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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신화 - 현대 소설 속 종교적 인간의 이야기
유요한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2년 3월
평점 :
한국은 정교 분리를 엄격히 규정하는 나라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사실 역사적으로 정교분리 원칙은 종교가 세속정치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속정치가 종교를 탄압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면서 요즈음 기독교 정당을 만들려고 하는 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사회와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교회가 기독교의 이름으로 정당을 만드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정당을 통하지 않고도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종교는 문화마다 제각기 다른 형태로 존재하며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계속해 왔다. 여러 종교연구자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종교를 정의해왔으나, 대개 매우 포괄적인 종교 현상의 일부만을 부각시키는 불완전한 정의가 많았다. 타일러처럼 “영적 존재들에 대한 신앙”이 종교라고 정의한다면, 영적 존재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 전통은 종교의 범위에서 배제될뿐더러 신앙이 종교와 동일시되거나 종교의 본질로 간주되어 신화, 교리, 의례, 공동체 등 신앙 이외의 요소는 모두 주변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 책은 종교학자 유요한 서울대 교수가 강의를 중심으로 진행하던 핵심교양 “종교 상징의 세계” 수업에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여 학생들에게 매주 작품 한 편씩을 읽어 오도록 하여 텍스트 내용을 중심으로 토론과 강의를 함께 진행하면서 “종교학적 관점에서 이 작품을 이렇게도 읽어낼 수 있지 않겠느냐” 하고 설명해준 내용을 담고 있다. 책 표지에 ‘현대 소설 속 종교적 인간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결국 ‘문학과 종교’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에는 16편의 소설이 있다. 조지 오웰의 <1984>, 윤태호의 <이끼>,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코맥 맥카시의 <로드>,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스테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 윤대녕의 <대설주의보>, <대설주의보>, 오쿠다 히데오의 <면장 선거>, 켄 폴릿의 <대지의 기둥>, 밀란 쿤델라의 <불멸>, 욘 A. 린드크비스트의 <렛 미 인>,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구효서의 <저녁이 아름다운 집>, 천운영의 <그녀의 눈물 사용법>, 김훈의 <공무도하> 등이다. 문학이 종교를 열망하고 인용한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지금·이곳의 텍스트를 대상으로한 젊은 종교학자의 해석은 유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의 신화'는 의미와 차별성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소설은 인간에게 가장 심오하고 폭넓은 영향을 끼친 종교적 성찰과 상징을 포함하고 있고, 신화의 주제와 소재들을 끊임없이 차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다가 보면 ‘인간과 종교란 과연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현대에도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위기와 한계에 부딪힌다. 절대적으로 척박한 환경, 강제된 노동과 굶주림, 인간성을 잃어버린 사람들, 부조리 앞에서의 무기력함, 약속의 배신과 외로움,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남들의 시선, 실현되지 않는 삶의 목표와 소망들, 자기 꿈을 포기해야 하는 아픔, 늙고 변해가는 인간의 육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등 다양한 인간의 위기는 옛 신화의 주인공이 겪은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을 읽으므로 여러 권의 소설을 읽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