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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 - 다큐PD 왕초의 22,000킬로미터 중국 민가기행
윤태옥 지음, 한동수 감수 / 미디어윌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이 때 가지 많은 책을 읽었지만 이 책 같은 제목은 처음이다. 무슨 책의 제목이 <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 오셨는가>다. 책의 제목을 보고서는 ‘남·여 관계’에 관한 책 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의 서문을 읽고 뜻을 알게 되었다.
제목은 중국의 ‘죽림칠현’ 가운데 한 명인 유령의 고사에서 따왔다. ‘술만 먹으면 옷을 벗는’ 술꾼이 있었는데 어느날 누군가 그를 찾아와 알몸 추태를 나무라자 유령이 “나는 천지가 옷이고, 집이 속옷인데 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하고 되물었다는 일화에서 나왔다.
사람들에게 집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에서는 투자와 투기로서의 부동산이란 의미가 강하다. 하지만 집이란 추위와 더위, 비와 바람을 막아준다. 뜨거운 햇볕은 막아주고 따스한 햇볕은 들어오게 하며, 무서운 것들은 막아주고 좋은 것들을 쌓아두는 곳이 바로 집이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 PD 윤태옥이 10개월여의 기간 동안 상하이 번화가에서 네이멍구의 초원까지 2만 2,000km에 달하는 엄청난 거리를 여행하며 중국인의 집에 대해 취재한 것을 담았다. 저자는 직접 사진을 찍고 집의 구조를 스케치했다. 이 과정에서 그곳의 역사를 공부하고 그곳의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하며 집에 얽힌 삶의 스토리를 모았다.
“여행에서 보이는 것의 70%가 건축”이라는 말이 있듯이 건물 구경이 여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이 높다. 특히 집이라는 공간이 삶과 문화와 예술을 품은 거처이고 보면 인간 문화에 대한 여행은 집이라는 공간으로의 여행에 다름 아니다.
이 책은 모두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사합원, 착한 신민들의 참한 살림집’에서는 가장 중국다운 주택이라는 사합원을 소개하고 권력층의 주거지 대원, 전통적 공동주택 대잡원, 서민 단층집인 평방에 대해서 설명한다. 2장 ‘물산이 풍요로운 강남의 건축문화’에서는 중국 강남 지역의 집을 다룬다. 쑤저우의 원림 같은 귀족 저택뿐만 아니라 서민 주택지구인 수향과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던 상하이의 이롱주택을 살핀다. 3장 ‘토루와 조루, 황제는 멀고 산은 높다’에서는 전란을 피해 숨어든 유민들의 보금자리 푸젠성 객가 토루와 험한 세상 견디려 풍수에 기대어 지은 광둥성 객가 위룡옥, 푸젠성 객가 안정보, 광둥성 화교 조루에 대해서 살핀다.
4장 ‘고난 속에 피어난 꽃 소수민족’에서는 중국 소수민족의 집인 광시좡족자치구 간란주택, 구이저우성 둥족 고루와 풍우교, 후난성·구이저우성 먀오족 조각루, 구이저우성 안순 둔보, 구이양 석판방을 살핀다. 5장 ‘멀고 먼 곳의 소박한 사람들’에서는 중국 남서부의 윈난성과 동티베트 등 국경 인근의 멀리 떨어진 곳의 주택에 대해 다루었다. 6장 ‘거대한 역사가 몰아쳤던 북방’에서는 중국 북방 지역의 집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투루판의 자허고성, 중국 섬서성 황토고원, 네이멍구자치구 초원, 만주 조선족 초가집을 다룬다.
이 책을 읽고 평생을 내집 마련에 목숨 걸어야 하고, 어렵게 마련한 집도 대출금 갚느라 허리가 휘는 대한민국에서 집이란 과연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집이란 얼마짜리 집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누구와 함께 사는지,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