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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성취 고객센터
마론 지음 / 팩토리나인 / 2024년 2월
평점 :

저자는 오랫동안 라디오 작가로 일하며 생방송에 쏟아지는 문자들을 볼 때면, 사람들은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업실이 서촌에 있을 때 가끔 들린 통인 시장에서 분식점 할머니께서 깨끗한 종이 가방에 떡볶이를 넣어주셨는데, 비닐봉지면 충분하다고 사양했더니 이왕이면 이쁜 데 넣고 다녀야지라며 건넸습니다. 그럼, 그날 할머니의 종이 가방만큼 다정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쓴 <소원성취 고객센터>를 보겠습니다.

선택적 함구증에 걸린 소원이 비 오는 날 하굣길에 횡단보도 앞에서 우산을 가지고 나온 엄마를 만나 "엄마!" 하고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집에선 말을 잘 했으나, 밖을 나오면 입을 다물어 속상한 엄마는 소원의 소리를 듣고 빨리 만나고픈 마음에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건넜으나 덤프트럭이 조금 늦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차에 부딪혀 죽었습니다. 그날 엄마를 부르지 말았어야 하는데라는 후회로 16년을 보낸 어느 날, 자신의 인새에서 빠진 부분이 뭔지 깨달았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살펴주고, 자신도 누군가를 살펴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소원성취' 앱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했습니다.
청담동 헤어숍에서 스태프로 일하는 은지는 샴푸의 달인입니다. 차원이 다른 그녀의 손놀림에 두피가 상쾌해진 고객들은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녀는 아이돌 블랙의 멤버 제로를 좋아했고, TV에서 종종 본 제로가 지친 모습을 보며 안쓰러웠습니다. 그래서 제로가 행복해졌으면 하는 소원을 앱에 적었고, 대면 상담을 통해 소원은 은지의 휴대폰에 필요한 서비스가 들어간 앱을 만들어 설치했습니다. 예상할 수 없는 시간에 예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서비스가 제공되니 놀라지 말라는 말을 듣고 집에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흐릿한 은지는 여느 때와 같이 미용실에서 잡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폰 화면에 알림창이 떠서 확인했습니다. 귀에 꽂은 무전기 이어폰으로 제로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빵집 사장 정도순은 오지랖이 넓어 동호회, 번영회, 동창회 같은 곳에서 총무를 도맡아 합니다. 어려서부터 친구 좋아하고 왁자지껄하게 노는 걸 좋아했던 그녀는 이제 사람들의 부탁을 자연스럽게 거절해서 서서히 멀어지고 싶다는 소원을 말합니다. 원하는 서비스가 들어간 앱을 만들어 건네준 소원은 받지 않을 전화번호를 신중하게 고르라고 합니다. 받고 싶지 않은 전화번호를 등록해놓으면, 그 번호로 오는 전화나 문자를 걸려준답니다. 도순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만든 가짜 목소리가 대신 전화나 문자로 답하는데, 계속 전화를 안 받아도 문제가 안 될 사람, 부탁을 거절해도 되는 사람을 신중하게 고르라고 선택하라고 합니다.
<소원성취 고객센터>엔 애틋한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6편 실려 있습니다. 좋아하는 스타의 행복만을 바라는 팬, 악플이 두려운 웹소설 작가, 애완묘가 된 길냥이의 말을 알아듣고 싶은 아저씨, 오지랖을 그만 부리고 싶은 빵집 사장, 동생의 복수를 하고 싶은 언니, 췌장암 3기 판정받은 스타 강사까지, 저마다 사연도 바라는 것도 다릅니다. 그들은 소원이 만든 '소원성취 앱'을 이용했고, 그들의 소원에 맞는 맞춤 앱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설치된 앱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소원을 이루게 되는데요, 하지만 그 앱에 무한정 매달리진 않습니다. 결국 소망을 이루는 것은 본인 몫이고, 앱은 도우미 역할만 할 뿐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도, '소원성취 앱'을 만든 소원도 마음이 아픈 사람입니다. 그들의 상처 난 마음에 반창고를 바르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결국 그들이 자신의 아픔을 제대로 본 자신입니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봐 준다는 건
삶의 의미를 단단히 만드는 계기가 되는 법이다.
p. 134
네이버카페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