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진중우의 아버지는 청렴결백한 관료로 있다가 대를 이어 기업가가 된 인물이었다. 공무원이 사업을 하면 거의 말아먹기 일쑤였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의 기적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뒷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건 다 거짓이었다.관료시절부터 그는 위로 올라서기 위해서 몰래몰래 뇌물을 바쳐왔고 그건 기업가가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길원택이 처음으로 가요계에 맘을 두었을 때, 진성환은 병원에 줄을 대었다.
모 관료와 모 기업가가 일반인이 쓸 수 없는 대량의 환각제를 빼돌려달라고 요청해왔고, 그 실무를 맡았던 것이 길원택이었다.
그리고 길원택은 대담하게도, 그 일을 맡자마자 진성환과 약속을 잡고 그의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무립니다. 장부를 어떻게 조작한다고 해도 나중에는 들통 날 테..."
사실 머릿속에 계획은 다 서 있었다. 그가 맡든 안 맡든 그 부분은 다른 사람이 맡게 될 것이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네. 자네 역시 그걸 모르진 않을테고. 뭔가 원하는 게 있나?"
"원하는 거 없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지. 나한테 원하는 게 있으면 나중에 편지나 한장 보내게. 뜻대로 하게 해주지."
"하지만 증거는 남습니다."
"걱정말게.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그 말을 믿었다. 믿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뒤 며칠 뒤에 그는 아름다운 소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정말 즐거운 목소리였다. 천사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중우야. 저기 꽃 있다.]
[아, 저기까지 달리기 시합 하자.]
[응.]
속살대는 듯한 그 아이들의 목소리가 싫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 남자아이의 부친이 바로 진성환이었다는 것이었다. 진성환은 병문안을 핑계로 움직이지 않는 그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멀었나? 자넨 협박만 할 줄 알았지. 굼벵이로군."
"경찰은 언제나 진지합니다. 간단한 장부조작같은 장난에 속아넘어가지 않지요. 더더군다나 결정적으로 지문이 남습니다. 장부조작은 해두겠지만 그 밖의 문제는 어렵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도와주지."
진성환은 그렇게 말하고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저,혹시..."
"응?"
"약속은 아직 유효합니까?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그럼 일 끝나고 나서 나한테 부탁하게나."
진성환은 그렇게 거드름을 피우면서 자리를 피했다. 애초에 그에게 지시할 때와는 다른 태도였다.
그리고 얼마 뒤에 병원에서 사고가 생겨서 기술자 중 한명이 염산을 뒤집어 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진성환이 원했던 대로 마취제가 대량 없어졌다.
그건 소녀의 아버지가 수술 날짜를 잡지 못하고 있을 시기의 일이었다.
[부탁입니다.]
길원택은 머리를 조아렸다.
[약속대로...그 환자의 병원비를 내주십시오.. 제발 수술을 빨리 해야 목숨을...]
[자넨 너무 느렸어.]
진성환이 말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청년이 비꼬았다.
[부탁을 하려고 했으면 빨리 했어야지. 더더군다나 우린 거지를 먹여살리고 싶진 않아. 살리고 나면 나중에는 먹고 살게 해달라고 한다고.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던데.]
길원택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에서 피가 배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