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갑자기 예전의 친구로부터 비둘기 서신을 받았다. 옛적에 짓궂은 장난질을 치던 친구인데 세월이 세월이니만큼 다시 만났을 때는 수염을 길게 기른 품이 노인처럼 보였다.

가족에 대해서 물어보니 벌써 손자를 다섯이나 뒀다고 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어떤가, 근 20년만에 다시 보니 많이 늙었지?”

  

손자를 물어본다고 은근 타박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열여덟살같은 기분이네.”

  

“.....”

  

“자네도 지금은 궁중관리지만, 예전에는 나랑 같이 장난도 많이 치지 않았나.”

  

“그랬...었지.”

  

가지각색의 장난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질 일이었다.

  

“내가 왜 대로 왔는지 아는가?”

  

“.....”

  

“나는 몇 년뒤면 환갑이네. 이제 완전히 노인취급이야.”

  

“.....”

  

그러고보니 그와 나는 거의 띠동갑이었다.

  

“난 아직 노인이 아닐세.”

  

“아니, 자네가 그런 말을 한다고해서 달라질...”

  

“그러니까 자네 도움이 필요하네.”

  

“?”

  

“...기루에 침입해서 기생을 하나 보쌈하자고.”

 

“자네, 아내 얼굴을 어찌 보려고.”

  

“그 사람이 설마 대까지 오겠나? 더더군다나 자네와 나의 실력이라면 들키지도 않을 걸세. 자네도 옛날에 기루에 뛰어들어서 무기, 예기를 보쌈하지 않았나. 불행하게도 자네가 나같은 풍류남이 아니어서 그저 장난치는 걸로 끝났으니 그게 애석하이.”

  

...철이 덜 들어도 한참 덜 든 놈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도망치려고 하자 이 친구는 내 소매를 붙들고 늘어졌다.

  

“내가 이제 몸이 좀 느려져서 그러니 자네도 같이 가세.”

  

“.....”

  

“같이 가세나.”

  

“나는 관리일세. 더더군다나 지금은 근신 중이야.”

  

그때 육황자의 비둘기가 갑자기 탁자에 뛰어들었다. 온통 하얀 빛깔인 비둘기.

그건 육황자의 상징같은 것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는 그날 서고에서 경전을 필사하고 있었다. 날씨는 바야흐로 서서히 서늘해지고 있었다. 해배되고 나서 근신만 벌써 3개월. 유배시 죄명은 함께 대동한 무관을 의식불명의 상태로 데려온 것과 무단으로 지방관을 치죄한 것이었다.

지금도 그 결정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되지만, 사실 황명과는 다르게 움직인 것도 있어서 마음이 언짢기도 했다. 더더군다나 그 요물에게 홀린 것인지, 같은 죄인데도 그 요물편이 더 나아보이지 않는가. 적어도 백성을 괴롭히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덕분에 매일매일 경전을 베끼면서 마음수행을 하는 것이었다. 옛 강호에 있을 때처럼.

 

오늘 베끼는 것은 무언가?”

 

경전을 베끼는 것은 하나의 정신수양이었다. 100장 정도 베끼고 나면 등에 살짝 땀이 배인다. 그리고 나서 밖을 쳐다보면 시원한 바람이 불고, 살랑살랑 창에 단 천이 흔들리면서 예전의 풍경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 황자님.”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면 계속 그렇게 창을 응시하고 있을 터였다.

수린과 지금은 황태자가 된 나의 어린 아이 제 3황자를...

 

그대가 지금 필사하고 있는 것이 일어경이었지.”

 

. 그러합니다.”

 

일어경, 한단어만으로 세상을 그려낸다는 격언집. 지금의 내 상황에 딱 맞는 것이었다.

 

그래, 격언이 머리에 들어오기는 하는가? 요즘 같은 어지러운 세상에는 그대같은 이가 살아남기가 힘들지.”

 

“.....”

 

지금 내 앞에 앉은 사람은 제 6황자. 지금의 황태자의 친동생이자 가장 위험한 상대.

 

황태자가 그대편을 들어주지 않아서 이런 꼴이 된 거 아닌가. 강호에서 막 도착했던 자네가 아니었으면 형님이 살아남기도 힘들었을텐데 말이야.‘

 

그때는 황자님이 태어나시기도 전이었습니다.”

 

, 그랬나?”

 

그래, 그리운 광경이었다. 강호에서 막 궁으로 입궁했을 때, 난 과거를 지우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하지만 패설관으로 막 임명받고 들어갔을 때는 강호의 버릇을 버리지 못해서 태형을 자주 당하기도 했다. 내시들의 은근한 압박과 비웃음을 이겨내기에는 내가 젊은 탓도 있었고, 궁중법도를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해 분노한 탓도 있었다.

이미 수린이 죽었을 때 마음도 죽었다고 생각했건만.

강호의 법도에 얽매이지 않는 패설관이 되면 좀 더 자유로이 노닐 수 있을 거라 생각한 탓도 있었다. 하지만 궁중은 강호보다 더 엄격했고 더 냉혹했다.

 

유주! 게 섰거라!”

 

그때 3황자는 황자도 아니었다. 황자의 어미는 궁중의 시녀로, 어쩌다 황비에게 싫증을 낸 황제폐하께 잠시 눈에 들어 제 3황자를 배었다. 하지만 어미의 신분이 천한데다가, 그당시 황비님의 구박도 심해서 제 3황자는 황자취급도 받지 못했다. 매일매일이 내시들의 구박으로 인해서 제 3황자에게는 괴로운 나날이었다.

그날도 나는 내 위의 패설서기의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다가 궁중의 어른들로부터 심하게 매를 맞은 뒤 서고에 갇혀 있었다. 며칠간 근신하라는 말과 함께.

 

거기 서라니까!”

 

지금은 황태자 전하로 불리우시지만 그때는 성도 없이 유주라고만 불리고 있었다.

상궁 몇몇이 황자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귀여워하긴 했지만(그건 황자의 어미의 신분 탓도 있었을 것이다.)그건 신분상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서고에 갇혀서 밖을 쳐다보고 있노라니, 어디서 수린을 많이 닮은 듯한 어린 아이가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도 궁중생활을 한 4개월 하다보니 눈치가 많이 늘어 그 어린아이가 바로 소문의 그 제3 황자가 될 아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모른 척 하고 지나가려고 했었다. 그 내시가 손에 칼을 쥐고 있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그는 내시 중에서 가장 권력이 센 내시의 양자였다.

 

게 서서 내 칼을 받거라. 너같이 천한 놈이 거둬주는 것만 해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터! 어디 감히 꼬박꼬박 말대꾸냐! 근본도 없는 것이!”

 

아이는 이미 많이 맞아서 피멍이 들어 있었다. 연약한 하얀 팔에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있고 옷도 많이 찢어져 있었다.

 

내시주제에! 난 근본이 없지 않아! 아바마마께서 언제까지 네놈들 하는 대로 내버려두실 것 같아?”

 

그래도 자신의 근본을 알고 있는 자의 행동을 보이고 있는 그 어린아이가 얼마나 안쓰럽던지.

하지만 저 큰 권력앞에서 함부로 나설 수 가 없었다. 이미 나는 수많은 압박을 받고 있지 않은가. 겨우 강호에서 몸을 피해 온 것인데, 여기서 더 나갈 수는 없었다.

물론 실제 저 내시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면 황자의 저 발언도 궁중의 법도를 벗어나는 것을 떠나서 저 정도 체벌을 당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누가 네놈의 아바마마냐! 이놈! 황비마마께서 이미 결단을 내리셨거늘!”

 

그가 칼을 휘둘렀을 때 내 몸도 창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 생각만 한 것이었다.

피가 튀었고, 나는 그때 지금의 황비마마께서 아이를 감싸안는 것을 보았다.

그래, 진수린을 꼭 빼닮은 젊은 어미.

황비 마마셨다. 그래. 지금의 서황비 마마.

 

그만두셔요! 아두 어르신! 제가 황비께 사죄드리고 차라리 자진하겠어요. 전하의 정을 받는 것이 그렇게 나쁜 짓인지 몰랐어요. 제가 유주는 꼭 제 친가로 보내서 키우겠으니, 제발 제발 그만하셔요.”

 

칼에 팔이 찢긴 그 어미를 보는 순간, 진짜로 내가 창밖으로 뛰어내릴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하지만 아두는 그 손을 거두지 않고 어미의 목을 졸랐다. 그리고 그녀의 숨이 끊어질 정도에 이르렀을 때 유주가 아두의 손을 깨물었다.

 

이놈이!”

 

그때도 선택의 여지는 있었다. 그때 물러섰다면...

아두는 정확하게 유주의 목을 향해서 칼을 꽂았다.

 

!”

 

그때 소리를 지른 것은 유주가 아니라 아두였다. 나는 정확히 아두의 손에 내 몸에 숨기고 있던 침을 날려 정화하게 맥이 통하는 부분을 막은 것이었다.

 

네놈! 새로 들어온 패설관! 이 겁대가리를 상실한 것들이!”

 

아두는 길길이 날뛰었지만 난 차라리 냉정해지기로 했다.

 

아두 어르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의관을 찾아가셔야 할겝니다.”

 

?”

 

정확히 1시간 후면 온몸이 마비될 것이고, 정확히 2시간 후에 어르신이 돌아가실겝니다. 그러니 얼른 의관에게 뽑아달라고 하시죠. 안 그러면 궁에서 아두 어르신의 장례를 치르게 될 겝니다.”

 

, 지금 누굴 적으로 돌렸는지 아느냐? 황비 마마님을!”

 

누굴 적으로 돌리다니, 황비가 뭘 어쨌단 말이야. 아두! 네놈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 대낮부터 술에 취해서는. 아룡. 네 양자의 행동에 대해서 할 말이 있느냐?”

황제폐하셨다. 서고쪽으로는 웬만해서는 지나다니시지도 않는 분이, 우리를 본 것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이냐!”

 

황제폐하께서 대로하셨다.

 

폐하.”

 

어미가 황제폐하의 발을 붙들고 울었다.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감히 천한 신분으로 씨도둑질을 한 것은 잘못된 일이오나, 이 아이가 이렇게 죽어서는...”

 

폐하께서는 더 이상 듣지 않으셨다. 폐하는 그 어미의 손을 발에서 치우시고는 그대로 검을 들어 아두의 몸을 치셨다. 검으로 베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에 바로 멍이 들어, 아룡은 허겁지겁 폐하가 더 검을 드시기 전에 정신이 덜 든 아두를 데리고 자리를 황황히 벗어났다.

 

내 아들이라고?”

 

폐하께서는 냉냉한 눈길을 황자께 향했다.

 

내 아들이라...”

 

아바마마. 유주라고 합니다.”

 

궁중예법을 모르느냐? 내가 네게 말을 걸기 전에는 네가 말해서는 안된다.”

 

그리고는 황제폐하께서는 몸을 돌리려 하셨다. 그러다가 날 보고는 한마디만 하셨다.

 

배짱이 좋은 패설관이구나.”

 

-----------------------------------------------------------------------------

하여간 자네 덕분에 어머님이나 나나, 전하나 살아남은 셈이지.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

 

“...전하께서는 항상 은유로 말씀을 하실 때가 많아서 진의를 파악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나는 황자의 말을 한귀로 들으면서 일어경을 다시 필사하기 시작했다.

 

그래. 이번에는 얼마만큼 근신할 것 같은가? 이번에는 형님도 자네를 풀어주기가 쉽지 않을 것이야.”

 

서황비 마마가 동황비 마마를 찾아가시지 않은 모양이군요.”

 

그래. 그렇게 모성애 넘치던 어미가 황자 둘을 더 낳았다. 그 냉냉하던 전하께서 어떻게 마음을 여신 것인지, 얼마 뒤에는 총애를 받아 직위가 올랐다. 그 뒤에는 황태후 마마의 마음도 사로잡아 황비까지 되어 한때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동황비 마마와 동급이 되어 오히려 동황비 마마를 벌벌 떨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몇 번의 승급을 연이어 하다가 어렵잖게 패설관들의 꿈인 패설사관이 되었다.

 

동황비인들 어머님이 쉬운 상대겠나. 자네는 몰랐겠지만 어머님은 행동 하나하나가 훌륭한 배우가 아니셨나. 친가의 핏줄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야.”

 

그때 내가 제 3황자를 지키려고 했던 것은 진심이었지만, 서황비의 모성애는 철저하게 계산된 것이었다. 황제의 아이를 갖기 위하여 황제가 여인들을 고르는데 쓰는 고양이가 좋아하는 풀을 바닥에 깔고 황제를 유인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두의 그 횡포도 철저하게 계산된 것.

서황비는 계교로 밑바닥부터 황비가 되었다.

동황비 밑에 아들이 둘 있었지만 서황비의 꾀로 그 둘이 다 죽어버리고, 지금은 서황비의 맏아들이 황태자가 되었다.

그것이 지금의 황궁의 현실이었고, 내 현실이었다.

모든 이들의 꿈인 황태자와 황비, 그리고 패설사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호에 있었을 때보다, 아니 궁중에서 그 뜨거운 피를 식히고 있던 그 순간이 더 꿈결같은 것은 어쩐 일인가.

내가 보는 일어경에서는 그 말을 이렇게 표현한다.

 

호접지몽.

 

내가 나비런가, 아니면 나비가 나인가.

강호의 현실이 더 각박한가. 아니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성주는 진짜로 그렇게 했다. 사람들이 다 모아놓고 성서라고 불리는 철판을 밑으로 깐 후 밟으라고 했다. 예배때 내 앞에 있던 사람들은 철판을 밟고 지나갔다.

하지만 몇몇은 그렇게 하지 않다가 어깨를 붙잡혀 끌려갔다.

나는 당연히 철판을 밟고 지나갔다. 그리고 저 한켠에서 적오가 철판을 밟지 않고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적오가 나에게 한것처럼 나도 적오에게 말을 전할 수 있을까싶어서 적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자 금방 답이 왔다.

 

왜요. 요물이 신을 믿는다고 하니까 의심스러우신가보죠?하지만 가장 쉬운 방법은 신을 믿는 법입니다. 좀 있다가 보시면 아시게 될 거에요. 당신은 생각보다 너무 .단순해요.”

 

성주는 한동안 계속 고르고 있다가 이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겠다. 나쁜 조건이 아니니 안심해도 좋다. 너희들의 종교를 무조건 탄압하지 않겠다. 신의 이름으로 싸울 기회를 주겠다. 예배도 마음껏 드려도 좋다. 단지 내 밑에서 일만 충실히 한다면 무조건 허용한다. 나도 개종할테니까. 그게 조건이다. 물론 방금 성서를 밟고 지나간 자는 그에 합당한 댓가를 치러야겠지. 난 배반자는 필요하지 않다.”

 

그와 동시에 철판을 밟고 지나갔던 자들의 목에서 피가 솟구쳐올랐다.

그때 철판위에 걸을 것을 강요하던 병사들 중 하나가 외쳤다.

 

성주님! 주동자가 사라졌습니다. 포교사 말입니다.”

 

“....그래. 차라리 잘 되었군. 그 자는 용감해보이지는 않았다. 자기 종교를 지키지 못하고 도망가다니 약한 자로군.”

 

그래서 우리가 그 조건으로 무얼 하면 되는 거죠?”

 

적오가 빙긋 웃으면서 영주에게 말했다. 영주는 그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다소 굳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내 편이 되어 황궁을 타도하는 것이지. 모든 자가 평등한 사회로 만들 것이다.”

 

꽤 괜찮은 이야기긴 하군요. 물론 그 전에 자리가 잡히기 전에는 당연히 당신이 나라를 다스릴테고.”

 

별로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니군. 여자. 어디서 왔나. 이곳 사람은 아닌 듯 한데.”

 

내가 어디서 왔는지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그만해. 적오. 내가 마음으로 그녀에게 말을 전했지만 그녀는 단지 웃었을 뿐이었다.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 패설사관 대리가 왔다가 죽어서 나갔죠...후후.”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

 

성주의 시뻘건 얼굴에 그녀가 대꾸했다.

 

이번 패설사관의 시체를 제가 발견했거든요. 뽑히긴 했지만 화살의 형태가 이쪽 지방의 것이었고, 더더군다나 군에서만 지급되는 화살이더군요. 그건 어찌 설명하실는지? 아마 전의 대리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수리가 죽었나? 내 말에 적오가 고개를 저었다.

 

물론 시체였지만 제가 살려냈죠. 신의 도우심으로. 그를 불러내면 이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거짓말 하지 마라. 여자!”

 

비싼 밥 먹고 거짓말은 안 한답니다.”

적오가 상냥하게 대답했다. 누가 보면 어린애 이유식을 떠먹이는 어머니를 보는 것 같다고 할 것 같았다.

 

갑자기 주변이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매캐한 연기같은 것이 신자들을 감쌌다.

 

이 안개는...”

 

포교사님이 움직이셨군요. 하긴 몰래 숨어있자니 낯부끄럽기도 했을 테고...”

 

거짓말 하지 마시오. 성주여. 당신이 저지른 죄악은 신 앞에서 용서받지 못할게요. 우리를 탄압하려 하다가 오히려 숫자가 느니까 그대의 뜻대로 이용하려고...”

 

포교사도 마법을 쓸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 예배때 보이던 알 수 없는 그 어두움은 그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패설사관님, 저희에게 명을 내려주십시오. 황제의 명을.”

 

반쯤 찢어진 내 옷을 입은 수리는 조금 얼뜨기같아 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위엄은 좀 있어보였다. 수리는 난처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때 적오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수리의 말이 전해져왔다.

 

영주가 보낸 자들이 화살을 쏘았습니다. 사관님. 피하려고 했지만 너무 잘 훈련된 사수라 피할길 없이 당하고 말았는데 눈뜨고 일어나보니 어느새 이쪽으로 와 있더군요. 어떻게 할까요?”

 

성주여.”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설 수 밖에 없었다.

 

그대가 배후에서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건 내 이미 짐작하고 있었소.”

 

그말에 적오가 거짓말도.” 라고 말했고 뒤이어 수리가 과연 패설사관님이십니다.”라고 말했다.

 

 

으응? 그럼 이쪽이 사관이 아니었던건가?”

 

여기서 그대의 잔학상을 다 보았소. 다만 국가가 인정하지 않는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혀를 뽑고 고문당한 자들이 증언해주었지.그러면서도 앞으로는 그들의 종교를 믿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주장도 황당하지만 그 근거는 더욱 황당하군. 나는 이번 사건에 전권을 맡아 내려왔소. 수리 검을 이리 주게나.”

 

수리는 그게 얼마나 귀한 검인지 모르도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아마 내가 말하면 뒤로 넘어가겠지만 그건 내 알바가 아니다.

 

황제의 명을 내리노라. 사해평등주의를 주장하는 그 종교는 인정할 수 없으나, 다만 황제의 법전에 있는 바 아무 이유없이 교화해야 할 대상인 백성을 함부로 고문한 죄, 사형은 황제의 힘에 의한 것인데 임의대로 지방관이 사형을 행한 죄 과중하기 짝이 없다. 이에 전권을 부여받은 나 패관사관이 명한다. 성주 백환달을 포교사를 비롯하여 박해받은자 전원이 돌을 던져 죽일지어다!”

 

차라리 검을 들어 목을 치시오!”

 

성주가 외쳤다.

 

이것들에게 돌을 맞아 죽을 순 없소.”

 

그게 그대의 한계다.”

 

나는 그렇게 말한 후 적오의 음성을 들었다.

 

전 떠나겠으니 마저 청소하고 가세요. 왕의 패설사관. 다만 수리의 영혼은 제가 가져가겠어요. 가지고 있으니 편리하더군요. 몸은 당신이 관리하시고요. 전 이만 가볼게요.”

 

어느샌가 적오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돌로 두들겨맞기 시작한 성주의 저 건너편에 수리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연결이 끊어지지 않았기를 바라며 적오를 불렀다.

 

수리의 영혼을 돌려다오.”

 

돌려받고 싶으시면 저랑 같이 다니면 되요. 당신 덕분에 영주자리에서 쫓겨났으니 그에 합당한 댓가는 받아야겠어요.”

 

적오의 웃음소리가 전해져왔다. 하지만 처음처럼 기분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나는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상소문에 의해서 한동안 유배를 가 있게 되었다. 도착하기 전에 해배되긴 했지만 한동안은 근신하고 있으라는 명이 떨어져 황궁의 도서관에서 기거하며 경전들을 필사했다.

 이번문건은 비밀문서처분이 떨어져 이렇게 궁정일기에 대신 기록한다. 밀봉하고 황제인을 찍어 앞으로의 선례로 만들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는 패설사관이므로 노래를 수집하는 것이 일이었다. 하지만 천사요곡은 채록하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다. 더더군다나 그들은 비밀집단에 가까웠으므로 그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변장을 하기로 했다. 우선 가슴께까지 내려오던 수염을 밀고 머리도 상투를 틀지 않고 땋아내렸다. 물론 이 상태로 궁중으로 돌아가면 웃음거리가 되겠지만 강호에 살던 시절의 나에게는 웃음거리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옷도 되도록 수수하게 입기 위해서 황토로 염색한 것을 입고, 수령에게 내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돌아간 것처럼 꾸미기로 했다.

 

수리. 게 있는가?”

 

내 부름에 밖에 몰래 숨어있던 수리가 튀어나왔다. 전하의 명으로 수리는 내 뒤를 보조하는 역을 맡아 그림자처럼 주변을 파고들었었다.

하지만 지금 수리에게 맡겨진 역할은 달랐다

 

? 사관님 역할을 하라고요?”

 

그렇다네. 우린 닮지 않았지만 적당한 분장으로 자넬 나로 믿게끔할걸세.

여기 가짜 수염을 달고, 얼굴빛을 조금 어둡게 하여 야밤에 급히 떠나는 것으로 하면 될걸세.“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한동안은 여기 머무를 걸세. 자네는 내 인장과 편지를 갖고 떠나게나.”

 

“.....”

 

지체없이 떠나게나,”

 

나는 패설사관이지만 눈앞의 신비에는 휩쓸리지 않았다.

강호에서는 살인, 강간, 의협, 겵투, 패륜이 흔히 벌어지지만 강호를 만든 것은 인간이다. 그러니 강호를 벗어난 어느 도시에서 그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고 해서 놀랄 일도 없다.

적오에서부터 내 목숨을 노리는 이들이 늘어나는 만큼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머리를 깨끗이 밀고 거리 곳곳을 돌아다녔다. 난 목숨따위는 아깝지 않았다.

다만 진실을 원할 뿐이었다.

 

형제님들, 복받으십시오.”

 

포교사가 돌아다니면서 축성을 했다.

그러면 어둠속에 몸을 가린 그들이 망곡이라는 천사요곡을 노래했다.

도대체 무슨 수로 그 어두움속에서 노래를 한단 말인가. 악보도 없는데...

이들의 전도방법과 장소모임은 점조직으로 되어 있었다. 영주가 하나를 잡는다고 해도 그 조직파악이 어려웠다. 몇 번의 거대한 탄압 때문에 그런 듯 싶었다.

나도 머리를 밀고 그들에게 접근하는데 몇 번 실패했다가 유력한 점을 하나 잡아서 접근했다.

나는 포교사에게 다가가 모씨의 추천으로 들어오게 되었다고 세례를 부탁했다.

포교사는 고개를 가볍게 젓고는 내게 말했다.

 

아직 오래 나오시지 않으셔서 잘 모르실겝니다. 좀 기다렸다가 축성을 받으시지요. 하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내게 하늘은 무엇인가.

적어도 이들이 아닌 건 분명했다.

 

점조직을 천천히 뚫기 시작하면서 눈에 들어오는 인물들이 있었다. 관부의 중심에 있는 듯한 인물들이 눈을 감고 중얼중얼 기도를 하고 있고, -여기에도 무슨 술법이 걸려 있는지 얼굴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포교실 전체가 안개로 뒤덮혀 있었다.-저 중간쯤에는 잘 안보였지만 피냄새가 강하게 나는 것으로 보아 백정들이 있는 곳 같았다. 이들이 혁명군이 되면 얼마 정도의 희생이 있을까 계산해보았다.

아니 이들이 전하에게 하늘님에게 하는 것처럼 충성을 바친다면 우리는 얼마나 강한 군사들을 배치할 수 있을 것인가.

 

여전히 군사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군요.”

 

어디서인지 모르게 적오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전하가 충성을 얻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 걸 보면 당신은 남자가 아니라 내시가 아닌지 가끔 생각할때가 있어요.”

 

잠시 어딘지도 모르고 화를 낼 뻔 했지만 참았다.

포교사가 잠시 후 무슨 철판을 꺼냈다. 점조직의 형제 말에 따르면 그건 성서라고 했다.

 

여러분, 며칠 뒤 영주가 숙청을 실시한다고 합니다. 관부의 형제 한분이 정보를 전해주셨습니다. 이 성서를 누군가가 가지고 있다가 이 성스러운 말씀을 발로 밟게해서 진짜와 가짜를 가린다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깨어지지 않습니다. 며칠 뒤 우리의 믿음을 보여줍시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도망가고 싶으신 분은 가까운 성으로 대피하십시오. 믿음은 만용이 아닙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본래 나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았다. 그런데 애인을 사귀자마자 고양이 한 마리를 기르게 되었다. 그리고 애인과 고양이 이후로 개도 키우기 시작했다. 애인과는 3번까지 헤어져봤으며 4번째 헤어졌다 만났을 때는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3년만에 큰 아이가 태어났다. 큰 아이가 태어난 후 2년째 되던 해에는 쌍둥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쌍둥이가 태어난 뒤 고양이가 새끼를 5마리 낳았고, 늙은 개가 죽었으며, 죽은 개를 이어서 유기견 3마리가 입양되어 왔다. 새끼 고양이 2마리는 다른 집으로 입양되었고, 1마리는 죽었다.

그렇게 우리집의 생태계는 변화무쌍하게 변화했다.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나와 아내, 그리고 아이 정도일까. 나는 이름이 크게 나지는 않았지만 프로 목수였기 때문에 가족이 늘어날 때마다 캣타워니, 요람이니 같은 것들을 만들어 아내를 소소하게 기쁘게 했다.

어제 오후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다가 아들이 내 다리에 매달렸다. 나는 아이가 묵직하다는 걸 알았다. 몇 개월 되지 않은 생명체인데도 이렇게 무게가 많이 나가다니...

그제서야 진짜 생명체라는게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내가 목공품을 만드는 진짜 이유도.

나는 나무를 사랑하듯,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입양견들과 고양이를 사랑했던 것이다.

나무가 묵직한 따뜻함을 지녔듯이 생명체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나는 아들의 묵직함을 느낌과 동시에 또 다른 존재를 내 집에서 발견했다.

그건...

 

[절 베지 말아주세요.]

 

집 뒤에 30년된 자작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아버지가 내가 태어난 뒤에 심으신 것인데, 아마도 내 결혼식때 태우려고 준비하신 나무인 듯 했다. 언젠가 아버지가 내게 들려주신 말이 있었다.

 

지우야. 자작나무의 어원이 뭔지 아니?”

 

아니오...”

 

그때 나는 대를 이어 목수가 되라는 아버지에게 반항 중이어서 나무와 관련한 말은 듣기도 싫어했다. 물론 당연하게도 아버지의 부드러운 말이라도 듣기 싫었다.

 

저건 태우면 자작자작 소리가 난단다. 원체 기름기가 많아서... 결혼식 때 태우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지.”

 

결혼식때 태우면 좋은 소리가 난다...그렇게 아들의 결혼을 기다린다는 메시지를 남겼던 아버지는 내가 결혼하기 3년전에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 자작나무가 캣타워가 되기를 거부한 것이다.

 

이런 존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무에 손을 갖다대면, 나무가 말을 했다.

그건 처음 아들이 돌을 지났을 때 장난감을 만들어주려고 하다가 생긴 일이었다.

 

[절 베지 마세요.]

 

?”

 

처음에는 내가 미친 줄 알았다. 밀려오는 일거리때문인 줄 알고 말 그대로 전기톱으로 베어버리려고했지만 날카로운 음향이 귀를 파고들었다. 귀에 고통이 밀려왔고 나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뭐야. 이 나무 말하는 건가?”

 

[. 제가 말했어요. 절 살려주세요.]

 

자작나무는 고통스럽게 호소했다.

 

[저는 당신이랑 나이가 같아요. 그러니까 당신의 형제이기도 한거죠. 베지 말아주세요. 당신은 형제를 베진 않을 거잖아요.]

 

형제고 뭐고를 떠나서 실수로 긁기만 해도 엄청난 소리를 내는 탓에 나는 그 자작나무를 내버려두었다. 싫어요. 가까이 오지 마세요! 등등의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가까이 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아버지가 자작나무가 어째서 희생적인 나무라고 하는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목수 생활을 하는 동안 하루, 이틀, 135년이 흘렀다.

자작나무는 다른 나무들이 다 베어져가는 동안 꿋꿋이 그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가끔 내가 다른 나무들을 베러가거나 숲에서 산책을 하고 있으면 내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우산을 준비하세요. 비가 오려고 해요.]

 

알았다.”

 

아들의 묵직함을 발견한 순간, 또 발견한 하나의 이상한 생명체. 처음에는 귀가 시끄럽고 귀찮고, 열받았지만...그래도 썩 나쁘진 않았다.

 

[옆동네 물푸레나무는 베지 마세요. 많이 아프다고 해요. 얼마 안 있으면 죽을 거에요. 가구로 썩 좋지 않아요.]

 

자신이 베이는 건 싫어하면서 다른 나무에 대해서는 잘 알았다. 이걸 가르켜서 여우같다고 하는 건지 어쩐 건지...

 

비가 좀 온 날이 있었다. 오전이 맑았기에 오후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딱 자작나무 밑에 올때쯤 되자 비가 똑똑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가방은 내가 들고 있었는데, 그 가방 안에는 미술수업 과제물이 들어 있었다. 물이 배이면 안된다고 징징대는 아이 때문에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근데 갑자기 물방울이 떨어지는 게 점점 줄어들었다.

 

[저한테서 비를 피하세요.]

 

자작나무가 그렇게 말했다.

 

[아이가 굉장히 귀엽네요. 당신도 작은 시절에는 꼭 저랬어요.]

 

자작나무의 친절에 당황해서 하늘 쪽을 쳐다보니 자작나무가 자신의 가지를 모아서 비를 막고 있었다.

 

고맙다.”

 

[별 말씀을]

 

아빠. 누구한테 이야기하는 거에요?”

 

자작나무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가끔 나와 자작나무의 비밀을 모르는 아이들은 자작나무에 기어오르기도 했고, 가지를 말 타는 것처럼 타고 흔들어대다가 가지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자작나무는 소리내지 않고 꾹 참았다가 내가 자신을 만나러 가면 이야기했다.

 

[이쪽 가지는 남자 쌍둥이가 말을 타던 가지고...]

 

상처투성이였지만 자작나무는 행복해보였다. 내가 발견하기 전 자작나무는 혼자였고, 앞으로도 혼자였을 것이었다.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자작나무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쌍둥이도 큰 아이를 이어 학교에 들어가던 날, 자작나무는 소리없이 자신의 가지로 아이들을 안아주었다. 쌍둥이는 자작나무를 끌어안으며 좋아했지만, 이내 학교에 적응하느라 자신들의 자작나무를 조금씩 잊어갔다.

 

큰아이와는 달리 쌍둥이는 자작나무를 그렇게 길게 기억하지 않았다.

자작나무는 이내 나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게 되었다. 내가 자작나무를 만나게 된 이후 거의 10년만에 자작나무는 처음으로 전기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직도 그 전기톱 갖고 계신가요?]

 

? 그건 왜? 전기톱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왼쪽 가지가 근지러워요. 잘라서 쌍둥이 그네를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저쪽 늙은 소나무 밑에 매어두면...]

 

하지만 난 차마 그 가지를 베어낼 수가 없었다. 대신 조그만 나무를 하나 구해 가공해서 자작나무 밑에 달아주었다. 그네를 아이들이 좋아하면서 타자 자작나무도 기뻐했다.

 

당신 아버지 말야.”

 

아내가 어느 날 내게 지나가듯 말했다.

 

내가 당신이랑 결혼할 수 있었던 건 다 아버님 덕분이야. 당신 그거 알아?”

 

“...?”

 

몇 번의 헤어짐 끝에 결혼한 것은 모두 다 나의 지극한 사랑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찔끔했다.

아내는 아이들이 사라진 오전에 내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내 아버지가 처음 아내를 만났을 때 오동나무를 심었던 이야기와, 내 나이에 맞춰서 키운 자작나무를 보여준 이야기 등등.

 

아버님이 그러셨지. 미숙한 자작나무지만 잘 부탁한다고. 태우면 자작자작 소리를 내면서 밝은 빛을 내는 나무라고. 내 아들은...희생적인 아이라고. 그런 의미로 저 자작나무를 심었다고 말이야.”

 

사업에 큰 불운이 닥치지만 않았어도 나는 죽 이렇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목공사업은 항상 그렇듯이 큰 돈을 벌 수는 없었다. 더더군다나 공방에는 시골이라 사람들도 잘 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내 중학교에 들어갔고, 더 이상 그네를 타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더 좋은 교육이 필요했고, 사업이 쪼들리면서 한군데에만 머무를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고양이들이 입양처를 향해서 떠났고, 그 뒤에는 그동안 불어난 개8마리가 각자의 입양처로 떠났다. 그 다음은 우리가 될거라는 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나는 나무들을 팔았다. 처음에는 오래되고 좋은 적송을 팔았고, 그 다음에는 조경용 물푸레나무를 팔았으며 수령 64년 되는 산수유나무 밤나무 등을 팔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작나무가 남았다.

 

[오래간만이네요.]

 

나의 자작나무는 늙었다. 내가 늙어가는 것보다 더 사람같이 치매에 걸린 것 같았다. 하긴 동료들의 비명소리를 하루하루마다 들으니 그렇게 변해버린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작별 인사를 하러 왔어.”

 

[그래요...이제 떠나는 거군요. 부탁이 하나 있어요.]

 

?”

 

[혼자 있기 싫어요.]

 

그래도 어쩌겠어. 이젠 헤어져야 해. 너도 알잖아. 벌목꾼들이 오면서 하는 말 다 들었을거잖아.”

 

[베어가주세요.]

 

? 너 그렇게나 베지 말아달라고 했었잖아.”

 

[외로워요.]

 

자작나무는 잎을 떨구었다. 아마도 나무들 세상에서는 그것이 눈물을 흘리는 것일거라고 나는 짐작했다.

 

자신의 형제를 해치는 사람은 없어. 자작나무야.”

 

[하지만 당신이 가고 나면 어차피 다른 사람이 절 베려고 할걸요.그건 당신도 알잖아요.]

 

자작나무는 내게 노래를 하나 들려주었다. 나무의 음성이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숲들이 나를 지켜보고 키워왔던 이야기...

나는 노래를 뒤로 하고 천천히 뒤돌아섰다.

자작나무를...벨 수 없었다. 이미 내것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오래전부터 자작나무는 물건이 아니라 내 형제였으니까...

하지만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빠른 시간내로 돌아와 자작나무와 함께 하리라.

그것이 나의 생태계이므로. 나의 숲. 나의 형제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