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실 필요까지야...”

 

방금도 잔에 비싼 양주, 그가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양주를 찰찰 넘치게 따른 것이었다.

서장은 술을 잘 못했다. 특히나 양주는 부담스러워서 마시지도 못했다.

경찰서장은 새로 온 유지라는 사람이 부담스러웠다. 시골에 있는 아버지를 위해서 큰 집을 짓는다는 이 남자는 이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아버지를 모시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고, 실제로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도 깎듯하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동생이라는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온화한 얼굴에 동네 노인들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그가 얼마나 순결한 영혼의 소유자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곳은 제 아내의 고향이기도 하니까요...”

 

“아, 사모님의...사모님은 안 보이시던데...”

 

“얼마전 사고로...”

 

“아, 안되어...”

 

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새로온 남자는 또 다른 유지들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었다.

귀족적인 집을 지닌 사람답지 않게 서투른 응대법이었다.

아마도 벼락부자일거라고 서장은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동생의 태도를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하여간 새로 들어오는 인간들치고 도시에서 사고 안 치고 오는 인간 없다면서, 혹시 그런 자들인지 모르니 조금 신경써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조금전에는 실례하셨습니다.”

 

서장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동생역을 하던 지윤이 길준의 손을 잠아끌면서 말했다.

 

“왜요.”

 

“말은 끝까지 들으셨어야죠. 불쾌해하는 기색이...”

 

“별 영양가도 없는 소리. 들으면 들을수록 불쾌합니다. 내가 여기에 온 건 그런 빈 말을 들으려고 온 거 아니에요. 이곳에 온 것도 그냥 칩거하려고 집을 짓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복수해야 할 상대의 본거지를 봐야지. 어째서 돌아가신 아내분의 고향을 찾는 겁니까.”

 

“한번도 와 본 적이 없으니까요...”

 

“.....”

 

“아내가 계속 나타나는 건 이유가 있을 겁니다. 특히 내가 모르는 아내의 무언가가 있어요.”

 

그의 굳은 입매를 보면서 지윤은 입을 다물었다.

 

“복수는...좀 더 알아보고 할 겁니다...단계적으로 천천히 말라죽게 만들어 줄 겁니다. 그 전에 잠시...”

 

눈에 뭔가가 들어간 듯, 길준은 눈가를 살짝 훔쳤다.

 

“눈물도 없이 인정사정 없이...그렇게.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처럼. 그렇게 만들어 줄 겁니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지윤이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당신은...나하고 약속했습니다.”

 

“...약속했었지요.”

 

길준이 조용히 읊조렸다.

 

“그 사람은 내 형입니다.”

 

“그 사람을 괴롭히라고 한 사람은 당신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내게는 충분한 권리가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쳇바퀴 돌리는 이야긴 그만하죠. 적어도 당신을 살려준 내게는 당연한 권리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자신을 죽이려고 한 형을 옹호하는 천사표는 없습니다. 왜냐! 살아남지 못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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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미인이라고 착각할 뻔도 할만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더욱 미인이었다.

 

 

“여기서 무얼 하시오?”

 

 

소금 덩어리로 폐허가 된 이 땅에 마치 땅에서 솟아난 듯한 그 미모가 부자연스러웠다.

 

 

“무얼 하다니요? 가끔 이렇게 손님들이 오시니 객주를 운영하고 있답니다. 수리!”

 

 

생각해보니 그럴만도 했다. 지금 황제국의 패설사관과 공동으로 화미인 유적지를 개발(명목은 그랬다.)하고자했으니 미리 귀띔을 받은 자들이 객주를 벌이지 말란 법도 없다.

 

 

“수리?”

 

 

어째 귀에 익은 이름이다 싶었지만 생각이 잘 안났다.

 

 

“제 남편이랍니다.”

 

 

“......”

 

 

수리라는 자가 휘적휘적 다가왔다. 눈에는 핏발이 섰고, 입가에는 마른침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는 대충 인사를 하고는 우리들의 말고삐를 잡았다.

 

 

“저쪽에 마굿간이 있으니 말을 쉬게 하고, 따라오셔서 두부라도 따끈하게 한점 잡수시지요.”

 

 

“헌데..."

 

 

털보 아우(이름이 털보이다.)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이 유적지에 여러번 와봤지만 객주가 생긴 건 한번도 못 봤는데...그 사이에 언제 온게요?”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면 길이 생기는 법이죠. 소금 구더기에선들 장사꾼이 그냥 지나갈리 있겠습니까요?”

 

 

수리라는 자가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맞대꾸를 했다.

 

 

“그거야 맞는 말이겠소만은...”

 

 

나는 적파마를 그의 손에 넘겨주고는 말에서 내렸다.

 

 

“그럼 따끈한 술에 두부 한점 먹어볼까...”

 

 

“매운탕도 하나 들이라 할까요?”

 

 

객주의 여주인의 말에 동생들이 환호했다.

 

 

“하나가 뭐요. 여러 개!”

 

 

“말씀대로 합지요.”

 

 

여인의 눈매가 여우를 닮은 것이 마치 옛 이야기에 나오는 요괴 생각이 났지만...

그건 패설사관의 직업병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여주인의 말과 동시에 객주가 생겨난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게 다 고된 여행에서 시작된 망상이라고 생각했다.

 

 

“따끈한 술부터 한잔 드시고...”

 

 

여주인이 직접 술을 한 사람 한사람에게 따라주었다.

남주인은 직접 잡아온 것이라면서 매운탕을 금새 끓여 식탁 하나하나에 놓아주었다.

맛은 일품이고, 술은 입에 달았다.

그리고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그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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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숱이 이마선위로 올라간 이 남자는 오른 손목에 초록색 가를 가진 끈과 은색의 시계를 차고 있다. 목에도 남색 스카프를 매고 있는 것이 특이하게 느껴진다.

담배를 피는 손에는 잠시 정적이 감도는데 담배를 피는 것이 아니라 살짝 들고 있는 느낌이다. 손에 얼마전에 바로 산듯한 종이 상자를 들었는데, 담배 상자같기도 하다.

카메라를 의삭하지 않고 걸어가는 그 무심함이 더욱 그를 두드러지게 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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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은 상처가 낫자 시무하던 본당으로 전화를 했다. 하지만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신부는 그에게 최대한 오래 피정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대신해서 다 처리해놓았다면서 한동안은 피정이나 다녀오라고 했다.

지윤은 자신의 휴대폰, 개인 물품을 다 빼앗긴 상태에서 이름도 모를 남자의 집에서 지루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것도 피정이라면 피정이겠지만. 부지런한 그에게는 이것이 닥쳐온 재난같을 뿐이었다. 어째서 왜 아버지의 말을 듣고 그 남자에게 권총을 건넸을까...

그는 그게 후회스러웠다.

 

오늘은 들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남자는 매일매일 그의 방에 들렀다. 하지만 지윤은 그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듣고 싶지 않은 진실이었다. 어째서 형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고, 아버지 대신 복수권을 이어받았다는 남자는 자신을 그 음모에 끼어들게 하려는 걸까.

 

듣지 않겠습니다. 들으면 전 신부가 아닌 사람이 됩니다.”

 

벌써 100번이상 들은 이야기인 것 같군요. 정당방위도 안된단 말씀이십니까.”

 

아벨은 형에게 정당방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이지...”

 

당신은 왜 꼭 복수를 하셔야 합니까. 용서해도 되지 않습니까. 어느 누구건 사사로이 복수를...”

 

그때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준구씨!”

 

그 말을 들은 남자는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다시 방으로 들어오면서 신발을 내동댕이치면서 외쳤다.

 

젠장할! 어째서 이렇게!!!”

 

지윤이 바깥을 내다봤을 때 밖의 TV에서는 한창 병률의 얼굴이 자막을 깔고 올라가고 있었다. 모 국회의원 보좌관, 모 국회의원의 비리를 폭로하고, 신당에 입당.

다음 전국구 의원으로 선발 유력.

 

차라리 잘 됐군.”

 

이빨을 갈던 이준구가 냉랭하게 읊조렸다.

 

위로 올라간 네놈을 자근자근 밟아주지. 신부님, 이러고도 안된단 말씀이십니까. 당신을 향했던 총구는 이제 다른 사람에게 향할 겁니다. 자비로운 크리스찬이라면 그 총구가 다른 사람에게 가기 전에 막을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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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정보를 입수하기 전에는 화미인 유적을 골백번을 더 뒤졌어도 항상 결론은 같았다.

거의 소금 덩어리일 뿐이라는 것. 그림이 있다한들 소금기에 찌들어 이미 옛 모습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 그리고 구애를 거절당한 영웅왕의 성격으로 보아 이곳의 백성들또한 목숨을 건지기 어려운 판국에 하물며 그림임에야...

하지만 미축이 일어경에서 건져낸 단서로 황제국은 하나의 실마리를 얻었다.

황제국의 제 3대 황제였던 영웅왕은 후에 화미인을 닯은 여인을 후궁으로 얻었다.

그때까지 화미인을 잊지 못했던 영웅왕은 화가에게 오랫동안 품고 있던 화미인의 초상화를 주어 참고하여 사랑하는 후궁의 모습을 그리게 했다.

황제국에는 아직도 그 후궁의 그림이 걸려 있다.

 

그렇게 대단한 미인이...”

 

소금이 되었으니 애석하다고 하려느냐.”

 

나는 말에 채찍을 가하지 않고 발로 살짝살짝 말의 배를 건드렸다. 명마라서 그런지 역시나 감이 좋은 말이었다.

 

왜 그런 짓을 했을까요? 자기 밑의 백성들이 불쌍하지도 않았을까요.”

 

털보아우는 집이 가난해서 노예로 팔려가다가 우리 부모님의 손에 의해서 건져졌다.

원래는 제국에 살던 아이도 아니었다. 변방 제후국들의 다툼에 의해서 몰락한 제후의 영주국에서 세금을 뜯기는 생활을 해왔다.

 

불쌍한 걸   윗대가리들이 알면 그렇게 했겠느냐. 화미인은 그저 심술궂은 여자였을 뿐이란다.

마법사니까 더 독하지.“

 

난 그래서 미축을 알 수가 없었다. 단 한번 손도 제대로 잡아보지 못한 여자의 무덤을 1년에 한번 꼭 찾아가 술을 붓고 제상을 차리며 무덤에 꽃을 바치는... 그런 순정을 나는 알지 못한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드는가.

 

...그래도 왕이기 이전에 여자잖아요. 자존심이 있었을텐데.”

 

백성을 생각하고 여인같은 사람이었다면 영웅왕에게 인생을 의탁했을 거다. 그 잘나빠진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라...”

 

나는 돈 때문에 상대를 죽이는 부부도 알고 있다.

단순히 돈 때문에 상대를 의심하고 죽인 부자들도 알고 있다.

가난해서, 찢어지게 가난해서 삶을 괴로워하다가 도망간 부부도 알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단지 이쁜 여자 하나 얻겠다고 도시 하나를 전멸시킨 바보같은 왕의 이야기도 알고 있다.

 

1시간쯤 화미인 유적을 둘러보고 있을 때 털보아우가 소리를 질렀다.

 

화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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