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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마사코입니다
강용자 지음, 김정희 엮음 / 지식공작소 / 2013년 8월
평점 :
대한제국 말기는 격랑의 소용돌이였다. 1863년 열강의 각축 속에 대원군은 고종을 즉위시켜 정권을 잡았다. 외세 침략의 틈바구니에서 민비와 대원군은 정치권력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895년, 조선의 왕비 명성황후를 무참히 살해한다.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 황제에 즉위했다.
이 책은 고종 황제의 세 번째 왕자 영왕 이은과 일본 천황의 친족 나시모토미야 마사코 여왕 이방자 여사의 ‘영원한 사랑’에 대한 기록이다.
고종 황제의 세 번째 왕자이자 마지막 황태자인 이은은 대한제국의 몰락과 함께 11살 때 일본에 볼모로 끌려갔다.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사단장, 공군사령관, 군사참의관을 지내고 2차대전 이후 평민이 됐다. 일생의 대부분을 일본의 군인으로 보냈지만, 그는 아내 이방자 여사의 표현처럼 ‘망국한을 되씹으며 몸부림치는’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다.
이방자 여사는 이 책에서 “망국한을 되씹으며 몸부림치는 그분을 보며 나는 한·일 융화보다 외로운 그분의 따뜻한 벗이 되고자 했다. 암담한 인생길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인간으로서 깊은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라고 회고한다.
이 책은 모두 7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낙선재 조약돌’에서는 영왕 이은이 순종의 후계자가 되어 볼모로 일본에 끌려가는 망국의 시대상황을 다루고 있다. 2부 ‘깊은 오월’에서는 정략결혼 내막과 영왕 부부의 만남에 대해서 자세히 다룬다. 3부 ‘하얀 예감’에서는 첫아들 이진의 죽음과 고종의 독립운동, 순종의 서거, 인산일의 6.10만세운동에 대해서 전한다.
4부 ‘인도양 검은 파도’에서는 영왕의 해외 순방과 영왕의 약혼녀 민갑완 규수와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전한다. 5부 ‘도쿄 안의 종묘’에서는 운현궁 이우공의 죽음과 영왕의 일본생활의 고뇌가 그려진다. 6부 ‘경계인의 선택’에서는 아들 이구와 부인 줄리아의 사연과 구황실재산의 행방, 극심한 생활고와 조국의 냉대가 그려진다. 7부 ‘오, 남산’에서는 1970년 장애인을 돌보며 사회복지사업에 선구자로서 자활과 교육에 힘쓴 각고의 노력에 대해 감동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이 되자 주일 대표부를 통해 귀국 희망을 전했으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의 귀국에 냉담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거부로 돌아오지 못하고, 1963년 56년 만에 휠체어를 타고 환국했지만 이은은 뇌내출혈로 말을 잃었다. 영왕 이은은 6년 6개월을 투병하다 73세로 서거했다.
이 책을 통해서 ‘낙선재의 여인’으로만 알려진 마사코 여사의 말년 사회복지 활동과 황실 후계자였던 외아들 이구와의 가슴 아픈 사연을 읽노라면 눈물이 난다. 이 책의 말미에는 마지막 황태자비의 인생 역정을 따라가면서 의왕 이강과 덕혜옹주, 이건, 이우 등 왕가의 파란만장한 삶도 이방자 여사를 통해서 들을 수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공부하다 보면 울분이 치밀고, 가슴에 큰 돌을 얹은 것처럼 답답해지며, 조선정부의 무기력함에 할 말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