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멀리로 퍼지고

현실은 말라붙어 있다.

태어나 반복만을 계속하는 우리는

과연 처먹는 동물에 불과한가.

흐린 하늘아래

울부짖는 자는

아직도 내 앞에 길이 있다.

외치는데.

 

 

아직도 머나 먼 남은 길.

연기처럼 사라져가는 그 꿈의 마지막을

붙들고 우는 자도 있다.

 

 

길이 있노라고

외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적어도 볼 수 있기에.

 

 

보지 못하는 눈으로 더듬 더듬 나아가자

아직 길이 있는지 모르나

외치는 자는 못되더라도

걸어가는 자는 될 수 있으리.

 

 

이 길이 그대에게 힘든가.

누가 묻는다면

대답은 유보하리.

 

 

하지만 가야할 길이라는 것은.

세상 모든 이가 가야할 길이라는 것은

이미 정해져있으니.

울면서, 혹은 외치면서, 눈을 감고

걸어가야 하리라.

 

처먹는 동물이 되어도 좋다.

갈 수 만 있다면

이 인생의 끝까지 걸어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내 인생은 결정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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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쓰면서 들은 노래는 뮤지컬 영웅 류정한 버전의 곡이었습니다.

정성화 버전으로도 들었죠...

그런데 류정한 버전으로 들으니 확 깨이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 음악의 영향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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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그림은...”

 

내 안목에 여주인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손을 흔들어보였다.

 

옛날 이곳을 다스리던 여자라는 사람의 그림이랍니다.”

 

옛날 이곳을 다스렸다면 화미인?”

 

털보의 말에 여주인은 비웃었다.

 

이 땅을 다스리던 사람이 그 여자 하나뿐인줄 아십니까?”

 

하긴 그 이전에도 이 땅은 존재했을 터이니.”

 

나는 그 그림에서 화미인을 느끼진 못했다. 하지만 귀한 그림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다만 인정을 받지 못할 뿐, 그 그림은 명화였다.

 

그 고귀하신 분의 이름을 자네는 아는가?”

 

남주인에게 묻자 남주인이 턱을 덜덜 떨면서 대답했다.

 

“...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지요. 붉은 까마귀라고...”

 

붉은 까마귀라? 형님은 아십니까?”

 

동생들의 물음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붉은 까마귀...붉은 까마귀...

 

제가 한가지 여쭤봐도 좋을까요?”

 

여주인이 종이 하나를 꺼내서 내게 건네주었다.

 

어르신은 단순한 상인같아 보이지 않으시니 건네드리는 것입니다. 아니오 정체를 숨기시려 해도 소용없습니다.”

 

아니...나는...”

 

이것은 화미인을 그린 마지막 그림이라고 전해져옵니다.”

 

여주인이 조용히 말했다.

 

감정가가 정해지지 않아, 시중에 내놓을 수 없었답니다.”

 

“.....”

 

복이 굴러들어왔다고 생각했지만 뒤이어 여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감정가만 정해진다면 이걸 궁에 올려 일평생 호사스럽게 살려 한답니다.”

“...내가 가짜라고 한다면?”

 

어르신은 그럴 분이 아니실거라 믿습니다. 이 그림은 진품입니다.”

나는 그림을 펼쳤다.방금 그림을 그린 듯 상쾌한 묵향이 번져왔다.

화미인을 그린 그 그림은 방금 붉은 까마귀의 그림을 보다 보면 생동감은 더 있었지만 한 지역을 다스리던 사람으로서의 품위는 없었다. 확실히 아름답기는 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형님, 이거 진짭니까?”

 

형님, 답 좀 해주시지요. 답답합니다.”

 

나는 번개를 맞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얼굴은 분명히...

여주인의 얼굴이...

 

이 그림은 진품이다.”

 

나는 여주인에게 그림을 내밀었다.

 

확실히 궁중에 내놓으면 비싼 값을 받을 것이다.”

 

“.....”

 

허나 그 이전에.”

 

이전에?”

 

점점 이전에 봤던 그 여인의 얼굴로 여주인의 얼굴이 변해갔다.

 

[도적질을 하다 붙잡혔으니 어쪄겠느냐. 내 너를 물에 빠뜨려 죽일 수도 있느니라. 앞으로 도적질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면 널 좋은 곳에 보내주마. 부모를 잘 만났더라면 너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을...]

 

궁에서 이것을 진품으로 여기느냐 여기지 않느냐가 관건이겠지. 나라면 지금 내게 은 800냥을 주고 넘기겠다.”

 

과연...약속을 지키셨군요.”

 

그 말과 동시에 동생들의 얼굴이 땅바닥에 처박혔다. 매운탕도, 두부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우리는 입에 모래를 가득 물고 바닥으로 추락해갔다.

 

약속을 잘 지켰구나. 소년이여. 허나 이제껏 그 자리에 앉으면서 해온 자잘한 도둑질은 봐줄 수 없느니라. 마지막 시험은 잘 지켰으니 이 곳에 버려두고 가는 것으로 벌을 정해두겠다.

널 구해줄 사람이 있을때까지 너는 이곳에 있어야 한다. 독주를 먹인 패설사관 대리가 널 구해줄 것이니라.“

 

안돼...난 입에서 모래를 토하면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뻘은 여전히 내 발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안된다...안돼...

 

저 먼 시선 둔 곳에 그 여주인이 남주인이 끌고 온 말에 올라타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저 남주인은 바로 얼마 전에 영혼을 잃은 무사라고 알려진 자가 아니었던가. 이름만 듣고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어서 알지 못했다.

이런...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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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실 필요까지야...”

 

방금도 잔에 비싼 양주, 그가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양주를 찰찰 넘치게 따른 것이었다.

서장은 술을 잘 못했다. 특히나 양주는 부담스러워서 마시지도 못했다.

경찰서장은 새로 온 유지라는 사람이 부담스러웠다. 시골에 있는 아버지를 위해서 큰 집을 짓는다는 이 남자는 이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아버지를 모시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고, 실제로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도 깎듯하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동생이라는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온화한 얼굴에 동네 노인들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그가 얼마나 순결한 영혼의 소유자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곳은 제 아내의 고향이기도 하니까요...”

 

“아, 사모님의...사모님은 안 보이시던데...”

 

“얼마전 사고로...”

 

“아, 안되어...”

 

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새로온 남자는 또 다른 유지들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었다.

귀족적인 집을 지닌 사람답지 않게 서투른 응대법이었다.

아마도 벼락부자일거라고 서장은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동생의 태도를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하여간 새로 들어오는 인간들치고 도시에서 사고 안 치고 오는 인간 없다면서, 혹시 그런 자들인지 모르니 조금 신경써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조금전에는 실례하셨습니다.”

 

서장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동생역을 하던 지윤이 길준의 손을 잠아끌면서 말했다.

 

“왜요.”

 

“말은 끝까지 들으셨어야죠. 불쾌해하는 기색이...”

 

“별 영양가도 없는 소리. 들으면 들을수록 불쾌합니다. 내가 여기에 온 건 그런 빈 말을 들으려고 온 거 아니에요. 이곳에 온 것도 그냥 칩거하려고 집을 짓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복수해야 할 상대의 본거지를 봐야지. 어째서 돌아가신 아내분의 고향을 찾는 겁니까.”

 

“한번도 와 본 적이 없으니까요...”

 

“.....”

 

“아내가 계속 나타나는 건 이유가 있을 겁니다. 특히 내가 모르는 아내의 무언가가 있어요.”

 

그의 굳은 입매를 보면서 지윤은 입을 다물었다.

 

“복수는...좀 더 알아보고 할 겁니다...단계적으로 천천히 말라죽게 만들어 줄 겁니다. 그 전에 잠시...”

 

눈에 뭔가가 들어간 듯, 길준은 눈가를 살짝 훔쳤다.

 

“눈물도 없이 인정사정 없이...그렇게.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처럼. 그렇게 만들어 줄 겁니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지윤이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당신은...나하고 약속했습니다.”

 

“...약속했었지요.”

 

길준이 조용히 읊조렸다.

 

“그 사람은 내 형입니다.”

 

“그 사람을 괴롭히라고 한 사람은 당신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내게는 충분한 권리가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쳇바퀴 돌리는 이야긴 그만하죠. 적어도 당신을 살려준 내게는 당연한 권리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자신을 죽이려고 한 형을 옹호하는 천사표는 없습니다. 왜냐! 살아남지 못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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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미인이라고 착각할 뻔도 할만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더욱 미인이었다.

 

 

“여기서 무얼 하시오?”

 

 

소금 덩어리로 폐허가 된 이 땅에 마치 땅에서 솟아난 듯한 그 미모가 부자연스러웠다.

 

 

“무얼 하다니요? 가끔 이렇게 손님들이 오시니 객주를 운영하고 있답니다. 수리!”

 

 

생각해보니 그럴만도 했다. 지금 황제국의 패설사관과 공동으로 화미인 유적지를 개발(명목은 그랬다.)하고자했으니 미리 귀띔을 받은 자들이 객주를 벌이지 말란 법도 없다.

 

 

“수리?”

 

 

어째 귀에 익은 이름이다 싶었지만 생각이 잘 안났다.

 

 

“제 남편이랍니다.”

 

 

“......”

 

 

수리라는 자가 휘적휘적 다가왔다. 눈에는 핏발이 섰고, 입가에는 마른침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는 대충 인사를 하고는 우리들의 말고삐를 잡았다.

 

 

“저쪽에 마굿간이 있으니 말을 쉬게 하고, 따라오셔서 두부라도 따끈하게 한점 잡수시지요.”

 

 

“헌데..."

 

 

털보 아우(이름이 털보이다.)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이 유적지에 여러번 와봤지만 객주가 생긴 건 한번도 못 봤는데...그 사이에 언제 온게요?”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면 길이 생기는 법이죠. 소금 구더기에선들 장사꾼이 그냥 지나갈리 있겠습니까요?”

 

 

수리라는 자가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맞대꾸를 했다.

 

 

“그거야 맞는 말이겠소만은...”

 

 

나는 적파마를 그의 손에 넘겨주고는 말에서 내렸다.

 

 

“그럼 따끈한 술에 두부 한점 먹어볼까...”

 

 

“매운탕도 하나 들이라 할까요?”

 

 

객주의 여주인의 말에 동생들이 환호했다.

 

 

“하나가 뭐요. 여러 개!”

 

 

“말씀대로 합지요.”

 

 

여인의 눈매가 여우를 닮은 것이 마치 옛 이야기에 나오는 요괴 생각이 났지만...

그건 패설사관의 직업병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여주인의 말과 동시에 객주가 생겨난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게 다 고된 여행에서 시작된 망상이라고 생각했다.

 

 

“따끈한 술부터 한잔 드시고...”

 

 

여주인이 직접 술을 한 사람 한사람에게 따라주었다.

남주인은 직접 잡아온 것이라면서 매운탕을 금새 끓여 식탁 하나하나에 놓아주었다.

맛은 일품이고, 술은 입에 달았다.

그리고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그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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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숱이 이마선위로 올라간 이 남자는 오른 손목에 초록색 가를 가진 끈과 은색의 시계를 차고 있다. 목에도 남색 스카프를 매고 있는 것이 특이하게 느껴진다.

담배를 피는 손에는 잠시 정적이 감도는데 담배를 피는 것이 아니라 살짝 들고 있는 느낌이다. 손에 얼마전에 바로 산듯한 종이 상자를 들었는데, 담배 상자같기도 하다.

카메라를 의삭하지 않고 걸어가는 그 무심함이 더욱 그를 두드러지게 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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