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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닮은 그릇, 도자기 ㅣ 보림한국미술관 13
방병선 지음 / 보림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오봉초 4학년 최 상철

도자기는 우리나라의 고유 그릇. 그 몸매 또한 사람의 형상을 닮았다. 그중에서도 최고를 뽑으려면 당연히 고려청자일 것이다. 청자의 푸른빛은 푸른 산을 떠올리게 하며, 도공들의 마음또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청자의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러하다. 먼저 도공들은 좋은 흙을 골라내어 가져온 후에, 도자기를 빚는다. 만든 도자기를 충분히 말린 후에 800~ 900도에서 15~25시간 불을 때어 초벌구이를 한다. 초벌구이 후에 도자기에 아름다운 문양이나 그림을 그려넣는다. 그림을 그린 도자기에 유악을 입히기 위해서 보통 30초에서 1분 정도 유약에 담갔다가 꺼내며, 붓으로 칠하거나 대롱 둥에 유약을 담아 뿌리기도 한다. 그 후에 재벌구이라 하여 1200~1300도에서 20~30시간 동안 불을 땐다. 그 중에서 도공들은 질좋은 도자기를 골라내고 나머지는 망치를 이용해 처분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도자기들은 상류층의 사람들이 감상하고, 쓴다. 하지만 그 빛깔이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일본 사람들에 의하여 빼앗긴 적도 있다. 수만원을 들여 이 도자기들을 얻기위해 힘쓰고, 아름다운 여자의 몸매를 가진 것 같은 청자를 감상한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의 수많은 도공은 일본으로 대부분 잡혀가고 우리나라에서는 몇안되는 도공만 남아 그 인간 문화재의 기술을 이어가고 있다.

청자의 깊은 매력은 한국인이 아니면 느낄 수 없다. 일본인은 그 겉모습만 보고 빠져들었을 뿐, 도자기를 위해 헌신한 마음까지는 볼 수 없다. 도자기, 그 깊은 매력은 조선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그릇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있는 명언은 그릇은 사람이다, 라는 것이다. 사람이 없는 그릇은 그릇이 아니다. 그릇이 그릇일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을 만든 사람과 쓰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의 도자기가 우아한 비췻빛 청자라면, 조선의 도자기는 겉도 깨끗하고 마음도 깨끗한 백자다. 도자기의 깊은 매력을 이 책을 통해 또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짧게 시를 지어 보았다.
제목: 청자
푸르른 빛 푸르른 산같다
그안에 마음도 담고
물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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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 8.1. 금요일

장소: 경기도 광주시 관요 박물관, 남한산성
< 경기도 관요 박물관>

마지막 날인 오늘은 아침을 값비싼 황태 해장국으로 간단하게 먹고 우리나라의 도자기에 관한 관요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맨 처음 들어섰을 때에는 수많은 글들과 화려함과 수려함을 돋보이고 있는 수많은 도기, 자기들이 보였다. 도기와 자기를 합쳐서 도자기라고 하는데 이 그릇의 종류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고 한다. 토기는 점토로 만들어졌으며 연한 성질이어서 연질도기라고도 한다. 도기는 2차점토로 성형했으며 비교적 욘도변화와 충격에 강하다고 한다. 석기는 돌과 같이 매우 단단한 그릇으로 변화가 풍부하다고 한다. 또 자기는 반투명하고 맑은 소리를 내며 맑은 소리를 낸다. 그릇에도 이렇게 많은 종류가 있을 줄은 몰랐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던 이 도자기들이 모두 무척 중요한 실용성 자원이라고 한다. 잘 알지는 못했었지만, 플라스틱, 유리와 같은 자원보다 도자기의 경우 천연으로 아주 쉽게 되돌아가며 불과 충격에 유리나 플라스틱보다 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도기와 자기중에서도 여러 갈래로 나뉜 종류의 수를 보고 눈이 희둥그레졌다. 도기는 무유, 시유로 종류가 나뉘는데 무유에는 연질도기, 침탄도기, 경질도기로 나뉘고 시유에서는 회유도기, 연유도기로 나뉜다. 무슨 말인지 몰라서 사전을 찾지 않으면 잘 모를 말들이다. 최초의 도자기는 BC 3000~4000년 사이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빗살무늬토기도 BC 3000년 경에 생겨났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갈수록 화려했지만 초창기에는 우리나라의 빗살무늬토기가 제일 초라해 보이기도 했었다.


조선백자와 분청사기는 조선을 대표하는 두 가지 자기였다. 백자 문화는 아시아의 삼국 - 일본, 중국, 한국을 중심으로 서서히 퍼져나갔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분청사기는 우리나라만의 특유한 기술로 만들어진 자기인데, 분청사기를 주로 만들어내 조선 중기에 성행했으나 갑자기 나라에서 조선 백자에 엄청난 지원을 하자 조선백자가 성장을 하면 그 반비례로 분청사기는 쇠퇴해갔다. 우리에게 유행이 이리저리 바뀌듯이, 도자기도 그 역사가 갈수록 바뀌는 것 같다.
가끔 도자기중에서 보면 검은색과 푸른색 무늬를 가진 자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산화코발트를 이용한 염료를 그려넣은 것과 국내의 산화철로 만든 염료를 그려넣은 것이다. 산화코발트의 경우에는 페르시아와 중국을 거쳐 수입해야 했었는데 두 번의 과정을 거치다 보니 그 값이 무척 비쌌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어느날 모든 과정을 산화코발트에서 산화철로 바꾸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산화철로 바뀐 무늬라 하더라도 단지 색깔이 바뀌었던 것 뿐이지 사기의 아름다움은 그대로였다.
그 곳에서는 가마터의 모습을 인형의 모습으로 만들었던 것이 있는데, 있는 모습을 거의 그대로 재현해낸 듯 했다. 도자기를 깨는 사람과 가마를 이용해 굽는 사람, 흙을 밟는 사람, 흙으로 자기를 빚는 사람등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중에서 도자기를 깨는 사람이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한다. 도기공중에서도 가장 눈이 높은 사람이 임금님께 진상할 가장 좋은 품목을 골라내어서 바쳤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가장 실력이 좋은 사람이 도자기를 깨고 골라내는 수 밖에 없었다.

<남한산성>
그 후에 갔었던 곳은 바로 병자호란의 치욕이 남아있던 곳이자 그러나 가장 단단했던 요새인 남한산성이었다. 남한산성내에는 수많은 가게들이 있었다. 의외로 높아보이는 산은 얼마 전에 막 음식을 먹은 나에게 정복욕심을 심어주었다. 결국 거의 경쟁하다시피 하며 정상으로 올라갔었는데 정상에서는 서울 모든 것이 다 보이는 것 아닌가? 거기다가 멀리에는 남산타워의 모습까지 얼핏 보였다. 서울이 엄청 크다고 생각했지만 높은 산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한낱 거대한 개미의 둥지만할 뿐이었다.
그 후에 먹었던 냉면은 꿀맛이었다. 산을 오르내리면서 배고픈지라 먹는 음식이 더욱 맛있었다. 곧 있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피로감이 내 몸을 급습했다. 비록 힘든 하루였지만, 다음번에는 또 도봉산 정상을 정복하는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