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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B급 며느리 생활
김진영 지음 / 김영사 / 2019년 8월
평점 :

2018년 화제의 독립영화 <B급 며느리>가 개봉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다루는 것을 금기시되고 있는 고부갈등을
어떤 대본 없이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였습니다.
<슬기로운 B급 며느리 생활>은 주인공 김진영 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써놓은 책입니다.
영화에서 담아내지 못한 속마음을 엿볼 수 있어요.

그동안 당연하게만 느껴졌던, 아니 어떤 부분은 빼고
자식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시댁에서의 행동에 딴죽을 거는 저자,
효도는 셀프랍니다.
정말 그 말이 맞긴 해요.
우리 부모님이 나를 정성껏 키우셨지 남편의 부모님이 나를 키운 건 아니죠.
어찌 보면 힘들고 정성스럽게 키운 그 보람을
며느리에게 보상받으려고 하는 마음이 올바르진 않다고 생각이 드네요.
게다가 자식을 키우는 데 보답을 바라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내가 학비, 식비, 주거비, 용돈 등으로 얼마를 썼고,
그동안 집안일을 해서 사회생활을 못 한 비용까지 청구할 수 없는 거니깐요.
그렇다면 부모와 자식 모두 마음의 빚을 만들게 하고, 지우게 하는 거니
그 관계가 아름답진 않잖아요. 가족은 '사랑'만 있으면 충분한 겁니다.
요즘은 맞벌이 가정이 많아져 남자, 여자 모두 돈을 버는 입장인데,
집안 일과 육아는 오롯이 여자들에게만 떠맡기고 있습니다.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남자는 가끔 도와준다고 생각하지
분담한다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남녀 모두 결혼은 처음이고, 육아 역시 처음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알지도 못했고, 자라면서 크게 배우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여자는 응당 집안 일과 육아를 해야 하고,
남자는 그런 일을 못해도 원래 그런 거라며 치부합니다.
부부는 주어진 몫을 해야 하고, 그 몫을 공유하며
분담이 어렵다면 수고하는 사람의 노동이 최소한이 되도록 협조하는 함이 마땅합니다.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 사이에 이런 배려도 없다면 어떻게 같이 살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하나씩 전부 따져서 세상을 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부탁을 하면 사람인지라 대신할 수도 있고,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해야 하는데 안 하는 며느리, 혹은 아내가
이상하다고 여기는 태도와 생각이 문제입니다.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달라 생각과 태도가 다른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기에 내 생각이 옳다, 너의 생각은 틀리다고 하면
살아온 인생이 부정당하게 됩니다.
사람은 변하기 힘든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의 나(며느리, 아내)를 받아'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편견 속에서 자라납니다.
의식적으로 편견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해도
매체나, 주의 사람들에게서 편견을 보게 되고,
아이들은 판단하지 못한 채 받아들입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편견을 학습하기도 합니다.
무지보다 위험한 것은 편견입니다.
무지한 사람은 언젠가 배울 수 있지만
편견에 갇힌 사람은 옳은 것을 들어도 배우기를 거부합니다.
성평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로 들어서 알지만 행동으로 체화되지 못하고,
학교에서 옳다고 배운 것들을 정작 가정에서 실천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간극이 우리 시대의 남녀 갈등을 만들고 있습니다.
성평등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이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성평등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정에서 공기처럼 존재하는 성평등을 호흡하며 자란 아이들은
이성을 존중하고 이성의 존중을 받으며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계속 싸웠습니다.
조금 더 노력하면 아이들의 삶은 훨씬 풍요로울 수 있다고 믿었으니깐요.
독립영화 <B급 며느리>가 벨기에에서 열린 영화제가 초청돼 상영된다고 했을 때
저자는 유럽은 뭔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그 나라 여성들도 어른들이랑 어려운 건 마찬가지고,
영화를 본 관객들이 자기 얘기 같다며 울기까지 했대요.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은가 봅니다.
가족 관계처럼 내밀한 개인사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남에게 이런 문제가 있다며 상담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것도 터부시되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힘겹게 가는 저자, 같은 여자들이 응원할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있을 겁니다.
저도 읽으면서 받아들이면 안 되나 싶은 것들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뭐든지 쉬운 길보다 자신의 소신대로 가는 길은
어렵고 힘들지만 그렇다고 안 가면 되는 길은 아니죠.
그런 사람들의 힘이 모여 지금의 우리나라가 되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나를 위한 완벽한 사람도, 완벽한 세상도 없지만
나의 오늘을 바꾸기 위해서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매번 확인한다는 김진영 씨의 말에 저도 반성합니다.
후회 없는 내 삶을 위해 오늘부터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