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선 괴서, 조작의 역사
이시언 지음 / 해례원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독립운동가였던 신채호 선생은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는 선생의 말은 국민의 자긍심과 나라사랑 정신은 그 나라의 역사를 통해 발원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기에 선생은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며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바로 나라사랑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알려 주신 것이다.
이 책은 일본어 번역가이자 역사 연구가로, 근래에는 일제의 조선침탈과 관련한 음모와 조작을 파헤치고 있는 저자 이시언이 괴서, 투서, 음모, 조작 등을 통해 조선시대의 사화, 옥사, 환국 등 권력 싸움에 얽힌 이야기와 조선시대 정치세력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10가지 괴서 사례를 담고 있으며, 연산군과 훈구와 사림, 중종과 조광조, 선조와 정여립, 이이첨과 광해군, 예종과 공신집단, 성종과 정희왕후, 영조와 노론, 숙종과 김석주, 한명회와 살생부, 문정왕후와 윤원형이 펼쳤던 권력투쟁과 음모를 자세하게 다룬다.
이 책의 겉표지에는 “신하는 왕을 속였고 왕은 백성을 속였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권력을 잡고 유지했는가”라고 기록되어 있다. 속고 속이며 권력싸움을 하느라 백성의 안녕은 뒷전이었다. 현종과 숙종 때 전국에 기근과 역병이 닥쳐 수많은 백성이 죽거나 도적이 되었다. 그 와중에도 왕과 신하들은 권력싸움에 빠져 백성을 돌아보지 않았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왕, 괴서 하나로 신하를 속였다’에서는 괴서를 이용해 반대 세력과 신하를 제거한 왕의 이야기이다. ‘조의제문’을 빌미로 한 연산군의 음모와 ‘중종과 조광조’ ‘선조 대 정여립’의 사건이 담겨 있다. 2부 ‘신하, 괴서 하나로 왕을 속이다’에서는 괴서를 이용해 왕에게 역공을 펼치는 신하의 이야기이다. ‘이이첨 대 광해군’ ‘공신집단 대 성종’ ‘정희왕후 대 성종’ ‘노론 대 영조’ 사연으로 역사적인 사건과 맞물린 괴서를 파헤치는 재미가 남다르다. 3부 ‘왕과 신하, 괴서 하나로 백성을 속이다’에서는 피비린내를 머금은 한 장의 괴문서 세조와 한명희, 궁궐 뜰에서 발견된 위조 편지 문정왕후와 윤원형, 남인을 도륙한 비밀 상소 숙종과 김석주 등 백성의 여론을 얻기 위해 괴서를 활용했던 이야기를 담았다.
단종 1년 때,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을 일으켰다. 수양대군은 한명회와 함께 반란을 계획했다. 한명회는 반란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생살부’라는 괴문서를 작성해 두었다. 자신들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는 대신들의 이름을 ‘살’부에, 이용 가치가 있는 대신들의 이름을 ‘생’부에 기록한 것이다. 한 장의 괴문서에 대신들과 그 일가족의 운명이 달려 있었다.
성종 6년 때, 승정원에 괴이한 괘서 하나가 내걸렸는데 거기에는 ‘강자평이 진주 목사가 된 것은 대왕대비의 특명’이라는 내용과 ‘윤사흔·윤계겸·이철견 등 여러 대신들을 비난하는’ 말들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 이 하나의 괘서는 정희왕후와 그녀의 외척 파평 윤씨 일파에 대한 정치적 견제가 폭발하는 신호탄이 됐다. 조정은 완전히 뒤집혔고 왕과 신하, 신하와 신하의 얽히고설킨 권력 관계가 표면화되면서 갈등이 분출했다. 괘서는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 것이다.
저자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이 책을 통해서 역사 속 권력 다툼들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