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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121

오늘의정진: 三身四智體中圓 (삼신사지체중원) 삼신과 사지는 본체 가운데 둥글고


- 100일 정진, 27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스물 여섯 번째 구절은

<無價珍用無盡, 利物應時從不吝 /무가진용무진, 이물응시종불인)

가치를 메길 수 없는 보배를 써도 다함이 없으니, 만물의 이로움에 응하며 때에 따라 아끼지 아니한다> 였다.

마음 속에 감추어진 무가진은 아무리 써도 줄어들지 않는다.

또한 각각의 중생들에게 온갖 이익을 아낌없이 가져다 준다.

이러한 보물이 우리 모두에게 있으며 또한 자유자재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스물 일곱 번째 구절

三身四智體中圓 (석 삼, 몸 신, 넷 사, 지혜 지, 몸 체, 가운데 중, 둥글 원 )

삼신사지체중원 / 삼신과 사지는 본체 가운데 둥글고

八解六通心地印(여덟 팔, 풀 해, 여섯 육, 통할 통, 마음 심, 땅 지, 도장 인)

팔해육통심지인/ 팔해탈, 육신통은 심지(마음 자리)의 도장이다.


불교에서 삼신(三神)은 깨달은 부처의 몸이 3가지 형태로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

부처의 몸이 단지 육신(肉身)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모습과 비슷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구분하면 부처의 몸은 우주의 차원에 따라 법신(法身), 보신(報神), 응신(應身)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찰에 가면 대웅전에 모셔진 부처님은 육신의 부처가 아니다.

하지만 불교 신자들은 법당의 부처님을 진짜 부처님이라 생각하며 절을 하거나 기도를 드린다.

분명히 법당에 계시는 불상은 단지 나무나 청동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에 불과할 뿐인데 불교 신자들은 기독교에서 흔히 말하는 우상(偶像)을 숭배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으로 단하소불(丹霞燒佛) 이라는 선가(禪家)의 유명한 공안(公案)이 있다.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 이란 스님이 혜명사라는 절에 객승으로 머물게 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추운 겨울날이었으나 혜명사에서 객승을 접대하는 원주스님은 단하스님이 머무는 곳에 불을 때 주지 않았다.

그런데 한 밤에 절의 법당쪽에서 불을 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원주스님은 무슨일 인가 싶어 법당을 향해 달려가 보니 법당 안에서는 단하스님이 법당안에 모셔져 있던 불상을 도끼로 쪼개어 토막을 내서 불을 지피고 있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원주스님은 도대체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이냐 면서 난리를 쳤다.

단하스님은 이때 전혀 기죽지 않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다비식(茶毘) 을 치룬후 수 많은 사리를 얻으셨소. 그래서 내 여기 부처님도 태우면 사리가 나오는지 볼려고 했소' 답했다.

이에 원주 스님은 기가 막혀,  '무슨 나무에서 사리가 나오는 거요? '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단하스님은 ' , 그럼 사리가 나오지 않으면 그냥 나무 토막이지 무슨 부처요? 날도 추운데 그럼 불이나 때면서 몸이나 녹이면 되겠구려' 하고 답했다고 한다.


부처의 몸은 고정된 형상이 있지 않다.

더구나 나무나 청동으로 부처의 모양을 본 떠 만든 불상이 진짜 부처가 아니다.

단하스님은 부처의 상()에 메이지 않았기에 부처를 도끼로 쪼개고 불로 태울 수 있었다.



진리의 모습, 즉 법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법신(法身)이요.

깨달음에 대한 결과의 모습, 수 없이 많은 생을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게 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보신(報身)이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모습, 즉 고통속에 빠진 수 많은 중생을 각각의 근기에 맞게 여러가지 다양한 화신(化身)으로 존재하는 것이 응신(應身)이다.

그렇다부처는 고정된 모습으로 있지 않다. 나의 마음도 고정되지 않았다.


이러한 삼신과 네가지 큰 지혜(四智), 모두 다 내 마음의 본체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또한 팔해탈(八解脫)과 육신통(六神通) 과 같은 깨달음의 경지와 신통술도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걸 심지인()으로 삼는 다고 했다.

심지인은 마음의 땅에 도장을 찍듯히 확실히 보증 한다는 것이다.

나의 본체 마음속에서 삼신의 부처가 현현하게 나투어 돌아간다.

그렇다면 우선은 내 마음 속의  본래 가지고 있는 불성을 믿어야 한다.

그럼 이제  단하선사가 불상을 도끼로 쪼개고 불로 태운 행위의 공안을 타파할 수 있는 실마리를 풀게 된다.


<일일 소견>

범소유상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즉견여래(凡所有相皆是虛妄,若見諸相非相卽見如來 )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니, 만약 모든 형상이 있는 것이 형상이 아님을 볼 줄 알면 곧 여래를 보리라. <금강경 제 5분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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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년 120

오늘의정진: 無價珍用無盡(무가진용무진) 가치를 메길 수 없는 보배를 써도 다함이 없으니


- 100일 정진, 26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스물 다섯 번째 구절은 

<貧則身常披縷褐道則心藏無價珍/빈즉신상피루갈도즉심장무가진)

가난한 즉 누더기 옷을 항상 걸쳐도도는 즉 가치를 메길 수 없는 보배를 마음 속에 감추었다 > 였다

도는 감추어져 있다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밖으로 찾으려 하면 영원히 자신의 무가진을 찾지 못하게 된다

내안의 무가진을 찾아내야만 한다

 

오늘은 스물 여섯 번째 구절

無價珍用無盡 (없을 무값 가보배 진쓸 용없을 무다할 진 )

무가진용무진 가치를 메길 수 없는 보배를 써도 다함이 없으니

利物應時從不吝(이로울 이만물 물응할 응때 시쫓을 종아닐 불아낄 인)

이물응시종불인만물의 이로움에 응하며 때에 따라 아끼지 아니한다

 

구한말의 선지식 경허선사(镜虚禅师1849~1912)는 거의 끊기다시피한 우리나라의 선맥(禅脉)을 다시 새로 이으신 분으로 평가 받는다.

원래 우리나라 현재 조계종의 선맥은 6조 혜능(慧能638713) 선사로 부터 이어져 왔다.

하지만 구한말 어지러운 나라 안밖의 정세로 인해 불교는 급격히 쇠퇴를 하였고 이어져 내려오던 우리의 선맥도 끊기게 되었던 것이다

경허선사는 어린 시절 출가를 하여 스님이 되었고 화엄경에 정통하여 동학사에서 31세때 까지 스님들을 지도 하였다.

그러나 어느날 마을에 역병에 돌아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충격을 받게 된다

그 죽음 앞에서 자신이 알고 있던 수많은 불교 경전의 내용이 쓸데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이때 려사미거마사도래(驴事未去马事到来), 나귀의 일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말이 이미 와 버렸다” 라는 화두를 가지고 동학사 골방에서 수행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용맹정진(勇猛精进)하던 어느날어떤 사람이 지나가는 말로  도우무비공처(到牛无鼻孔),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곳이 없네 라는 한마디에 바로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렇게 깨달음을 얻은 후 경허선사는 만공(满空 18711946), 혜월(慧月1862~1937)수월(水月 1855~1928) 같은 스님들을 배출하여 끊어졌던 우리나라 선의 맥을 다시 잇게 되었다

경허 선사가 후에 참선 공부를 하는 수행자를 위하여 참선곡(参禅曲)을 지었는데 그 내용중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선지식을 찾아가서 요연히 점검을 받아 다시 의심 없앤 후에

세상만사 망각하고 수연방광(随缘放旷) 지나가되 빈 배 같이 떠 놀면서

유연중생(有缘众生) 제도하면 보불 은덕이 아닌가?> 


수연방광이란 인연에 따라서 거칠 것이 없다는 뜻인데 깨달음을 얻은 후 중생들을 제도하길 거침 없이 인연 따라 한다는 내용이다.

도를 얻음이 무가진을 가진 것과 다름 없고 이 보배는 나 혼자만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나를 비롯하여 내 주위에 인연 있는 이들을 제도해야 한다.

내 인연에 따라서 거침없이 중생들을 위해 무가진 보물을 써도써도 다함이 없다.

 

無價珍用無盡, 무가진용무진利物應時從不吝, 이물응시종불인

가치를 메길 수 없는 보배를 써도 다함이 없으니만물의 이로움에 응하며 때에 따라 아끼지 아니한다.

법성계의 구절, “중생수기득이익(众生随器得利益) 중생들의 그릇에 따라 온갖 이익 얻게 한다” 는 뜻 처럼 아끼지 않고 베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보물이 내 안에 있다.

 

<일일 소견>

수연방광(随缘放旷) , 인연 따라 거칠 것이 없도록 흘러가야 한다.

마음에 머무름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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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년 119

오늘의정진: 貧則身常披縷褐 (빈즉신상피루갈) 가난한 즉 누더기 옷을 항상 걸쳐도


- 100일 정진, 25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스물 네번째 구절은 

<窮釋子口稱貧實是身貧道不貧/궁석자구칭빈, 실시신빈도불빈)

궁색한 부처님 제자 입으로는 가난하다고 하나사실 몸은 가난하여도 도는 가난하지 않으리> 였다

 

유학의 시조인 공자(孔子:b.c551~479) <논어선진편에서 자신의 수제자 안회(颜回:b.c 521~491) 를 두고 이렇게 평가한다

<子曰:回也其庶乎,屡空(회야기서호,루공)

안회는 도덕수양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으나늘 궁핍했다.>


논어에서는 스승인 공자가 제자인 안회를 칭찬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안회는 비록 가난 했으며, 겉보기에는 아주 어리석어 보였지만 그 누구 보다도 도에 부합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공자는 안회를 두고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까지 했다

<回也, 非助我者也,于吾言无所不说 / 회야, 비조아자야, 어오언무소불설

안회는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로다. 그는 내가 하는 말에 기뻐하지 않는 경우가 없나니> 


다시 말해서 안회는 자신의 제자라 칭하기엔 너무나도 뛰어났다는 것이다

그러한 안회의 삶을 안빈낙도(安贫乐道)의 삶이라고 일컫는다.

가난이 진리를 추구하는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몸은 가난해도 도는 가난하지 않다.

 

오늘은 스물 다섯 번째 구절

貧則身常披縷褐(가난할 빈곧 즉항상 상헤칠 피실 루털옷 갈  )

빈즉신상피루갈 가난한 즉 누더기 옷을 항상 걸쳐도

道則心藏無價珍(길 도곧 즉마음 심감출 장없을 무값 가보배 진)

도즉심장무가진도는 즉 가치를 메길 수 없는 보배를 마음 속에 감추었다 

 

도는 가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의 보배이며 보물이다

그것을 무가진(無價珍) 이라고 말한다.

일전에는 도는 마니주와 같다고 했었다

마니주는 마음대로 자유자재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여의주를 말했다

그래서 도는 가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의 보배무가진과 같다는 뜻이다.

값을 매길 수도 없을 만큼의 보물이 어디에 있는가?

바로 우리 마음 속에 감춰져 있다는 것이다.

비록 육신은 가난하여 항상 비루한 옷을 걸치고 다녔어도 마음은 늘 항상 아무리 써도 다 쓰지 못하는 보배를 감추고 다닌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신통묘용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우리는 보지 못하니 없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무가보와 같은 보물이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으나 우리는 전혀 모른 채 살아간다.

역대 수 많은 선지식들 께서는 자신에게 지닌 보이지 않는 보물이 있음을 믿으라고 하셨었다

도는 내 몸 밖에 있지 않다도는 내 몸 안에 있다.

바로 내 마음속에서 찾아야 한다

 

<일일 소견>

내 몸 밖의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내 마음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좌고우면 (左顧右眄)하지 말자불고(不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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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9 13: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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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9 22: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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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1 21: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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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년 118

오늘의정진: 窮釋子口稱貧 (궁석자구칭빈) 궁색한 부처님 제자 입으로는 가난하다고 하나


- 100일 정진, 24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스물 세번째 구절은 

<調古神淸風自高貌悴骨剛人不顧/조고신청풍자고모췌골강인불고

옛적의 신령하고 맑은 바람과 같은 곡조 스스로 높고겉 모습 초췌하나 뼈는 강한 사람은 뒤 돌아보지 아니한다> 였다


불고(不顧)는 좌고우면(左顧右眄이었다

왼쪽으로 돌아 보고 오른쪽을 흘겨보다는 의미이다

살불살조의 심정으로 살아야 함에도 우리는 늘 현실에 타협하고야 만다.

늘 의심해야 함에도 언제나 편안함에 안주하고야 만다.

불고(不顧)는 한 눈 팔며 돌아보지 말고 타협하지 말고 당당하게 걸으라는 말이었다.

수처작주,입처개진(随处作主,立处皆真머무는 곳 마다 주인이 되고서는 곳 마다 진리가 되게 하라는 임제(临济선사의 할과 같은 경책이었다.

그러니 성철 스님께서 하신 거뜰떠 보지 말라고 한 뜻도 결국 같은 맥락이었던 것이다.

수행의 길에서 진리가 아니면 거들떠 보지 마라.’

오직 구도를 향한 마음의심이 신심(信心)으로 변화한다.

 

오늘은 스물 네번째 구절

窮釋子口稱貧(다할 궁해석할 석아들 자입 구저울 청가난할 빈)

궁석자구칭빈 궁색한 부처님 제자 입으로는 가난하다고 하나

實是身貧道不貧 (사실 실바로 시몸 신가난할 빈길 도아닐 불가난할 빈)

실시신빈도불빈사실 몸은 가난하여도 도는 가난하지 않으리

 

어제의 구절 貌悴骨剛(모췌골강)’과 같은 맥락으로 이어진다

모체(貌悴)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초췌하다는 뜻이었다

궁석자(窮釋子) 는 궁색한 부처님 제자를 뜻한다

즉 궁색한 부처님 제자는 무소유를 실천하며 남들의 시선으로 보면 걸인과 다를 바가 없다

수행자는 세속적인 부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세속(世俗)의 부(富)가 아닌 탈속(脱俗) ()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희열은 그 어떤 물질적인 만족 보다도 더 크다.

또한 골강(骨剛)  뼈처럼 강한 강건한 정신굳은 마음을 뜻한다고 했다.

결국 수행자는 겉모습은 초췌해 보이고 몸도 가난하지만 , 마음은 강건하여 도가 넘쳐 흐르니 어찌 가난하겠는가? ‘는 뜻으로 갈무리가 된다

 

<일일 소견>

나는 수처작주,입처개진(随处作主,立处皆真처럼 당당하게 살고 있는가?

한 눈 팔지 말고 움츠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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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117

오늘의정진: 調古神淸風自高 (조고신청풍자고) 옛적의 신령하고 맑은 바람과 같은 곡조 스스로 높이고


- 100일 정진, 23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스물 두번째 구절은

<常獨行常獨步, 達者同遊涅槃路 /상독행상독보, 달자동유열반로

항상 홀로 행하고 항상 홀로 거닐며, 통달한 자 함께 열반의 길에 노닐다> 였다.


깨달음은 철저한 고독한 수행의 결과인 것 같지만 사실은 본래 혼자가 아니 였음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내 안과 밖의 수많은 인연들이 없었다면 어찌 이룰 수 있으랴?

이는 법성게(法性偈)<一中一多中一, 一卽一多卽一(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하나 안에 일체가 있고, 일체 안에 하나가 있어, 하나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라> 이 떠오르게 하는 구절이다.

하나와 일체는 둘이 아니다.

오늘은 스물 세번째 구절

調古神淸風自高(고를 조, 옛 고, 신 신, 맑을 청, 바람 풍, 스스로 자, 높을 고)

조고신청풍자고 / 옛적의 신령하고 맑은 바람과 같은 곡조 스스로 높이고

貌悴骨剛人不顧(모양 모, 초췌할 췌, 뼈 골, 굳센 강, 사람 인, 아닐 불, 돌아볼 고)

모췌골강인불고/ 겉 모습 초췌하나 강골한 사람은 뒤 돌아보지 아니한다


본래 청풍(淸風)은 맑은 바람이란 뜻이다.

여기서 신령스러운 청풍은 고아(高雅)한 정신을 상징한다.

調古神淸風自高 (조고신청풍자고)

옛 스럽고 고아한 의미를 담아낸 노래 곡조를 스스로 높여 부른다는 뜻이 된다.

모췌(貌悴)는 겉 모습이 초췌하다는 뜻이다.

골강(骨剛) 은 뼈가 단단하는 뜻인데 여기서는 마음이 단단한 걸 뜻한다.

貌悴骨剛人不顧 (모췌골강인불고)

겉 모습은 초췌해 보이지만 사실 내면이 단단한 자는 뒤 돌아 보지 않는다는 뜻이 되겠다.

불고(不顧)에서 고()는 돌아 본다, 돌 보다,  반성하다는 등의 의미를 지녔다.

그런데 무엇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일까?

이미 지나 간 일이나, 생각들 일까? 후회하지 않는다는 의미 인가?

명확하지 않다.


성철(性徹1912~1993) 큰스님께서는  부분에 대해서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해석하셨다.

앞서 모췌(貌悴) 즉 ' 모습이 초췌하다'는 뜻은 '일체 번뇌 망상이 끊어졌음'을 의미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골강(骨剛) 뼈가 단단하다는 것은 마치 '진여(眞如) 뼈가 아주 단단하다' 뜻이라고 하셨다.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져 이제는 완전히 진여가 드러난 상태라는 것이다.

그런데 스님 역시도 불고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은 설명을 하신다.

모든 망정이 끊어진 상태라 아상(我相), 인상(人相) 모두 없어진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거들떠 보지 말라는 뜻인데 그런데 도대체 거들떠 보지 말라는 뜻일까?

불고(不顧) 무엇을 돌아보지 말라, 혹은 거들떠 보지 말라는 것인가?


영가현각((永嘉玄覺665~713) 스님은 구절을 넣었을까?

무엇을 불고(不顧) 하는가?

무엇을 불고 하는가? 무엇을 거들떠 보지 않는가?

초췌한 겉모습을? 뼈와 같이 단단한 내면을?

이제 구절은 화두(話頭) 되어진다.

<일일 소견>

화두(話頭)는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의심(疑心)이다.

이 의심이 점점 커져야 한다. 무엇을 불고하는가? 무엇을 돌아보지 말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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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없는데이터 2025-01-17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익숙함 속에서 의심을 발견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올려주신 글을 읽으며 다시 깨닫습니다.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환경은 너무나 익숙하고, 그 익숙함 속에 ˝의심˝은 종종 묻혀버리곤 하죠. 하지만 이 문장을 통해 익숙함 속에서도 의문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배웁니다. 결국, 의심은 새로운 통찰과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감사합니다.

마힐 2025-01-17 16:07   좋아요 0 | URL
dbTlla 님의 썸내일이 바뀌셨군요. 잠깐 의심(?) 했습니다. ㅎㅎ
dbTlla님 말씀 처럼 익숙함은 우리를 편하게 하지만 변화를 기대하긴 힘들지요.
나이를 먹을 수록 익숙함에 익숙해 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함 보다는 의심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깨달음의 여정 길에서 도반을 만난 듯 기쁘고 감사 합니다. _()_

맥락없는데이터 2025-01-18 09:47   좋아요 1 | URL
함께 걸어갈 수 있어 저도 참 감사하고 기쁩니다. 마힐 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도반으로서의 인연, 소중히 여기며 앞으로도 서로에게 좋은 인연이 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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