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위험하다.

이 사람은 어쩌면 이다지도 거부감 들 수 있는 상황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표현해낼 수 있는지.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좋아한다. 그녀의 단아하면서도 고요하고도 부드러운 분위기의 문체.

그러나 그 문체가 담아내고 있는 이야기들은, 특히나 이번 책에서의 이야기는 더더욱 평범하거나 안정적인 일상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정말 어떨땐 작가의 결혼 생활이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 정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드라마를 보고, 실제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바보스럽다고는 하지만, 에쿠니의 작품을 읽어보면 그 작품이 소설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음에도 그녀의 이야기 같아 염려스러울때가 많다.

아니야, 난 괜찮아. 그냥 이야기일뿐이야. 이런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 '바람'이라는 자체를 몹시 경멸하기에, '바람'을 미화하는 글 자체를 싫어한다.

그런데 그 소재만으로도 괴로울 것 같았는데, 이 바보 같은 여주인공 이야기를 접하고 있으면서도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지언정, 또 심하게 이기적인 남자주인공에 대한 증오같은 것도 그다지 크게 솟구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재주로 그런 거부감을 없애버린건지. 내가 에쿠니 가오리에게 단단히 뭔가가 씌인건지. 물론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쇼코는 부자인 엄마와 함께 9박 10일의 여정으로 동남아의 고급 휴양지에 와 있다.

거기에서 눈이 부실, 반짝반짝할 젊음을 가진 열 대여섯살 정도의 소녀 미미를 보게 되었다. 이국땅인지라 일본인들이 드물었고, 쇼코 모녀 일행과 미미 부녀 일행은 서로에게 눈에 띄는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해도 쇼코의 미미 훔쳐보기는 좀 심할 정도. 자기도 모르게 자꾸 눈이 간다.



미미는 여느 소녀와 많이 달랐다. 가늘고 긴 다리, 일순 젊음을 뿜어내는 아름다운 외모도 그랬지만, 도도한 그녀의 모습은 자기의 범주를 정해놓고 아무나 그 안에 들이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 혼자서도 무척 잘 지내고, 그 모습에 무척이나 익숙해보였다.




쇼쿄의 엄마 기리코 여사도 독특하다. 그러면서 사실 좀 뜨끔하기도 했다. 책읽는 것을 너무 좋아해 기리코 여사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좀 살림을 등한시해서 뜨끔해하는 중이었는데, 이걸 부러워해야하나 놀라워해야하나.

74년을 살아오면서 살림을 전혀 해보지 않은 엄마라는 지위. 요리는 먹는 것이고 세탁이나 청소는 시키는 것이고 아이들 학교행사나 친지간의관혼상제는 불참하는 것이다. 그녀는 오로지 책만 읽었다. 책읽는 짬짬이 결혼도하고 아이도 낳아길렀다. 자신의 인생은 퍼펙트하다 말을 하고, 남편은 그런 아내를 신기할 정도로 받들고 사랑했다.

엄마의 책과 나의 정사를 같은 것으로 보는 슈코, 남편과의 정사, 남편과의 사랑을 완벽하다 믿는 그녀




슈코는 남편 이전에도 분명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지금의 남편처럼 깊이 빠져든 사람이 없었다.

지금은 남편을 잃을까 불안해하며, 남편이 그 어떤 짓을 해도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비굴할 정도의 사랑에 빠져든 그녀지만, 한때 그녀도 남편에게 항거를, 무시당할 항거를 한 적이 있었다. 나 아닌 다른 여자와 당신이 자면 슬프다고, 술에 취한 그녀는 그렇게 구슬피 말했지만,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아 하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그녀가 절대로 마시지 못할 우유를 주며 억지로 마시게 한다. 주르르 주르르 흘리면서 몇번의 실패 끝에 그녀가 억지로 우유를 삼키자 남편은 잘했다고 칭찬하였고, 그녀는 칭찬받아 행복해한다.

새디스트와 매조키스트를 보는 기분이랄까.

슈코의 남편에 대한 헌신적이고도 무모해보이는 사랑을 어떻게 이해해야좋을지 모르겠다.



엄마조차도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그녀의 사랑

매일 봐도 설레고, 가끔 봐도 설레고, 혹시나 남편에게 버림을 받을까 불안하고.



이야기는 그런 쇼코와 미미의 관점에서 각각 교차하며 흐른다. 같은 시간,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말이다.

미미의 젊음이 부러웠던, 질투났던 쇼코와 원숙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쇼코의 그 무언가에 역시 부러움을 가졌던 미미,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결국 깨닫게 되지만 말이다.



휴양지에서의 인연, 그리고 그것이 전혀 엉뚱하게 이어질 수 있는상황이었음을.

쇼코는 정말 남편에게 왜 그리 연연하고 심지어 그의 여자들까지도 다 감내해가면서 그를 소유하고 싶어하는지.

사랑이 그래야 완벽한 거라면, 불완전하더라도 안정적인 사랑을 선택하겠다.



인생을 전율하게 할 만큼 좋아하는 위험한 사랑이 있다면.

딱 떠오르는게 불나방이었다. 불 속에 뛰어들어 타버리고 마는 나방의 사랑.

쇼코는 그런 위험한 사랑을 하고 있단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미미의 시선에서도 분명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나잇대가 그래서인지 자꾸 쇼코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어린여학생들이 읽는다고 미미에게 공감하게 될거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한국사를 조작하고 은폐한 주류 역사학자를 고발한다
이주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창 시절에는 그저 교과서에는 진실만 나온다 믿고 배웠고, 졸업하고 나서 우리가 몰랐던 그 후일담들이 존재함에 놀라게 되었다.

사실만의 기록이라 믿었던 교과서, 그것이 조작된 역사라 한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제대로 배워야하는 것일까?

사실 어른이 되어 깨달은 것은 교과서 뿐 아니라 언론 미디어도 조작될 수 있으니, 100% 믿을 수 없다는 사실들이었다.

어른이 되어 알게 되는 진실들은 씁쓸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일본에서 교과서에 역사를 왜곡해 싣는다는 이야기들을 뉴스를 통해 접할때마다 그렇게 왜곡된 역사관으로 자라난 아이들이 갖게 되는 가치관이 어떤것일지 소름끼칠때가 많았다. 그런데, 우리네 역사도 마찬가지라니.. 제대로 배워왔다 생각했는데, 그 가장 수뇌부에 가장 무서운 적이 도사리고 있었다니..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자극적인 제목에 놀랐지만 그 내용은 더욱 놀라운 내용으로 채워져있었다. 역사학계에서는 꽤나 거물들일 인물들의 실명과 업적(?) 아니. 그의 행적이 낱낱이 까발려진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인 서울대 역사학과를 이끌었던 교수 이병도. 그가 사실은 이완용의 손자뻘 먼 친척이자 (그냥 조상의 잘못으로 끝나고 말 일이 아니었다. ) 식민 사관의 주역인 쓰다 소키치의 제자이기도 하다.

일제 시대하에도 와세다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였고, 한국사를 식민지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변조하기 위한 조선사 편수회가 만들어졌을때 총독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그들의 지침에 따라 한국사를 연구한 사람이 이병도였다. 총독부에게 이병도는 그저 사랑스럽고 안심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43p



쓰다 소키치는 한국 주류 역사학계에서 최고의 근대적 역사학자라 칭송하고, 단재는 독립이라는 민족 감정이 앞서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지 못한 편벽한 인물로 폄하한다. 쓰다 소키치는 일본 고대 사학자 중 가장 지능적으로 일본사와 한국사를 조작하고 날조한 황국사관의 거물이다. 45p



단군 조선을 신화로 치부하고, 삼국사기의 일부를 믿지 못할 것으로 몰고, 심지어 고조선을 부인하는 것.

그들이 교묘하게 말을 돌리면서도 사실은 주창하고 싶은 것들의 핵심명제는 식민 사관이었다. 일본에 의해 철저하게 심어진.

광복이 된 이후에 이젠 죽었다 하고 벌벌 떨던 친일파 들이 득세하고, 그들의 세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의 조목조목을 읽어보니 결국 그렇게 연결이 되는 거구나 싶었다.



한국 주류 역사학계는 이병도를 필두로 김철준, 김원룡, 한우근, 이기백, 이기동, 노태돈, 송호정 등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제자들로 대를 이으며 역사학계의 권력을 거머쥐고 있다. 62p



고조선의 중심지는 대륙이 아니라 청천강 이남지역이라는 전제다. 그러나 고조선의 유물과 유적이 중국대륙에서 엄청나게 발굴되고 1980년대에 윤내현이 문헌 고증을 통해 고조선의 위치와 영역을 밝히자 궁지에 몰린 주류 학계는 무대응으로 일관하다 '고조선 중심지 이동설'이라는 고육지책을 발표했다. 이는 변종된 식민사학이다. "고조선이 한때 대륙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한반도를 중심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한사군은 한반도에 있었다."는 '고조선 한반도설의 변종이론'이다. 노태돈 등은 선봉에 서서 이 이론을 정설로 만들려고 했다. 단재 신채호가 민족사학 사수의 선봉에 섰다면 21세기 대한민국에 사는 이들은 식민사학 사수의 선봉에 섰다. 114p


한국에서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글을 어렵게 쓰는 이유가 있다.

첫째,자신들의 견해를 계속 고수하고 학문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둘째 뭔가 떳떳하지 못하다. 셋째, 자신도 내용에 자신이 없다. 넷째, 대중은 알 필요도 없고 알아서도 안된다. 다섯째 글에 대한 책임감과 성실성이 없다. 여섯째 어렵게 써야 뭔가 있어 보인다. 일곱째 그들끼리는 서로 눈감아주면서 '정밀하게 고증하였다'고 치켜세워주거나 그냥 맞으려니 한다. 학문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은 깊이 연구해서는 안되는 풍토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병도의 글은 일곱가지 이유 전부에 해당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국민을 적으로 아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174p



그저 무섭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광복이 되고 우리나라는 철저히 홀로서기를 잘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역사를 바로세워야할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는 이들이, 우리에게 우호적인 인물들이 아닌, 식민 사관의 잔재들이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제대로 한국사를 알아야겠단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3-04-09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제대로 알아야겠단 생각이 불끈~ 솟는 리뷰에요.^^

2013-04-10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타라이 기요시의 인사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검은숲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마다 소지 하면 <점성술 살인사건>의 저자로 알고 있었다. 당연히 읽어보고 싶어서 내 책장에 꽂혀있는 (책장에 위시리스트를 한가득꽂아두고, 언제든 여유가 생기면 읽으리라 한게 언제던가. 아뭏든 재미난 읽을거리가 두둑하다는 것은 무척 행복한 일이다.) 책이 점성술 살인사건이었다. 점성술 살인사건의 후속편인듯한 느낌이 드는 이 책에서 미타라이 기요시라는 매력적인(?) 탐정을 내세워 재미난 추리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준다.

 

숫자 자물쇠, 질주하는 사자, 시덴카이 연구 보존회, 그리스 개

네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새벽녘 머리가 개운하지 않았던 며칠 전에도, 또 오늘처럼 감기 기운에 머리가 아파오는 날에도 쉽게 술술 읽혀지는 재미난 책이었다.

 

책 속의 화자는 이시오카이다. 그는 점성술 살인사건의 저자로 미타라이 기요시와는 막역한 사이 같지만, 사실 그에 대해서는 어느 과를 나왔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아는게 제한적이었다. 시마다 소지는 이시오카를 내세워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책 속 등장인물로 녹아들어간 것같다. 심지어, 잠깐! 하고서 미타라이의 추리를 짐작해보라며, 직접 책 속에 풍덩하고 들어오기도 한다.

 

추리 소설을 많이는 아니지만 좋아하기 시작하고 있지만 머리를 마구 굴려가며,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것은 아직 나도 미숙한 단계인것 같다. 그래서 매 사건마다 통쾌하게 사건을 풀이해주는 미타라이식 해법이 시원하게 느껴져 좋았다. 추리소설 마니아 중에서는 이쯤이야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일본의 많은 인기 만화, 소설 들이 드라마, 영화 등으로 제작되고 있는데 시마다 소지는 미타라이 기요시를 영상물로 만드는 것은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신 미타라이 기요시의 의지라는 책의 맨 뒷편에 나와있었다. 사실 미타라이는 처음부터 탐정이었던 것도 아니고, 점성술 살인사건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점성술을 업으로 삼는 특이한 사람이면서도 누구보다도 명쾌하게 문제를 풀어내고, 그러면서도 요즘 말로 까칠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듯 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무례해 보일 수 있고, 그러면서도 친한 이들에게도 공손히 말하는 것을 잊지 않기도 한다.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라 생각했는데, 책 속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그의 여러 면모는 사건 해결 과정에서도 잘 나타나있다.

 

어느날 갑자기 명함을 파서 탐정을 하겠다 하질 않나, 그의 대학 동기였다는 사람의 직업으로 미루어 알아보니 그는 의대를 2년 다니다 중퇴한 전력이 있기도 하였다. 또 음악가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빼어난 기타 연주를 선보이기도 한다. 엄청나게 빼어난 연주를 선보임에도 오히려 평론가들과 대중에게는 인기를 못 얻기도 하고.숫자도 한번 들으면 절대로 잊지 않으니 기록할 필요가 없고, 미타라이는 정말 타고난 탐정같은 사람이었다.

 

참고로 질주하는 사자라는 제목에서 사자가 죽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질 못했었다. 도쿄도심을 질주하는 라이언? 인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죽은 사람이라니. 숫자 자물쇠의 트릭으로 살인범을 찾아내고, 죽은 사람이 질주를 했다는 전혀 감이 안오는 그런 이야기를 밝혀내는가 하면, 탐정이 아닌 그냥 지나치는 상황 속에서 어느 가난뱅이 기자의 천운과도 같은 행운을 놓친 이야기를 밝혀내기도 한다.

그리스 개는 여자보다 개를 더 좋아하는 (우리 신랑 비슷하구먼) 미타라이의 개를 위한 복수=엄청난 대부호의 아들 유괴범을 잡는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점성술 살인사건과 연계해 읽었더라면 더 재미났을 것 같은데, 나처럼 이 단편만 따로 읽어도 흥미진진한 캐릭터인 미타라이라는 캐릭터에게 금새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궁금해진다. 어떤 내용일지. 미타라이 기요시를 쭈욱 만날 수 있도록 시리즈를 찾아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주도에서 아이들과 한 달 살기
전은주(꽃님에미)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에 책을 읽기 전만 해도 사실 좀 반신반의했었다. 제주도에 어떻게 한달씩이나? 신랑이랑 같이갈수도 없고, 나랑 아기만 보내줄리도 없고. 그러니 해외여행 머나먼 곳 만큼이나 그림의 떡이다 싶었는데.. 읽다보니 이렇게 부러운 삶이 없었다.

물론 아홉살, 다섯살 두 아이와 엄마만 달랑 떠난 여행인지라 많이 힘들고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사랑의 힘으로 아이들과 제주도에서의 한달을 너무나 즐거이 잘 보내고 온 이야기였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쏘오오옥..빠져들었다. 몇장 읽지도 않고 어느새 내 마음은 제주도로 날아가있었다.

5월에 같이 일주일동안 코타키나발루 여행가기로 한 친구에게 흥분한 목소리로 이런 여행을 다녀온 책이 있더라~ 하고 이야기하니, 친구도 살짝 흥분하는 눈치다. 우리 제주도 내려가서 한달 살다 올까? 신랑은? 뭐 이런 전화통화로 한시간은 수다를 떨었던 것 같다.




사실 제주도는 아이 태교 여행 이후로 우리집 여름 휴가의 통과의례가 된 곳이다. 신랑이 긴 휴가를 못 내니 2박 3일, 3박 4일로 다녀올수있으면서도 몇번을 가도 새로운 (관광일정으로 빼곡히 다니지 않고 슬렁슬렁 다니다보나 매번 갈때마다 팔색조의 매력을 내뿜는 곳이 제주도였다.) 여행지이자, 비행기를 타고 가고 야자수가 있어 그런지 해외여행 느낌이 나면서, 호텔 시설도 좋고, 무엇보다 렌트카로 마음 편히 다니면서, 말도 통하는 우리나라라는 점이 너무나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래서 거의 매년 1~2회씩 여행을 다닌게 벌써 몇년째인데..

한달 여행은 미처 생각을 못해봤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이 없는 집이라.

그런데 아빠를 빼고 간다? 이번 코타 여행도 아빠를 빼고 친구랑 친구 딸이랑 나랑 우리 아들이랑 이렇게 엄마둘 아기 둘이 가는 첫 여행이라 무척 기분이 이상한데, 제주도를 한달씩이나?


읽을 수록 그런데 몹시 당긴다.

여행같으면서도 생활같은 일상.

관광지만 돌아다니는게 아니라, 도서관을 즐겨 찾고 바다에서 풍덩 수영도 하고 그런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아예 그렇게 계획을 하고 가신건가 했다. 아이도 책을 워낙 좋아하는 아이로 키웠구나 하였는데.. 그게 아니란다. 놀랍게도 딸인 꽃님이는 책은 안 좋아하고 만들기 (엄마가 워낙 만들기로 잘 놀아준 엄마인듯)만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제주도에 도착하니 도서관에 먼저 가자고 하고, 한번 가면 다섯시간이고 몇시간씩 밥먹는 것도 잊고 책에 빠져들 정도로 책 사랑 마니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꽃님이 덕분에 엄마와 꽃봉이(다섯살 남동생)까지 매일 도서관으로 출퇴근을 해야했단다. 사실 제주도까지 가서 웬 도서관?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지만 아이가 책이 즐거워 빠져든다면 그 어떤 것보다 더 기분좋은 일이 아닐까 싶었다.

무엇보다도 큰 성과 두번째.

사이좋다 생각했지만 사실은 엄마를 늘 사이에 두고 대화를 하고 각각 놀았던 남매가 제주도에서는 최고의 친구이자 형제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서울에서야 컴퓨터며 티브이며 (심지어 티브이가 없는 집을 구했으니) 아이들 볼거리 놀거리, 장난감 등이 한가득이지만 한달 살림이라고, 아예 이사짐을 들고 갈수도 없고, 짐도 줄이고 최대한 자연을 느껴보고자 게임기, 티브이 등을 아예 챙기지 않았더니 처음엔 아이들이 어떻게 놀고 그럴까. 보채진 않을까 (나도 걱정되는 부분이다.) 싶었다는데, 둘이서 어울려노니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또 너무나 잘 놀더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게 더 좋을 정도로.

함께 있는 시간의 절대량이 많아지자 우리 모두 사이가 좋아졌다. 서로를 잘 알게 되었고, 잘 알 수 없다면 그냥 받아들이게 되었다. 114p



나도 어디를 간다하면 1박여행에도 아이 짐이 한 짐일 정도로 장난감, 놀거리, 읽을 거리 등을 빼곡히 챙겨가야 안심이 되는 타입인데, 꽃님에미님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타입이 아니었다. 도서관 책도 있겠지만 집에서도 아이가 책을 읽을 수 있게 아예 책을 한달간 한 박스정도 빌려서 (숙소로 택배받고, 출발 전에 도로 부치는 그런 대여 시스템을 소개해주었다.) 읽을 수 있게 하는 가 하면, 아이들이 만들기 놀이기 좋은 색깔풀, 색종이, 등등을 한 짐 챙겨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유모차, 튜브 등은 물론이고 해수욕 후 샤워장이 없을까봐 (그럴 가능성 농후) 페트병 몇개에물을 채워 트렁크에 두둑히 챙겨서 다니는 것까지 말이다. 정말 여행의 생활화, 아이 챙기기의 달인 같은 포스를 많이 보이는 분이었다. 블로그에서 연재된여행기라 꽤 인기를 끌었다는데, 이 책도 재판된 책이라는데 난 왜 이제야 알았을까?

아뭏든 너무나 재미나고도 흥미진진하게 본 이야기였다.

둘은 아니지만 내게도 한 아이가 있고, 그 아이 또래의 이야기, 또 엄마의 이야기인지라, 한번쯤 꿈꾸었던 제주도의 한달 살기를 재미나게 꾸려나간 이야기는 정말 부러우면서도, 정말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 강한 욕구가 생기게 하는 이야기들이 아닐수 없었다.



두 아이는 늘 종알종알 지저귀었고 번갈아 엄마를 불러댔고 할일이 너무나 많았다. 개인의 여행과 엄마의 여행은 이리도 다른 것이냐며 투덜거리곤 했지. 그런데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내가 구태여 건져내지 않았어도 제주도는 그 자체로 나를 정화시켰다는 것을. 거르고 걸러 살짝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놓았다는 것을 말이다.295p



암만 생각해도 아이들에게는 3박4일 사이판보다 제주도 한달이 백배 낫다. 평온(신순화) <두려움없이 엄마 되기> 저자, 뒷표지의 추천사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발작 2 - 두 세계의 경계에서
다비드 베 지음, 이세진 옮김 / 세미콜론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친형의 발작 증세로 온 가족이 곁에서 지켜보며 걱정하고, 발작으로부터 벗어날수 없었던 오랜 세월을, 시간이 흘러 자기만의 책으로 예술로 승화시켜낸 책, 발작.

환자인 형 본인의 고통이 가장 큰 것이었겠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가족들 역시 형과 함께 그 고통을 나눠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동생은 스스로 강해지고자 마음먹었다. 형의 발작이 자신과, 자기 여동생에게도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었다. 다음은 자기들 차례라 생각되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어려서부터 파괴본능이 유독 강한듯, 싸우는 그림을 좀더 심하게 묘사하고 더욱 자극적인 전투를 좋아했던 것이 너무 폭력적인 성향은 아닐까 지레 짐작했었는데, 동생은 스스로를 지키고 보호하고 싶은, 아니 형의 병까지 이겨내주고 싶은 그런 욕구가 있었던 것이다.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자와 저자의 가족의 이야기다보니 더욱 실제감이 살아있는 이야기.

영화나 글로만 표현이 되었으면 어쩌면 제대로 보기 힘들었을 그런 부분조차 작가의 힘으로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로 다소 환상적인 시선으로 혹은 어두컴컴한 어느 내면을 들여다보는 심정으로 여러 측면에서 다양하게 묘사해낸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형의 이야기 역시 들어봐야하는 법이건만.

사실 저자라고 자신이 모두 완벽했다고 하질 않는다.

자신이 짖궂게도 어려서 형을 괴롭혔던, 그래서 발작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며

자꾸만 발작 뒤로 숨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삶의 의욕을 잃은 사람처럼 (사실 그럴수밖에 없었던, 병이 낫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결과에 노출된 형은 자꾸만 가라앉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않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형 앞에 자극을 주기 위해서라도 더 괴롭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남이면 외면할 수나 있겠지만 남도 아닌 자기 형이었기에 외면할수도 없었던 그.

형도 폭력적으로 변하기까지도 하였다.

사실 발작 2권은 1권에 비해 조금 더 솔직한, 그리고 더욱 깊이있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었다.

가족이 겪어야했던 세월의 아픔.

형 혼자만의 병이 아니었던 가족 모두에게 상처가 되고, 견뎌낼 대상이 되어야했던 발작의 산.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르는 사춘기 소년처럼, 형은 그렇게 도발적 폭력적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

아버지를 때리고 칼로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두렵고 무서운 일이지만, 가족들은 형에게 무척이나 화가 나기도 하지만, 끝까지 형을 놓고 살아갈 수가 없었다.

형은 그렇게 죽음으로 치닫아가고 있었고,

동생은 꿈과 그림 등을 통해 형의 발작이 쌓여가듯 자신의 삶을 쌓아가고 있었다.



어렵다면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이었다.

발작이라는 상처가 될 아픔이 아니더라도 그 어떤 아픔이건 문제건 어느 가정에서나 존재할 수 있다.

가족이고 한 핏줄이기에 서로 감싸안고 끌어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것을 타계할 방법을 모색해가거나 그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의 상태 등을 치유하는 방법도 제각각일 것이다.

작가의 치유의 한 방법은 그림을 그리고, 책을 펴내는 것이 아니었나싶다.

오랜 세월 그들과 함께 했던 형의 발작을, 이런 놀라운 그래픽 노블로 우리앞에 내놓을 수 있도록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