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개인적인 한국사 - 사적인 기록, 시대를 담아 역사가 되다
모지현 지음 / 더좋은책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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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사랑해 이화여대 사학과에 진학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 과정을 거치며 임용고사를 통과한 저자는 고양시의 고등학교에서 십 년 넘게 한국사와 세계사 수업을 담당했습니다. 현재는 학교 밖 청소년과 부모, 교사를 대상으로 강의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배워 지혜를 나눔으로써 건강하고 따뜻한 사람들의 세상이 되기를 꿈꾸는 저자의 <아주 개인적인 한국사>를 보겠습니다.



임진왜란 7년 동안 명군과 왜군 양쪽에 의해 전 국토가 유린되었고 문화재의 약탈, 소실 또한 막대하게 초래되었습니다. 한양의 춘추관과 충주사고, 경상도의 성주사고 등이 전화에 휩쓸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기록이 사라졌습니다. 그런 와중 전주사고 기록만은 기적적으로 보존되는데, 백성의 절대적인 헌신 때문입니다. 나이 때문에 의병에 지원할 수 없었던 64세 안의와 56세 손홍록이 가동(집안의 종)들과 함께, 궤들을 일일이 지게에 얹어 어깨에 메고 1592년 6월 내장산 금선계곡의 은봉안(은적암)에 도착했습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사재 또한 아낌없이 털어 이처럼 필사적으로 옮긴 것은 다름 아닌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 각종 중요 문헌, 그리고 국조인 태조의 어진과 제기들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피란 길은 1603년 강화도로 이안되며 마칩니다. 십여 년 동안 무려 삼천 리의 피란 길, 기나긴 그 길 끝에 전주사고 실록은 기어코 살아남는 데 성공합니다. 전쟁이 끝난 뒤 조정은 안의와 손홍록에게 종 6품의 벼슬을 내립니다. 민간인에게 내려진 최상급의 벼슬입니다. 큰 공을 세운 의병장도 5,6품직을 하사받은 정도였으니 이들의 공로를 당시 어느 정도로 높게 평가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멜 표류기'는 신비하고 야만적인 모험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유럽인에게는 큰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널리 읽혔습니다. 조선에서 13년이나 생활한 저자가 알려준 정보는 신뢰성이 높아 무역을 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도움이 된 때문입니다. 이같이 서로에게 미친 영향은 컸으나 실제 결실을 얻지는 못합니다. 네델란드는 일본에 무역 거점을 가지고 있는 한 조선과 무역 거래를 할 생각을 버려야 했습니다. 게다가 네덜란드가 파고들기에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몹시 견고했습니다. 보고서의 출간이 조선에 관한 초기 인식을 제공했고 그 유럽 국가들 대부분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근대 이후 이들의 조섬 침탈은 '하멜 표류기'로부터 얻은 조선의 정보에 기반을 두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시기에 대한 안타까움만 가지고 있다면 현재 우리 또한 같은 길을 걸어갈지 모를 일입니다. 당시 조선이 가진 한계를 넘어서는 데 필요했던, 사고의 전환을 가져올 힘, 그것은 미지에 대한 시선이 우리의 묵은 지식에서 비롯됨을 인정함으로써 다른 시각도 허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 이것이 '하멜 표류기' 안에 담긴 그 시대가 우리에게 남겨주면서 기억하고 변화하기를 바라는 또 하나의 전언일 것입니다.




역사는 개개인의 삶이 한 흐름으로 모인 줄기이며 산맥입니다. 개인의 삶은 역사 속에서 규정되기 마련입니다. 한 개인이 살아낸 시대는 그의 모든 것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이 개인의 삶을 결정짓는 순간에도 개인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주어진 수많은 선택지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상황 동일 조건에도 다른 선택을 하는 개인들은 놀랍습니다. 시대에 대한 순응도, 침묵도 선택할 순간이 있는 법입니다. 때로 개인적 비극으로 종결될 것이 예상됨에도 저항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난 좁은 길로 다수의 개인이 뒤따르기를 선택하면서 역사는 또 한 걸음 나아갑니다. 그러기에 역사는 거대하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입니다. 역사 <아주 개인적인 한국사>는 작은 개인이 경험한 시대, 그 시대를 빚어낸 개인이 선택한 삶들을 보여줍니다. 일기와 자서전, 회고록과 비망록 등 개인이 사적으로 남긴 기록을 통해 한국사의 흐름을 그려봅니다. 그때 그 시절 생생하게 숨 쉬는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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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와 마고의 백 년
매리언 크로닌 지음, 조경실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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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990년 영국 워릭셔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랭커스터 대학교에서 영어와 문예창작을 전공했으며, 이후 버밍엄 대학교에서 응용언어학을 연구해 석사와 박사 학위를 땄습니다.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인 <레나와 마고의 백 년>이 2022년 '알렉스 어워드'를 수상하고, 2021년 '인디펜던트', '엘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급부상했습니다. 그럼 <레니와 마고의 백 년>을 보겠습니다.



글래스고 프린세스 로열 병원에 17살 레니 페테르손은 시한부 병동에 있습니다. 병원 성당의 아서 신부에게 매번 이곳엔 신자들이 없다며 자신이 홍보를 하겠다고 계획을 세우며 그냥 보기엔 활기찬 10대 소녀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신부에게 왜 죽어가는지를 묻습니다. 질문을 들은 아서 신부는 '왜'는 항상 답하기가 어렵다며 섣불리 아는 체할 수 없다고 합니다. 결국 속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한 레니가 다시 자신의 자리에 왔고, 신입 간호사가 남긴 쪽지를 보고 수간호사 재키에게 가려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자리에 없었고 그때 뭔가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송 요원 폴이 밀고 다니는 재활용 쓰레기 카트를 나이 지긋한 노부인이 열심히 헤집고 있습니다. 뭔지는 몰라도 원하는 걸 찾았는지 노부인이 몸을 일으켰고 그녀는 편지 봉투 하나를 잠옷 가운 주머니에 넣습니다.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재키와 폴이 밖으로 나옵니다. 노부인과 레니는 눈이 마주쳤고 수선을 떨며 노부인이 몰래 지나가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노인들을 위한 미술 치료 수업에 우연히 들린 레니는 노부인을 봅니다.


노부인은 83살 마고 도커티로 조니 도커티라는 남자와 결혼했고 아들 데이비를 낳았지만 건강하지 못해 죽었습니다. 남편 조니가 실종되어 그를 찾으려고 했으나 자신과 반대 성격의 미나를 만나 친구가 되었습니다. 마고는 마고 도커티에서 마고 마크래로 돌아오고 더 이상 조니의 가족들과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마고가 서른이 될 즈음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혼자 살다가, 40대 후반에 험프리 제임스와 결혼해서 함께 삽니다. 20년간 함께 산 남편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렸고 그는 요양원으로 갔습니다. 그가 아직 정신이 있을 때 마고를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오면 그에게 잘 자라고 말하고 평생 다시 못 해볼 진한 키스를 해준 다음 다시는 돌아오지 않도록 험프리와 굳게 약속합니다. 곧 그렇게 되고 다시 혼자가 된 마고도 나이가 들어 요양원에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지내던 중 건강에 문제가 생겨 글래스고 프린세스 로열 병원에 왔습니다. 그곳에서 친구 미나가 호찌민에서 보낸 편지를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레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레니와 마고의 나이를 합치면 100살입니다. 17살 레니와 83살 마고는 시한부 병동에서 만났고, 그렇게 둘은 우정을 나눕니다. 레니가 자신이 왜 죽는지를 병원 성당 신부께 물어보지만, 우리가 왜 살아있는지 알 수 없기에 왜 죽는지도 알 수 없다는 답을 듣습니다. 사는 일, 죽는 일은 둘 다 미스터리라서 두 가지를 직접 경험해 보기 전까진 어느 것도 알 수가 없다고요. 우린 태어나면서 죽음에 가까워집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살아가기 바쁜 젊을 땐 하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 아프기 시작하면 하게 됩니다. 매일 죽음에 다가가는 삶을 생각해 보면 우울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레니에게 죽어가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중이라고 말하는 피파의 말처럼, 심장이 뛰고, 눈으로는 뭔가를 보고, 귀로도 뭔가를 듣고 있으니 지금은 살아가는 중입니다. 우린 어떻게 살아있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살아있는지는 모릅니다. 그것에 대한 답은 지금을 살아가면서 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레니의 17년과 마고의 83년은 한 줄로 설명되지 못한 이야기를 읽으며, 오늘이 얼마나 작고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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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수학 - 특별한 수, 특별한 삶, 특별한 나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특별한 여행
박종하 지음 / 세개의소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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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수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 등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수학을 소재로 창의성과 문제 해결, 성장과 혁신에 대한 강의와 집필을 하고 있습니다. 수학 박사이면서 경영과 성장을 연구하는 독특한 경력으로, 다양한 기업과 공공 기관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전문 강사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특히 국내 최고 기업의 CEO와 임직원 대상의 교육기관 SERICEO에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최고의 평점을 받으며 최장기 강연을 진행하여 주목받았습니다. 그럼, 저자가 쓴 <뜻밖의 수학>을 보겠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입사 문제에 나온 질문이자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도 이 문제가 나왔습니다. 대부분 이 문제를 접하면 '면적은 30'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답은 틀렸습니다. 왜 정답이 아닐까요. 이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학교 3학년 정도의 수학 지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누구라도 제대로 답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악마의 기하학 문제'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과연 이 문제의 답은 무엇일까요. '그런 삼각형은 존재할 수 없다'가 정답입니다. 문제에서 주어진 것과 같은 밑변과 높이를 갖는 직각삼각형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왜 면접에서 이 문제를 선택했을까요. 주어진 일을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사람이 아닌, 과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사람을 찾으려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질문과 답 중에서 질문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주어진 질문이 올바른지, 그 뒤에 숨은 다른 조건은 없는지 판단하기도 전에 빠르게 답만 찾으려고 합니다. 주어진 문제에 반사적으로 답을 찾기보다 먼저 문제를 평가하고, 좋은 문제를 찾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소수는 1과 자기 자신 외에는 약수를 갖지 않습니다. 영어로 프라임(prime)은 '가장 중요하다'는 뜻으로 소수는 '가장 중요한 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실제로 소수는 다수가 아닌 소수(小數)이기 때문에 더욱 특별합니다. 소수를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신부였으나 수학과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마랭 메르센은 자신이 알아낸 계산식으로 소수를 찾았습니다. 그의 계산식은 점점 알려져 다른 수학자도 많이 이용하게 되었고, 이 계산으로 나온 수 중 소수인 것을 '메르센 소수'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수학자가 메르센 소수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컴퓨터를 활용하고 더 효과적인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천제들의 일화는 정말 영화 같습니다. 하지만 일화처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할 수 있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해낼 수 없습니다. 정답이 정해져 있는 수학 문제도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답을 구하기도 하고, 구할 수 없기도 합니다. 하물며 정답이 없는 우리 삶의 많은 문제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도전하느냐에 따라 답이 결정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감,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보통 운 좋게 떨어진 행운보다는 내 힘으로 노력해 얻은 성과를 자랑스러워합니다. 성장 마인트세트를 지닌 사람은 '나는 창의적인 사람인가, 아닌가?'라는 물음보다 '어떻게 하면 나의 창의성을 키울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수학을 잘하려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성장 마인트세트를 갖고, 센스를 키워가며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면 됩니다.




어린 시절 저자는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수학을 좋아했답니다. 정확히 말하면 수학 교과서와 문제집이 아니라 수학 퍼즐과 같은 재미있는 문제와 이야기를 좋아했답니다. 짜릿한 즐거움을 주는 게임이나 퀴즈, 이야기를 접하면서 수학에 흥미를 갖게 된 것입니다. 재미있으니까 자꾸 하게 되고, 많이 하니까 잘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수학과 함께 살아가고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과정은 수학을 전공했던 저자의 지인들도 가지고 있답니다.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살아가고 살아가게 될 우리들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수학적 사고가 필수입니다. 하지만 의무적으로 수학을 공부한다면 즐거움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저자에게 재미를 주었던 수수께끼와 문제, 수학 이야기를 <뜻밖의 수학>에 모았습니다. 읽다 보면 이전에는 몰랐던 수학이 주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수학이 머리 아픈 것만이 아니라, 특별한 수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수학적 규칙이 아름다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수학이 주는 새로운 즐거움을 이 책으로 느끼길 바랍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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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시대정신이 되다 - 낯선 세계를 상상하고 현실의 답을 찾는 문학의 힘 서가명강 시리즈 27
이동신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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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후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현대 미국 소설, SF 문학, 고딕 소설 등을 가르치며, 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 틀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최근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함께 '인간-동물 연구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인간-동물 관계의 성격과 문제점을 논의하며 좀 더 윤리적이고 실천적인 관계를 모색하고 있는 저자의 <SF, 시대정신이 되다>를 보겠습니다.



흔히 새롭고 낯선 것을 다루는 상상력 가득한 장르로 SF 혹은 판타지라 부르며 이 둘을 혼동합니다. 하지만 SF와 판타지는 다릅니다. 이들을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은 '인지적 낯섦'과 '노붐'으로 이 두 가지는 SF 장르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입니다. 작가의 경험적 환경이라는 것은 인지의 측면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환경은 이미 이해하고 있는 익숙한 환경입니다. 그런데 그것의 대안이 되는 상상의 틀은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지만 낯선 것입니다. 판타지에서는 용이 등장해도 이상할 것 없다며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SF에서는 용이 등장하면 의심하고 물어봐야만 합니다. 과연 용인지, 어떻게 나타났는지, 그것이 존재함으로써 현실 세계는 어떻게 변하는지 등을 따져 물어야 합니다. '노붐'은 새로운 것이지만 그저 새롭고 신기한 정도가 아니라, 그 새로운 것 하나 때문에 우리의 세계관과 우주관이 다 바뀔 정도로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의미입니다. SF는 이 둘을 충족시키기 위해 신의 영역으로 불리는 시간에 돈을 던집니다. 그렇게 시간을 뒤틀고, 공간화하고, 영생을 꿈꾸기도 하며 인간의 상상력을 무한히 자극합니다.


'현실 도피'는 SF라는 장르가 성장하고 자리를 잡게 만든 결정적 특징입니다. 이 특징은 SF 장르에서 새로운 공간에 대한 다양한 시도와 탐구로 이어집니다. 대표적으로 '우주'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탐험을 떠나며 스페이스 오페라가 탄생합니다. 윌슨 터커는 당시 대중들에게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스페이스 오페라의 주요 특징을 우주선, 재미있는 모험 이야기, 정형적인 플롯과 평범함의 세 가지로 규정했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우주선과 외계인 외에 반복되는 것은 외계 행성입니다. 지구를 배경으로 한 여행기에 등장하는 낯선 곳은 여전히 지구라는 환경에 얽매여 있기에 새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구에서도 판타지가 아닌 방식으로 매우 낯선 환경을 그릴 방법이 있는데 종말 이후의 세계,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을 그리는 것입니다. 또한 판타지처럼 모든 것이 가능하면서도 동시에 판타지가 아니라 SF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사이버스페이스'도 있습니다. 사이버스페이스는 다른 공간을 탐색하는 게 아니라는 관점에서 스페이스 오페라의 성장이 주춤하게 만들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이버스페이스가 더 다채로워지고, 더 흥미로워지며, 더 새로워지려면 지구를 넘어 우주로의 여행을 더 많이 하고 그 여행으로 얻을 수 있는 무언가를 사이버스페이스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간 SF는 잡지에 연재되면서 황금시대를 맞습니다. 독자와 작가가 모두 성장하는 시기로, 유명한 작가들이 이때 대거 등장합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황금시대는 쇠락하고 SF의 주 매체가 잡지에서 책으로 전환되며 저자와 독자 모두에게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SF 작가들은 심오한 철학과 신랄한 비판을 이야기에 담아내려 하고, 대중적 장르에서 좀 더 심각한 장르로 변모합니다. 작품이 복잡해지고 주제의식이 강해지며 문해력을 요구하자 독자층에도 변화가 나타납니다. SF는 이제 전 세계의 장르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성이라는 말로는 포섭될 수 없는 무한히 넓은 장르로 진화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무엇을 쓰고, 무엇을 읽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 그리고 왜 읽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좀 더 진중하게 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SF는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과 성취를 자양분으로 해서 성장한 장르입니다. 태생적으로 SF는 과학기술로 무엇이 가능한지, 향후 무슨 일이 얼어날지를 때로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비판적으로 상상해왔습니다. SF를 유치한 장르 혹은 재미로 읽고 보는 장르라고 무시해왔지만 SF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그 이상이 보입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온 장르로서,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SF 장르를 읽는 독자들은 공상의 세계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공상의 세계를 잇는 노력을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상상과 비판을 동시에 수행하는 능동적 독자가 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 독자가 많아진다면 더 좋은 SF 작품이 탄생될 것입니다. 그리고 좀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도 생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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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편의점 : 과학, 신을 꿈꾸는 인간 편 지식 편의점
이시한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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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에서 국문학으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을 수료한 저자는 현재 성신여자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서울대, 연세대를 비롯해 전국 각지의 대학교 100여 곳에서 강의했으며, 삼성, SK, KT, 롯데 등 50여 개 기업에서 강연을 했고 국회, 육군, 전북도청, 경남교육청 등 50여 개 공공기관에서도 강연했습니다. 그럼, 저자가 쓴 과학 <지식 편의점 : 과학, 신을 꿈꾸는 인간 편>을 보겠습니다.



과학과 함께 발달한 인류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 파우스트는 자신의 영혼을 지불하고 악마와 계약을 맺습니다. 파우스트는 그 대가로 젊음을 되찾고, 막대한 부와 권력을 물론, 인조인간을 만드는 능력까지 얻습니다. 오늘날 과학이 인간에게 약속한 비전들과 비슷합니다. 파우스트는 악마의 능력을 취하는 데 영혼을 지불했지만, 결과적으로 누릴 것을 다 누린 후 그의 영혼을 구원받습니다. 오늘날의 과학은 어떨까요. 과학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대가는 없을까요. 인류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수명까지 스스로 정하는 인간은, 결국 신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과학이 달려가는 방향을 살펴보면 우리를 신으로 만들어주는 열쇠 같아 보입니다. 아니면 과학이 신 그 자체의 모습 같기도 합니다. 우리는 과학에 이끌려 신이 되고 있는 것인지, 우리가 신이 되는 데에 과학을 이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신과 신분이 지배하는 중세 시대는 모든 판단과 원리의 기준이 교회와 계급이었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자연을 설명하고 자연법칙의 원리를 정의하는 데 효율적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과학은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과학의 절대적 기준이 부각된 셈입니다. 사람은 평등합니다. 당연한 이 명제가 처음으로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기 시작합니다. 과학 법칙은 신의 뜻이나 신분의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어디서나 과학 법칙이 성립된다는 것은 신조차도 과학 법칙 안에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뉴턴의 과학 법칙 앞에 사람은 모두 평등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다윈의 논의는 그 평등성이 사람을 넘어 모든 생물에 적용된다고 합니다. 사람 역시 자연계 안에 하나의 구성원일 뿐이라고요. 이런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신이나 신분에 구애된 중세적 시각을 버려야 합니다. 과학이라는 기준이 필요한 근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결국 과학은 인간을 진화시키기 위해 사용됩니다. 인간에 대해 속속들이 밝혀지면서 그 지식을 가지고 생물학적으로 업그레이드합니다. 종국에는 비생물학적 업그레이드까지 하게 되겠죠. 그래서 인간은 진화의 단계에서 초월하게 됩니다. 그것이 지금의 인간과 같은 선상에 있는 존재인지, 아니면 다른 존재인지 논의해야 할 때입니다. 새롭게 탄생하는 인류가 지금의 인간의 진화선상에 있으려면 인간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과학이 인간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500년 정도입니다. 신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기에 한 줄기 빛처럼 나타나 중세의 암흑시대를 서서히 몰아내기 시작한 때가 그 정도입니다. 그런데 과학은 정말 빛이 맞을까요. 정말 인류를 유토피아로 향하게 하는 길일까요. 현재로서는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지식 편의점 : 과학, 신을 꿈꾸는 인간 편>에서 인간과 과학의 자취를 책들(파우스트, 호모 데우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과학 기술, 인쇄술, 방법서설, 종의 기원, 프린키피아, 꿈의 해석, 부분과 전체, 과학혁명의 구조, 시간의 역사, 엔트로피, 침묵의 봄, 이중나선, 특이점이 온다)과 함께 들여다보며, 과학이 안내하는 인간의 길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길의 끝에 닿은 지점이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길이 안내하는 흐름을 보면 방향성은 어느 정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의 지난 흔적들을 되짚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나아갈지를 생각하게 하는 지적인 현대인을 위한 지식 편의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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