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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집
정보라 지음 / 열림원 / 2025년 5월
평점 :
네이버카페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

저자는 연세대학교에서 노어노문학과 영어영문학을 공부하고, 예일대학교에서 러시아·동유럽지역학으로 석사학위를, 인디애나대학교에서 슬라브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고통에 관하여", "밤이 오면 우리는" 등을 썼고, "브로츠와프의 쥐들", "브루노 슐츠 작품집", "스타니스와프 렘 단편선" 등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1998년 연세문화상에 "머리"가, 2008년 디지털문학상 모바일 부문 우수상에 "호"가 당선되었으며, 2014년 "씨앗"으로 제1회 SF 어워드 단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저주토끼"로 2022년 부커상에 이어 이듬해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선정되었고, "너의 유토피아"로 2025년 필립 K. 딕상 후보에 오르며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럼, 저자의 신작 <아이들의 집>을 보겠습니다.

시민은 누구나 한 달에 하루, 돌봄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무정형은 집 조사관으로 이전 거주자가 나가고 새 거주자가 들어오기 전에 집을 조사합니다. 유독성 물질이나 발암물질이 나오는지, 수도와 전기의 작동 유무, 갈라지거나 금 간 곳이 있는지 등의 거주환경을 점검합니다. 자신의 담당구역에 아이의 시체가 발견되었고, 엄마는 정신이 나간 상태였습니다.
표의 입양 기록에는 고아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녀를 입양한 양모들은 표가 낳아 준 나라와 키워 준 나라 양쪽에 대해 긍지를 갖기를 원해서 표가 버린 나라를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표가 입양된 과정이나 친부모를 찾는 방법을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표에게는 어머니들이 있었고, 양모들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표의 애인 관의 양부모는 어린 시절부터 그를 학대했습니다. 성년이 되어 양부모와 인연을 끊으려 했을 때 자신에게 국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관의 양부모는 강제 추방 당하기 전에 돈을 벌어서 자신에게 갖다 달라고 요구했고, 표는 관과 결혼해서 시민권자의 배우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키워 준 나라의 정부는 동성 결혼을 금지하는 재판에 돌입했고, 표의 입양도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관은 친아버지의 이름과 살았던 지역의 이름을 떠올려 친부모의 나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가족을 찾은 관은 입양이 아니라 납치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표도 같은 단체에서 입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표와 관의 입양을 주선한 단체의 정체는 무엇이며, 무정형이 담당한 집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더 자세한 이야기는 <아이들의 집>에서 확인하세요.
<아이들의 집>은 모든 돌봄이 국가와 공동체의 책임이 된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직접 양육하고 싶으면 집에서 양육할 수 있습니다. 집은 신청하면 국가에서 무상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부모가 낮에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아이들의 집'에서 양육 선생님들이 돌봐주고 식사를 챙겨 먹이고, 유치원이나 학교를 다니는 나이의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도록 등하교를 도와주고 숙제도 돌봐 줍니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다 보면 힘들 때도 있고 부모가 돈이 없거나 병에 걸리거나 다치거나 조부모가 아프거나 여러 가지 일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는 아이를 '아이의 집'에 맡길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원해서 스스로 '아이들의 집'에 머무르고자 한다면 부모는 강제로 아이를 데려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기가 어떤 병에 걸리더라도 치료하고 양육하는 과정을 국가가 책임집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부모가 원하는 돌봄 센터와 아이의 행복이 실현된 곳이 바로 책 제목이기도 한 '아이들의 집'입니다. 모든 아이가 행복하게 자랄 권리와 의무가 있지만, 어떤 양육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아이의 삶은 크게 달라집니다. 상황이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아이 탓을 하는 양육자, 본인이 학대를 당했기 때문에 원래 아이는 그 정도 학대는 견뎌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양육자, 자신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아이에게 강요하는 양육자, 이런 양육자들은 고의가 없다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아이가 죽는 존재라는 생각을 못 하고 그저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기 때문입니다. 부모도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아니었지만, 이런 양육자 아래에서 자란 아이의 삶의 경험은 한정적이게 됩니다. 자신이 경험하는 것이 학대라는 사실을 본인이 인지하고 스스로 그 상황에서 탈출할 방법은 별로 없습니다. 탈출한다고 해도 아직까지 '남의 아이'를 돌봐주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아이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저자는 모든 아이에게 언제나 갈 곳이 있는 사회, 언제나 지낼 집이 있고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 주고 돌봐 주는 존재들이 있는 사회를 상상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 미래 사회가 작가의 상상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이의 삶은 아이의 것이었다.
혈연이 있는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기쁜 일이고 행운이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슬픈 일이지만,
가족의 불운이 아이의 인생 전체를 지배할 필요는 없었다.
돌봄을 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은 모든 아이가 가진 고유의 권리였다.
p. 17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