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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1825일의 기록 - 이동근 여행에세이
이동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11월
평점 :
사람들은 모두가 여행을 꿈꾼다. 아마 떠나기 전의 설렘이 있어 좋고, 돌아와서는 남겨진 추억과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30대 초반,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나는 현실에서 잠시 ‘여행’이라는 일탈을 했었다. 세상 이곳저곳을 가보고, 그곳의 세상을 느끼고 싶었다. 이러한 여행이다 보니 여행사에서 안내하는 정해진 코스 여행은 아니었다. 나의 여행은 걷고 싶으면 걷고, 더 가고 싶으면 더 걸었던 그런 여행이었다. 가는 곳마다 그곳 사람들과도 친해지고 많은 이야기도 나누었다. 아마 그래서인지 일반 여행보다 나에게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많은 것 같다.
이 책 <너 1825일의 기록>은 ‘이동근의 여행 에세이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환상적인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내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행 에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여행 작가 이동근이 서울 북촌, 전주 한옥마을 등 소문난 관광지나 허름한 이발소가 주저앉은 골목까지 사람의 흔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다니며 베풀어 온 79개의 사랑의 기록을 담은 것이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만지듯 세상을 향해 저자가 보내는 사랑이 가득한 눈길과 손길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에서 작가는 남들이 흔히 하는 아름답고 화려한 곳을 관광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유명한 관광지 속 풍경이든 소박한 골목이든 사람이 그 안에 속해 있다면 모두가 소중한 공간이자 안식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좋은 추억, 상처, 가슴이 먹먹해지는 애틋함이 함께 공존하는 곳, 골목,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한 두 살 먹어갈 때,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주었던 곳, 삶의 실존 공간인 시장 골목, 여관 골목, 상가 골목, 주택가 골목, 포구 골목, 돌담 골목, 벽화 골목까지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 낸 깊은 의미를 담은 일상을 따라가 보며 1825일 만에 저자가 찾아낸 ‘너’의 의미를 만나볼 수 있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곳도 이 책 속의 사진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동네 친구들과 골목에서 구슬치기를 하고, 이십 원짜리 흑백사진 만화경을 보며 세계여행을 했다. 전봇대를 등지고서 친구들과 말뚝박기를 하면 맨 앞에 엎드리곤 했다. 머리를 찧어도 아프기보다는 즐거웠다. 차가 들어서지 않는 골목 가장자리에 박스를 펼쳐놓고 친구들과 둘러앉아 숙제를 베끼기도 했으며, 달력으로 무적의 딱지를 만들어 친구들의 딱지를 몽땅 싹쓸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어느 할머니가 말한대로 “젊은 사람들은 이런 동네 안 살려고 해. 모두들 도회지로 떠나 버리고, 재개발이다 뭐다 어수선하기도 하고.... 자식들도 자꾸 오라고 하는데, 가기가 싫어.” 혼자 남은 동네 노인들이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것이 제일 싫다며 할머니는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는다.
작가는 “여행에서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이 그토록 소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때로는 수백 마디의 옳은 말보다 단 한 번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일이 더 소중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이 고민을 터놓는 사람에게는 더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지나온 어린 시절을 많이 생각했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사람냄새를 맡지 못하는 분들과 사람 냄새 나는 동네를 구경하고 싶은 분들에게 꼭 읽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