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팔란티어 1 -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
김민영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3월
평점 :
일요일 아침, 녹색 잠바를 입은 한 남자가 가문의 보물인 진검 하나를 챙기고서 교회 앞에 있던 송경호 국회의원과 목사, 그리고 경호원 한 명을 죽이는 일이 발생한다. 도저히 인간의 몸놀림으로 보이지 않던 움직임을 보이던 그 남자는, 한 경호원의 총에 의해 생을 마감했고, 국회 의원 살인사건이라는 타이틀 아래 통합수사기관이 조직되어 살인사건의 전말이 무엇인지를 찾는다.
이 이야기에는 두 명의 인물이 중심이 되어 사건이 전개가 된다. 천재 프로그래머이며, 일말의 사건으로 인해 스트레스성 발기 부전을 갖게 된 원철,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파견된 합동 수사본부의 경사 장욱이 그 중심 인물이다. 이 둘은 친구 사이로, 어쩌다보니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이 살인사건이 접근하게 된다. 이 사건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열쇠를 끼워 맞추면 답이 찾아지는 일종의 추리 소설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답에 접근하게 해주진 않는다.
경영컨설턴트가 썼다는 책이 이렇게 흥미진진할 줄은 몰랐다. 이 책은 현실에서도 두 인물에 의해 전개되지만, 프로그래머인 원철이 하고 있는 게임, '팔란티어'란 세계를 통해 원철의 캐릭터인 보로미어의 여행이 단연 돋보인다. 하지만, 원철은 게임 과정을 통해 아주 특이한 점을 발견한다. 게임 속의 이 보로미어란 캐릭터는 자기와는 전혀 다른 인격체를 가진 것이다. 이성적이고 냉철하고 똑똑한 프로그래머인 원철과는 달리, 그가 조종하는 캐릭터는 무식하고, 폭력적이고 저돌적인 전형적인 전사이다. 캐릭터를 그가 키워가는 과정에서 그가 그렇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이것은 그의 속에 숨어 있던 또 다른 자아인가?
작가는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생각을 제시했다. 바로 '무의식'이란 존재에 대한 탐구이다. 이 책이 쓰여진 당시만 해도 무의식에 대한 연구가 그리 활발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슬슬 선구자들이 나와서 가상현실을 이용해 인간의 무의식이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 일치하는지도 실험을 통해 진행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팔란티어란 게임도 결국 가상현실이니, 사람들의 무의식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이러한 것은 아주 중요한 키워드가 필요하다. 바로, 무의식이 일상 생활에서 의식에게 억눌려 있는 이유이다. 우리의 삶은 법과 짊서의 체계 속에 갇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무의식이 튀어나온다면, 삶이 어떤 식으로 변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의식을 가두고 의식이라는 자아를 선택한다. 하지만, 그런 제약이 모두 사라진다면? 현실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위험해지지만, 가상현실에서의 범죄는 결국 가상현실에서 끝날 뿐이다. 이러한 것이 발화점이 되어 무의식은 의식을 누르고 바깥쪽으로 뛰어나오게 된다. 곧, 냉철하지만 소심한 프로그래머의 자아가 그의 의식이 된 것이고, 그간 그의 폭력적인 성향은 모두 무의식으로 억눌려진 것이다. 보로미어의 모험 와중에는 레인져란 존재가 등장한다. 길을 찾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간교하기에 사람들에게 사기를 자주 치는 이 직업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은 현실에서는 매우 모범적인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임중독 살인사건'이라는 부제목을 볼 때부터 바로 답은 튀어나오게 되어 있다. 국회의원 살해범인 박현철은 평소에 벌레 한 마리 못 죽이는 샌님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팔란티어란 게임을 했으며 그 게임에서 그가 전사였다고 가정하면 평소에 무술 수련을 전혀 하지 않은 그가 국회의원을 어떻게 죽였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가 문제이다. 그는 스스로 국회의원을 죽일 마음을 품은 것인가? 아니면,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무의식이 표출된 것일까? 작가들은 키워드를 점점 더 더해가고, 결국 마지막 키워드에 다다랐을 때 모든 결과를 종합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통해 이미 결말을 인정했을 때, 예상한 것과는 다른 색다른 결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순간을 읽을 때에, 나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음모 뒤에 숨은 또 다른 음모, 그리고 열쇠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경우도 있었다. 이 소설의 장르는 무엇인가? 판타지 소설? 추리 소설? 스릴러 소설? 아니면, 내가 느낀 미지의 공포를 맛보게 해준 공포 소설인가? 이 책 덕분에, 인간의 의식이라는 것에 대하여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