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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진 살인사건 ㅣ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1년 9월
품절
책을 한참 즐겨 읽고 있는 요즘 , 주위 이웃님들을 봐도 그렇고 추리소설 매니아 분들이 무척 많으시다. 꽤 다양한 작가의 이름을 섭렵하고 계시고, 줄줄 입에서 외워지는 작품들 이름만도 한참이다. 물론 나는 그 축에 끼일래야 끼일수도 없는 생초보다. 그래도 늦게나마 추리소설에 입문해 읽고 있으니 재미는 있다. 어릴 적 내가 읽었던 추리소설은 뤼뺑 (난 루팡이 더 편한데, 초등 고학년 무렵에 무척 두툼하게 읽었던 그 전집의 번역본은 뤼뺑이라고 부담스러운 이름으로 번역되어 있었다.) 시리즈였다. 어른이 되어 일본 작가들 소설 중 특히나 미스터리 소설들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음을 알고, 소설을 좋아하는 한사람으로 시류에 휩쓸려 같이 읽다보니,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분은 꽤나 이 방면에서 유명한 분이었나보다. 소년탐정 김전일은 들어봤는데, 긴다이치 코스케는 나는 사실 처음 들어봤다. 김전일도 찾아 보지는 않았던 터라 설렁설렁 전해듣다보니 긴다이치를 미처 몰랐던 것인데, 그 중에서도 이번 작품 <혼진 살인사건>은 긴다이치 최초의 사건을 다룬 작품이라 더욱 추리소설 매니아들을 설레게하는 작품이 되겠다.
저자인 요코미조 세이시는 <혼진 살인사건>으로 제1회 탐정작가클럽 상 장편 부문에서 수상을 하였고, <문예 춘추>에 역대 일본 최고의 미스터리로 선정된 <옥문도>, <이누가미 일족>, <팔묘촌>, <여왕벌>, <악마의 공놀이 노래> 등의 명작을 차례로 발표하였다. 이웃님들의 서평을 읽다보니 옥문도가 꽤나 재미난 소설인 모양이었다.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그러게 글들을 쓰신걸보니.. 아뭏든 요코미조 세이시는 2000년 문고본만으로 이미 판매량 6천만부를 넘어서고,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그의 창조인물은 일본의 국민탐정으로 불리고, 그 자신은 일본 본격 추리소설의 거장으로 추앙받는다하였다. 나는 그의 놀라운 이력 외에도 그가 약국을 가업으로 하는 가문의 약사 출신이었다는게 먼저 흥미로웠다. 가업을 잇느라 집필을 멈추었으면 일본의 셜록홈즈 긴다이치 코스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이번 책에는 <혼진살인사건>외에도 <도르래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 <흑묘정 사건> 등의 중편이 두 편 더 수록되어 있었다.
소설은 마치 사실을 그대로 전해주는 양, 추리소설 작가인 y자신이 직접 서술하는 듯한 구조로 씌여 있었다. 아니 도르래우물은 왜 삐걱거리나는 사건을 관찰한 소녀의 서간문 형태를 띠고 있지만 말이다. 또한 긴다이치 코스케가 직접 관여하지 않고 간접적으로만 살짝 언급된것도 도르래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였다. 다른 두 작품에서는 긴다이치의 활발한 추리 활동을 엿볼수있다.
혼진 살인사건은 혼진(여관)을 운영하는 명문가 이치야나기 가문의 장남 겐조의 결혼식 날 겐조와 아내 가쓰코가 처참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결혼 당일밤의 살인 사건, 그리고 며칠전부터 들렸다는 의문의 거문고 소리, 수상쩍은 세 손가락의 사나이. 범인이 들어올 수는 있지만 나간것은 발견되지 않은 완벽한 밀실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이었다. 겐조가 결혼한 가쓰코는 이치야나기 가문의 옛 소작농의 딸이었지만 근대에 들어 신교육을 많이 받고, 재산도 상당히 많은 숙부 덕에 가문 이외에는 꿀릴 것이 없는 그녀였으나 가문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를 소작농의 일가로 보고 결혼을 반대하다 겐조의 고집으로 성사된 결혼이었다. 구쓰코의 숙부는 마침 재정적으로 후원을 해준 탐정 긴다이치를 불러 이 사건을 맡기게 되는데 이것이 긴다이치 탐정 이야기의 물꼬가 된다.
한밤의 음산한 거문고 소리, 그리고 너무나 뚜렷이 세 손가락 사나이로 몰아가는 살인 정황들, 사실 독자들은 밀실 사건이든 어떤 추리사건이든 작가가 보여주는 만큼만 보고 추측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아마 상당수는 작가의 의도대로 생각하다가 혹은 의심을 품더라도 다른 어떤 정보도 없어서 다만 심증만 굳혀나가다가 나중에 구비구비 풀어지는 사건 내역에 아하~ 하고 한번에 사건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꽤나 긴다이치가 명쾌하게 사건을 풀이하고 서술해주기는 한다. 나같은 미스터리 초보 독자들은 그런 서술에 시원함을 느끼기도 하였지만, 너무 서술적이라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 같았다.
또, 밀실 사건을 그렇게 해결할 수도 있구나 (물론 다른 추리소설을 읽지 않아 일어난 일이지만, 추리소설이라 함은 읽다보면 정말 다양한 장치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도 되었다. 그것이 범죄로도 충분히 이용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까지도 말이다.)라는 놀라움이 드는 한편, 이 소설이 쓰여진 시기를 생각하며 참으로 작가들이란 앞서 생각하는 사람들이란 감탄이 들었다.
혼진 살인사건의 결말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너무나 확연해보이는 증거에 그게 아닐거라는 추측은 했지만 그래도 범인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또, 도르래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는 다른 소설보다 길이가 더 짧은 소설이었음에도 강렬한 느낌을 주는 것은 그 이상이었다. 잘 나가던 세 집안 중 두 가문의 패망과 한 가문의 득세, 그리고 그 안에 이어진 비극적인 출생들. 서자와 적자로 태어난 너무나 닮은 동년배의 두 남성이 걷게 되는 차별된 인생살이는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낳을 수 밖에 없었다. 군대에 갔던 장남 다이스케가 두 눈을 실명해 의안을 끼고 돌아오자, 집안의 분위기는 더욱 흉흉해졌다. 다이스케라고는 더이상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성격도 변하고 분위기까지 귀기가 돌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집안에 일어나는 갖가지 나쁜 사건들, 결국은 다이스케와 그의 아내 리에까지 모두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과연 누구일것인가.
긴다이치 탐정과 y 작가의 대화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흑묘정 사건도 얼굴없는 시체를 다루고 있는 흥미로운 미스터리 물이었다. 자신의 창조물과 대화하는 느낌은 과연 어떤 것일까? 독자들은 그런대화를 통해 창조 인물을 현실 속 실제 인물로 착각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늘상 내가 헷갈리는 것은 바로 이런 부분이었다. 게다가 작가는 작가의 입장에서 참으로 친절하게 이러저러한 미스터리의 장치와 요소들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물론 그것이 사건의 본질을 흐리거나 재미를 떨어뜨리지도 않는다.
긴다이치 자신까지도 진이 빠지게 할 정도의 흑묘정 사건. 그 재미는 읽을 다른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놓고자 한다.
이것이 내가 만난 최초의 긴다이치 이야기였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가.
버벅거리는 더벅머리 탐정 긴다이치의 천재적 두뇌로 아무리 어려운 난제들도 시원스레 해결이 되는 통쾌함이 있는 이야기.
긴다이치의 활약을 이제는 다른 책들로도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