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뭘 바라시는 겁니까.”
요한 신부는 고개를 떨군채로 물었다. 신부로서 할 일은, 그리고 인간으로서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이 사람들은 지금 자신에게 가장 심각한 부분을 들쳐내려고 하고 있었다.
“별 거 아닙니다. 요한 신부님.”
총을 건네줄 때만 해도 이 정도 일이 닥칠 거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했다. 그냥 아버지의 부탁이니까 들어준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태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 사이에 아버지가 죽었고, 그 다음으로는 자신에게 총부리가 돌아왔다.
“고해성사실에서 만난 사람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
한변호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지윤이 아는 그 남자, 이준구는 별 것도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서로 솔직해지기로 하지요.”
“전 신부입니다. 솔직해지고 말고 간에...”
“신부님, 전 본래 경찰이었습니다. 그리고 본명도 이 이름이 아닙니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서 감금당하고 이름마저 바꿀 수 밖에 없게 되었죠. 그리고, 그 복수를 하기 위해서 나왔...던 건 아닙니다. 신부님 아버지가 제게 부탁했죠. 부디 복수해달라고.”
“아버지가?”
요한 신부, 아니 지윤은 충격에 빠졌다. 이 남자가 어떻게 자신이 총상을 입은 순간에 나타나 자신을 데려온 것인지도 궁금했는데.
그 총을 받은 것이 아버지의 부탁때문이었다니.
“제가 알고 싶은 건.”
이준구는 지윤이 자신을 보는 시선에서 조금의 죄책감과 우울함을 느꼈다.
“왜 신부님의 아버지가 복수를 제게 맡겼느냐 하는 것이죠...”
“......”
한변호사를 향해서 지윤의 눈빛이 향했다. 텅 빈 공허감. 한 변호사는 지윤에게서 뭔가가 빠져있다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지윤은 머리를 내려뜨리고 손으로 감싸안았다.
“모두 다 제 잘못입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알고 싶어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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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았다고?”
정찬일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죽지 않았단 말이지...”
“네.”
병률은 단조로운 목소리로 총기를 닦았다. 경찰이든 아니든 그의 모습 어딘가에는 날카로운 사냥개의 모습이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가 있나.”
정찬일의 말에 병률이 대꾸했다.
“태연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 앤 제 동생입니다. 그리고 신부죠. 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발설할 애가 아닙니다.”
“하지만!”
애초에 이것은 흉계였다. 신부 이지윤은 정찬일이 계획한 정치법안에 반대하는 신부 중 하나였다. 그 신부들은 카톨릭 신부들 내에서 모임을 조직,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물론 이지윤은 그들 중 미미한 자리를 차지하는 막내나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정찬일은 그 점에서 이지윤을 지목했다.
병률의 배다른 동생이기도 하고, 말석을 차지하는 신부가 피살당하면 다른 신부들이 몸을 사릴 걸 알기 때문에도 그랬다.
손대기 쉬운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병률은 동생에게 총을 쏘는데는 성공했지만 그가 죽는 것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아마 약 100%의 확률로 지윤은 돌아올 것이다.
“별 거 아니지. 별거 아니야.”
정찬일은 이내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치에 뼈가 굵은 남자였다. 그 동안 자신이 다른 정치파에게 피습을 당한 적도 여러번이요, 자신이 다른 정파의 사람을 습격하라고 돈을 쥐어준 것도 여러번이었다. 그 신부가 죽는 것은 피했다 하더라도 습격을 당했던 것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신부들도 몸을 사릴 것이다. 그것만 해도 충분했다.
“좋아. 마무리가 어설프긴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지.”
“......”
병률은 닦던 총기를 한쪽으로 치웠다. 그리고 냉랭하게 대꾸했다.
“마무리는 어설프지 않았습니다. 제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고 꾸짖으시는 것 같아서 신경쓰이는군요.”
“...아니야. 누군들 예상했겠나. 아니, 그러고보니....”
반대파일수도 있었다. 정찬일은 그렇게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어떻게 반대파가 미리 알고 지윤을 끌고 갈 수 있었단 말인가? 아니면 정찬일을 제거하기 위해서 꾸며진 일은 아닐까?
“혹시 싶지만...”
정찬일이 병률에게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자네가 설마 누설하진 않겠지? 자네가 물론 반대파와 손을 잡진 않았겠지만.”
“...저는 국회의원님의 갭니다. 애초에 그렇게 약속했으니까요.”
정찬일은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런 세상에서 어느 누군가의 충실한 편이 되어 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찬일이 세상에서 믿는 것은 오직 하나.
정치권력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