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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는 시해 당하지 않았다
신용우 지음 / 작가와비평 / 2011년 2월
평점 :
오늘날 일본을 이끌어 가고 있는 정치인 및 보수층들은 100여 년 전 비열한 3류 사무라이들에 의거 잔악무도 하게 저질러졌던 ‘일한병합’에 대하여 ‘일한병합은 조선인의 총의로 일본을 선택했으며, 우리(일본)는 결코 무력으로 침범하지 않았다.’ 또는 ‘오히려 한반도가 분열해서 의견 취합이 안되니까, 그들(조선)의 총의로 러시아를 선택할지, 중국을 고를지, 일본으로 할지를 생각한 것이며, 근대화가 크게 진전된 같은 얼굴색을 한 일본인의 도움을 얻으려고 해서 세계 여러 나라가 합의한 가운데 합병이 이뤄졌다.’ 등등의 배우지 못한 자들 만이 할 수 있는 망발을 거침없이 해대고 있다. 이는 그들이 역사조작에 물들어 역사치매의 바다 속을 얼마나 헤매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역사공부를 통해서, 드라마 ‘명성황후’를 통해서 ‘명성황후’는 일본에 의해서 시해당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현재까지 역사의 정설은 189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가 시해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일본공사 미우라 일당이 일본 낭인들을 궁으로 불러들여 명성황후를 살해했다. ‘여우사냥이 성공했다. 이제 조선은 우리 것이 됐다’는 유명한 말이 남았다. 이는 일본이 기록한 역사와 이를 토대로 한 역사인식일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 중국 등과의 수교가 이뤄지면서 당시를 보다 더 세밀하게 짚어볼 수 있게 됐다.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러시아 외교문서는 2002년 국내 언론을 통해 처음 밝혀졌기 때문이다.
명성황후의 시해를 둘러싼 이야기를 그린 신용우의 역사소설 <명성황후는 시해 당하지 않았다>. 이 소설은 작가가 직접 소설 속에 ‘나’라는 인물로 직접 들어가서 비록 주인공은 아니지만 자신이 수집한 역사자료들을 사건과 대입하여 역사보다 더 역사적인 소설을 쓰는 메타픽션 기법으로 쓰인 소설이다. 이야기는 2002년 국내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 명성황후 시해에 관한 러시아 외교문서에서 작가가 의문점을 찾아내는 것으로 전개를 시작한다. 외교문서에서 밝힌 내용은 아래와 같다.
“러시아에서 고용한 경호원인 세레딘 사바틴(본래 직업은 건축사)이 을미사변이 일어나기 하루 전에 궁궐에 난동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다. 그러나 대비를 소홀히 함으로써 을미사변을 당하고 명성황후가 시해됐다.”
이 대목에서 작가인 ‘나’는 의구심을 갖는다. 1895년 을미사변 때 세레딘 사바틴은 근무태만으로 명성황후를 시해 당하게 했다. 그런 사바틴이 고종이 아관파천 이후 환궁한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의 중명전, 정관헌, 석조전 등의 설계는 물론 건축에 관여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고종은 사랑하는 아내를 근무태만으로 시해 당하게 한 사람에게 자신의 집무실인 중명전, 휴식공간인 정관헌은 물론 석조전까지 설계하라고 맡겼단 말인가? 이러한 인식의 확대와 인터뷰 및 취재, 추적 등의 과정을 통해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명성황후의 시신을 제대로 본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시해장면을 봤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각기 달라서 혼란만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오로지 그 혼란스러움은 3류 소설만도 못한 ‘에조 보고서’에 의해 일순간 정리됐고, 이 보고서에 의존해서 조선의 마지막 자존심인 명성황후가 왜놈들의 칼날에 스러져 시해 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이다.
작가 신용우씨는 “글을 풀어가는 실마리를 찾지 못하던 중에 연해주에 사는 고려인 4세를 만나 중요한 자료를 얻으면서 소설을 시작하게 됐다”면서 “수집한 자료를 근거로 소설을 써서 조선의 마지막 자존심을 세움으로써 민족혼을 일깨워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을미사변은 명성황후 시해미수에 그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자존심을 짓밟으려는 왜놈들과 사건진상 조사를 가장한 러시아의 조선침략음모가 맞아떨어져 만들어낸 황후시해 자작극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새롭게 깨달았다. 작가의 “그녀는 죽지 않았습니다.”란 시는 나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용솟음치게 하고 있다.
누가 그녀를 그 때 죽었다고 했나요?
조선의 마지막 자존심, 그녀를
누가 능욕 당하고 시해되었다고 했나요?
(...)
죽고 싶어도
사랑하는 조국과 황제와 백성들 생각나 눈을 감을 수 없고
살아도 살았다고 말할 수 없던
그녀의 차가운 혼은
지금도 소리 없이 흐느끼건만
을미년 그 날, 그녀가 죽었다고 누가 말했나요?
(...)
그녀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이 나라 백성들의 한이 풀릴 때까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