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인 해안도시라 그런가 단청색깔도 밝고 화려했다. 진중한 맛을 살리는 궁과는 달랐다.

거리에서는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사신에게 올리는 다과도 다담맞은 것이 아주 훌륭했다. 하지만 그것들을 들지는 않았다. 독살의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을 믿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패설사관이었다. 패설사관은 젊은 시절부터 궁을 떠나 이곳저곳을 다니기 때문에 수많은 위험에 처해진다.수많은 패설사관들은 30대부터 줄어들기 시작해서 내 나이인 40대에 이르면 숫자가 적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 대부분의 얼굴이 굳어지고,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왕의 명을 받고 민간과 접촉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왕의 신임을 받지 못하고, 민간인들을 적대시하게 된다.

그 모든 것의 원인이 인간을 못 믿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 또한 인간을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적오를 대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들이 나를 죽이려고 든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는 것. 적의 손아귀에 있을 때는 노력이라도 하는 편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산조인차를 안드시더근요.”

 

잠이 까무룩히 들었을 때 나는 적오의 목소리를 들었다.

 

“......”

 

나는 얼른 일어나 들고 있던 검으로 그녀를 후려치려고 했다. 하지만 몸이 딱딱하게 굳어져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독은 차에만 탈 수 있는 건 아니랍니다. 의원이 하나만 가르쳐주고 다른 하나는 안 가르쳐준 건가 보군요. 무색무취무미의 독은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어요. 인간들이 게을러서 그 과일을 맛보지 못할 뿐이지.”

 

“.....”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거울 속의 내가 대답했다.

 

[...도대체 뭐냐. 이번 일에는 왜 개입한 것이냐. 이 패설사관 대리의 죽음도 네가 계획한 것이냐?]

 

제 정체에 대해서 너무 쉽게 알려고 하시는군요. 패설사관 나으리.”

 

그녀가 빙긋이 웃었다.

 

당신네 사람들은 어째서 그렇게 인간이 아닌 자들에게 각박할까요. 내가 인간이 아니라서 인간사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할까요...천사요곡에 대해서 쉬운 답안을 알려드리려 했는데...어렵겠네요. 하긴 답을 알려드려도 또 전서구를 날리는 방식으로 해결하실 모양이지요?”

 

[전서구는 황제폐하께 올라가는 가장 정당한 길이다. 넌 오적에게 못할 짓을 했어. 오적같은 정당한 상속자에게 요마가 깃들게 해서 병을 앓게 했으니...]

 

오적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은 모르시겠죠. 사랑의 방법이 항상 똑같은 건 아니랍니다. 나는 인간들을 사랑해요. 그래서 이번 일도 당신에게 알려드렸지요, 말씀은 전에 안 드렸지만 전 당신도 흠모한답니다.”

 

[요망한 것!]

 

그제서야 내 몸이 움직였다. 내가 검을 들어 후려치자 그녀는 깔깔 웃으면서 나가버렸다.

일어났을 때는 거울만 깨져 있었다. 검을 휘두르는 기세에 거울이 깨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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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시지요.”

 

성주는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다. 나도 예를 표한 후 온 목적을 이야기했다. 왕의 패설사관 대리가 참살당했다는 말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패설사관 대리가 왔다는 말도 저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공문을 못 받으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참요를 다 들으시는 건 아니시겠지만 요즘 희한한 노래가 돌고 있습니다.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천사요곡이란 노래입니다만. 그 노래는 왕도 부하도 없는 세상을 그려내고 있지요. 요망한 노래입니다.”

 

저는 공문의 수신여부에 대해서 여쭤본 것입니다만.”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적오의 건과 내용이 동일하였다.

혹시 적오가 다시 끼어든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적오는 전서구로 중앙의 압박이 심해지자 사라졌다. 물론 죽은 것은 아니지만, 이미 이 정도 일을 기획하기에는 그녀의 힘이 약했다.

그녀는 물론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종교열을 자극하기에는 그녀의 권력욕이 강했다.

 

그럼 그 천사요곡을 한번 볼 수 있겠습니까?”

 

“...혹자는 그 노래에 마법의 기운이 스며들어 가만히 있는자도 미치게 된다고 합니다. 저도 소문만 들었고, 일부분만 확인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패설사관님께 알려드릴 수가...”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전하의 명을 받들어 온 것입니다. 지금 그대는 전하의 명을 필부의 명으로 여기시는 것입니까?”

 

그 말에 그는 읍했다.

적어도 행동에 실행력은 있어 보였다.

 

좋습니다. 배후에 있는 자를 잡으면 그때는 확인이 되겠지요. 다만...”

 

“...다만?”

 

그 천사요곡을 듣고 미친 자들을 한번 보고 싶군요.”

 

알겠습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한 여자가 방으로 들어섰다. 머리를 여러갈래로 땋아서 윗머리에 붙인 모양이 오랑캐의 머리장식을 보는 듯 했다. 그녀는 성주에게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다구를 내려놓았다.

 

차를 권한다는 것이 늦었습니다. 한잔 드시지요.”

 

. 저는 조사가 끝날 때까지 차는 마시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이라면 독을 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무색무취한 독이 있다면 당하기 쉽겠지만, 그런 독은 아직까지 의원들도 접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차는 다르다. 그 향기와 맛이 독이 섞여도 알 수가 없거니와, 각 지역별로 향미를 가하는 곳도 있어서 독살당할 위험이 있었다. 특히나 이미 적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명을 받들고 간 패설사관이 참살당한 곳이 아니던가.

 

산조인차입니다만, 소화를 돕고 잠이 잘 오게 해주는 약입니다. 여독을 푸시기에 좋은 것 같아서 내어오라했는데...”

 

섭섭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걸 보니 호인 중의 호인이라는 인사평이 크게 틀리지는 않은 듯 했다.

걱정마십시오. 여행에는 익숙한 몸입니다. 늙었지만 아직까지 왕의 패설사관으로 일하는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 말을 믿지 못한다는 투였다.

하여간 그와 3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사신들이 묵는다는 저탞에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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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나는 용안을 뵈었다. 근심이 어린 그 눈동자에는 한숨이 가득하였다.

패설사관의 대리를 하는 중이라 바쁘긴 했지만, 전하의 말씀을 어길 수는 없었다.

해안가의 어느 성에 바다 건너 나라의 종교가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어느 신을 믿는 족속들이었는데 그들에게는 왕도 없고 백성도 없다고 했다.

전하는 내게 밀명을 내리시며 패설사관이 돌아오기 전까지 문제를 해결하라 하셨다.

존안에 나는 무릎을 꿇고 명을 받들었다.

 

-패설사관 대리 이준안-

 

 

그때의 기록이 정확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이준안은 내가 없는 사이에 해안 성곽인 유랑안에 내려갔다가 참살되었다. 왕도 없고 백성도 없는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자들이 왕의 신하를 죽였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만큼은 전하께 특별히 말씀드려서 검을 패용하고 내려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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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경과보고 5

 

 

예전에 적오에 악사들이 사라지기 전, 적오는 물이 풍부하고 상업이 융성하던 도시였다.

물론 지금도 융성하고 있긴 하지만, 상업보다는 도박에 의존하는 정도가 더 커지고 있었다.

내가 아는 장안의 귀족들도 적오의 도박장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가산을 탕진했다고들 했다.

나도 예전에 직급이 낮았을 때는 전국을 유리하고 다녔으니, 이곳에 대한 내용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민중에서 내려오는 노래는 대체적으로 희망과 미래예언의 뜻을 담고 있는데, 노래가 현실이 일어난 한참뒤에 나온 노래라도 예언형식으로 만든다. 그것이 바로 참요다.

장안국이 세워지기 전, 수많은 나라들이 생겨났고 합쳐지고 다시 갈라지는 상황속에서 참요는 실생활에 뿌리를 내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악사들이 아무리 많아도 적오에만큼은 참요가 뿌리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단 한번도.

 

그것은 지금 성주의 부친이 대에서 효시를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온후한 제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에 대해서 예언하는 노래는 나오지 않았다.

전대 적오가 죽으면서 현 적오가 대로 불러올려져 현 황제 체제에 대한 충실한 교육을 받고 내려간 것이 불과 8년전.

그에 대한 어떤 노래도 불리워지지 않았다. 다만, 악사들이 부르지 않는 대신, 죽임당할 이유가 없는 적오에 도박을 하러 갔던 이들이 부르는 노래만이 전해져 왔다.

요마가 깃들어 사람의 기를 빼앗는다는 목걸이와 적오의 영주들은 대대로 사람이 아니어서 아무리 목을 쳐도 죽지 않고 살아돌아온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악사들은 어느 누구도 그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좋은 소식인데 왜 찢으시는 겁니까.”

 

 

나는 담담하게 그녀에게 맞섰다.

 

적오는 대답대신 빙그레 웃었다.

 

 

“제가 이 지방에 내려온지 8년이 넘었답니다. 근데 이제 와서 매년마다 제사를 지내러 올라오라고 한다면 이 지방은 누가 다스리지요? 오적에게 맡길까요? 그도 굉장히 바쁜 몸이랍니다.”

 

나는 그녀가 왜 황제의 공문을 찢었는지 생각했다. 단순한 반발행위는 아니다. 반발행위에 불과하다면 지금껏 왔던 신하들을 죽였을 리가 없다. 그렇다. 그건 살인행위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 목걸이가 정말로 그런 힘이 있는 걸까?

 

 

“하여간 오래 가둬놓을 수는 없으니 곧 풀어드리죠. 반가운 얼굴도 보여드릴 겸해서. 내일 잠깐만 묶여 있으세요.”

 

 

그렇게 그녀는 말하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스치듯이 지나가버렸다.

반란행위의 기초를 목격한 내게 저렇게 말한다는 것은 반란 준비가 시작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묶여 있었고, 다른 방법이 주어져 있지 않았다.

 

 

“아, 말 한마디 안했는데.”

 

 

다시 그녀가 돌아왔다. 오적의 모습을 한 채로. 그제서야 나는 회담때 만났던 것이 남자 오적이 아니라 진짜 적오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자유의 시간을 만끽하는것도 오래지는 않을 거에요. 첫째 왜 이 곳에는 노래가 울려퍼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전에 왔던 사신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여간 맞춰보도록 하세요. 시간을 죽이는데는 아주 좋은 질문들이죠.“

 


사건경과보고 6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말과는 달리 나는 한밤중에 푸대에 담겨 수로에 던져졌다.

푸대에는 쇠공이 매달려 있었고, 나는 수많은 모험 소설에 나오는 장군이 아니었기에 속절없이 강바닥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바닥으로 가라앉으려고 했을 때 그 푸대를 누가 잡고 흔드는 느낌이 났다.

숨이 거의 막히려는 순간, 그 누군가는 쇠공을 자르고 나를 꺼내주었다.

 

 

“수리!”

 

 

나는 그 얼굴을 보자마자 반가움보다는 놀라움이 앞섰다.

 

 

“어떻게 된건가.”

 

 

“저야말로 여쭙고 싶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입니까.”

 

 

며칠전의 수리와 비교하면 인간이 좀 된 것 같았다. 이젠 더 이상 떨지도 않고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같지도 않았다.

 

 

“자네가 날 꺼내줬나?”

 

 

“아니오? 저는 약간 찢어져 있는 푸대 사이로 사관님 얼굴이 보여서 다 찢어드린 것 뿐인데요.”

 

 

“누가 날 위로 끌어올렸는지 아나?”

 

 

“어머니가요.”

 

 

어머니? 장안국에서 물에서 그런 별명으로 불리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인어.

인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젖먹이는 모습이 인간과 흡사해서 붙은 별명일 뿐이었다.

 

 

“어머니가 저도 끌어올려다주셨습니다. 그때는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말이죠.”

 

 

패설사관으로 있으면서 단 한번도 내가 채록하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아련한 이야기일뿐, 전설일뿐. 날조된 기록일뿐.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아니었다.

 

 

“인어...가 말인가?”

 

 

“사람처럼 노래도 부른다더군요.”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 전설에서 인어는 악사들의 어머니였다.

별로 좋은 의미의 어머니는 아니었지만.

전설에 따르면 인어는 본래 인간을 사랑해 결혼했다고 한다.

그 자식은 악사가 되었는데,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지울 수 없었던 인어는 지상을 떠나면서 악사들을 모두 자신의 자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그래서 노래부르는 사람은...앗!

 

 

“이제 알았다.”

 

 

나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신들이 공문을 전달하지 못했던 건 인어를 이용한 수법이었다.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인어는 그것이 어느 배건 가리지 않고 덮쳐서 노래를 부르는 인간들이나 그 외의 인간들까지 물속으로 끌고 들어갔던 것이었다.

공문은 틀림없이 그녀의 손으로 들어갔었을 테고. 그녀는 풍부한 수공예품과 쏟아져들어오는 돈들을 이용해 반란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네, 군에 있을 때 보직이 뭐였나?”

 

 

내 말에 수리가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은 개인적으로만 사용하지만 최근까지 전서구 담당이었습니다.”

 

 

“자네 비둘기도 배를 탔었나?”

 

 

“네.”

 

 

“그럼 부근에 있겠군.”

 

 

“아?”

 

 

“내가 부르는 걸 그대로 받아적어서 날려보내게.”

 

 

“알겠습니다.”

 

 

 

 

사건경과보고 7

 

 

 

전서구를 날려보내고 나서 나는 수리에게 물었다.

 

 

“혹시 전에 봤던 괴물 말인데...”

 

 

“예.”

 

 

수리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괴물에 대한 충격에서는 벗어났으나 여전히 동료의 죽음은 괴로운 모양이었다.

 

 

“혹시 삼켰다는 보석이 주황색 아니었나?”

 

 

“아닙니다.진홍색이었어요.

그 괴물이 영감님을 잡아먹고는 제 앞에서 영감님 모습으로 변했죠,,,그 보석을 먹고는...“

 

 

울분을 못 참는 표정이 된 수리를 보자 확신이 들었다.

이 성의 주인은 그 여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 여자도 아닌지도 몰랐다.

패설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었다.

 

 

[인간의 정기를 뽑아먹고 사는 요괴가 어떤 보석을 하나 손에 넣었다. 인간의 기를 빨아내거나 뱉어내는 보석으로 인간에게 먹이거나 목에 걸게 하거나, 역으로 요괴가 그것을 가지게 되면 원 인간의 능력과 외모를 가지게 된다.고...하지만 기존에 정해진 성별은 바꿀 수 없다.]

 

 

“전서구 이 동네에 남아있는 게 있다면 다 구해오게.”

 

 

난 수리의 등을 탁 쳤다.

 

 

“자네 덕분에 모든 게 풀렸어.이제 남은 건 진실을 알리는 것 뿐일세. 아무리 선정을 베풀어도, 지방재정을 융성하게 만들어도 올바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지배자가 된 자는 자격이 없어. 그것이 인간이 아니기에 더욱! 거기서 더 나아가 옳은 방법이 아닌 폭력으로 지배하고 정복까지 하려는 것은!”

 

 

사건 경과 보고 8

 

 

그리하여 적은 진짜 적오가 되었다.

두 마리의 요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이 공문을 정식으로 전달받은 진짜 적오는 제후들의 제사에 참가해 황제를 배알하였다. 그는 더 이상 광기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더 이상 주민들도 노래부르는 것을 방해받지 않는다.

지금 적오는 평화로운 노랫소리로 가득하다.

이 이야기는 패설장에 한 줄 더 늘여서 기록한다.

후에 그들과 더 부딪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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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경과번호 4

 

 

수금 타는 소년은 노래를 무척 잘 불렀다. 하지만 억양이라던가, 강세가 적오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평탄한 면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소년에게 고향이 혹시 대냐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본래 대에서 자랐습니다.”

 

 

“여기에는 어쩐 일로 오게 되었나.”

 

 

“대에서 악사가 되기 위해서 교육받던 중 동무를 잃었습니다. 그 뒤에 악사가 되길 포기하고 이길 저길 다니다보니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결국 여기서 수금을 타지 않나?”

 

 

나의 순수한 호기심은 패설사관을 오래 지닌 것에 연유한다. 하지만 가슴 아픈 이야기는 안 물어볼 걸 그랬다.

 

 

“도둑패인지 모르고 끼어들었다가 체포되었었지요. 그러다가 수금을 잘 탄다는 걸 안 성주가 제게 저분의 안위를 맡기셨습니다.”

 

 

“성주를 직접 만났단 말인가?”

 

 

연금된지 닷새가 넘는 동안 오적의 얼굴도 보지 못했고, 여성주가 왔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적오의 본래 법상 여성주에게도 통치권이 주어져 있다는데, 그동안 장원국에 편입되어 있다보니 경계가 좀 불분명해진 부분도 있는 모양이다.

 

“예. 머리가 새하얗고 긴 데다가 비녀를 하지 않고 머리를 땋아올렸습니다. 그걸 적오식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성주님은 이름이 따로 없으셔서 성이름을 따서 부른다고 합니다.”

 

 

“아하. 근데 왜 저 사람의 안위가 자네에게 달려 있는가?”

 

 

그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귀공자는 얼굴이 시뻘개지더니 괴물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참으십시오. 도련님!”

 

 

소년은 수금을 타면서 귀공자를 달랬다.

 

 

디링~

 

 

말 목을 닮은 수금 머리부터 끝까지 소년이 한번 쓸어내리자 귀공자는 격심한 몸부림을 시작했다.

 

그아아아아아아아

 

 

“멈춰. 음악을 멈춰. 멈추지 않으면 네놈들 둘다 꼬치에 꿰어버릴테다.”

 

 

귀공자는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길게 기른 손톱을 휘두르며 우리쪽으로 달겨들었다.

5보 정도의 거리였으니 그가 위해를 가하려고 했으면 충분히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아, 또 내가 정신을 잃었었나?”

 

 

귀공자의 목에는 진홍색의 아름다운 보석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귀공자가 광기를 일으킬 때마다 그 목걸이에서 번쩍번쩍 빛이 났었다.

나는 그 목걸이가 예전 패설에 나온 목걸이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입밖에 꺼내지는 않았다. 저것이 진정 패설에 등장하는 목걸이라면 사태가 심각해지기 때문이었다.

 

 

“적님! 괜찮으십니까!”

 

 

문이 덜컹 열리면서 나를 가두라고 명했던 오적이 들어왔다.

 

 

“아, 괜찮...적오님은 어디 계시오?”

 

 

“...곧 오실겁니다.”

 

 

가짜 오적은 날 매섭게 노려보았다.

 

 

“엉뚱한 생각 마시오. 패설사관.”

 

 

“......”

 

 

나는 생각에 잠겼다.

정말 그. 목.걸.이. 라면?

이내 사락사락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오적과 닮은 여자가 들어왔다. 성주인 듯 했다.

머리를 땋아 올리고, 움직임 하나하나가 절도가 있고 품위가 있었다.

 

 

“패설사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웃는 적오는 한손에 내가 가지고 온 공문을 들고 있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셨군요.”

 

 

그리고 그녀는 한 손으로 그 비단 공문을 빡빡 찢어버렸다.

엄연한 황제에 대한 반발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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