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노트>    무조건 좋게 결정지어서 맡겨놓기


날짜:202523

오늘의정진: 行亦禪座亦禪 (행역선좌역선다녀도 참선이요앉아도 역시 참선이니


- 100일 정진, 40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서른 아홉번 째 구절은 

<自從認得曹溪路了知生死不相干 /자종인득조계로요지생사불상간

조계의 길을 인식하고 부터는 생사와 상관없음을 분명히 알았다.> 였다

 

영가스님(永嘉665713)은 마침내 혜능선사(慧能 638713)를 만나 본래 마음자리는 생사를 초월 하였음을 확실하게 인가를 받았다

이제 영가스님은 더이상 조계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지체 없이 곧 바로 혜능선사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떠나려 했다

혜능선사의 영가스님을 향한 마지막 점검이 시작되었다.


왜 그리 빨리 돌아 가려는가?”.

본래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데 어찌 빠름이 있겠습니까?”

누가 움직이지 않는 걸 아는가?”

남이 없음이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

뜻이 있다면 누가 분별하느냐?”

분별하는 것도 뜻이 아닙니다.”

장하구나창과 방패를 들었구나하룻밤만 쉬어 가거라.” 하고 혜능선사는 만류했다.

그렇게 영가스님은 혜능선사의 문중에 딱 하룻밤을 묵고 가게 된다.


영가스님과 육조혜능과의 인연은 단지 하루 뿐이었다

이후 이런 영가스님을 두고 일숙각(一睡이란 별칭이 생겼다.

그후 두 스님은 세상에서 더이상의 연()은 없었다고 한다.

713두 분 모두 같은 해에 원적(圆寂) 하였다

 

오늘은 마흔번 째 구절

行亦禪座亦禪 (행할 행또 역고요할 선자리 좌또 역고요할 선 )

행역선좌역선 /다녀도 참선이요앉아도 역시 참선이니

語默動靜體安然(말씀 어침묵 묵움직일 동고요할 정몸 체안정 안그러할 연 )

어묵동정체안연 / 어묵동정에 본체가 편안하게 되리라

 

영가스님은 먼 길을 돌아 마침내 조계에서 스승을 만났다.

그리고 스승에게 확실한 깨달음에 대한 증명을 받았다

이제는 무엇을 해도 함이 없이 하게 된다

고요하고 깊어진 마음 자리가 바로 참선이다

행주좌와(行走坐卧), 어묵동정 (語默動靜의 상태즉 행하고 머물고 앉고 눕는 가운데에서 또 말하고침묵하고움직이고고요하든 어떤 상황에서도 도()를 떠나지 않는다

본체가 편안하니 아무 걸림이 없다


혜능선사 이후 수 많은 선의 대가들이 출현하였다

그 가운데 마조스님이 가장 출중 했다고 알려진다

마조도일(马祖道一 709~788 스님이 깨닫기 전에 아주 열심히 참선을 하며 수행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남악회양(南岳怀让 677744) 선사가 곁에 와서 보더니 물었다.

그대는 좌선을 해서 무엇을 하려는 가?”

마조는 답했다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자 그 답을 들은 남악회양 선사는 어디서 벽돌 하나를 가져 왔다.

그리고는 마조스님 옆에서 벽돌을 갈기 시작했다.

마조는 남악회양의 이상한 행동에 묻기 시작했다,.

스님은 지금 벽돌을 갈아서 무엇에 쓰시렵니까?”

이걸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고 한다네.”

아니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이 됩니까?” 하며 마조는 어이가 없었다.

벽돌을 갈아서 거울이 될 수 없다면그대는 어찌 좌선을 한다고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이 말에 마조는 깨닫는 바가 생겼다.

그럼 어찌 해야 합니까?” 마조는 물었다.

부처는 형상이 아니다앉아 있는 부처를 배운다면 그것은 부처가 아니다.

어느 것에도 마음이 머무르지 말아야 한 다네

행주좌와 어묵동정 속에 부처가 있는데 그대는 어찌 좌선에 집착하는가?

수레를 칠 것인가소를 칠 것인가?”


<일일 소견>

묵묵히 좌선을 한다고 깨달음을 얻는 게 아니다.

무엇을 칠 것인가스스로에게 자문자답할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관노트>    무조건 좋게 결정지어서 맡겨놓기


날짜:202522

오늘의정진: 自從認得曹溪路 (자종인득조계로조계의 길을 인식하고 부터는


- 100일 정진, 39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서른 여덟번 째 구절은 

<遊江海涉山川 尋師訪道爲參禪 /유강해섭산천 심사방도위참선

강과 바다에 노닐고 산과 개울을 건너서 스승찾아 도를 물음은 참선 때문이라> 였다


눈 밝은 스승을 만나기 위해 물을 건너고 산을 지나는 여정을 거쳐야 했다.

스승은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볼 줄 안다

그래서 스승에게 점검을 받는 것이다

스승에게 도를 물을 때는 나의 모든 것을 내던져야 한다.


오늘은 서른 아홉번 째 구절

自從認得曹溪路 (스스로 자쫓을 종인정할 인얻을 득마을 조시내 계길 로)

자종인득조계로 조계의 길을 인식하고 부터는

了知生死不相干 (마칠 료알 지날 생죽을 사아닐 불서로 상방패 간 )

요지생사불상간 / 생사와 상관없음을 분명히 알았다.


드디어 증도가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에  도달했다.

조계의 길은 바로 육조 혜능선사(六祖慧能禅师638713)를 만나러 간 길이다.

육조혜능이 누구인가?

지금 선종(禅宗)이라 부르는 동아시아 불교의 주류 종파를 세운 인물이요.

일자무식 가난한 나무꾼 출신에서 일약 선종을 세운 조사(祖师)가 된 불세출의 인물이 아니던가?

혜능은 우연히 듣게 된 금강경의 한 구절응무소주이생기심(应无所住而生其心) 즉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는 한마디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 뒤에 오조홍인(五祖弘忍601674)을 찾아간 혜능은 그의 문하에서 부처님으로 부터 전해 지는 의발(衣钵 가사와 바루)를 전수 받고 결국 육조(六祖)가 된다.


조계는 바로 육조 혜능이 만년에 머물렀던 조계(漕溪)라는 지역명을 일컫는다

한국불교의 가장 대표 종파인 조계종은 바로 육조대사가 거처했던 바로 이 조계에서 유래한 것이다.

조계는 선불교의 총본산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대한불교 조계종은 바로 육조 혜능 선사의 선불교의 법맥을 이어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 조계사 또한 그런 의미에서 선종 사찰인 셈이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면서 당신의 의발 즉 입고 계시던 가사와 공양에 쓰시던 바루를 다음 후계자에게 전수 했다고 한다그것이 의발의 시초이다.

수행자에게는 사유 재산이 없다

바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기 때문에 바루를 그릇 삼아 걸식을 한다

그러니 가사 장삼과 바루가 수행자에게 유일한 자산인 것이다.

의발 전수는 스승이 가진 모든 것을 제자에게 전하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


그렇게 부처님의 의발은 인도에서 27대 까지 내려 온다

그후 28대에 이르러 그 유명한 달마대사에게로 전해지게 된다.

달마대사 시기에는 이미 불법은 인도에서 쇠망해졌고 결국 동쪽으로 법을 펼치기 로 결심 한다

여기서 달마서래의(达摩西来意)’ 라는 화두가 등장하게 된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바로 동쪽에서 다시 불법을 일으키기 위함이었다

그 동쪽, 중국의 소림사(少林寺)에서 만난 혜가(慧可 487593)를 시작으로 중국에서 선종(禅宗의 싹을  심게 되었다.

그래서 선종은 달마대사를 초조(初祖)로 삼아 이조혜가삼조승찬사조도신오조홍인의 전수를 거쳐 육조혜능에게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제 혜능에 이르러 선종은 자라나 동쪽에서 완전히 만개하기에 이른다

혜능이후 수 많은 수행자들이 등장하였고 모두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혜능이후 선불교는 크게 융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선종의 맥은 우리나라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다시 영가스님의 시점으로 돌아가 보면 조계의 길은 영가스님이 육조혜능을 만나러 온 길이다

영가스님은 본래 혜능선사의 선종계열의 문하가 아니다

사실 불교에는 많은 종파가 있다

부처님 법은 하나이지만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에 그 각각의 방식에 따라 종파가 나뉘어지게 되었다

또 종파안에서도 어느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느냐에 따라 문중(门中)으로 갈라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기독교와 달리 이단 논쟁이 전혀 없다

정통이란 것이 본래 없기 때문이다모두가 부처님 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가스님은 원래 천태종(天台宗계열에서 출가하여 유마경(维摩经)을 보다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선종의 현책스님을 만나서 육조혜능에게 가서 깨달음에 대한 인가를 받으라고 권유를 받게 된다

그렇게 영가스님은 육조스님을 만나러 조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영가스님과 육조스님의 첫 만남바로 선문답이 시작된다.

영가스님은 육조스님에게 절도 하지 않고 육조스님 주위를 세번돌고 떡하고 서 있는다.

그러자 육조스님은 묻는다.

사문은 누구이길래 이렇게 도도하고 아만이 높은가?”

그러자 영가스님은 답한다.

나고 죽는 일이 크고 무상은 너무도 빠르기 때문입니다.”

이에 육조스님은 어찌하여  ()이 없음을 체득하여 빠름이 없는 도리를 요달하지 못하는가?” 하고 다시 되 묻는다.

이때 영가스님은 곧 바로 답한다.

본체는 곧 남이 없고 본래 빠름이 없음을 요달 하였습니다.”

육조스님은 그래네 말이 맞다네 말이 맞다.”


<了知生死不相干 요지생사불상간>

바로 이때 본래 마음 자리는 생사에 상관이 없다는 것을 영가스님은 깨우친 것이다.

이후 영가스님은 육조스님에게 정식으로 지극한 마음으로 삼배의 절을 올리게 된다.

깨달음의 인가를 주고 받은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 아마 전체 증도가 구절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까 싶다.

본래 나고 죽음이 없는 마음 자리를 깨닫게 되는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감격스러워진다.

<일일 소견>

의발은 무를 증명하기 위한 유가 아닐까무는 유를 통해 증명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관노트>    무조건 좋게 결정지어서 맡겨놓기


날짜:202521

오늘의정진: 遊江海涉山川 (유강해섭산천강과 바다에 노닐고 산과 개울을 건너서


- 100일 정진, 38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서른 일곱번 째 구절은 

<香象奔波失却威天龍寂聽生欣悅 /향성분파실각위천룡적청생흔열

향기로운 코끼리 분주하게 달아나 위엄을 잃게 되나천룡은 고요히 들으며 희열을 내는도다> 였다

본래 코끼리처럼 신성한 나의 마음이지만 한번 폭주하면 다시 안정시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잡아 근본으로 돌려 놓으면 마침내 고요해지며 선정의 기쁨을 맛 볼 수가 있으리

 

오늘은 서른 여덟번 째 구절

遊江海涉山川 (놀 유강 강바다 해건널 섭뫼 산내 천 )

유강해섭산천 강과 바다에 노닐고 산과 개울을 건너서

尋師訪道爲參禪 (찾음 심스승 사방문 방길 도할 위간여할 참고요할 선 )

심사방도위참선 / 스승찾아 도를 물음은 참선 때문이라

 

이제 부터는 영가선사의 구도(求道)이야기가 펼쳐지는 구절이다.

()은 마음을 깨치는 수행이다.

마음을 깨우치는 수행은 혼자서는 이룰 수가 없는 수행이기도 하다.

반드시 깨우칠 수 있는 인연이 있어야 한다.

역대 수 많은 선지식들은 모두 스승을 만나고 깨우침을 얻었기 때문이다.

깨우침은 반드시 스승에게 인가(认可)를 받아야 한다.

자신의 깨우침이 정말로 바른 것인지문제가 없는 깨달음인지는 스승이 직접 보고 판단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때 깨우침을 점검하는 수단을 선문답(禅问答)으로 사용한다.

선문답을 통해서 깨우침을 점검하기도 하지만 또한 선문답을 통해서 깨우침을 얻기도 한다.

오늘날 선은 중국에서 발달한 불교의 종파로 있지만 사실 선의 기원은 부처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처님 당시에는 훌륭한 제자들이 아주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뛰어난 제자를 10대 제자라 부른다

지혜제일 사리자해공(解空)제일 수보리신통제일 목건련등 10대 제자들은 저마다 뛰어난면이 있었다.

그 10대 제자중에서도 마하가섭(摩诃迦叶마하카사파)은 두타(头陀)제일 이라 하여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고행(苦行)과 걸식(乞食)을 하며 어느 한곳에 머물지 않고 떠도는 수행을 가장 잘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 국악 곡조에도 있는 영산회상 당시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시려고 대중을 앞에 두고 자리에 앉으셨다.

그때 하늘에서 연꽃 한 송이가 하늘하늘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부처님이 허공 중에서 떨어지는 연꽃 한 송이를 잡아 들어 아무말 없이 대중들에게 내 보이셨다

(이걸 선에서는 염화시중 (拈花示众)이라고 한다.)

대중들은 부처님께서 치켜든 연꽃 한 송이가 무엇을 의미 하는지 몰라서 다들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그 가운데 오직 마하가섭만 부처님을 향해 빙긋히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것을 선에서는 염화미소(拈花微笑라고 한다.)

그러자 부처님은 마하가섭의 미소를 보시고는 마하가섭만이 부처님의 뜻을 알았다며 인가를 해주셨다

이를 두고 이심전심(以心传心)이라 하여 오직 마음과 마음으로만 전해지는 선의 유래가 시작된 것이다

그외에도 마하가섭은 다자탑이란 곳에서 부처님과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인가를 해주었다는 다자탑전분반좌(多字塔前分半座와 부처님 열반 후 부처님을 관에다 모셨는데 마하가섭이 도착하자 관 밖으로 부처님 발이 나왔다고 하는 곽시쌍부(椁示双趺)등의 삼처전심(三处心)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처럼 선은 부처님 당시부터 기원하여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깨달음에 대한 갈망은 스승을 찾는 갈망과 비례한다

강과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고 개울을 건너서 스승을 찾는 것은 참선 때문이라.

참선은 선이다이제 영가 스님의 깨달음을 구하는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일일 소견>

스승의 의미는 수행자에게는 부모와도 같으시다.

육의 부모가 아닌 법의 부모도를 구한다는 것은 법의 부모를 찾는 것이다.

제자가 스승을 알아보고 스승이 제자를 알아보는 것이것이 이심전심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관노트>    무조건 좋게 결정지어서 맡겨놓기


날짜:2025131

오늘의정진: 香象奔波失却威 (향상분파실각위향기로운 코끼리 분주하게 달아나 위엄을 잃게 되나


- 100일 정진, 37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서른 여섯번 째 구절은 

<獅子吼無畏說 百獸聞之皆腦裂 /사자후무외설 백수문지개뇌열

사자후의 두려움 없는 설법이여 온갖 짐승들 들으면 모두 뇌가 찢어짐이라.> 였다

자각한 자의 사자후와도 같은 일갈에 듣는 이들의 고정관념은 모두 흩어져 버린다.

너무나도 당당하여 거칠 것이 없도다

 

오늘은 서른 일곱번 째 구절

香象奔波失却威 (향기 향코끼리 상달릴 분물결 파잃을 실물리칠 각위엄 위 )

향상분파실각위향기로운 코끼리 분주하게 달아나 위엄을 잃게 되나

天龍寂聽生欣悅 (하늘 천용 용고요할 적들을 청날 생기쁠 흔기쁠 열)

천룡적청생흔열 / 천룡은 고요히 들으며 희열을 내는도다

 

붓다가 고타마 싯다르타로 태어나기전 어머니 마야 부인의 꿈에 흰 코끼리가 겨드랑이로 들어왔다는 태몽이 전해진다

그래서 코끼리는 불교에서 신성한 의미를 지녔다.

또한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코끼리 형상의 가네샤를 신으로 칭하는데 지혜와 행운의 상징이기도 하다

가네샤는 힌두교 3대신중 하나인 파괴의 신 시바의 아들이기도 하다


이처럼 코끼리는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서 압도적인 덩치와 힘그리고 지능까지 똑똑해서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와는 차원이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성체 코끼리를 무력으로 이길 수 있는 동물은 지구상에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코뿔소나 하마악어 같은 동물들도 어쩌다 난동을 피우는 코끼리에게는 짓밟힘을 당할 뿐이다

그래서 코끼리는 범접할 수 없을 만큼 강하고 신성한 의미를 지고 있는 것이다


원래 코끼리라는 한자어 ‘상()’ 이라는 글자는 코끼리 형상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이다.

그런데 예전 중국에서는 실제로 코끼리 모습을 보고 글자를 본 뜬게 아니라 코끼리의 뼈를 보고 코끼리의 모습을 생각으로 상상해서 만든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래서 상상(想象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향상(香象)은 이러한 코끼리의 이미지에 향기로운 코끼리라는 상상을 더 추가했다

그러한 코끼리가 분주하게 난동을 피운다는 것이다

위엄을 갖추어야 할 코끼리가 난동을 피울 정도면 얼마나 소란스럽다는 뜻인가?

밟혀 죽을 수도 있고부딪히는 모든 것들이 박살이 나는 것이다

반면에 천룡은 고요히 들으며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향상도 천룡도 모두 상상속의 동물이다

향상은 위엄을 잃고 소란스럽고천룡은 고요하며 희열을 느낀다.

둘이 서로 대비가 된다

우리의 마음은 때때로 다스리지 못하면 코끼리가 난동을 피우는 것과 같이 분주하고 소란스럽다

그렇게 폭주하게 되면 그냥 모든 걸 아사리판으로  만들기도 한다.

마음도 그와 같다

호수 속 깊은 곳에 사는 이무기가 1000년을 수행하여 용으로 승천하게 되듯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천용은 그렇게 존재한다.

수행은 코끼리의 마음을 천용의 마음으로 변화 시켜야 되는 것이다.

마음은 때에 따라 향상이 되고 천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나의 한 생각에 향상이 되고 천용이 될 수도 있으니 마음을 잘 내야 한다.

마음을 잘 내는 것 그것이 바로 수행이요생활이다

 

<일일 소견>

본래 신성한 마음이지만 때때로 폭주하는 내 마음.

고요히 다스려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승천하듯 때를 기다려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관노트>    무조건 좋게 결정지어서 맡겨놓기


날짜:2025130

오늘의정진: 獅子吼無畏說 (사자후무외설사자후의 두려움 없는 설법이여 


- 100일 정진, 36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서른 다섯번 째 구절은 

<非但我今獨遠了河沙諸佛體皆同 비단아금독원료하사제불체개동

단지 나만 이제 통달하였을뿐 아니라모래 수 같이 많은 일체 부처님의 본체는 모두 같도다.> 였다


세상에 혼자서 깨닫는 것은 없다

사실 나는 나 혼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내 몸안에는 무수히 많은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세포들이 몸의 각 기관을 만들어 나를 움직이게 한다.

깨달음도 나 혼자서 이루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수행자를 깨닫기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인연들이 스승이 되어 이끌어 주었던가

보이는 인연들과 보이지 않는 인연들이 함께 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깨달음에 이를 수가 있었을까

그 모든 인연들이 스승이요불보살인 것이다.

깨달음이란 혼자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니고 함께 살고함께 마음 내고함께 움직이고한 몸이 되어함께 먹는 것임을 증득하는 것이다


오늘은 서른 여섯번 째 구절

獅子吼無畏說 (사자 사아들 자울부짖을 후없을 무두려워할 외말씀 설 )

사자후무외설사자후의 두려움 없는 설법이여

百獸聞之皆腦裂 (일백 백짐승 수들을 문갈 지모두 개뇌 뇌찢을 열)

백수문지개뇌열 / 온갖 짐승들 들으면 모두 뇌가 찢어짐이라.


백수의 왕 사자는 한번 울음에 모든 짐승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사자후는 사자가 크게 내짖는 포효(咆哮)이다.

사자가 아닌 다른 짐승들은 그러한 소리를 낼 수가 없다.

한 명의 깨달은 사람이 전하는 설법은 뭇 중생들을 놀라게 하고 그들이 가졌던 고정관념들을 전부 찢어 버린다.

일명경세(鸣惊), 한 번의 울음에 세상을 놀라게 한.

깨달음의 설법은 그와 같다.


법화경(法华经)은 부처님께서 설한 설법중에  열반에 드시기 얼마전에 영산회상에서 설한 법문이다

그 법회에서 부처님은 대중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내가 설해 왔던 가르침은 전부 방편이었다

진실로 성불하기 위해서는  오직 대승(大乘)을 삼아 반드시 하나의 불승(一佛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른 2승이나 3승은 없노라.  

오직 1승만 있고 2, 3승은 없으니 소승(小乘)으로는 부처를 이룰 수없다.”

이 말에 당시 설법을 듣기 위해 모였던 수 많은 제자들이 부처님 설법을 믿지 않고 자리를 떠나 버렸다.

이때 부처는 일불승에 의한 깨달음 즉 모든 중생은 깨달음에 이를 수 있고또한 그 법회에 남아있는 모든 이들에게 깨달음에 이르게 되리라는 수기(受记)를 주신다.

또한 본래 부처는 현생에서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과거 생에서 부터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선언을 하신다.

이러한 법화경의 가르침 믿음을 믿지 않는 자들은 그 당시 법문의 자리에서 이탈했던  것이다.

누구나가 부처가 될 수 있음을 선언하신 것은 사자가 뭇 짐승들에게 사자후를 내지른 것과 같다

내가 본래 사자새끼 였음을 믿는가?

아니면 사자의 울음소리에 겁을 먹는 머리에 뿔 달린 양임을 믿는가?

깨달음엔 결국 믿음의 문제만 남는게 아닌가 싶다.

 

<일일 소견>

일명경인(一鸣惊人이란 말은 사기(史记)에 나온다

전국시대 제나라의 위왕은 국사를 내팽개치고 날마다 주연을 벌이며 방탕한 생활을 했다그렇게 나라를 돌보지 않아 나라 꼴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이제 곧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다들 아우성이었지만 감히 왕에게 조언을 하려하지는 않았다.

보다 못해 순우곤이란 자가 위왕 앞에 나아가 한마디 재치 있는 말로 간언했다.

이 나라에 큰 새가 한마리 있습니다. 3년 동안 날지도 않고울지도 않습니다무슨 새인지 아시는지요? “ 이에 위왕은 답했다

새는 날지 않으면 그뿐이지만한번에 하늘로 날고

울지 않으면 그뿐이지만한번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한다” 라고 했다.


그후 위왕은 방탕했던 생활을 접고 바로 제나라를 훌륭하게 키웠다고 한다.

일명경인(一鸣惊人)을 일명경세(一鸣惊世)로 바꾸어야 할 때다

한번 울면 세상을 놀라게 해야 한다그것이 바로 사자후(狮子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