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 - CNN 앵커, 앤더슨 쿠퍼의 전쟁, 재난, 그리고 생존의 기억
앤더슨 쿠퍼 지음, 채인택.중앙일보 국제부 옮김 / 고려원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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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나는 나의 삶을 스스로 제어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 감정을 통제하고 싶었다. 형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내면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예상되는 충격을 방지하고, 흔들리는 감정과 오장 육부를 쥐어짜는 메스꺼움의 물결을 막기 위해 한발 뒤로 물러섰다. 64P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평탄한 길을 갈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고통스러운 참사 현장 취재를 나선 이가 있었다. 열살때의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하나뿐인 형의 자살등으로 입어버린,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뿜어져나오는 그 견디기 힘든 고통을 외부의 고통과 연결시키고 싶었던 이. 그는 바로 CNN 앵커이자, 재난 전문 취재 특파원으로 15년을 세계의 참사 현장을 누빈 저널리스트 앤더슨 쿠퍼였다. 

 

나의 내면에서 느끼는 고통과 일치하는 바깥 세상이 있다면 그곳에 머물고 싶었다. 내게는 마음의 평정이 필요했다. 얻을 수만 있다면 그 비슷한 것이라도 좋았다. 나는 살아남고 싶었으며 다른 이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전쟁'은 나의 유일한 선택처럼 보였다. 70P

 

특종을 따라다니는 기자로써가 아닌 그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기 위해 그 현장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특파원이 되기 위해 가짜 기자 신분증과 홈비디오 카메라 하나를 들고 태국으로 홀로 가 미얀마에서 넘어온 정권에 반대하는 난민의 모습을 담아 처음으로 그의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많은 재난 현장을 다니다보니 더욱 고통스럽고, 더욱 자극적인 기사와 사진을 실어야 특종이 되고, 기사감이 될 수 있기에 갈수록 무뎌지는 상황 속에 스스로가 극한에 다다랐음을 깨닫고 반성하고 온전히 되돌아오기로 결심하기도 하는 그였다.

 

쓰나미로 가족을 세명이나 잃은 승객 앞에서 심심한 조의를 표하며, 면세품을 권하는 승무원을 보고 기가 찰 수 밖에 없었다. 기자인 그가 본 아이러니한 광경들, 한 구석에서는 시체가 속출하는데 또 고급호텔의 한 라운지에서는 여흥을 즐기는 관광객 무리가 그의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타인의 고통을 눈감고 있는 이가 비단 그들뿐이겠느냔 생각에 그는 말문이 막히기도 한다. 나 또한 할말이 없었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흥청망청한 삶이 진행되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 반대편에서는 먹을거리가 없어 사람들이 나뭇잎을 먹고 수천명의 아이가 기아로 죽어가는 소말리아가 있었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처참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션과 정혜영 부부가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음에도 여전히 전세를 면하지 못하면서도 사비를 털어서 기아에 허덕이는 많은 아이들의 양육비를 대고 있다는 기사글을 종종 접하고, 티브이에서 보기도 했다. 하루하루 살기 팍팍하다고 애써 외면하며 살아온 나에게는 그 아이들의 고통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해준 앤더슨 특파원의 이야기는 더더욱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내 아이와 같은 나이의, 아니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 세 자녀를 앞서 보내고 마지막 남은 자신 하나마저 시신을 수습해야하는 부모가 그 땅에는 있었다.

 

비단 소말리아뿐 아니라, 쓰나미가 일어난 최근의 일본에도 엄청난 자연 재앙 앞에 속수무책인 사람들이 있었다.

고통의 끝, 세상의 끝이라 느껴지는 그 순간. 누구나 벗어나고픈 그 현장에 달려가 목숨을 걸고 취재를 하는 기자들. 특종을 물기 위한 기자도 있겠지만,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이겨낼 수 없기에 끊임없이 고통의 현장 속에서 형과 아버지를 떠올리려 하는 앤더슨 기자가 있기에 우리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하는 세상 밖 소식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사라예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총알 아래에 살아요. 105p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그 전쟁터에 휘말린 청춘들은 그렇게 언제 총알받이가 될지 모를 무서운 세상 속에 남겨져 있었다.

앤더슨의 눈을 통해 본 세상. 그가 들려주는 가족의 비극적인 이야기와 세상의 고통스러운 현장들은 내게도 충분히 충격적이었고, 잊고 싶어 감았던 눈을 다시 뜨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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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술관에 놀러간다
문희정 지음 / 동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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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왜 이렇게 유쾌하고 생산적으로 즐겨보지 못했을까? 서울에 살면서 참 다녀볼만한 미술관이 많았음을 이 책 속에서 다시금 배우며 통탄스러웠다.

지방에 있는 각종 미술관들도 소개가 되면 더 고맙겠지만 서울의 미술관, 갤러리만을 싣기에도 이미 책은 충분히 두툼해져버렸다. 좋아하는 목록 중에 카페보다 편안하고 키스보다 설레는 세상의 모든 갤러리와 미술관을 꼽은 저자 문희정. 작가가 직접 쓰고, 찍고 그린 이 책은 정말 작가의 애정이 담뿍 뭍어나는 책일 것이다.

 

미술을 어려워하고 부담스러워하는 보통의 많은 사람들의 옆구리를 콕콕 찔러줄 이 책은, 전문 큐레이터의 지식이 담긴 책이라기 보다 미술관, 갤러리를 보다 더 편안한 휴식처, 혹은 데이트 장소 등으로 추천하고픈 작가의 마음이 담긴 책일 것이다. 부담없는 방문과 즐김.

 

연애할때도 이런 곳에 다녀보면 좋겠지만, 아기엄마가 되고 나니 이제는 아이 손을 붙잡고 좀더 생산적인 곳을 방문하고픈 바램으로 미술관 방문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지방에 살다보니 미술관 자체가 거의 드물지만, 가까운 시립 미술관에 가끔씩 진행되는 전시회는 가격 부담도 거의 무료에 가깝게 적은 편이고, 사람도 드물게 한적해서 어린 아기와도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어 좋았다. 이렇게 즐길 곳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즐길 장소와 즐길 거리에 대한 정보를 좀더 접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펼쳐들었기에 모두 서울의 멋진 곳들임을 알았을때는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인구가 제일 많이 집중된 곳이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리고 앞으로 아이와 서울에 방문할 일이 꽤 심심찮게 있을테니 그때마다 손꼽아둔 미술관들을 한 두군데씩 꼭 보고 내려오는 일정도 괜찮을 듯 싶었다.

서울 사는 이들에게 혹은 나처럼 가끔 서울 방문할 이들에게 유용할 팁이 될 "나는 미술관에 놀러간다."

 

 북까페, 브런치 등 미술관 옆 놀이터에 대한 정보도 재미나다. 사실 그녀의 글들은 블로그에서 이미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항상 이런 정보에 둔하다. 주로 요리나 여행, 책 쪽을 검색하다 보니 한정적인 성향 탓에 다른 분야의 유명한 블로거분들을 못 알아볼때가 많다. 하루 만오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녀가기도 하였다고 하니 그녀의 글이 얼마나 재미날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관람객에게 무심한 갤러리는 저쪽으로 미뤄두자.

에이, 퉤퉤.

38P

 

저자 설명을 다시 읽기전까지는 사실 저자가 여자분인지도 몰랐다. 에이 퉤퉤라니. 하지만 그녀는 젊고 발랄한 작가다. 그리고 감정에 솔직하여 거부감이 덜 드는 작가기도 하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녀의 글을 읽은 사람들은 그녀의 말투에 푹 빠져드나 보다. 어려운 미술을 억지로 이해하기 보다, 이해하기 쉽고 관객에게 다가오고 어울리는 갤러리를 찾아나서라고 그녀는 과감히 조언한다.

 

흔히 알던 미술관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갤러리들을 소개해주는 이야기를 듣는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들어갈까 말까 무척 망설이게 만드는 보안 여관. 실제로 2004년까지 여관영업을 했던 곳을 메타로그에서 인수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라 한다. 짖궂은 사람들에게는 재미난 여관이 될 법 하였다.

그런가 하면 일년에 단 두번만 개방한다는,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고미술품이 있을지 모를 베일에 쌓인 간송 미술관 또한 흥미로웠다. 특별한 시기를 놓치면 갈 수 없는 곳. 그래서 더 궁금한 곳이 될 수 밖에..일제 강점기 조선 최대 지주집에서 태어난 간송 전형필 선생이 사재를 털어 국보 14점과 보물 12종 등 귀중한 문화재 수집한 것이 5천여점에 이르른다 하였다. 1938년 조선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을 세웠고 바로 지금의 간송 미술관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아, 이 모든 사실들을 이 책속에서 처음 접하다니 참 부끄럽기 이를 데 없었다. 일년에 두번, 전국의 미술 애호가들이 몰려든다고 하니 기회가 닿는다면 꼭 시기를 맞춰 가보고 싶다.

 

5월 5일 "어른"의 날을 맞아 남자친구와의 리움이라는 미술관에서의 데이트가 각종 에피소드와 함께 경쾌하게 진행된다. 미술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놀러가는 것이기에 즐길 수 있는 각종 이야기들이 그녀의 일화와 더불어 소개되는 점이 따분하지 않고 더 재미난 책으로 만들어주었다. 내가 즐겨 읽는 여행 에세이의 느낌이 물씬한, 그러면서 미술관을 중점적으로 소개했다는 특징이 잘 살아있는 나는 미술관에 놀러간다. 진작 나도 좀 이렇게 미술관에 놀러다닐걸. 아쉽지만 앞으로라도 그녀가 소개해주는 멋진 데이트 장소, 가볼 곳 등을 꼽아 아이와, 신랑과 행복한 추억을 쌓아가고 싶어졌다.

 

우울할때 전시장을 찾고 나면 한 가지 확신이 든다. 롤러코스터나 바이킹도 이보다 더 나를 즐겁게 해 줄수 없으리라.

"이번에도 고마웠어. 가끔은 친구나 애인보다 네가 더 낫더라." 146P

 

채워지지 않는 2%를 당당히 전시장에서 찾는 작가. 미술관을 향한 그의 애정어린 시선에 그동안 어렵게만 느껴진 고정관념이 조금씩 허물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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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기린의 말 - 「문학의문학」 대표 작가 작품집
김연수.박완서 외 지음 / 문학의문학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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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할 10 명의 작가들의 단편문학집, 그 안에서 박완서님의 이름을 발견하고 특히나 더 반가웠다. 깊은 밤, 기린의 꿈이라는 제목이 김연수라는 다른 작가님의 소설이었음에도 나는 사실 박완서님의 글이 가장 기대가 되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근래에 읽은 그분의 몇 작품을 만나다보니 새로운 작품에 목말라했고, 더 많은 그분의 글을 읽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책과의 만남.

 

깊은 밤 기린의 꿈으로 나는 내처 다음 글을 읽지 못하고 한동안 묵묵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누가 하는지 모르고 시작되었던 독백, 부모님이 자신들을 동물원에 버리려 데려갔다는 쌍둥이들의 생각. 그 이야기는 그들의 동생 이야기가 나오면서 조금씩 윤곽을 잡아간다. 그리고 아이의 성장과 더불어 발견된 자폐 증세는 부모에게 큰 고통이 되어 자리하게 된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이 되어 비로소 시인이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마는 시인이 되지 못하고 결국 내성적인 쌍둥이와 말 못하는 자폐아의 엄마가 됐다.

어떤 여중생이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내성적인 쌍둥이와 말 못하는 자폐아의 엄마가 되려는 꿈을 꾸겠는가.

엄마는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실패했다 생각했다.

엄마는 다시 시동을 걸었다.

 

24p 깊은 밤, 기린의 말, 김연수

 


 

어린 아들을 두고 있어서 자식을 둔, 특히 어린 아이를 둔 엄마의 마음이 더욱 절절히 와 닿았다. 내 아이가 제발 건강하기만을 바라는 것.

아이를 임신하고 똑똑하기를, 성격이 어떻기를 바라기에 앞서서 가장 바라는 것은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었다. 너무나 눈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말을 하지 않고 평범하지 않게 자란다는 사실을 알고 부모는 벽에 부딪힌 심정이었을게다. 아니, 사실 그 고통을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깊은 밤 어느 날 아이와 후라이드 치킨을 먹고 온 엄마, 엄마는 그날을 계기로 시라는 것을 다시 쓰기 시작한다. 온전히 새로 시작된 인생. 꽉 막힌 줄 알았던 벽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아이와 기린과의 만남. 유독 기린이라는 단어에 좋아라하고, 또 아이가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 동물이었기에 부모는 하나의 희망처럼 둘의 만남을 기뻐하였다. 나중에 결말에 밝혀지는 사실로 부모의 가슴에 특히 아빠의 가슴에 또 한번 피멍이 들었겠지만, 아무리 그렇다한들 아이에게서 너무나 소중할 기린을 떼어놓아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깊은 밤, 기린의 말. 그들의 눈, 그들의 대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려왔다. 아이의 행복을 기원하는 부모의 마음을 그 누가 대신 헤아릴 수 있으랴..

 

가볍게 읽고 웃어넘길 수 있는 글들이 아니라, 한편한편의 단편이 모두 깊이가 있고, 생각에 빠지게 하는 글들이었다. 묵직한 무게감에 가슴이 무거워지기도 하는 그런 글들. 하지만 그래서 좋은 점도 있었다. 그저 읽고 나서 포르르 날아가버리는 그런 얄팍한 글들이 아니었음에 짧은 글이 긴 생각이 되어 머리 속 한 구석에서 재 탄생되는 듯 하였으니 말이다.

 

박완서님의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에서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와의 보이지 않는 대결 같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겉으로 보면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아니, 신경쓸것 없게 느껴지는 고부간의 관계 하지만 식모처럼 불려가는 그날이 되면 날카로워지는건 정작 갱년기인 당사자다. 남편은 흘려듣고, 어머님은 날이 선다. 박완서님 특유의 화법으로 정말 주위 이야기를 듣듯 생생하게 전해들을 수 있다는게 이 소설의 인상깊은 점이었다.

 

이청준님의 이상한 선물은 어느 마을의 사건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마치 봇물 터지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하면서 그 이상한 선물은 대체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글이었다.

 



 

단 한 조각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완전하게 맞추기 위해 퍼즐 게임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은 , 생의 에너지는, 결핍을 채우려는 불완전한 욕구로 허덕일뿐이다.

그게 인생과 퍼즐판의 차이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퍼즐을 하는 여자의 내면에 쌓이는 아귀 맞지 않은 욕망의 조각들을.

 제자리를 아직 기다리고 있는 유예된 증오의 부스러기들을.

 

167p 퍼즐, 권지예

 


 

깊은 밤 유난히 날카롭게 울던 아기 울음소리가 고양이 울음소리임을 알고 깜짝 놀란 적이있었다. 정말 너무나 흡사했기때문이었다. 퍼즐 속 주인공 역시 고양이에 의한 시달림을 받는다. 좋아하지 않는 고양이가 유난히 그녀를 괴롭힌다. 강제로 지웠어야 하는 아기들, 그녀 가슴에 남은 봉분 세개가 그녀를 평생 옥죄이게 만들었다.

 

완성도가 높은, 10편의 작품들 중에서 유독 여성 작가분들의 글들이 더 흥미롭게 느껴졌던 것들은 공감하거나, 혹은 대신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을 수 있어서였는지 모르겠다. 소설 전체를 공감한다기 보다 소재 같은 것에 공감한달까? 조경란님의 파종, 이명랑님의 제삿날 등 역시 그런 맥락에서 최일남님의 국화밑에서보다 조금더 편하게 읽었던 글이기도 했다. 제삿날의 서로가 서로에게 떠밀며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대목에서는 나조차도 발끈하게 되었지만 몰랐던 반전이 밝혀지는 결말은 두 여인의 단단한 결속을 대변해주는 속시원한 결말이 되었다. 

 

짧아서 읽기에 부담이 없지만, 그럼에도 각 작가의 독특한 느낌을 강하게 풍겨주는 내공이 깊은 글들, 오랜만에 멋진 단편집의 향기에 흠뻑 취해들었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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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 밥상 - 맛있는 일본 가정 요리
성민자 지음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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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도 좋아하지만, 다양한 나라 음식을 좋아하고 특히나 일본 요리는 정갈한 음식과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양식류까지 두루 섭렵할 수 있어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나 일반 시중 음식이 아닌 일본 가정식에 대한 요리책이라니 예전에 도쿄 가정식에 대한 다른 책을 읽어봤음에도 또다시 구미가 동했다. 밥상에 올리는 메뉴가 일정하다 보니 새로운 입맛에 따라 가끔 특별한 요리를 상에 올리고 싶을때 우리나라 식단과 많이 흡사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일본 가정식을 만들어 상에올리면 반응이 좋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스피드로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메뉴가 의외로 많아 나처럼 요리에 서툰 초보 주부들 (초보딱지는 앞으로도 몇년이나 지속될 것인지..) 에게는 무척 반가운 레시피가 아닐 수 없었다. 간단해보여도, 또 우리 입맛과 많이 다르지 않으면서도 차려놓으면 무척 예쁘고 정갈한 밥상이 되는 일본 가정식. 보기 좋은 사진과 더불어 찬찬한 레시피는 따라하는 재미까지 쏠쏠히 심어주었다.


일본에 거주하면서 습득하게 된 레시피 노하우(특히나 일본인 시어머니께 전수받은 맛있는 레시피모음이기에 더욱 소중한)를 소상히 알려준 작가분 덕분에 책은 작가님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무척이나 두꺼워졌고, 덕분에 독자들은 마치 선물받은 느낌으로 행복한 요리의 세계에 마음껏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사실 신혼이라기에는 결혼한지 한참 되었고, 지금쯤이면 요리가 손에 익을 만도 하건만 아직도 초보딱지를 못 뗀 내게는 요리책이 정말 반가운 친구가 아닐 수 없기에, 이 책을 만나고 나니 일본 가정식으로 행복한 밥상을 차려볼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난다

아직 아기가 어려서 매콤하게 조리한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그래서 매운 요리를 좋아하는 신랑 반찬과 아이 반찬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 주부들에게는 사실 좀 번거로운 일이기도 하다. 어느 날 오후 장볼 반찬도 똑 떨어지고 방사능 비때문에 장보러 나갈 상황도 못되어 집에있는 반찬과 식재료로 끼니를 해결해야할 날이 있었다. 아이 반찬으로 무엇을 해주어야 하나? 여느때와 같은 고민을 하다가 마침 읽고 있던 고베 밥상이 떠올랐다. 아이가 먹을 만한 메뉴도 있을 거라는 확신으로 책을 찾다 보니, 멸치 볶음밥이라는게 눈에 띈다. 보통 집에서도 잔멸치를 물에 불려 (유아에게는 짜니까) 볶은 후 주먹밥은 몇번 만들어줘봤는데 아예 밥에 넣고 볶는다는 생각은 못해봤다. 게다가 들어가는 재료도 실파 정도가 추가 될 뿐이라 정말 간단하였다. 이렇게 해도 맛이 날까? 싶게 말이다.



어쨌거나 우선 도전은 해보았고, 책에 나온 레시피는 성인 기준이라 멸치가 상당히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아이 기준으로 밥양에 비해 멸치 양을 확 줄여서 적게 넣었다. 그리고 쪽파가 없어서 대신 대파를 잘게 썰어서 넣었고, 마늘 등을 추가할까 하다가 책에 나온 레시피의 맛이 궁금해 그대로 따라 조리해봤다. 그랬더니 약간 비릴 줄 알았는데 비리지도 않고 아이도 생각보다 제법 잘 먹었다. 맛을 보기 위해 나도 좀 먹어봤는데 멸치와 파 만으로 이런 맛이 나온다는게 신기할 정도였다. 파의 풍미가 멸치의 비린 맛을 잡아주었달까? 평소에 파를 넣어서 이렇게 조리할 생각을 못하고 주로 양념으로만 써왔는데, 보통 두가지 정도의 심플한 재료를 잘게 썰어 볶는다는 일본식 볶음밥은 새로운 만남이었다. 아이 요리책이 아닌 일본 가정식 책으로 유아 반찬까지 한끼 해결하니 더욱 마음이 든든.


맛있어 보이고 정갈해보이는 메뉴가 무척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해보고 싶은, 먹어보고 싶은 메뉴가 바로 연근 버거였다.

고기는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연근과 오트밀 등으로 만든 버거. 사실 말만 들으면 어떤 맛일지 기대가 되지 않는다. (내가 워낙 육식을 좋아해서 말이다.) 그리고 마이크로비오틱 식단에 관련된 여러 종의 책이 있었음에도 사실 직접 시도해본 적은 없었다. 힘들여 만들었다가 실패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으로 말이다. 그 두려움을 떨쳐내게 만든것이 바로 저자의 설명이었다. (바로 이런 생생한 체험담이 뒷받침되면 주부들은 따라할 용기를 갖게 된다.) 모 마크로비오틱 식당에서 먹어본 연근버거가 정말 너무 맛있어서 그 맛을 재현하기 위해 집에서 노력한 결과 얻어낸 자기만의 노하우 레시피라는 것.

아, 놀라운 맛인 그 연근 버거의 맛이 정말 궁금해졌다. 오트밀 (귀리)을 한번도 구매해본적이 없어서 (항상 요리하기 전에 집에 없는 재료들이 발목을 붙잡는다) 아직 못 해보았지만, 꼭 그래도 연근버거는 해보고 싶다. 가족들과 함께 고기가 아닌 연근을 맛있게 먹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특히나 우리 아기 건강을 위해 연근으로 맛있는 버거를 만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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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집 - 예 교수의 먹고 사는 즐거움
예종석 지음, 임주리 그림 / 소모(SOMO)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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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맛집 탐방을 즐기고, 맛집 관련 리뷰, 책 등을 찾아 읽는 사람이라 맛집에 대해 나도 관심이 꽤 높다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나는 그런 축에 끼지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먹고 사는 즐거움에 대해 참으로 들려줄 말이 많은 예교수님의 책.

미식을 사랑하는 아버지, 요리 솜씨가 좋은 어머니의 영향 아래에 각종 진미를 맛보기 좋았던 1950,60년대의 부산에서 생활을 하였던 터라 저자분이 풀어놓는 음식 이야기는 내가 생각하는 아주 한정적인 범위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야말로 방대하기 이를데 없다.

당시에는 흔하게 포장마차에서 팔았다는 각종 고래 고기를 어려서부터 사먹었을 뿐 아니라 최고의 미각을 자랑하는 아버지 덕에 일본 총독부에서 근무했던 요리사의 음식점에서 지금 맛보기도 힘들 그런 일식 요리를 맛보고 자랐기 때문이었다.

 

최고의 맛집, 최고의 입맛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있겠지만 사실 맛집이야기라는 것이 다루기가 쉬울 것 같아도 무척 어려운게 사실이다.

평범한 블로거인 나 또한 언젠가 맛집 카페에서 내가 다녀온 맛집 이야기를 올렸다가, 긍정적인 댓글들 외에도 형편없는 경험을 하고 왔다는 식의 나무라는 댓글이 달려 당혹스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블로거나 글을 쓰는 작가님들이나 하나같이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 점이 바로 그 점이다. 모두가 제각각인 입맛을 모두 충족시켜주는 최상의 맛집을 찾기란 정말 힘들다. 게다가 막상 최고의 맛집을 올린다 치더라도 가격이 너무 비싸서 글을 읽는 서민들이 찾아가기 힘든 곳들도 많기 때문이다. 작가분은 그런 고민 끝에 제철 음식을 합리적인 가격에 맛있게 만들어내는 집들부터 차근차근 소개를 하고 있다.

 

맛집, 음식에 대한 포스팅이다 보니 먹음직스러운 음식 사진이 커다랗게 자리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사진은 드문 책이었다.

아마도 작가분의 풀어내고픈 글들이 많아 눈길이 가는 사진을 아예 극도로 줄인게 아닌가도 싶었지만, 그래도 보는 즐거움이 배가 되는 음식 사진이 드문 것은 어쩔수 없는 아쉬움이었다.

 

맛있는 음식, 그리고 식당에 대한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 일반 서적과 크게 차이가 나는 점은 그 음식에 대한 기원과 일화등을 재미나게 싣고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모르고 있던 부분도 상당히 많이 알게 되었다. 꽁치 말린 것이 과메기라고 알고 있었던 것이, 사실은 청어를 말린 것에서 과메기가 시작되었다는 것과 그 청어가 드물어지면서 꽁치로 대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상도 지방에서 멸치 대신 육수를 낸다는 디포리도 멸치보다 조금 큰 새로운 어종으로 알았더니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밴댕이란다. 바로 그 밴댕이를 말린 것들 띠포리라고 부른다 해서 아하~ 하고 무릎을 쳤다.

 

밥집 책을 읽으며 내심 기대했던 사실 중 하나는 우리 지역 맛집이 혹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맛집 카페나 일반 책들을 봐도 알 수 있듯 내가 살고 있는 대전지역에는 유명한 음식이 그다지 없는 듯 하다. 아쉽게도 이 책에도 대전지역의 맛집은 언급이 되지 않았다. 전국의 맛집을 다루고 있다 해도 꽤 많은 부분이 서울의 맛집을 다루고 있다. 서울에서 몇년 살아봐 알긴 하지만, 확실히 전국 팔도의 사람들이 빼곡히 몰려든 곳이라 그만큼 유명한 맛집도 많고, 맛집을 찾는 이들도 어느 지역보다 많기때문에 어쩔 수없는 결과일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밥집 책임에도 레시피까지 등장한다. 물론 방풍 죽에 한해서였지만,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찾는이이고, 관심이 높은지를 대변해주는 대목이라 소개하고 싶다. 조선 중기의 천재 허균이 저술한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 품평서 <도문대작>을 보면 향기가 입에 가득하여 3일동안 가시지 않는다 라고 방풍죽을 설명하고 있다 하였다. 이외 <증보 산림경제>, 최남선의 <조선 상식> 등의 옛 요리서에서는 흔하게 방풍죽의 흔적이 발견되고 평양냉면,진주 비빔밥 등과 더불어 지방의 유명 음식으로 소개되어 있을 정도였다 한다. 지금은 흔적을 찾기 힘든 먹거리라 식당을 찾아보았으나 파는 곳을 알 수 없어 직접 집에서 쑤어보았다면서 최근의 농촌 진흥청에서 나온 레시피를 소개하고 그 맛을 품평하였다. 입안에 은은한 향내나 감도는 것이 참으로 아취가 느껴진다 라고 말이다. 나 또한 맛있는 요리에 대한 책을 읽으면 어떻게든 맛을 보고 싶어 안달하는데 확실히 저자분의 단계는 나보다 몇 수위임을 알 수 있었다.

 

집근처 맛집이 없어 아쉬웠지만 전국 여행을 다니게 될때 부모님을 모시고, 혹은 남편, 아이와 함께 찾아가고픈 맛집들을 꼽아둘 수 있어 무척 유용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라도에 가면 그 유명한 전라도 진미들을 꼭 맛보고 싶었어도 어느 집이 유명한지 몰라 망설이곤 했는데 교수님이 추천해주는 순천의 대원 식당은 한상 떡벌어지는 상차림임에도 어느 한가지한가지가 모두 나무랄데 없는, 아니 전문점 뺨치고도 남을 솜씨라니, 부모님 모시고 꼭 찾아가고픈 맛집이었다.

젊은 세대의 입맛보다는 좀더 원숙한 입맛을 소개하시는 맛집들이 많았는데, 그래도 밀탑이라는 간단치 않은 빙수 맛은 서울 살면서도 못 본 맛이라 다음에 놀러갈때 꼭 그 시원한 맛을 즐기고 싶게 만들어주었다.

 

같은 맛집을 다녀오고서도 어떻게 품평을 하느냐에 따라 가고 싶은 곳이 되느냐 아니냐가 갈리는 것 같다. 한끼 밥상에 밥을 해석한다라는 책 뒷 표지의 인상적인 문구처럼 밥상 위의 모든 것이 작가님의 맛있는 인생을 통해 술술 풀어져 나와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덕분에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몹시 허기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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