 양손을 모아쥐었다.

 

기도라니...젠장.”

 

씹어뱉듯이 말하면서 길준은 입을 꽉 깨물었다.

 

못 봐주겠군. 갑시다. 신부님. 저런 놈을 이 자리에서 죽여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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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이곳을 맡겨주신다니 영광입니다. 라고 허목사가 말했다.

이준구는 미소를 지으면서 이런 저런 설명을 했다. 향원동에 노숙자가 많으니, 한 때 나도 노숙자였던 신분으로 그들에게 좋은 걸 베풀어주고 싶다. 목사님이 그 일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허찬웅 목사는 열렬하게 호응했다.

 

안심입니다. 다들 호응해주는군요.”

 

길준이 고개를 한번 끄덕, 하고는 아예 고개를 숙여버렸다. 이 일에는 많은 노숙자들의 동의가 있었고, 여러명의 신부와 목사들의 협조가 없었다면 되지 않았을 일이었다,

단 한 사람의 복수를 위해서, 이 모든 것이 필요했다...는 건 비약이 심한 것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평범하기 그지 없는 그들의 도움이 고작 복수를 위해서일것이라곤 그들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그 점에서 길준은 그들에게 부끄러웠다.

 

어떻게 보면...”

 

?”

 

길준의 말에 준구가 의아한 어조로 물었다.

 

이건 위선일지도 모릅니다.”

 

“...복수때문이라도 선행은 선행이죠.”

 

“.....”

 

상대는 토건족입니다. 노숙자를 한때 사회생활 하던 건실한 생활인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죠. 죽일엽도 단지 개발을 위해서 허물려고 하던 그런 자들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죽일엽을 구하고, 지금은 노숙자들을 위해서 유기농 녹차 생산쪽에 관심을 돌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많은 노숙자들이 당신에게 지지를 보내려고 자신들의 명의를 기꺼이 빌려준것이고요.“

 

 

“......”

 

감격이라고는 할 수 업었다. 단말마처럼 울릴 그 울음은. 길준은 고개를 파묻고 보도 위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자가용 기사가 왔을 때 그는 준구를 먼저 태우게 하고 자신은 교회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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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미의 의견이 일리 있다고 생각한 준구는 길준에게 하은미가 소개하는 곳으로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신원발각의 위태로움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말에 그래도 믿어보자는 말이 돌아왔다. 별 수 없이 길준은 하은미가 소개하는 곳으로 따라갔다.

 

별로 유명한 사람은 아니에요.”

 

“.....”

 

하지만 좀 더 깊은 사실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죠.”

 

은미가 손끝으로 대기실 의자를 긁었다.

 

저는 이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게 사촌언니가 죽고 나서였어요.”

 

“......!”

 

길준은 최대한 감정을 숨기려고 노력하면서 듣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친척들이 그 언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몰라요.”

 

길준은 계속 침묵을 지켰다.

문이 열릴 때까지.

그리고 문이 열리고 치료사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동안 하은미는 그를 밀어넣고 문을 얼른 닫아버렸다.

 

...!”

 

이제 천천히 이야기해볼 시간이 늘었네요. 어째서 그동안 절 보는 눈빛이 안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무슨 뜻입니까. 그게.”

 

저는 유능한 비서에요. 하지만 유능한 비서라도 이야기가 진행되기 전에 상사의 문제도 알아야 합니다.”

 

당신 이야기나 하면 될걸. 날 너무 편하게 생각하는군요,”

 

제 이야기를 들으면 이준구님도 알게 되는 게 있으실거에요.”

 

그녀는 천천히 그를 안락의자로 인도했다. 길준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잠시 현실을 잊고 싶어하는 그였다,

 

제 사촌 언니는 제 우상이었어요.”

 

“......”

 

그럴거야.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지. 남자라면 더욱 사랑했을 것이고. 뭘하든 잘 하지만 티를 내지 않는 그녀. 단정한 모습으로 안정감을 주던 그녀.

미모라고 할 순 없지만 타고난 재주로 미녀같이 보이는 재주를 가졌었다. 외모로보면 뼈마디가 굵은 것이 좀 흠이었지만 그건 아주 조그만 흠일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언니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죠.”

 

“......”

 

말할수 없는 것이 괴로웠다. 같은 고통 분모를 갖고 있는데도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괴로웠다.

 

결혼은 마흔이 넘어서 한다던 언니가 서른에 결혼을 했어요. 그리고...”

 

그리고?”

 

그 얼마 되지 않아서 어떤 남자가 치근대기 시작했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입니까.”

 

환영을 보지 않기 위해서 수건을 뒤집어 썼는데도 눈을 감아도 아내의 환영이 보였다.

 

“3선의원이었다는 남자가 상관에게 모실 여자가 필요하다고 언니에게 명함을 주고 갔더라고요. 언니는 털털한 성격이어서 그런 건 당하고 곧 잊어버렸지만. 그 사람들은 그걸 잊지 않고 있었어요.”

 

가시가 귀에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길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닐 거야.

 

하지만 취향이 달라져 있었죠. 모시기로 했던 상관이 바뀐거에요. 그 사람은 자신이 직접 여자를 만나는 것보다 민간인 포르노 비디오를 찍은 걸 보는 걸 좋아했어요.”

 

“......”

 

길준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제 진상이 서서히 밝혀지려 하고 있었다.

그동안 찾으려고 했었지만 찾을 수 없었던 것들이.

 

사촌언니는 딱 제게 그만큼만 언급했어요. 하긴 그 남편이 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죠. 그 사람은 아마추어 소설가였고, 인생의 낭만을 사랑했어요. 언니의 현실에 대해서 도피하려고만한 비겁자이기도 했구요. 그리고 언닌...”

 

하은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생각이 나지 않았다. 길준의 눈에서 이슬같은 눈물이 맺혔다.

 

살인사건. 아니 그냥 살인사건이 아니라 부패된 공무원에게 살해된 거였어요. 부검결과는 볼 필요도 없었던 거죠.”

 

눈을 응시할 수 없었다. 하은미는 그동안 유학 가 있었는데도 그 모든 걸 파악한 것이다.

그가 노인의 재산을 받아 지금까지 추적해온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은미씨.”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길준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그 남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정신병원에 들어간 걸로 알고 있어요...그 일을 저지른 자들이 그 남자도 같이 처리해버린거죠.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말을 더 하기 전에 치료사가 다시 방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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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장소가 가장 좋은 거 같군요,”

 

신부가 흡족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까지 보호원이 생기기 전이고, 주변은 그저 생기없는 소나무로만 가득했는데도 말이다.

이준구도 길준을 향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만 해도 성공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지윤, 즉 요한은 별 표정이 없었다. 지루해하는 게 역력했다.

 

근데 신부님, 저는 언제쯤 돌아갈 수 ...”

 

요한의 말에 신부는 고개를 저었다.

 

한동안 피정하셔야겠소.”

 

피정을 얼마나 더 해야되는 겁니까. 전 이미 오랫동안 쉬었습니다. 이제 일을 해도...”

 

상황이 안 좋을때는 피해있는 것도 좋은 법이지.”

 

나이 지긋한 신부는 지윤을 향해서 아이를 타이르듯 달랬다.

 

지금 성하께서 바뀌신 것도 세상과 종교가 점점 안 좋은 방향으로 일치되어가기 때문 아니오? 요즘 나도 그런 기미를 느끼고 있다오. 거기다가 형제여. 당신도 안 좋은 일을 겪었으니...그 일이 다시 반복되기 전에 안전한 곳에 있는 것이 좋지 않겠소?“

 

“......”

 

만약 상황이 허락한다면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이준구가 빙긋 웃었다. 신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눈치챈 듯 했다.

 

더 좋은 방법?”

 

지윤이 약간은 감은 잡은 듯 했지만...

 

그렇소. 가장 좋은 방법. 형제가 이곳을 관리하면 되는거요.”

 

“......”

 

지윤의 꿈은 그것이었다.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살아가는 것. 그러기 위해서 가톨릭 신부의 길에 들어선 것이었다. 하지만 신부단 내에서도 알력이 있었고, 정치적인 술수를 부리는 신부들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정말 뜻밖이었다. 평소라면 선물이라고 받아들였을 것이 사태의 원인을 알기 때문에 더욱 씁쓸했다.

 

저는...”

 

그날 약간 젖은 옷을 입고 원대한 복수라도 하겠다는 양, 살해에 대한 아무증거도 없이 성당에 들어와서 성경 안에 들어있던 총을 받아들고 가던 남자.

몽테크리스토는 3년이 넘는 기간을 갇혀 있었다지만, 이 남자는 정당한 이유에 의해서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지윤이었다, 더더군다나 자신이 형에게 살해당할 뻔 했을 때 구했던 것도 길준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이것이 가장된 위선이라 생각했다,

 

저는 하지 않을 겁니다. 가서 게임이나 마저 하겠습니다. 디아블로는 정말 할 맛이 나는 게임이죠.”

 

지윤은 냉랭하게 대꾸하고는 자신의 차를 몰고 그들의 거주지로 돌아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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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째서 왜.”

 

길준은 조용하게 자신의 옆을 지키고 있는 아내를 향해서 물었다.

 

당신은...”

 

길준은 알았다. 자신은 아내를 결코 버리지 못하리라. 그리고 아내도 자신을 버리지 못하리라.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그 감정은 약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옆에 서 있는 것이 점점 더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미 죽은 사람이다. 환영조차도 죽은 사람에 더 가까웠다. 차라리 환청과 환시가 동시에 왔더라면 반미친사람의 상태라도 좋았다. 그녀를 더 사랑하게 되었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말도 하지 않고 다만 환영으로만 존재했다. 그림자. 자신만을 바라보는 단 하나의 어둠.

그 점은 아내를 그대로 빼닮았다는 하은미를 보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자신이 하은미를 사랑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생생하게 살아움직이고 미소짓고 하는 그녀를 보면서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어째서 날 이렇게 괴롭히는 거야,”

 

병률이 아내를 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일 것이다.

그는 이제 그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빌어먹을 노인이 심어준 [어딘지 모르지만 수상한 구석이 있는 아내의 환영]은 거짓이었다고. 그렇게 알리고 싶었다.

그는 방에 있는 벨을 울렸다.

 

[특정 사람의 환영이 보이는 것은 정신병적인 것으로 분류될 수 있기도 합니다만.]

 

의사의 소견은 간단했다.

당신은 정신병자요.

 

길준은 의사에게 약을 처방받는 것은 한사코 거절했는데, 그건 병률로부터 뒤를 밟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신병이라기보다는 아내분에 대한 감정이 강렬해서 지속되는 환영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사랑도 정신병적이라고 하지만 말이죠. 그냥 두고 보시다보면 환영이 사라질 때도 있을 겁니다.]

 

그것은 요한에게 부탁해서 들은 카톨릭 병원의 의사가 왕진와서 한 말이었다.

하은미는...

 

“MRI를 찍어보는 건 어떨까요.”

 

“......”

 

길준은 안락의자에 앉아서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은미씨는 자기 일에만 신경쓰면 좋겠군요.”

 

“...제가 할 일이 그거 아닌가요? 의사들이 왔다갔다하는 걸 보니 정신적으로 피로도가 많이..”

 

아마 당신은 유능한 비서였나보군요. 하지만 날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길준은 고개를 저으면서 그녀에게 대꾸했다.

 

아내를 무척 사랑하셨나봐요.”

 

“.....당신이 그걸 어떻게...”

 

말씀하신대로 유능한 비서니까요.”

 

은미가 조용하게 말했다.

 

후유증이 커질수록 그 근본을 캐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당신께 심리치료사를 권해드리고 싶어요. 이건 정신병이 아니라 마음 한구석의 구멍에서 시작되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길준은 그제서야 감았던 눈을 뜨고 안락의자에서 반쯤 몸을 일으켜 은미를 바라보았다.

생생한 갈색눈이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당신 요즘 좀 이상하다.”

 

윤희가 드레스 셔츠를 갈아입는 남편에게 말했다. 그말에 병률은 넥타이를 매려다 말고 아내쪽을 보았다.

 

...?”

 

요즘 얼굴이 굉장히 안 되보여. 눈도 좀 아픈건지 가끔 찌푸리고.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경찰 그만두면서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순간적으로 병률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

 

여보,”

 

윤희가 가볍게 손으로 그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제 뭐 잘못 먹었어? 아니면...”

 

아니야. 이제 괜찮아.”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병원에 들렀다가 가는게 좋겠어. 나랑 같이 병원...”

 

아니야.”

 

병률은 고개를 저었다.

 

안 가도 될 것 같아. 좀 아는 보건소에 들리지 뭐...신경 안 써도 돼.”

 

그녀를 버린 후 감정은 점점 더 칼처럼 예리하게 그의 온몸을 절단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가슴이 저리고, 심장이 더 이상 뛰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의 감정이 그에게 그 모든 것을 시인하라 외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여보.”

 

?”

 

그의 말에 윤희가 천천히 말했다.

 

당신이 정말 나쁜 짓을 했다면 내가 세상사람들을 대신해서 그 죄를 대신 져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냥 매우 아픈 거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어디에도 없어. 그러니까 절대로 아프면 안돼...”

 

걱정마. 죄를 짓지도 않았고, 아프지도 않아...”

 

병률은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자신을 뒤따라오는 환영을 느끼며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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