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의 기술 - 나이 들수록 재미, 가족, 관계, 행복, 품격, 지식이 높아지는
이호선 지음 / 카시오페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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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오십의 기술(五十技術)

지은이이호선

  인생 2막의 주인공이 되려면

 

논어 (위정 편에서 공자(孔子 : B.C 551~479)는 "오십이지천명 五十而知天命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안다" 라고 했다

유학의 시조이며 성인으로 추앙받는 공자님이 한 말이니 틀림없는 말씀이겠지만 지천명이란  내가 감히 헤아려 볼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지천명은 고사하고 내 자신의 운명이나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오십을 맞이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야야 할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읽게 된  <오십의 기술>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은  나 같이 이제 막 50대에 접어든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저자 이호선님이  말하는 오십은  엑티브 시니어 (Active Senior)가 되기 위한 나이이다

오늘날엔 오십이 지천명’ 이라는  공자의 말 보다는 활동적인 중년의 삶’ 을  살기 위한 시기라고  보는 저자의 견해에 훨씬 공감이 간다.

사실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50대는 치열하고 처절한 면이 있다

50즈음이 되면 육체적으로는 늙어가고,  삶에 대한 정신적인 압박감그리고  외부의 순탄치 않은 상황에 치여 내 삶의 의미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채 살게 된다

그러나 저자는 그러한 가운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추구해야 할 재미와 가족관계행복품격 그리고 지식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 구제적으로 제시한다.

 

한 예로 중년의 시기는 인생 2막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행동 강령으로 ....을 소개 했다.

먼저 ’, 나가라이 뜻은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쉽게 옹졸해 지는데 자기 안에 갇히지 말고 자신의 경계 밖으로 나가라는 뜻이다

’, 만나라누군가를 만나는 것누군가가 나에게 온다는 것은 그 누군가의 과거 현재 미래 즉 그의 일생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그래서 만남을 소중히 하라는 뜻이다.

’, 주인공처럼 웃어라인색하기 쉬운 내 표정을 밝게 표현 하라는 뜻이다.

’, 인사를 하라솔선수범으로 누구에게나 인사를 잘해야 된다는 뜻이다.

’, 공부 하라중년에도 끊임없이 쉬지 말고 공부를 해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내 삶의 의미를 물어보는 시기가 오십이며 막춤을 추어도 내 춤을 출 수 있는 오십의 기쁨과 의미를 발견하라고 조언 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행복한 중년의 삶을 위한 설계와 지침은 참고 할 만하고 무척 공감이 갔다

특히 불행이 닥쳤을 때   대처하는 저자의 노하우는 새겨 들을만 하다. 

저자는 우선 자기 몸을 위로 하고, 규칙적인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힘든 자아를 위로할 수 있는  공간에서 쉬도록 하고, '기분 전환 속옷' 을 입어 보라는  저자의 제안은 신선했다.    

 

하지만 저자는 중년예찬’ 이라고 할 만큼 50이 갖는 의미를 지나치게 강한 긍정으로 해석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 같지 않아서 중년이란 시기가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을 것이다.

마치 공자가 말한 지천명이 누구에게나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듯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참조하여 중년의 시기에 스스로 위안하고 행복해 지려고 노력하는 시도는 반드시 필요 할 것으로 보인다.

행복한 부부 생활과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좋은 친구 사귐 그리고 서로 다른 세대 간의 관계속에서 중년의 내가 가져야 할 마음 가짐과 행동들에 대해서는 곱씹어 볼 만 하다.

 

()나 라 무제 (武帝B.C 141~87) 시절 '소무(蘇武: B.C 140~60)'  라는 사람이 흉노의 포로가 되어 바이칼 호수 근처에서 19년간 양을 치며 살았다고 한다.

중국에서 소무는 충절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오랑캐 땅에서 변절하지 않고  19년간 자신의 절개를 지키다가 결국 자신의 나라인 한나라로 돌아 왔기 때문이다.

그 동시대에  소무와 더불어 이릉(李陵B.C ? ~74)   이란 사람도 있다

이릉 역시 흉노의 포로가 된 한나라 장수 였지만 그는 소무와는 달리 한나라에 돌아가지 못하고 평생을 흉노의 땅에 살다가 죽었다

흉노에게 사로 잡힌 이릉을 변호하다가 사마천(司馬遷: B.C 145~86)이  한무제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결국 궁형을 받게 되었다는 그의 일화는 사기에 남아있다

소무는 양을 돌보며 살아야 했고이릉은 흉노선우의 사위가 되어 살아야만 했었다.

 

내가 타지에서 25년이란 시간을 보내고 보니 시대를 넘어선 그들에게서 막연한 동병상련(同病相憐)이 느껴진다.

물론 나를 그들과 비교 한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은 일이지만 이국 땅에서 머물고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나 역시도 어쩌면 그들처럼 삶의 포로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운명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나의 의지는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미래는 정말 알 수가 없다.

 

우리나라 평균 기대 수명이 남성은 86세라고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인생 중  전반 25년은 한국에서 살았고후반 25년은 외국에서 살았다그렇다면 앞으로 내게 36년의 기대 수명이 남았다고 가정할 수 있다.

(물론 그 사이 사고사나 병이 없이 무탈하게 살게 됨을 바래야 겠다.)

남은 생애를 다시 반으로 나눠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50대와 60대를 보내고 싶다.

내면을 성찰하여 지혜로운 중년이 되고 싶고 슬기로운 노인으로 늙고 싶다.

나는 소무처럼 결국엔  내 나라로 돌아가게 될 것인가

아니면 이릉처럼 평생 벗어나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나도 내 앞날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어쨌든 50대는 내 인생의 마지막 희망을 주는 시기임에는 틀림이 없다.

 

누구도 물어 보지 않고 불러주지 않았던 내 이름을 찾고 존재의 숨을 불어 넣기 딱 좋은 때를 맞았습니다. - P11

여행도 마음 떨릴 때 가야지, 다리 떨릴 때는 못 갑니다. 아이들이 독립하는 그 시기가 정확하게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기 딱 좋은 시기입니다.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독립은, 건강한 분리의 과정입니다. - P80

자녀가 부모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고맙다‘는 말이었습니다. "잘 커줘서 고맙다", "잘 살아 주어서 고맙다" 같은 말을 원했습니다. 더불어 ‘자랑스럽다‘는 말도 듣기를 원했습니다. - P84

나이 든 사람들이 가진 콘텐츠의 특징은 굉장히 다채롭다는 것입니다. 지식이든 연애든 건강이든 인생에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듯 나이 듦에도 다채롭고 다양한 영역이 필요합니다. - P143

중년이 되면 의무 속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영미 시인이 ‘서른, 잔치는 끝났다‘ 했지요. 하지만 저는 중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잔치가 시작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변화를 꿈꾸고 실행하면서 중년의 진정한 자유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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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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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사서(四書)

지은이옌롄커(阎莲科)문현선 옮김

  인간 본성(本性)과 신성(神性)에 관한 이야기서랍 속에서 빛 나는 금서(禁書)

 

두보(杜甫:712~770)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로 시작 한다

호우지시절이란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라는  뜻이다

요즘 나에게 좋은 비는 '좋은 책'이다..  

호책지시절(好冊知時節), 때를 알고 읽게 되는 '좋은 책이라...

지금 내게 시의적절하게 꼽을 수 있는 좋은 책은 바로 옌롄커(阎莲科 <사서(四書이다.

사실  옌롄커 작가의 <사서>는 좋은 책 이라기 보다는  '금서(禁書)' 로 알려진 책이다.

<나쁜 책  금서기행> (김유태)의 서평을 참조 하자면  <사서>의 작가 옌롄커는 '서랍문학'의 작가로 불려진다. (사실 이 부분 때문에 읽게 되었다금서라 하면 오히려 더 끌리게 되는 게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서평에 따르면 '옌롄커의 작품은 서랍 밖의 세계를 향하지만 금지된 책이 되어 버려 결국은 서랍 속에 갇혀 버리기 때문에 그의 문학 작품을 '서랍 문학'이라 일컫는다고 했다

그의 작품들 중 <사서>를 포함하여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딩씨 마을의 꿈등 그가 써냈던  8개의 작품이 중국에서는 출판 금지가 되었다

작가 입장에서 쓰는 작품마다 출판 금지가 되어 버리니 수입이 없어져 환장할 노릇이긴 할 텐데 다행히 <사서>는 세계 20개국에 판권이 팔렸다고 한다.

옌롄커에 의하면  '금지된 책이라는 낙인이 찍힌 책이 위대하다고 보증 할 순 없지만 비참한 현실을 사는 작가의 작품이 한번도 금서가 되지 않았다면 작가의 진실성에 의심을 받게 된다'  고 했다.

그의 말처럼<사서>는 작가의 진실성을 담은 소설이다

진실성이 담긴 소설이라면 나의 기준으로 보면 분명 '좋은 책'이다

이 '좋은 책' <사서>는 어째서 중국에서 '금서'가 되었을까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중국의 대약진 운동(大躍進運動시기이다

우리나라에서 출간 된 (자음과 모음 출판사)  책의  작가 소개란에는 <2011년 출간된 사서(四書)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에 이루어진 지식인 탄압을 다루는 비판적인    내용으로 인해 자국내 출간 금지를 당했다고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보니 문화대혁명 배경이 아니고 대약진 운동시기(1958~1962) 임을 알 수 있다.내가 보건대 이건  출판사 측의 명백한 오류다. (물론 내가 이런 주장을 한다고 수정해 주지는 않겠지만....)

 

문화대혁명은1966년부터1976년 까지  10년 동안에 진행 된 중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이다.  중국의 역사를 4000년이나 퇴보 시켰다고 평가되는 실패한 혁명운동이다

그 보다 앞선 대약진 운동(1958~1962)이  실패로 끝난 4년 후 마오쩌뚱(毛澤東 1893~1976)을  신처럼 신봉(信奉)하는 어린 홍위병들에 의해 중국의 전통과 문화 유산 전부를 파괴되는 시기가 바로 문화대혁명인 것이다

현대 중국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하는 두 개의 사건은 선후(先後관계가 명확하다.

다시 말해 대약진 운동이 먼저 발생했고, 4년 뒤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것 이다.

그렇다면 대약진 운동이 왜 먼저 발생 하였는지 알려면 우선 당시 중국의 상황을 이해 해야만 한다.

때는 50년대 중반소련의 스탈린(1848~1953) 사후(死後중국과 소련의 관계는 묘한 경쟁 의식이 싹텄다.  

먼저 소련의 주석 후루쇼프(1894~1971)  소련이 15년 안에 미국의 경제력을 능가하겠다는 선언을 한다

이는 소련이 바로 사회주의 종주국의 면모를 보여 주겠다는 뜻이 된다.  

그러자 중국 공산당 최고 권력자 '마오'(마오쩌둥)는 곧바로  "우리는 7년 안에 영국을 초월하고  15년안에 미국을 따라 잡겠다(七年超英,十五年)"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다.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1958년에 대약진 운동이 시작 되었다. (1958년은 책의 저자 옌롄커가 태어난 해 이기도 하다)

서방의 선진국을 따라 잡겠다는 목표를 위해 중국 공산당은 야심 찬 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을 요약하자면 1단계는 농업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이고, 2단계는 철강 생산성을 압도적으로 높이는 순서로 진행하고자 했다

그래서 목표 달성을 위해서  '크게(도약()하여 나아가자(는 뜻의 약진(躍進)을 붙여 '대약진 운동이라 이름을 내세운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대약진운동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고 수치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2500만에서 5000만명의 아사자(餓死者)가 발생즉 너무나 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 버렸다.  대약진 운동은 문명의 대퇴보(大退步)인 문화대혁명의 화려한 오프닝이었다.

 

농작물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 보다는 공산당 간부들 끼리 경쟁적인 허위 보고와 조작이 우선이었다.  또한 공업국이 되기 위한 철강 생산도 다르지 않았다주먹구구식으로 만든 용광로는 강철이 아닌 형편없는 품질의 철을 생산했다더구나 용광로의 불을 때우기 위해 무분별한 벌목으로 인해 곧 홍수와 가뭄을 불러 일으켰다이러한 과정으로 인해 대약진 운동은 결국 국가적 재앙으로 끝 나고야 말았다.

소설은 이러한 대약진 운동이 전개 되었던 흐름의 순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소설의  무대인 위신구(育新區새롭게 교육 시키는 지역는 교화가 필요한 전국 각지의 지식인들을 모아 노동 갱생(更生)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창살 없는 감옥이다.

황허 강변에 위치한 위신구에는  모두 99개의 구()가 있고 그 중 99번째 구 99구에는 127명의 지식인들이 수용 되었다

실제로 당시 마오는 공산당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사회전반에 걸친 숙청 작업을 벌였었다.  그러한 과정 중에 당()간부를 비롯한 사회의 지식인들을 죄인으로 만들었다

소설에서는 숙청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으나 지식인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죄인이 되어  위신구에 오게 된다.  특이한 점은 위신구에 온 죄인 지식인들의 구체적 이름이 없다는 것이다.  지식인들은  그저 작가학자음악종교실험의사 등으로 자신이 대표하는 분야를 이름 삼아 서로를 부른다

이 점은 작가가 정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뒤에서 설명 하겠다

위신구 99구에 수용된 지식인들을 관리하는 이는  '아이이다

아이 또한 이름이 뭔 지몇 살인지왜 위신구를 관리 하는지소설에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아이는 소설 속의 주인공에 가깝다소설은 대약진 운동속에서 99구에 속했던 아이와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모두 4권의 책에 나누어  써낸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 제목이 <사서(四書)>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사서 중 첫 번째 권인 <하늘의 아이는 아이를 중심으로 전개 된다

아이가 등장하는 첫 부분은 마치 성경속의 창세기를 연상케 한다

아이는 위신구에 오자마자 지켜야 할 십계명을 지식인들에게 선포했다

아이가 지식인들 보다 분명히 어리고 사회적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식인들은 모두 아이에게 복종한다가끔 지식인들이 아이의 요구를 거부 하거나 반감을 표하기도 했다그럴 때 마다 아이는 자신의 목숨을 내걸었다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죽이라고 명한 것이다온전히 자신의 목숨을 거는 아이에게 지식인들은 결국엔 복종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는 그들을 무자비하게 다룬 것은 아니었다한번도 그들을 향해서 자신의 권력을 부당하게 남용하지 않았다.  

그러한 아이가 가진 힘은 마치 신성불가침한 영역에서 나오는 듯 하다.

'일이 그렇게 이루어 졌다' , 아이가 바라는 모든 일들은 그렇게 이루어 내었다

 

두 번째 권과  세 번째 권인 <옛길> <죄인록은 소설 속 '작가'가 쓴 책들이다

작가는 아이가 상으로 주는 붉은 꽃 송이를 받기 위해  99구에 수용된 지식인들을 몰래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누구든지 붉은 꽃 송이를 모아서 다섯 개의 별 모양의 상을 받아야만 99구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 갈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기 위해서 작가는 동료 지식인들을 감시 고발하는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상부에서 정한 제목의  <죄인록>를 통해 작가는 아이에게 지식인들의 죄를 보고했다

사실 죄라고 해야 별 다른 큰 죄도 아니다.  지식인들이 감춰둔 책이 있다는 정도 였다.

그러나 사실은 지식인들에게 책의 의미는 간단치 않다

소위 먹물로 불리는 지식인들이 내세울 수 있는 자부심은 물질적인 성취에 있질 않다

먹물들의 세계에서 책은 그들이 살아가는 의미라고 말 할 수 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1905~1997) 박사는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자신의 원고를 빼았겼다는  것에 분노 했다.  수용소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보다 그는 자신이 쓴 논문에 대한 애착이 더 강했다.  결국 박사는 원고를 다시 쓰기로 마음을 먹게 되는데 이러한 점이 그가  최후까지  살아 남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지식인들에게 책은 지식의 원천이며 자신들의 삶의 근원이다이들에게 책을 뺏는다는  것은 그들의 근원을 뺏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본다.  책은 지식인들의 정체성이였다.

지식인들은 결국 자신의 책을 모두 아이에게 내 놓게 된다

하지만 각자 그들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책들은 모두 몰래 꽁꽁 숨겨 놓는다

<죄인록>을 쓰는 작가 조차도 자신만의 글 <옛길을 철저히 숨기며 몰래 쓴다

그들은 정체성을 뺏앗긴 채  농작물을 재배하고용광로에서 철을 생산하며 시대의 요구에 순응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사서>는 지식인의 탄압을 비판한 것이다라고 하는 출판사의 소개는 맞는 듯 해 보인다하지만 나는 그것 때문에 이 책이 금서가 된 것은 아니라 본다

 

대약진 운동 사업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곧 자연 재해로 인한 대기근이 밀어 닥쳤다. 99구에서도 이러한 대기근을 피해갈 수 없었다식량은 바닥났고 들에 있는 풀까지 뜯어 먹어야 했다볶음 콩 한줌을 얻기 위해 종교는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성모 마리아 그림을 발로 짓밟았 버렸다.  음악은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인 학자 몰래 자신의 몸을 팔아야 했다

그 외에도  뭘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신었던 가죽 구두와 메었던 가죽 허리 띠 마져 앂어 먹으며 살아 남아야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굶어 죽게 되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 갔다.  

99구 사람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굶어 죽은 사람의 시체까지 손대기에 이르렀다.

배에 구멍을 내고팔 과 다리를 뜯어내 삶아 먹는 처참한  인간의 본성(本性)을 여과없이 드러냈다.그렇다면 이러한 인육을 먹는 끔찍한 장면 때문에 이 책이 금서가 되었는가?

아니난 그것도 아니라고 본다.

지식인 탄압도 아니고인육을 먹는 충격적인 장면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책은 금서가 되었을까

 

대기근이 닥친 후 상부에서 그것도 아이가 정말 가고 싶어했던 도성의 상부베이징에서 높은 사람이  99구에 찾아 왔다

그 상부는 굶주림을 견디고 있는 99구 사람들을 보며 무릎을 꿇고 머리를 세번 조아리며 말한다.

"국가가 여러분을 필요로 합니다여러분이 굶어 죽으면 국가도 굶어 죽어야 합니다어떻게든 무슨 방법을 써서든 살아 주십시요. "

그는 눈물을 흘리며 "국가가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 라고 연이어 말하며 떠난다

소설에서 등장하여 '살아만 달라고국가가 죄송하다는 말한 사람은 아마도 내가 보건데 쩌우언라이(周恩來:1898~1976) 이거나 류사오치(柳少奇: 1898~1968) 일 것 같다.

쩌우언라이는 당시 중국의 총리였으며 누구보다도 마오의 실정(失政)을 수습하고자 노력했던 가장 대표적인 국가 지도자 였다

류사오치는 대약진 운동 이후 마오의 뒤를 이어 제 2대 국가 주석이 된 사람이다

그는  주석이 된 후 마오가 주도한  대약진 운동의 실패를 통렬히 비판하며 마오를 뒷 방 노인네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댓가로  그는 그 뒤 찾아오는 문화대혁명 시기 마오의 사주를 받은 홍위병들에게 조림돌림을 당해야만 했다

소설에 등장한 상부 인물의 의미는 무소불위와 같은 마오의 신성(神性)이 잘못 되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결국 '모든 게 국가 탓이다는 상부의 말은 진실이었다

 

대기근 끝자락에 아이는 학자의 도움으로 꿈에 그리던 북경의 상부에 갔다가 겨우 돌아 왔다.  그렇게  돌아온 다음날 아침 아이는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혀 붉은 피를 흘리며 죽어 갔다.  종교에게 성모마리아 그림에 오줌을 누라고 조롱까지 했던 아이가 어떻게  예수님처럼 죽어 간 것일까?   그에 대한 이유는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기독교의 가장 큰 메세지중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이라고 한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은 예수님께서 죄를 지닌 인간을 대신하여 벌을 받는 것임을 뜻한다.

예수님께서는 인류가 지었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인류를 구원하기에 이르신다는 것이다.  

아이는 예수님의 대속과 같은 모습으로 자신은 십자가에서 죽어가며  살아 남은 44명의 지식인들을 99구 에서 떠나라고 말한다

또한 아이가 받아 두었던  지식인들의 책을  도로 가지고 떠나라고 말한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니며 책을 돌려 줌으로써 그들의 정체성을 되찾게 해주었다. 

이로써 일이 그렇게 이루어지게 한 아이는  진정 하늘의 아이’ 가 되었다.

결국 아이는 99구 사람들의 죄가 아닌 공산당의 죄를 대신 속죄하는 의미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으로 해석 되어 진다. 이는 곧 아이가 마오의 신성(神性)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신성(神聖)을 받아들인 것이라 볼 수 있다.  아이의 거듭남이다.

따라서 <사서는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받아 들일 수 없는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체제에서 인간의 본성(本性)에 관한 문제는 용납이 가능하다

더구나  4000만명이 굶어 죽어도 그들 체제 안에서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안된다.  

그러나 공산당에 대한 신성은 불가침한 영역인 것이다.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보는 공산당 입장에서 기독교의 신성과 공산당의 신성은 공존 할 수 없는 것이다이건 도저히 용납 할 수 없는 사상적 문제가 된다.

이는 곧 국가 지배 체제 근간을 뒤흔들어 놓는 내용인 셈이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로 <사서>  중국내에서 출판이 금지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마지막 권에 해당 되는 <시시푸스 의 신화>는 짧게 언급된다

끝없이 돌을 굴려야 하는 시시푸스의 형벌도 결국엔 순응하고 적응되면 더 이상 형벌이 아니게 된다어쩌면 중국의 인민들은 신화 속 시시푸스처럼 불합리한 체제에 쉽게 익숙해지고 그 부당한 체제에 순응 하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러한 지금 중국의 현실을 옌롄커는 신화를 들어 비판 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현실이 과연 중국에게만 해당 되는 문제인 것인가

 

이처럼  <사서>에는 많은 상징과 질문을 담고 있다

서랍속에서 빛나는 금서 <사서는 내게는 '좋은 책'으로 남을 것이다

2016년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로  멘부커 상을 받을 당시 최종적 결승 심사에 오른 작품이 바로 옌롄커의 <사서>라고 한다.

그 당시 어쩌면 한 끗 차이로 상의 주인이 달라 지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 추야책희( 秋夜冊喜)   가을 밤 책 읽는 기쁨이여,

호책지시절(好冊知時節)  좋은 책은 시절을 아는 구나.


당신은 책을 쓸 수 있다. 생각과 바람이 현실이 될 수 있어.
상부에서 <죄인록>이라고 책 제목도 미리 정해 주었다. - P29

아버지가 없는데 그 어머니가 어떻게 예수를 임신 했는지 설명할 필요 없다. 일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 P234

총을 쏴라. 나를 쏴 죽이면 당신은 강철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냥 가슴을 관통시켜 내가 앞쪽으로 쓰러지게만 하면 된다. - P278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한 것은 학자와 음악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빌려 내 머리속의 가시를 뽑기 위해서 였음을 알았다.
감격스럽고 따스해지면서 그들이 나를 구한 것 같이 느껴졌다. - P478

그러다가 느릿느릿 일어나 나를 보고 한참을 아무 말 않다가 허공과 광야를 향해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지식인아..... 지식인......"
그의 얼굴에서 눈물이 아련하고 탁하게, 당시의 시절과 굶주림만큼 감당할 수 없게 흘러내렸다. - P479

내 숙사로 가서 필요한 책을 가지고 떠나라. 나를 떠나라. 다만 부탁이니 나를 십자가에서 내리지 마라. 오래도록 태양을 쬐도록 하라. 꼭, 꼭 기억해라. 햇볕에 두라는 내 말을 꼭 지켜라. - P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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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송세월 - 김훈 문장 엽서(부록)
김훈 지음 / 나남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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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허송세월

지은이김 훈

  :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기- 밥과 똥 그리고 죽음

 

어느 도() 통한  선사(禪師)에게  수행자 한 명이 찾아 왔다.

스님, 요즘  생활이 어떠 하십니까?

나야, 잘 먹고  잘 싸고 잘 잔다. 그게 전부다.

수행자는 미소를 지으며  합장을 하며  물러갔다.

 

이 간단한  일화는 선불교에서 유명한 '()' 에 관한 이야기다.

보통  도()'라고  생각하면 높고 고상한 경지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도에 이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직  가리고 택하는 마음만 꺼리면 된다. '고 승찬대사(?~606) 는 말했다. (至道無難  지도무난  唯嫌揀擇  유혐간택-  신심명(信心銘) 중에서)

또한 '평상심(平常心) 이 도' 라는 말도 있다. 바로 평범한 일상생활 중에 도가 있다는 것이다.

생활  중에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면  그게 바로 도에 부합되는 삶이란 것이다.

이번에  읽은 김훈 작가의 산문집 <허송세월> 이 바로 그런 경지를 보여주는 글이 아닐까 싶다. 바로  이 책에는 잘 먹고, 잘 싸고 , 잘 자며잘 늙어가는 작가의 면목을 잘 드러냈다.

 

나에게  김훈작가 하면 바로 떠오는 것이 <칼의 노래> 이다. 그리고 뒤따라 연상되는 것이 탄핵정국이다.

지금으로  부터 20년 전,  2004년은  ()노무현  대통령(1946~2009)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이 된 해이다.  당시의  '대통령  탄핵'  은 한마디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탄핵의  소용돌이 속에서 노 대통령은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으며 마음을 달랬다고 했다.

임진왜란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서  홀로  힘겨운 싸움을 하는 이순신 장군의 입장과 감정적으로  이입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탄핵정국 시기에  <칼의  노래>는 노대통령과 연관되어 지면서 당시 서점가에  돌풍을 불러 일으켰다.

마치  지금 한강 작가의 작품이 노벨상으로  큰 이슈가 된 것 처럼 당시의  김훈의  <칼의 노래>는  사회적 열풍이었다나도 그때 사회 분위기에 따라 읽게 되었다.

그러니  김훈작가 하면 <칼의 노래>가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1948년 서울 출생이다. 두 살  때 전쟁이 났다중략내 엄마는 나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중략…. 나는 엄마와 분리되지 않았고 죽지 않았다. 엄마는 늙어서 정신이 혼미해졌을  때도 6.25 때 피난 가던 얘기를 자주 했다.

훈아, 그때 내가 너를 어떻게 업었는지 아니.” 엄마는 포대기 끈 묶는 시늉을 했다. 나는  울었다. >

 

<밥과  죽음이 섞어 있는 자리를 향해서 밥 없는 사람들은 가고 또 간다. 살려고  먹는 밥숟가락 속에 죽음이 들어 있다날마다  거듭되는 죽음이 빤히 보이는데 동료 인간의 목숨을 유예하는  조건으로 공장을 돌려서 나의 밥을 먹고, 내게 재수 없으면 나의 목숨을 동료 인간의 밥의 토대로 바쳐야  한다면 이런 밥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밥이 아니다. > (세월호는 지금도 기울어져 있다)중에서

 

1948년 이면 쥐띠 생이다. 내가 사회에서 친분을  나눌 수 있는 쥐띠는  72년생 까지가 한계다.  72년생  쥐띠는 나에게는 형님 뻘이지만 48년 쥐띠의  김훈 작가는 나의 부모님 뻘이나 된다.  

작가의  나이에 새삼 놀랐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면,  소독약  냄새 풍기는 젊은 의사는 나를 '어르신'이라고  부르고 더 젊은 간호사는 날 보고 '아버님' 이란다.  나 뿐만 아니라 늙은이를 보면 닥치는 대로 '아버님'이다. ...중략.... 복도에  대기자가 많으면 김 아버님, 박아버님이라고 불러댄다. 이런 호칭을 들으면 모욕을 느끼지만, 아프니까 별 수 없이  병원에 간다. 내가  젊은 간호사를  "딸아" 라고 부르면 나를 미친 늙은이로 볼 것이다> (말년) 중에서.

 

그는  이제 몸이 아파 병원엘 가면 아버님 취급 당하는  것에  모멸감을 느끼는 늙은이가 되었다.  

그런  그가 자신과 엄마가 분리 되지 않고 살아 남은 기억속에서 작가는 '고박'을 끄집어 낸다

고박(固縛)이란  포대기 끈을 자로 묶는 방식으로 영어로는 '레싱(lashing)' 이고 화물을 묶을 때 사용하는  묶음 법이다.  

작가는  엄마의 포대기에 쌓인 채 오줌을 누었던 어린 시절 고박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여 삶과 죽음을 함께 묶는다

세월호 참사와 경부고속 도로 건설에 희생된 산업전사들 그리고  현대  산업화된  노동 현장속에서 대책 없이 재해를 당하는 사회의 현실을  고박과  연결 시켰다.  

 

책을  읽으며 탄복한 점이 있다.

문장은  간결하지만 사용하는 언어는 김훈식()의 독특한 화법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김훈식이라 표현하자면 좀 이상하지만  단어와 조사를 재 구성하여 의미가 남다른 문장으로 변형 시켜 버린다그것은 평범한 문장이 뜻 깊은 문장으로 확 바꿔져 버린다

마치 언어와  문장의 연금술을 보는 것만 같다.

 

<국보는  박물관으로 가지만, 생활은 박물관으로 가지 않는다. 생활은  국보에 미달하면서 국보를 넘어서고, 국보로 지정되기를 소망 하지 않는다.> (박물관의 똥 바가지) 중에서

 

<4천 원이나 5천 원 짜리 밥을 먹는 거리에서 '보이지 않는 손'  '보이지 않는 몽둥이' 이거나  '보이지 않는 쇠사슬' 이다. > (먹기의 괴로움) 중에서

 

작가가  사용하는 이러한 문장을 이해하는 내 자신이 갑자기 똑똑해졌다는 착각을 느끼게 된다.

단지  몇 개  단어와  조사를 가지고 의미가 함축된 문장으로 만들어 내는 경지는 나에게는 신기와 같다. 역시 작가는 작가다.

일상에서  보고 듣고 행하는 모든 것이 작가의 사유를 거치며 의미있는 글로 변한다.

민속  박물관의 똥 바가지를 보거나, 가야 토기에 난 구멍을  보면서모화나무 위의 둥지를 튼  새를 지켜보고대중 식당에서 혼밥과 혼술을 하면서, 이제는 노년의 상대가 된 햇볕을 쬐면서, 수능 저녁 텅 빈 학교 운동장에서 울고 있는 학생을 지켜보면서 심지어는 혼수상태에 빠진 병원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 보면서 까지 작가 특유의 사유는 작동된다.  

 

<죽지  않은 자는 죽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알 수 없고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알 수 없으므로, 인간은  죽음을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설명 받을 수 없을 터인데, 그날  밤의 혼수상태 속에서 나는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경험할 수 있었다.>(다녀온 이야기) 중에서

 

<백제  장인들의 흙 물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그들의  손이 수제비 반죽을 만들던 내 어머니의 손과 같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반죽에는 어머니의 이름이 붙어 있지 않고, 어머니라는 생명이 반죽 되어 있다.> (수제비와 비빔밥) 중에서

 

김훈  작가는 밥을  특히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산문에는 먹는 것과 관련 된 소재들이 많이 나왔다.

지금의  그에게 글은 밥이 되었다. 글로 밥에 대해 쓰고 글로 벌어 먹으니 그에게 글은 밥인 것이다. 더불어 밥을 먹고 싸는 똥은 또 다시 그에게는 중요한 밥벌이 소재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자욱한 똥 냄새 속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이 똥 냄새 속에서 나는 밥과 똥의 순환이라는 운명을 알았고, 이 순환고리가 끊어지면 죽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인생의 냄새 )중에서

 

밥과  똥과 그리고 죽음. 그에게 이것은 화두였다.

그에게  글쓰기는 밥과 똥과 그리고 죽음 이란  화두를 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곧 먹고  싸고 자는 행위가 그에게는 글쓰기이며 도에 이르는 삶인 것이다.

결국 작가에게 글과 밥은 둘이 아니였다. (文飯不二 문반불이)

 

<노스님의  말씀을 참으로 두려워 했기 때문에 담배를 멀리 할 수 있었다.  나의 금연 노력은 모두 실패했고, 두려움만이  성공했다...중략...중생의  어리석음은 한이 없는데, 나는 이 어리석음과 더불어 편안해지려 한다.>(늙기의 즐거움) 중에서  

 

<두봉  주교는 자주 웃고, 크게 웃는다. 두봉  주교의 웃음 소리는 깊은 산속의 시냇물 소리를 닮아 있다. 맑은 소리가 잇달아서 흘러간다. 두봉  주교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의 몸속에서 기쁨의 엔진이  작동하고 있으리라는 느낌이 든다.> (주교님의 웃음소리) 중에서

 

작가가  50대 중반 시절까지 끊지 못하던 담배를 노스님의  '내가 안 피우면 끊는 거다' 라는 단순한 말 한마디가 가슴 속 화두가 되어 결국 60대 중반에 담배를 끊게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인 주교이신 두봉(杜峰) 주교님(1929~   )의 웃음 소리를 들으며  기쁨에 동화가 되어지는 작가가 겹쳐 보인다.

밥 잘 먹고, 똥 잘 싸고, 잠 잘자는 경지에 이른 작가는 이제는 노스님과 두봉 주교님과 같은 노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지도 모르겠다. 

허송세월  속에서 늙음을 즐기는 작가의 글을 읽고 난 후, 나도 그렇게 늙어 가고 싶다.

 


소주. 아아! 소주. 한국의 근대사에서 소주가 정신의 역사와 대중정서에 미친 영향을 사회과학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가공할 소비량에도 불구하고 소주는 아무런 아우라를 갖지 않는다. ...중략... 소주는 아귀다툼하고 희로애락하고 생로병사하는 이 아수라의 술이다. 소주는 인간의 기쁨과 슬픔, 소망과 좌절을 멀리 밀쳐 내고 또 가까이 끌어당겨서 해소하고 증폭시키면서 모두 두통으로 바꾸어 놓는다. - P14

새가 알을 품어서 새끼를 깨워 내고, 아득히 먼 곳에서 호롱불처럼 깜박이는 생명을 가까이 불러와서 형태를 부여해 주듯이, 나는 나의 체온을 불어 넣어 가며 단어와 사물들을 품어 본 적이 있었던가 - P70

일자리가 모자라서 밥 먹기 어려운 시대에 밥 없는 사람들을 밥으로 겁박하면, 사람들은 밥과 죽음의 기로에서 밥먹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다.밥과 죽음이 섞여 있는 자리를 향해서 밥없는 사람들은 가고 또 간다. - P122

손잡이가 없으면 연장이 아니다. 손잡이가 있어야 인간은 세상을 다룰 수가 있다. - P189

지금 한국 사회의 문명화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은 소통 불가능한 언어의 창궐입니다. 지금, 언어는 소통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을 완성해 가고 있습니다. - P289

똥 바가지는 전쟁의 야만성을 생활 속으로 용해시키면서 웃음 띈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느 산악고지 참호속에서 전사한 병사의 넋이 생활용구로 변해서 돌아온 것이라고 나는생각했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 나는"생활은 크구나"라고 글자 여섯 개를 썼다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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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11-11 1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조금씩 읽고 있는 책입니다.
워낙 김훈 작가의 문장을 좋아하는데, 이 책이 늙음에 대한 것이 많아 공감하며 읽고 있어요^^

마힐 2024-11-12 12:08   좋아요 1 | URL
아, 페넬로페님도 읽고 계셨군요. 저도 나이가 들어가니 늙어감과 죽음에 대해 점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더라구요.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만 잘 해도 잘 사는 거라는 걸 이제 좀 알게되었어요. ㅎㅎ 페넬로페님, 추워지는 날씨 감기 조심하세요~
 
쉽게 읽는 백범일지
김구 지음, 도진순 엮음 / 돌베개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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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쉽게 읽는 백범일지

지은이김구/도진순 엮음

  : 백범의 소원과 우리의 소원


                       

                           <1>

아라비안  나이트속의 알라딘이 램프를 문지르면  램프의  요정 지니가  연기처럼 피어 올라 나와 소원을 말하라고 한다.  알라딘은  램프의 요정 지니를 통해 세가지 소원을 성취한다.

어릴  때,  나는  알라딘 램프의 소원 이야기 보다 동화속에 나오는 어리석은 나무꾼의 세가지 소원의 교훈이  더 기억에 남았다.  

어쩌면 나도 나무꾼처럼 쏘세지를 코에서 떼는데다  귀중한 소원을 낭비 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소원을  멍청하게 함부로 빌지 말아야지.  

누가  들어줄지도 모를 소원 세가지를  나 혼자서 심각하게 고민 했던 적이 있었다.

만약에  나 한테 알라딘 램프의  요정이 나타나서 소원을 빌라고 하면 나는 뭐라 해야 할까?

아주  큰 부자가 되는 것?  이쁘고  좋은 사람 만나는 것무병장수 하며 사는 것?

그런데  만약 램프의 요정 보다도 훨씬 스케일이 크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소원을 빌라고 한다면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까?


지금으로 부터  약 80년 전 백범김구(白凡金九:  1876~1949)선생은 하나님께 세가지 소원을 말 했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으로 시작 되는  <백범일지> , <나의 소원>에서  백범선생은 세가지 소원을 말한다. 그런데 그는  모두 다 똑 같은 바램을 말했다.  

"나의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한 두개는 다른 걸 빌어도 되지 않았을까? )

개인의  부귀영화가 아닌 우리나라 독립을 말하는 스케일을 보면 범부인 내가 생각하는 소원과는 차원이 달랐다.

어릴  때는 김구선생이 바라는 대한독립을  단순히  일제 치하에서 독립하는 것 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서야 읽게 된  <백범일지>를 통해 그가 바랬던 대한 독립은 단순히 일본에게서 나라를 되찾는 것만 뜻하는 것이 아니 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그가 진정으로 바랬던 대한 독립은 실제로는 이루어 지지 않았다.

우리 나라는 남한과 북한이 갈리는  분단 국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린 아직  '통일 대한민국'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란 노래를 부르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는 백범 선생님과 우리의 소원을 언제쯤 들어 주실 려나?


      <2>

보통  10월은 문화의 달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올해 2024년 시월은 예년에 비해 더욱 뜻 깊고  의미 있는 날들이 많았다.

먼저  101일은  국군의 날 사열 행사를 통해 우리의 국방력을 세계에 알리는 하루 였었다.

광화문  광장 상공 위로 전투기가 날아 다녔고현무-5 미사일이 위용을 드러냈고, 대한민국 군인들의 절도있게 행진하는 모습을 이순신 장군께서 큰 칼 옆에 차고 지켜 보고 계셨다.

그 뒤로 10 3일은 개천절, 하늘이  열리는 날이었다. 이번에 <백범일지>를 보고 알게 됐는데 원래 개천절은  1949년 이전에는  음력 10 3일 이었다고 한다.

단군  할아버지가 나라를 세운지  4357년이나  되었는데 이제서야 세계 무대에서 우리나라가 점차로 중심이 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10 9일은  한글날.  요즘 방송에 나오는 외국인들의 한국어를 구사 능력을 들어 보면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수준이 높아져 깜짝 놀랐다.  얼굴을 보지 않고 말만 들으면 한국인이  말하는 것과 전혀 분간을 할 수가 없을 정도다.

원래  우리나라 말이 외국인들이 배우기가 쉬운 언어 였었나?  우리말과 글을 너무도 쉽게 배울 수 있다니.  세종대왕님의  위대함은 시간이 갈 수록 높아만 가는 것 같다.

바로  그 다음날, 10 10 저녁,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소식을 들었다.

,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노벨상을 받는 날이 오다니….

그동안  노벨상을 받는 나라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워 하고 우리나라는 언제쯤 받을까 하며 한숨 내 쉬는 일이 없게 되었다. 이것은 노벨 문학상을 탄 한강 작가의 개인의 영광을 넘어서  대한민국의 경사가 된 것이다.

앞으로는  우리나라가 물리학이나 의학, 경제 같은 다른 분야에서도  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10월 하순부터는  블랙핑크의 '로제' 와 미국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 부른 <아파트>가 세계적인 히트를 치고 있는 중이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에 콩글리쉬 발음 'APT'가 그대로  불려지고 또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한국식  음주 문화도 유행 되어지고  있다.

10월은 정말이지 대한민국 '국뽕'  맛을  제대로 보여주는 달이 되었다.

이쯤  되면 '한류(韓流)'  세계적 주류(主流)에 들어가서 이제 곧 일류(一流) 가 될 것 같다

앞으로 한국의 물결은 주류로 흘려 들어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룬다고 예언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류즉일류, 일류즉한류 !(韓流卽一流, 一流卽韓流 한류가 곧 일류다!)


사실  지금은 한류라는 용어보다 ‘K’ 를 붙여 K- pop, K- 드라마 , K- 영화 등 우리나라 문화 예술을 상징하는 용어로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원래  한류는 90년말 밀레니엄이  다가 오는 시기에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유행하기 시작한 우리나라 문화 콘텐츠들을 말한다. 그 당시 전성기였던  장동건, 안재욱, 김희선  같은 1세대 한류를 주도했던 사람들의 아시아에서 인기는 지금의 BTS 급이었다.

내가 중학생  때인 80년도 후반만 해도  홍콩의 스타들이 신드롬을 일으키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급기야는 주윤발과 장국영, 왕조현 같은 배우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CF광고를 찍기까지 했다.

그 뒤로 약 10년 만에 상황은 역전되어 한류가 아시아 전체로 유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류  현상은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이 아니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계속 진화를 하고 있는 중이다.  영화, 드라마, 노래 뿐만 아니라 지금은 전방위 문화와 산업 분야로 확산 되고 있다.

이제는  이제껏 한류를 주도했던 영상과 노래 같은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분야를 넘어선 문화와 연결된 산업으로 까지  전 세계인이 좋아하는 문화 콘텐츠들을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백범일지> <나의 소원> 에서 백범은 우리나라가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부강한 나라가 되기 보다 오직 한 없이 가지고 싶은 문화의  힘을 가지길 원했다.

그는  왜 부강한 나라 보다 문화의 힘을 더 원했을까? 문화의 힘으로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남에게도  행복을 주고 싶어했기 때문이라 했다.

이제  당신이 그토록 바랬던 문화 강국이 된 우리 대한 민국의 지금의 모습을 본다며 백범선생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실까?  하늘에서  뿌듯해 하지 않으실까?

"우리 민족이 주연 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 앞에 보이지 아니 하는가?"

선생의 외침이 들리는 듯 하다.


 <3>

23년전에 나는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찾아 간 적이 있다.

2000년 초반은 인터넷이  제대로 보급이 안 되었던 시절, 여행 안내 책과 지도를 가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중국인들에게  물어서  겨우  찾아 갔다.

지금의 주소는 상하이 황푸취 마당루, 당시 주소는 프랑스 조계 보창로 309번지,주위에  비슷하게 생긴 낡은 상해식 양옥집은  도로 옆 문 앞에 간판이 없었다면 정말 찾지 못 할 뻔 했었다

처음엔 그 시절 일제의 눈에 띄지 않게 은폐를 위해서 중국인들이 밀집한 거주 지역에 위치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이 초라한 건물이 과거 우리 대한 민국의 임시정부 청사였다니!    나라 없이 살았던  우리 민족의 서글픔이 그대로 느껴졌었다


<백범일지>를 보면 김구선생은 1919, 44세의 나이에 상해로 망명했다.

임시정부에서  문지기라도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는데 선생은 경무국장에 임명된다.

그 후  상해에서 임시정부의 요직을 맡으며 1931(56)에는 한인 애국단을 창단한다,

창단  다음 해인 1932 1 8일 에 '이봉창(1901 ~1932)'의사가 일왕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투척했다. 또 같은 해 4 29'윤봉길(1908~1932)' 의사가 상해 홍구공원(虹口公园)에서 물병 폭탄을 던져  의거를 일으켰다.

 

임시정부  청사건물은 그 시절 상해식 가정집을 사용한 것으로 당시의 물품이나 유품들이 전시 되어 있다. 좁은  공간을 유용하게 사용한 느낌이었다.

건물은 3층 구조로 되어 있는데 마지막 3층 공간에는 별도의 전시관이 마련 되어있다.

임시 정부 관련 문서와 사진들이 전시 되어 있는데 마지막 코스에는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가 거사를 일으키기 전에 남겨둔 사진이 걸려져 있다.

정말 밝게 활짝 웃는 모습의 31살의 이봉창 의사와 , 손에 수류탄을 들고 분연한 모습 속에 엷은 미소를 짓는 듯한  24살의  젊은 청년 윤봉길  의사의 마지막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교과서에서  보아왔던 사진이었지만  이곳에서 보면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들어 버렸다.

사진  속의 두 분을 바라보자 마자 울컥 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속 깊은 곳에서 펑펑 울고 싶을 정도로  서러움인지 안타까움 인지 모를 감정에 북받쳤다.

 


정말  내가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를 정도로 내 안의 울림은 요동을 쳤었다.

나만  이렇게 눈물을 흘린 줄 알았는데 나중에 임시 정부를 방문 했던 내가 아는 지인 분도 나와 같은 경험을 말씀 하셨다. 아마도 한국인이라면 거의 모두가 두 의사분의 사진 앞에서 눈물이 나는 걸 경험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건 무슨 감정 이었을까?


나는  우리 나라 임시정부는 눈물의 정부 청사라고 생각한다.

나라  잃은 서러움과 일제에 맞서 타국땅에서 온갖 치욕을 견디며 살아야 했던 우리 선조들의 한이 맺힌 곳이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근거지 로서 온갖 어려움을 견뎌야 했다. 게다가 임시정부는 내부적으로 민족주의니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하며 서로 다른 사상으로 일치 단결을 하지 못 했던  안타까운 곳이기도 하다.

결국  임시 정부는 서로 다른 사상의 분열로 무정부 상태의 국면까지 치닫게 되었다.

<백범일지> 상권 마지막 부분에는 이에 대한 안타까웠던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단결의  어려움이 그때나 지금 나라가 돌아 가는 상황이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 같아 더욱 씁슬한 마음만 들었다.

우리는 위급할 때 마다 단결하는 민족이라 했는데 왜 우리 정치는 국익 보다 개인의 이해 관계에  따라 집단 이기주의를 내 세우는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항상 우리편 네편으로 갈라서 다투고 있다니. , 안타깝다. 우리 정치인들은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

김구 선생님!  우린, 아직도 이러고 있으니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4>

<쉽게 읽는 백범일지>는 기존 김구선생의  <백범일지>의 원뜻을  훼손하지 않고 엮은이 도진순님이 현대의 대중들에게 쉽고 널리 읽힐 수 있게 이  시대에 맞는 언어로 다시 풀이한 책이다. 일지라고 해서 일지(日誌) 가 아니다.

백범일지에서 '일지(逸志)'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기록한 것' 이라는  뜻이라고 처음 알게 되었다.

또 김구선생의  호 백범(白凡)이란  뜻이 백성, 백정에 쓰이는 백()과 무릇 범()이 합쳐져  우리나라의 평범(平凡)한 백성들을 모두 포함한 의미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반 백년을 살고 나서야 이제 겨우  백범선생의  백범이란 뜻을 알게 되었다니 참으로 부끄럽다.  <백범일지>를 통해 김구선생과 우리 나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던 선조들께 참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은 대한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내 던지셨는데.

역사 교과서 몇 줄의 내용을 외우고 다녔던 것이 전부였던 내 역사 의식이 부끄럽다.


<벼랑에서 가지 잡고 오르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고,(得樹攀枝無足奇)

움켜잡은 그 손마저 놓아야 대장부라 할 수 있으리,(懸崖撤手丈夫兒)>

백범은  청계동에서 만난 스승 고능선(1842~1926)에게 얻은 이 구절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다이 구절은 백범이 치하포 사건 때 일본인 스츠다를 죽이기전 마음속으로 되새겼던 구절이며  홍구 공원 의거를 일으키기 전 윤봉길 의사에게 전했던 구절이다.

한 때  백범이 마곡사에서 출가하여 원종(圓宗)이란 법명을 받아 승려로서 삶을 살았는데 불교의 선()에서도 이와 같은 뜻의 구절이 있다. 무문관(無門關) 46() 에 나온다


<백척간두진일보 (百尺竿頭進一步)  백척이나 되는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더 내딛어라>

이는 유교에서 대장부가 되는 것과 선에서 대자유인이 되는 법이 똑같이 통하는 것이다.

"저는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이니, 기쁜 얼굴로 사진을 찍읍시다"라고 했던 이봉창 의사의 활짝 핀 웃음은 이미 움켜잡은 손을 내 놓은 대장부의 미소 였으며 백척간두에 한 발 더 내딛은 자유인의 모습 이었다.


김구 선생의 드라틱한 인생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그의  전반부 인생은 1876년에 태어나서  44세 까지 우리나라에서 살았던 삶이다.

젊은 시절 양반이 되고 싶어 글 공부를 했고, 동학에 입교하여 동학혁명에 참가 했으나 실패 했다. 이후 치하포에서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고자 일본인 스츠다를 죽이게 된다.

그로  인해 붙잡혀 감옥 살이를 하게 되지만 많은 이들에게 그의 명성을 알리게 된다.

그 후  감옥을 탈출하여 신분을 숨기고, 한 때 승려가 되어 불교에 귀의 하였으나 다시 속세로 나와 기독교인 되어 교육으로 세상을 구하고 했다.

한 인물이  여러 생을 산 것 처럼 파노라마틱 하다. 선생의 전반 인생은 참으로 파란만장 했다.


그의  후반부 인생은 1919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기 까지 26년 간 임시정부와 함께 했던 삶이다. 대한의  독립을 위해 남의 나라에서 서러움과 고난을 몸소 겪어야 했던 시절이다.

그 힘든  고난의 시절을 겪고 다시 1945년에 해방된 우리나라로 환국하여 우리나라의 완전한 독립을 위해  애썼다. 하지만 결국 1949년 안두희(1917~1996)에게 암살을 당하고야 만다.

그가  바랬던 우리나라의 완전한 자주적인 독립은 보지 못한 것이다.

 

백범선생이  소원했던 대한 독립은 우리나라가 남의 나라 도움없이 스스로 이루어내는 독립을 말한다.

미국의  도움도, 소련의 도움도, 중공의  도움도 필요 없이 내 나라 국민이 스스로 독립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먼 과거의 역사에서 신라는 당나라의 힘을 빌려 삼국 통일을 했었고, 가까운 역사에서 조선은 일본에게 치욕적인 식민지배를 당해야 했다.  해방 된 후에도 미국과 소련에게 남과 북이 각각 신탁통치를 당해야만 했다. 이 모두가 나라가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현대화가 성공적으로 정착되어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의 통일에 대해서는 간섭하는 나라들이 많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 같은 강대국들에 둘러 싸여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의문 스럽다.

우리는 스스로 일어 서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로 뭉쳐야 한다.


하나님께서 만일  지금 우리에게 세가지 소원을 말하라고 한다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입니다. 평화 통일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해야만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서야 합니다.  대한 독립 만세!  들어 주실 꺼죠?"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난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눈 내리는 벌판 한 가운데를 걸을 때라도 어지럽게 걷지 말라.

오늘 걸어간 이 발자국들이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리니)>


우리의 서울은 오직 우리의 서울이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해야 한다. - P4

나는 스스로 묻고 대답해 보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마음 좋은 사람‘ 되기가 소원이 아니였더냐? - P69

굳은 의지를 다지는 결심의 표시로 이름을 ‘구‘라 하고 우리나라가 완전한 독립국이 되려면 조선의 하등사회, 곧 백정, 범부들이도 애국심이 현재의 나
정도는 되어야 하겠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 P184

오늘날 소위 좌우익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 P306

우리 민족이 주연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 앞에 보이지 아니 하는가?....중략....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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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서: 관노트                                                     

2024년1028

제목:  we are young


지난주 토요일 북경 배드민턴 한인 연합대회에 참가 했었다.

나는 C 남복 출전을 했다. 작년 이맘 D조에서  C 승급하기 위해 4년의 시간동안 공을 들여야 했었다.  

D조는 항상 나에겐 죽음의 조였다

회마다 우승과 준우승 2팀만 승급이 되기 때문에 경쟁이 제일 치열하다

초심에서 D조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D조에서는 병목 현상이 발생한다

그동안 매년 대회에 참가해서 항상 좌절의 맛을 너무 많이 봐서 포기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해야했다. 포기하지 않은게 정말 이상 정도로 아주 집착하며 운동을 했다.

그땐 알라딘에서 책도 주문해서 읽고 (동호인 배드민턴, 시작해 배드민턴, 배드민턴 전술 등. 빠짐없이 사놨다.) 



레슨도 열심히 받고 레슨 받은 내용은  기록에 남겼다.  학교 수업 내용을 필기 노트에 남겨 둔다는 식으로 나름 훈련 일지를 기록 했었다.  

배운 것을 복습하는 의미도 있고  다른 이유는 혹시라도 나처럼 늦게 배드민턴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참고가  만한  남겨 두 싶었다.



45살에 시작한 운동, 일찍 시작한 운동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무 늦었던 것은 아닌 같다.

그렇게 시작한 운동이 이제 수로는 5년차가 되었다

작년 대회에서 준우승을 하며 겨우 승급을 했다. 그렇게 일년이 지나고 이번 대회에서는 C조에서 B조로 가는 승급에 도전하게 되었다.


결과는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우승을 해 버렸다.

주위의 사람들의 반응도, 자신도 믿을 정도로 내가 우승을 해버린 것이다.

결승에 오른 상대는 설이(내 큰 아들) 팀이다. 같은 또래의 중장년층이 참가하는 대회에 이제 18살인 설이도 C조에 참가 했었다

예선에서 나는 설이에게 졌었다. 그래서 2위로 올라가 다른 1위랑 준결승을 치뤄 이긴 후 결승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설이가 지금 한창 때라 순발력과 힘이 장난이 아니다

남들이 말 하길  아빠와 아들의 대결은 대부분 아들이 이긴다고 했었다

오직 편은 완산(내 아내) 만 내가 이기길 바랬다.

설이네 팀은 예선 전승으로 상대방 아저씨들을 초라하게 만들 정도의 점수차로 아주 쉽게 결승에 올랐다.

우리팀은 첫번째 경기에서 설이 팀에게 이미  졌었다. 하지만 이후 다른 팀들을 아주 힘겹게 이기고 결승에 오르고야 말았다. 그 과정이 무지하게 힘들었다.


내가 파트너보다 나이가 많고  친다.  

상대팀은 그런 나의 상황을 알기 때문에 전부 나에게만 집중 포화를 쐈다.

나는 나에게 오는 콕을 막기에 만 급급했다.  피하고 싶지만 콕이 나를 쫓아오는 처럼 항상 한테만 콕이 날라 왔다

그렇게  이리저리 구르다 보니 다리에 경련이 심하게 났다

그래서 잠시 경기를 중단 하기도 했 시합 후 의사에게 간단한 물리 치료를 받기도 했다.  

평소 보다 긴장하고 힘이 들어가니 근육들이 많이 뭉쳐 버렸다

어쨌든 쉽게 결승에 오른 설이와 다르게 나는 너무나  힘들게 결승에 올라 간 것이.


결승 초반 부터 설이 팀에게 6 차이로 지고 있었다

점수 차이가 크게 벌어지자 응원하던 완산도 결국 설이가 이기겠구나 하며 포기하고 밥먹으로 갔었다고 한다

그런데 중반이 넘어 가면서 흐름이 묘하게도 우리쪽으로 유리하게 흘렀다.

설이팀이 번의 실수를 것이다

이때 파트너가 살리면서 경기의 주도권을 우리가 가져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막판에 역전에 성공하고 마지막 끝내 2점차이로 우리가 설이팀을 이겼다.  

사실 설이팀에게 지더라도 준우승이므로 B조로 승급을 하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우승까지 하게 것이다.  

평소 아빠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 설이인데 이번에야말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게 것이다

나중에 설이 말로는 라켓을 바꿔서 진거 라고 패배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내가 공식적으로 이긴건 이긴거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한 거다. 설이야.


결국 내가 우승을 차지하고 설이는 준우승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완산도 A 여복에서 준우승을 했다.  

그날 우린 가족은 서로 함께 축하하고 행복해 했다.

정말 하면 된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닌 같다

거기다 하나 덧붙이면, "하면 된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그래,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결국 바라는 바는 이루어 지는 것이다.



대회 뒷풀이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시합때 찍었던 사진과 동영상을 편집하며 배경음악을 뭘로 할까 하다가  그룹 FUN   WE ARE YOUNG  선택 했다.

마음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나의 마음은 이 순간 영원한 젊음에 머무를 것이다. 

 


tonight~  we are young ~ so let's set the world on fire 


지금 이 순간 ~  우린 젊어~  그러니까 세상에 질러버리자.


we  can burn brighter than sun    tonight~  we are young~  


우리 태양보다 밝게 타오를 있어.  지금 이 순간~   우린 젊어~



10월의 어느 멋진 날, 우린 젊었다.  


설이의 공격. 하루종일 난 이런 공격을 수도 없이 막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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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10-28 1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우승 축하축하 합니다.👍👍👏
그것도 젊은 청년을 상대로~~
집중 포화를 멋진 수비로 막아내시는 마힐님이 보이는 듯 합니다.
안세영 선수처럼요^^
근데 아내분께서 정말 마힐님을 응원했을까요?
마음 속으로는 설이를~~ ㅎㅎ

마힐 2024-10-28 21:33   좋아요 1 | URL
아휴..... 불감당한 과찬이세요.. 안세영 선수는 제 입장에서 보면 그냥 신(神)이어서 제가 감히.....
비교 불가예요. ㅎㅎ
그래도 저 한테는 시합이 아니라 전투 였던 것 같아요. 영혼까지 다 태웠어요. ㅎㅎ
그 후유증으로 지금 까지도 온 몸이 쑤십니다.
페넬로페님 말씀 보고 저도 혹시나 해서 다시 아내 한테 유도심문으로 물어 봤는데요. 진짜로 저 응원한 것 맞은 것 같아요 ㅎㅎ 축하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자목련 2024-10-29 1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승, 정말 멋지네요!!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마힐 님은 젊고 젊습니다!

마힐 2024-10-29 11:52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도 젊고 젊습니다! 우리 모두 젊어요! tonight~ we are young~
축하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ㅎㅎ

cyrus 2024-11-01 2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음(Death)의 조라서 D조였군요... ㅎㅎㅎ 우승 축하드립니다. 마힐 님이 경기에 뛰는 모습이 있는 사진은 없나요? ^^

마힐 2024-11-01 23:49   좋아요 0 | URL
cyrus 님도 민턴을 치시는 지요? 업계의 용어를 아시는 걸 보면…ㅎㅎ 축하 감사합니다. 얼굴 빨개지게 치는 것만 몇 장 찍혔던데 그건 못 올려요. 자세도 엉망이고 창피 합니다. ㅠㅠ 내년 시합때 스매싱 자세 찍히면 그땐 올려 볼께요. ㅎㅎ Cyrus님 즐거운 주말 되세요!

잉크냄새 2024-11-24 1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제가 아는 지인도 북경에서 배드민턴 동호회 활동하시던데...
아마 같은 동호회가 아닌가 싶네요.
그분도 we chat 에 우리는 젊다는 문구를 중국어로 올리셨더군요.

마힐 2024-11-25 12:1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오늘 북경 날씨는 비가 내릴 듯하며 춥네요.
지인분께서 북경에서 배드민턴 동호회로 활동하시는 군요.
북경에 5개의 한인 동호회가 있어서 일년에 2~3번 정도 함께 교류전을 합니다.
같은 동호회가 아니라더도 아마도 안면은 있을 수 있어요.
나이를 먹으면서 그나마 건강을 유지하는 운동중에서 배드민턴이 지금의 저한테는 비교적 맞는 것 같아요. 잉크냄새님 께서도 건강하시길 바라며 오늘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