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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 - 145년의 유랑, 20년의 협상
유복렬 지음 / 눌와 / 2013년 8월
평점 :
의궤(儀軌)란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의 주요 행사 준비와 진행 과정, 의례절차와 내용, 소요 경비, 참가 인원, 포상 내역 등이 글과 그림으로 상세하게 기록한 귀중한 기록유산이다. 외세에 약탈당한 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국의 도서관에 사실상 방치되어 있었고, 반환을 요청한 뒤에도 돌아오기까지 2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이 책은 외세에 약탈되어 145년의 유랑을 마치고 우리 곁에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 반환협상의 최전선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여성 외교관 유복렬이 협상에 참여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담은 에세이이다. 외규장각 의궤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의궤가 파리 샤를드골공항으로 옮겨져 비행기에 실리는 순간까지 협상의 한가운데서 만난 여러 사람과의 다양한 인연들, 겪어야 했던 숱한 고비들, 그리고 개인적인 감회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본격적 협상에 첫 발을 뗀 1999년 양측이 외규장각 의궤 약탈 배경이 된 병인양요 발발의 책임을 놓고 공방을 벌이는 장면은 당연히 우리 측에 돌아와야 할 문화재를 돌려받는 일이 생각처럼 간단치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책을 보면 “그러더니 살루아 위원은 갑자기 주먹으로 탁자를 쾅 하고 내리쳤다.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 이걸로 됐어, 됐다고’라고 하면서 짜증 섞인 표정을 드러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키 큰 노신사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우리는 모두 살루아 위원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우리들의 눈길은 아랑곳하지 않고, 테이블 위에 놓인 자기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겨 그대로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p.39)고 기록했다.
마지막으로 박 대사는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문화재를 맞교환한다는 생각 자체를 우리 국민들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대가를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의궤를 돌려주고 대신 한국 국민들의 영원한 사의謝意를 선물로 받으십시오. 그것이야말로 미래 양국 관계의 초석이 될 것입니다.”(p.122)
외규장각 의궤 반환이 쉽게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을 했던 나로서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반환 협상이 이루어지기까지 수많은 곡절이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입장차는 마치 나란히 그려진 평행선과도 같았고,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저자는 바로 협상의 중요한 순간마다 현장에 있었다.
저자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20년에 걸친 외규장각 의궤 반환협상 동안 숱한 논란과 비난, 주장과 가설들이 오갔다”고 하면서 “외규장각 의궤가 우리나라로 돌아온 지금, 그동안 있었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고 싶었다”(p.9)고 말한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국가 간 문화재 반환의 대표적인 사례인 외규장각 의궤 반환협상을 다룬 이 책은 알려진 것만 15만여 점에 달하는 해외 문화재, 그중에서도 특히 약탈, 도난 등 불법으로 반출된 문화재의 환수에 앞으로 소중한 참고 자료가 될 것이며, 외교관의 일상과 삶이 궁금한 이들은 열혈 여성 외교관의 직업 여정을 따라가며 유쾌하게 읽을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무엇보다 문화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복잡했던 반환협상의 경과를 마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