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는 단어에 골몰해 있을 때가 있었다. 여행이란 뭘까. 어딘가를 떠나서 돌아오는 것인가? 아니면 떠나는 것인가?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여행을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으로 가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저것이 여행을 설명할 수 있는 뜻이냐는 질문 때문에,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수년간 친구들과 대화를 통해 고민해 보아도 그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여행이란 나에 대해 더 알게 되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다가, 여행을 떠남으로 인해 오롯이 나에 관한 관심, 나를 위한 관심을 두게 되니 말이다.
사실 여행을 떠나기란 쉽지 않다. 경비도 그러하고 일정을 조율하는 것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도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여행은 단지 떠남이 아니다. 돌아오기 위한 과정이고, 의미가 보태진다. 저마다 떠나고 돌아오는 사이에 삶의 방향성과 패턴을 돌아보고 성숙한 사랑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한다.
이 책은 여행작가 오소희가 열살 짜리 아들과 함께 석달 동안 페루와 볼리비아, 브라질 등을 돌며 현지 주민과 교감한 여정을 담은 책이다. 가까운 거리가 아닌 멀고도 먼 중남미를 여행하고 쓴 에세이라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 여자의 몸으로, 초등학생인 아들을 데리고 떠났다는 것이 남다르다. 보통 여행서적을 보면 여자 아니면 남자 혼자서 떠나서 자신만을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이 책은 아들과 함께 떠났기에 또 다른 시선으로 여행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남한면적의 200배가 넘는 중남미의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자연환경을 확인하고, 이런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16세기 유럽의 침략과 식민지배에도 파괴되지 않고 남아있는 원주민들의 전통과 문화를 찾아 알려주기도 하고, 서구의 유럽 시각으로 본 남미 대륙이 아닌 남미 그 자체로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고자 했다.
저자가 남미를 여행하면서 받은 라티노들에 대한 일관된 인상은 폭력과 피로 얼룩진 역사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간으로서의 온기를 잃지 않고 현재를 즐기고 누릴 줄 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체면문화 때문에 남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데 비해 그들은 남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물고 빨고 사랑하는 그들의 열정 사이에서 저자는 이목, 체면, 나잇값 같은 단어들 사이에서 경직되어 있던 스스로를 돌아본다. 종내에는 삶에 대한 유연함에 대해 더 배우기 위해, 한 달 반의 여정으로 꾸린 여행을 브라질 리우에서 석 달로 늘리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렇게 남미의 사람들은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더 빨리, 더 많이’를 외치며 무한경쟁의 속도전 속에 내동댕이쳐진 작금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페루’에서는 페루에서 당신이 꼭 알아야 할 한마디는 무엇이며, 잉카는 어떻게 무너졌는지 알려준다. 2부 ‘볼리비아’에서는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은 생각보다 적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3부 ‘브라질’에서는 브라질은 어떻게 국가로 탄생했는지 알려준다. 4부 ‘콜롬비아’에서는 언제나 먹고 마시고 춤을 추는 이유를 알려준다.
이 책을 통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남미의 여러 나라들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기회가 되면 꼭 가보고 싶은 나라들이다. 특히 책의 중간 중간에 있는 사진들은 황홀감을 더해준다. 남미의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