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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 패밀리즈
아즈마 히로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자식이 없는 한 남자에게 미래의 딸이 보낸 메일이 도착하고, 딸을 보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 이후에 전혀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또다른 자기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의 중심이자 내 눈길을 확 이끌어버린 띠지의 문구였다. 쌍둥이가 아닌 또 다른 나에 대한 갈망, 게다가 지금 이 세계가 아닌 엇갈린 또 다른 평행 세계가 있다는 , 그래서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새로운 세계의 나나 가족과 조우하게 되는 놀라운 이야기. 이 책의 흥미로운 주제는 나를 책앞으로 바짝 끌어당겼고,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떠올렸다. 처음 그 책을 읽을 당시에, 세상에 없을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그 이야기가 무척이나 충격적이었고, 어려서부터 내가 막연하게 생각해온 공상과 어딘가 닮아있어 더욱 매료되었던 책이었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 책과 더불어 꽤나 많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이 언급이 된다. 남주인공인 유키토가 이름붙인 35세이론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35세라.. 무라카미 하루키의 나이도, 그리고 소설 속 남자주인공의 나이도 모두 35세였다. 그때에 그 일이 시작되었다. 미래의 딸로부터의 편지. 있지도 않은 딸. 게다가 그녀의 나이는 29세였다. 자신의 정신분열 증세라 믿으면서도 너무나 놀라운 미래의 이야기들. 그리고 딸조차 몰랐던 또 다른 아들의 등장까지..양자 가족 (퀀텀 패밀리즈)의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를 미궁 속으로 빠트린다.
사실 좀 환상적인 이야기를 기대했던 터라, 초반부의 다소 난해한 과학 용어들의 총체적인 집합은 책으로의 몰입을 잠시 떨어뜨리기도 했다. 소설가인 주인공에 비해 아들과 딸은 과학자로, 게다가 무척이나 뛰어난 머리를 지니고, 놀라운 , 게다가 과감하기까지 한 평행세계의 아버지와의 교신을 시도할 정도의 무모함과 용기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초반부의 그 거침없는 설명들은 평범하게 살아 온 어느 주부 (바로 나)의 머릿속을 마구 헝클어 뜨린다.
슈뢰딩거의 방정식을 어떤 형태로 해석하면, 실제는 모두 확률적인 가상이며
이 세계 옆에는 저 세계가, 그리고 그 옆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다세계구조야말로 우주의 본질이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54p
five star stories 라는 만화에서, 차근차근한 시간의 개념이 아닌, 과거와 미래가 마구 혼재되어있고, 주인공 역시 남자에서 여자로 혹은 중성인지 모르는 모습으로 변하기도 하는 등 놀라움이 마구 뿜어져 나오던 스토리에 사실 머리가 많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 특유의 기법에 읽으면 읽을수록 놓쳤던 부분을 새로 찾는 재미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이 책 역시 읽을수록 놀라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그만큼 복잡해지는 구성에 나중에는 머리가 아플 지경이 되었다. 사실 이 책 하나만 붙잡고 있어도 그래, 이렇게된건가? 그래, 여기서 이렇게 꼬였고 말이야. 이러면서 나름 체계를 세웠을텐데.. 아기 재우다, 중간에 밥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중간에 맥이 끊기니, 복잡한 머릿속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기에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
자기가 아닌 자기의 인생이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기억이 혼란해서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른다. 302p
검색성 정체장애. 유리카의 뇌에는 이제 200개 이상의 서로 다른 삶들이 중첩되어 있었다. 306p
소설가이자 아내와의 권태기로 힘든 날을 보내고 있는 아시후네 유키토. 그의 아내 유리카, 그리고 둘 사이의 딸 후코와 아들 리키
그들 양자 가족은 놀랍게도 평행세계 어디에서든 부부관계를 유지했고, 또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결이 되어 돌아가는 벗어날수 없는 드라마 같은 구조를 갖고 있었다. 티브이 드라마를 보면 한정된 탤런트와 환경 안에서 스토리를 꾸려가다보니, 서로가 얽히고 설켜서 모두가 관련있는 묘한 구조를 띠고 있다. 보면서 어쩔수없는 미디어의 한계지 하고 웃었었는데, 이 소설에서의 양자 가족들은 마치 전생의 연결고리인양, 한 세계에서 맺고 끊어지는 가족이 아닌 언제 어느 때고 서로가 가족으로 이어져있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중간 중간 끼어들어 나를 혼란케 했던 또다른 이름 시오코라는 존재. 왜 자꾸 후코를 시오코라 부르는지 자꾸만 헷갈리고 그랬는데 중간 부분에서 명확해지는 시오코의 등장을 알게 된다. 그리고 놀라운 결말로 우리를 이끌어준다.
또다른 나, 또다른 내 가족에 대한 판타지. 하지만 이 책은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그린 동화가 아니기에 아름다운 상상에 그치지 않고, 만나서 안될 사람들의 연결과 개입이 어떤 혼란과 혼선을 초래하는지만을 명백히 보여주는 성인들의 복잡 다단한 심정을 대변해주는 소설이었다. 4월에 읽을 책 중 가장 흥미로운 주제를 갖고 있는 소설이었고,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흥미 위주의 다른 소설처럼 정말 신나게 흥분되었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워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뛰어난 책이라고는 말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