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투성이가 되어 있는 신사에게

어떻게 함께 차를 타자고 권유할 수 있는가.

멋진 저녁, 멋진 아침을 같이 맞이하자며

차에 태웠지만

차형이 마음에 안드는 건지,

승차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옷 핑계를 대면서

휑하니 내빼버린다.

 

 

저녁은 함께 했지만

그 고약한 차에서 이런 옷으로

조찬을 함께 할 생각은 없다면서

만찬도 아주 조금 먹었던 그는

아마 이미 질려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어쩌면 그가 지불해야 할

조찬이 그 비용에 비해서 초라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집사로서 부족한 점이 있는지

아니면 본래 그런 성격인건지는 알 수 없다.

나도 만찬 비용을 생각하며 그가 떨어낸 흙을 보며

약간의 배신감을 느낀다.

원래 그랬을테지만.

 

 

 

고향에 도착한 후 다시 만난 그는

여전히 내 뒤를 따라다닌다.

만찬도 마지막엔 한숟가락도 들지 않던 그가

집으로 돌아가니 내 생각이 좀 나는 모양이다.

여전히 태비 정장에 흙투성이인채로

그는 날 부른다.

언제 멋진 만찬, 조찬 없어?

그것이 고양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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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우겠다고 데려온 건 좋았는데.

도망쳐버리더군요. 저녁만 먹고.

실화입니다.(ㅡㅡ)

매정한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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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을 다 읽었습니다.

악명높은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문이 무색하게 시종일관 따뜻하고 예쁜 작품이었던 것 같네요.

같다. 라고 한 말은 그 평안함과 화려함 속에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는 일본인의 무시함이 느껴져서요.

중일 전쟁에 대해서도 우리땅에서 안 벌어지니 그만.이라니.

전쟁 주축국로서 미안함이라던가, 걱정같은 건 하나도 없어서 읽으면서 반감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입장에서 쓴 외국 이야기도 얼굴 근질거리긴 마찬가지긴 하지만요.

조정래 선생님의 정글만리를 읽고 있는 중인데, 역시 한국편만 드시니까 오글거리는 건 어쩔 수 없네요...민족감정이란것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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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어라는 물고기가 있다. 새는 아니지만 구름속에서 산다. 그래서 때때로 강태공들이 용을 낚았다고 자랑할 때 이 운어를 잡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처음 강태공들이 용을 잡았다고 했을 때의 운어는 사람을 잘 몰랐고, 사냥하고 사냥하는 법도 몰랐기에 온순했지만 후대로 가면서 난폭해지고 사람의 피맛에 길들여졌다. 그래서 운어와 용의 구분이 모호해졌고, 운어를 잡는 사람들은 용잡이라고 불렀다.

그 용잡이들의 대부분이 잡은 운어를 길들여 하늘을 날아올랐다고 한다.

그 용잡이들의 대부분이 황제국이나 제후국의 왕후장상이 되었다.

그리고, 운어와 구분이 모호했던 용은...그 진짜 용은 더 깊은 하늘로 올라가 사람과 벗하지 않게 되었다. 이는 진짜 용은 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패관들을 가리켜 용잡이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비밀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캐고,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자신이 죽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용이 아니라 운어이다. 진짜 용의 이야기는 패관들의 반대편에 있다.

용은 긴 꿈을 꾼다. 천년이나 더 긴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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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안나 카레니나를 완독했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서 안나보다는 알렉세이 카레닌에게 더 감정이입을 했다.

카레닌을 보고 석영중 교수는 위선자. 라고 말했지만, 카레닌에게는 일종의 연약한 껍질이 있었던 듯 하다. 그게 위선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카레닌은 처음부터 끝까지 희생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안나는 ...글쎄. 순수한 사람이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좋은 사람같지는 않다.

열정적이긴 하지만, 진짜 순수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면 브론스키의 접근에 그렇게 넘어가진 않았을 텐데. 미로같은 여자다...

마침 안나 카레니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을 읽고 있는 요즘,

세설에 나오는 [우론스키]번역에 대해서는 조금 불만.

가짜 브론스키라는 애칭으로 우론스키라고 불렀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런 애칭이 아니라 아무리봐도 가타가나를 엉뚱하게 읽은 것 같단 말이다...

러시아어에는 문외한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지만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인명을 좀 확인하고 번역했었다면 좋았을텐데...

세설은 디자인도 예쁘고, 출판사도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라서 좀 아쉬웠다.

세설은 아직 읽고 있는 중이지만 참 앙증맞고 귀여운 책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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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했습니다.”

 

병률은 m의장에게 그렇게 보고했다.

 

누군가가 샀다는데, 그 누구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자넨 실패했다는 말을 매우 쉽게 하는군. 안되면 되게 하면 되지.”

 

죽일엽을 없애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어서 그런지, 병률은 입맛이 영 없었다.

윤희도 죽일엽에 다녀온 후로 얼굴이 별로 안 좋았다.

 

어차피 그런 조그만 상점따위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이...”

 

자넨 그래서 틀린 거야.”

 

m의장이 냉랭하게 말했다.

 

정이 끼어들고, 조그만 게 끼어들고 하다보면 디테일이 부족해지는거라고. 디테일이.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줄은 아나? 그 자리는 말이야. 그 물건들이 있으면 안되는 자리라고...그리고 그 동네 무지렁이들한테서 얻는 게 얼만줄은 아나?”

 

“.....”

 

병률은 안다고 대답하려고 했다. 잘 알고 있었다. 정의원의 말로 시작했던 그 쇼도, 그 비정함 때문에 끝났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된 탓인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예의 사모님과 대화를 몇 번 나눴지만 평범한데다가 속물적이기까지 해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게 사모님이면 아마 자신의 부인인 윤희는 귀족일 것이다.

 

저 근데 의장님.”

 

왜 그러나.”

 

한군데 미심쩍은 것이 있습니다...”

 

뭔가.”

 

이준구라고 하는 남자에 대한 건데...아마 그 사건을 막은 사람일 겁니다...혹시 의장님 권한으로 제가 조사 좀 해봐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하게. 안된 건 안된거니 어쩔 수 없지.”

 

그럼 의장님 명의로 이곳에서 조그만 행사를 열어도 괜찮겠지요?”

 

“...상관은 없지만 선거법에 걸리지 않게 잘 하게. 실수하지 말고.”

아닙니다. 실수는 없을 겁니다. 그 독지가가 누군지, 또 의장님 가시는 길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 가면을 벗겨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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