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이야기 - 고익진 교수님이 들려주는
고익진 지음 / 광륵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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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고익진 교수님이 들려주는 불교 이야기

지은이: 고익진/ 광륵사

제목:  대장경의 미로속에서 만난 안내서

 

 

앞으로 누군가에게 불교에 관한 쉬운 책을 추천하라고 한다면 바로 이 책 <고익진 교수님이 들려주는 불교 이야기>을 꼽게 될 것 같다.

지금 까지 읽었던 불교 서적중 불교 기본 법문에 대해서 가장 쉽게 정리가 된 책이다.

 

 

우선 이 책을 통해 알게된 점 2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병고(丙古) 고익진 교수님에 대해서 알게 된 것과, 두번째는 <아함경(阿含經)>에 대해서도 알게 된 점이다.

고익진 교수님은70~80년대에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를 가르치신 교수님이시다.

원래 그는 불교 전공자가 아니였고 의학을 공부하다가 이유를 알수 없는 병을 얻게 되어 병원에 5년간 누워 있게 되었다.

어느날 갑자기 병에 걸려 죽을수도 있는 운명 앞에 그는 자연스레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그뒤 우연히 접하게 된 반야심경 의<是故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 味觸法 (시고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구절을 보고 충격을 받게 되는데...

 

 

 

 

 

우리는 분명히 몸을 가지고 살고 있고 또 몸안에는 눈,,, 입이 다 있지 않는가?

어찌하여 반야심경은 '무안이비설신의'  즉 눈,,,, ,뜻이 다 없다고 하는지?

당시에 그는 '무안(無眼): 눈이 없다' 는 말이 도저히 이해가 안됐다고 한다.

그것이 화두가 되어 3년을 참구하다가 결국 불교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때가 31, 동국대학 불교학과로 다시 입학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고교수님이 불광사에서 하신 아함경에 관한 강연을 책으로 편찬한것이다.

대학에서 불교를 전공하는 학생이 아닌 일반 불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이니 만큼 비교적 쉽게 설명이 되어 있다.

 

불교의 경전은 팔만사천법문이라고 전해지는 만큼 무수히 많은 법문이 존재한다.

일생에 걸쳐 다 볼수도 없고 배울수도 없다.

하지만 그 가운데 에서도 핵심은 존재한다. 

이 강의에서는 불교의 가장 핵심되는 6가지 법문에 대한 소개를 눈여겨 볼만하다.

'십업설 법문, 육육법설 법문, 오온 사제설 법문, 십이연기설 법문, 반야바라밀다설 법문, 일불승설 법문' 까지 6개 법문 이다.

그중 앞의 4가지 법문은 이 책에서 주요하게 언급되는 아함경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뒤의 '반야바라밀다설 법문'은 반야경에, '일불승설 법문' 은 법화경에  속한다.

 

 

 

책에서는 아함경에 대한 비교적 자세한 소개가 나온다.

솔직히 우리나라 조계종 불교 신자들에게 아함경은 비교적 생소하다.

조계종에서 일반적으로 예불시(禮佛) 에는 반야심경, 천수경을 외운다.

신자들이 사경(寫經) 을 한다고 하면 금강경을, 참선을 공부한다고 하면 육조단경이나 선어록을 보게된다.

그외에도 그 유명한 유마경, 화엄경, 법화경 등을 따로 공부하는 분들도 많이 계신다.

이 경전들은 전부 대승불교 경전들이다.

즉 우리나라 불교는 대승불교, 북방불교 라고 학창시절에서 부터 배워 왔다.

그러나 아함경은 초기 불교, 즉 부처님 당시에 전해진 설법을 중심으로 만든 경으로 초기 경전으로 분류를 한다.

 

이러한 정리를 책에서는 각 법문의 핵심 내용을 군더더기 없이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책이 대장경의 미로속에서 안내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얼마전에 유튜브 통해 봤던 숏츠의 한장면이 있다.

D.J가 된 스님 한분이 신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소리를 치며 청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이 또한 지나가리!' 를 외친다.)

스님의 법명은 뉴진스님. (순간 뉴진스라는 아이돌 그룹이 떠올랐다.)

뭔가 이상하다. 다시 알아보니 어느 한 개그맨이 스님으로 분장한것 이었다.

그러나 법명은 조계종에서 정식으로 받았다고 한다.

(NEW) ( 나아갈 진) , '새롭게 나아간다' 는 뜻이 담겨 있다.

불교의 '정진' '수행' 을 뜻한다.

앞으로 불교의 미래는 이러한 시도가 많이 늘어 갈 것 같다.

단순히 개그의 소재를 넘어선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는 시기가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진짜로 스님의 법명처럼 새롭게 나아가는 정진이 불교의 미래가 되지 않을까?

 

 

 

진리는 불변하는 것이지만 진리를 전하는 형식은 고정되지 않았다.

마치 물의 고유한 성질은 변하지 않지만 담는 그릇이 바뀜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듯이 진리를 전하는 방식도 그런게 아닐까 싶다.

 

 

 

 

부처님께서 전한 8 4천 법문 그 모두가 한가지 사실을 중생들에게 알리기 위해 전한 방편이라고 했다.

그 한가지 사실은 우리 모두가 깨달아 부처가 될 수 있다는것.

 

우리집에서 키우는 앵무새, 길 가의 고양이, 옆 집의 멍멍이, 가축장의 소나 돼지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들 까지.

착하고 순진한 사람만 부처가 되는게 아니라 이기적인 나쁜 부류의 사람들 그리고 사회에 해가 되는 범죄자  같은 사람과 심지어 사이코패스 살인자 까지. 부처를 이룰수 있다고 하셨다.

 

부처님 당시 '앙굴리마라'100명의 목숨을 해친 무법 살인자로 부처님까지 살해하고자 했으나 후에 부처님에게 교화 되어 승려가 되었다.

또한 부처님에게 반역을 하고 암살까지 감행한 '데바닷다' 까지도 법화경에서는 내세에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까지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불교는 바다와 같은 포용력을 지녔다.

세상의 모든 물은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산골짜기 계곡의 물도, 시냇물도, 강물도 결국엔 바다에 이르듯이

우리가 부처가 되는것은 당연한 흐름일지도 모르겠다.

 

 

 

큰스님께서 하신 말씀중에 진리를 깨닫기가 세수할 때 만지는 코만큼 쉽다고 하셨다.

그처럼 쉽다고 하셨는데 난 어째서 코를 만지질 못하고 있는가?

나는 세수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나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닦고 있는게 아닐까?

 

 

 

 

 

 

 

 

봄은 왔다.

누구는 심춘(尋春)이라 봄을 찾는다고 했는데

 

 

나는 심안(尋眼). 부터 찾아야 겠다.

 

 

가만, 무안(無眼) 이라 했는  없는데 눈을 어떻게 찾노?

 

 

 

 

 

 

 

만일 모든 것이 절대적 존재에 의해서 창조되고 지배되다고 하면 두 가지 현상이 설명되지 않는다.<중략>
‘인간의 죄악의 책임 문제‘ 와 ‘자율적인 노력의 문제‘ 이 두 가지가 마땅한 도리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을 지적하고 계신 것입니다.
<삼종외도 비판 중에서> - P38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궁극적인 진리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 P43

아함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진리를 제시하기 전에 우리 인간의 현실 세계를 먼저 보자는 것입니다. - P44

결국 세계라는 것은 ‘여섯 가지 감관 기관(육근)‘과 ‘여섯 가지 인식 대상(육경)‘으로 이루어진 ‘일체 세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유명한 12처설 입니다. - P50

우리는 나 아닌 것을 나라고 집착하고 있고, 나의 것이 아닌 것을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정반대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 P67

변화하려고 하는 작용과 변화를 허용할 수 없는 아집이 서로 팽팽히 맞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괴로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략>
그래서 ‘모든 것은 덧없고, 덧없는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운 것은 나라고 할 수 없다‘ 라고 불교에서는 말하는 것입니다. - P71

커다란 태양이건, 바다건, 모든 중생들이 업력을 일으켜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생들의 업력에 의해서 우주가 성주괴공하게 되는 것입니다.업력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큰 힘을 작용합니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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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박현섭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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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체호프 단편선

지은이: 안톤 체호프/ 박현섭 옮김

 

 

러시아 대문호(大文豪)하면 항상 언급되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푸시킨 같은 작가들의 명성은 이름부터 듣는 사람 기를 죽인다.

<전쟁과 평화>, <죄와 벌>,<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처럼 제목은 알지만 막상 책을 대하면 바로 읽어보길 포기하는 고전 문학 작품들.

그래, 책 제목만 봐도 머리가 아파지는 고전을 읽지 않아도 인생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지.

나는 그렇게 소위 러시아 대문호 작품은 제목만 아는 수준으로 거의 반평생을 보냈다.

 

 

 

그러다 나이를 먹고 독서를 하다보니 여기 저기 접하는 책속에서 러시아 작가나 작품들의 내용이 인용되거나 언급이 되어진다.

몰라도 되지만 막상 알면 더 좋을것 같은 생각들.

약간의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들의 작품이 왜 위대한 고전 인지를 이해 할 수 있는 시기가 된 것 일까?

 

 

 

그렇게 나는 이제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러시아 작품을 제대로 만나게 되었다.

(비록 단편 소설이지만....)

곧바로 러시아 대문호 작품은 부담이 되고 비교적 쉬워 보이는 단편소설 부터 시작했다.

 

그래서 선택한 체호프 단편선. 작가는 안톤 체호프.  

안톤 체호프의 명성은 앞서 언급된 대문호 만큼은 아니지만 단편소설계에서는 세계 3대 단편소설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사실 안톤 체호프(1860~1904) 에 대해서는 이번에 읽은 단편소설 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것은 아니다.

4년전 '로버트 그린' <인간 본성의 법칙:위즈덤 하우스> 이란 책에서 언급된 안톤 체호프에 대한 내용을 먼저 접했었다.

 

 

 

로버트 그린의 <인간 본성의 법칙> <권력의 법칙>, <유혹의 기술>같은 책과 함께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대판 마키아벨리라는 칭호로 소개되기도 한다.

로버트 그린의 책들에는 많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만의 스토리 텔링으로 역사속의 주인공과 사건들을 통해 자신이 의도하는 주제의식과 그 의미를 해석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것 같다.

<인간 본성의 법칙>에 등장하는 '안톤 체호프' 에 관한 챕터를 보면 안톤 체호프의 작품을 보다 깊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860(쇼펜하우어가 사망한 해), 러시아 남부,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위치한 항구도시 '타간로그' 태생인 체홉은 집안 대대로 농노 신분이 였다고 한다.

체홉은 위로 형이 2, 아래로 남동생 2, 여동생 2명중 세째로 자랐다.

농노라는 신분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 할아버지때 부터 조금씩 돈을 모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때에는 잡화점을 운영하다 빚만 잔뜩 졌버렸다.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언제나 체홉을 비롯한 형과 동생들에게 체벌을 가했다. 심지어는 아이들 엄마까지 학대를 했다.

그러다 체홉의 위에 형 2명 모두가 모스크바 대학으로 진학을 하게 된다.

반면에 아버지는 빚에 더욱더 쪼들리게 되자 모스크바로 혼자 도망을 쳐버린다.

체홉을 비롯한 나머지 가족, 어머니와 동생들은 타간로그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자신이 살던 집은 남에게 홀라당 넘어가 버리고 어머니와 동생들은 체홉만 남겨둔체 형들과 아버지가 있는 모스크바로 떠나버린다.

체홉은 당시 16살로 가족 모두 떠난 타간로그에 홀로 남아 자신의 학업과 생계를 위해 고학을 하게 되었다.

 

 

 

타간로그에 홀로 남은 체홉의 이시기는 체홉의 인생에서 마주한 시련의 시기였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자신의 미래를 바꾸는 토대가 되는 시기가 되었다.

이 시기 체홉은 철저한 고독의 시간속에서 삶에 대한 각성을 이룬것 같다.

홀로 남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떠나버린 가족들, 그 가운데서 이 모든 상황을 객관화 시켜 다시 내면의 눈으로 돌아보기 시작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것만 같았던 아버지를 마음으로 용서했고 또한 자신에 주어줬던 운명의 굴레를 체홉은 스스로 벗어 던져버렸다.

 

이시기 체홉은 타간로그에서 홀로 서기를 통해 운명을 바꿔 버렸다.

체홉은 그 이후 모스크바 의과 대학으로 진학을 하게 되면서 가족과 다시 상봉을 했다.

 

 

 

하지만 체홉의 가족은 모스크바의 빈민촌에서 오히려 타간로그 시기 보다 더욱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모스크바 대학을 다녔던 형들은 노름빚과 술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고 아버지는 여전히 술에 찌들어 있었다.

여전히 폭력에 시달리는 어린 동생들과 어머니에게는 하루 하루가 희망없는 삶이였다.

 

 

 

체홉은 이런 비참한 현실 속에서 스스로가 가장의 역할을 떠맡았다.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학업과 더불어 자신이 할 수 있는일을 찾기 시작했다.

특히 단편소설과 희곡을 쓰는 작업은 본격적으로 이 시기 부터 시작되었다.

아주 적은 원고료를 받으며 여러 잡지사에 열성적으로 글들을 투고 하게 된다.

이 글들이 오늘날 남아 있게된 체홉 초기의 작품들이 되었다고 한다.

 

 

 

체홉은 빈민촌에 살며 절망과 우울에 빠져 있는 집안 분위기를 점차 바꾸기 시작했고, 마침내 체홉 가족 모두를 물질과 정신적인 면에서 '구원(救援)' 하게 된다.

체홉 자신은 의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가졌지만 작가로서 명성이 더 높아지자 의사 보다는 작가라는 직업에 더 매진하게 된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 속에 나오는 의사는 체홉의 또 다른 분신 일 정도로 생생한 묘사를 살렸다.)

 

 

 

체홉에게 글쓰기는 자신을 향한 '구원' 이지 않았을까?

체홉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많은 인간 군상들, 특히 사회적 신분이 낮은 서민 계층이나 빈민층의 생활을 체홉은 누구보다 여실히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본인은 그들이 우울한 현실을 벗어나는 방법을 누구 보다도 더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

 

 

 

체홉이 세상을 떠나기 몇해전, 작가적 명성과 더불어 문학계에서는 체홉에 대한 시기와 질투를 일쌈았다.

이때 환멸을 느낀 체홉은 당시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사할린을 여행하기로 결정한다.

그 이전 부터 폐결핵을 앓고 있던 체홉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지인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결국  당시에 지옥이라 불리던 사할린으로 떠나게 된다.

(모스크바에서 사할린은 극동에 속하며 중간에 혹독한 시베리아 벌판을 거쳐야만 한다.)

 

 

체홉은 사할린에서 교도소 죄인들, 특히 살인으로 수감중은 범죄자들과 그의 가족들을 인터뷰하고 또 사할린 섬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을 한다.

그의 이런 현장 체험은 훗날 <사할린 섬>이란 책으로 나오게 된다.

체홉의 <사할린 섬> 책은 대중의 관심을 끌었고 이후 사할린 섬의 여건이 상당부분 개선 되었다고 한다.

(안톤 체호프 책<사할린 섬>은 우리나라에도 출판 된적이 있지만 , 현재는 아쉽게도 절판된 상태이다. 중고거래 가격이 엄청나다.)

 

그 이후 체홉의 폐결핵은 더욱 심해졌다.

1904년 겨울, 시골에서 썰매가 타고 싶었던 체홉은 자신의 의지대로 썰매를 타고나서 결국 46세의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만다.

 

 

 

안톤에게 글쓰기는 곧 '구원(救援)' 과 같은 의미로 생각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글쓰기의 원동력은 밑 바닥 계층의 암담한 현실에서 시작 되었다.

불교에서 '연꽃은 진흙속에서 핀다' 고 전한다.

안톤에게 진흙은 우울하고 비참한 현실, 즉 다양한 중생들이 사는 현실이 아니였을까?

 

 

 

농노라는 신분이지만 나름의 음악적 재능을 가졌던 아버지, 하지만 농노라는 신분을 결국 극복하지 못한 체념속에서 아버지가 할 수 있는것은 술 먹고 화내는 것 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족들을 힘들게 했던 아버지를 안톤이 어린 나이에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벗어나지 못했던 이런 업의 굴레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안톤에게는 용서하지 못할 아버지나 바꿀수 없는 환경이 문제가 되질 않았다.

소설속에 나오는 수많은 캐릭터 처럼 아버지와 가족을 비롯한 모든 인간 군상들의 운명은 고정 되지 않다는것을 이미 꿰뚫어 보았던 것은 아니였을까?

그렇게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에 대한 연민은 그의 글에서는 위트와 유모로 승화 되었다.

 

 

 

이처럼 안톤의 글을 통한 구원은 그 자신과 가족, 세상을 향한것이었다.

이것이 안톤의 단편 소설과 희극속 작품에 깔려있는 안톤만의 구원의 방식이 아니였을까 싶다.

안톤식의 구원, 그의 작품속에 그만의 '구원의 힘' 이 담겨 있다.

이제는 안톤 체호프가 남긴 작품들을 시간이 되고 기회가 된다면 틈틈히 읽어볼 예정이다.

나 또한 안톤이 그랬던 처럼, 책을 통해, 글을 통해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원(求原)하는 힘이 생기길 바란다.

 

<救援이 求原이 되길 바라며>

 

 

" 이 젊은이가 자기안의 노예근성을 한 방울 한 방울 모두 짜내서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깨어 더이상 자신의 혈관을 흐르는 피가 노예의 피가 아닌 진짜 인간의 피라는 것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글로 쓰려고"

(안톤 체호프가 친구에게 전하는 편지 글에서)<인간 본성의 법칙 P.336>

나는 그대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경멸을 표현하기 위해,내가 한때 천국을 꿈꾸듯 갈망했으나 이제는 하찮게 보이는 200만 루블을 거부하겠다.
<내기 중에서> - P147

이 무시무시한 뜻밖의 소식은 클리모프의 의식 속으로 온전하게 전달되었지만 그것이 아무리 무섭고 강력한 것일지라도 회복기의 중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동물적인 기쁨을 이기지는 못했다.
<티푸스 중에서> - P160

"제가 침을 튀겼습니다. 각하..... 용서하십시오. 전 그저...... 다만......."
<관리의 죽음 중에서>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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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3 월28

제목: 지켜본다

 

 

지켜보는걸 놓치지만 않는다면

뭔가 힘이 생길것만 같다.

해결이 되는 힘.

 

 

어제 유투브를 통해본 혜자스님 법회.

어느 처사님이 하루동안 마음자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지켜봤다는 일화를 듣고

나도 따라 해본다.

 

 

얼마나 지켜 볼수 있을까?

금방 딴 생각, 정신을 한곳에 모을수가 없다.

의식들의 본성은 원래 흩어지는게 아닐까?

쉽지 않다.

 

 

몸속의 의식들이 알아서 이끌어 주는게 아니라

내가 마음을 잘 내야 알아듣고 움직여 준다는

큰스님 법문 구절.

 

 

돌려 놓고, 지켜보고

오직 그거 하나만 하는건데도

아직도 힘들다.

번번이 무너져 버리는 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보는것 하나만 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용을 쓰면 용을 쓴 만큼

어제까지 우울한 기분과 주위의 상황이

밝아져 보인다.

 

 

과연...

 

지켜보는 것은

돗보기 렌즈로 종이 한곳에 태양빛을 모으면

종이위 한점에서 서서히 불꽃이 생겨 태워 버리는것 처럼

내면의 쓰레기들을 태워버리기 시작한다.

 

 

지켜보기는 초집중이다.

 

 

 

                                                    <어제 혜자스님 유튜브 법문을 듣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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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3 월27

제목: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부럴.

 

 

 

몇일간 우울했다.

물론 지금도 기분이 영 밝지는 않다.

뭐 때문일까?

요즘 흐리고 추운 날씨 탓일까?

희망이 없는 회사 탓일까? 그래도 버텨야 하는데...

아니면 점점 신체 나이를 먹으며 갱년기가 되어가는 육체의 노쇠함 탓일까?

고딩들 아빠이자 완산의 남편으로 살며 점점 무거워지는 아빠란 이름의 무게 탓일까?

 

 

 

그래, 이게 다 내탓이다.

내가 태어났으니 우울하고 괴롭다고 하니

모든게 내가 있어서 괴롭다면

시시때때로 올라와 얽히는 나의 인연의 실타래 때문이라면

어느것 부터 풀어야 하지?

 

 

 

본래 청정한 하늘은 여여한데

잠깐 구름에 가려졌다고 하늘이 탁해지는가?

탁해진 마음이 내 본 마음이 아님을 알지만

아직도 우울하고 밝지못한 주위만 보고 있다.

 

 

 

'심안으로 옳게 보아야 하나니' 가 주문처럼 외워진다.

육안으로는 외부의 현상을 보고

심안으로는 내면의 현상을 보고

육안으로 들어온 상과 심안으로 비춰지는 상이 둘이 아니라 하시지만

 

 

 

아직도 육안으로 보는 것에 끄달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안으로 옳게 봐야지.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탓도 하지 말자.

내 탓도 하지 말자.

 

 

 

지연이의 씨부럴,

정말로 잘 돌려놓네?

듣기 참 좋다야. 씨부럴.

 

 

<문술법우가 전해준 지연이 관노트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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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3 월21

제목: 내 좁디 족은 속그릇

나의 속은 참 좁다.

아량이나 배포가 좀 더 넓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마음공부를 해서 마음을 넓히고

책을 보면서 지식과 지혜를 넓히고

여유있게 세상과 나를 관조하고 싶은데

세상은 내 마음 같지 않아 괴롭고

나는 아직도 마음에 휘둘려 주인 노릇을 못하고

아집, 아만, 아상이 가득차 버렸다.

어디 걷어서 덜어 놓을때 없나?

덜어 놓긴, 어디다 뭘 덜어 놔.

다시 놓아버려야지.

먼저 집어 들어야 놓을수 있다.

집기는 무척 힘들지만 일단 겨우 집어들면

아집, 아만, 아상은 이미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어느새 줄어져 버린다.

그걸 다시 놓으면

속그릇에 비해 작아진다.

그릇이 커야 담기도 수월한 법

작은 내 그릇

그릇을 키울수 없다면

담는걸 줄일수 밖에.

<어느 한 친구에게 계속 서운함이 올라와서 관 해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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