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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피넛 1
애덤 로스 지음, 변용란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매일 상상하는 남자의 이야기.
결혼의 어두운 측면을 가장 매혹적인 방식으로조명했다는 스키븐 킹의 평을 받은 소설.
그리고 땅콩 껍질 속 해골의 모습을 한 땅콩의 모습에서 나는 첫장을 넘기기 전에 잠시 숨을 골라야했다.
무서운 소설을 싫어하기에 도대체 어떤 내용일지 기대가 되면서도 떨리기도 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면서, 아내의 살해를 꿈꾸며 소설을 쓰는 데이비드 페핀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길을 가다보면 누구나 뒤돌아보게 만드는 거구의 아내, 아내의 뚱뚱함마저 사랑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해하기 힘든 그런 심리가 숨어 있었다. 그리고 아내의 다이어트. 다음장에 바로 이어지는 날씬한 아내의 죽음. 갑자기 뛰어넘어버린 시간의 격차에 잠깐 당황을 했다가.. 다시 소설에 몰입하게 되었다.
데뷔작이라는 이 소설은 그렇게 놀라움을 주면서 시작하였다. 이야기가 채 진행되기도 전인 것 같은데.. 결말같은 이야기를 던져준다. 그리고 사실 어느 것도 결말이라고 단정짓기 힘들다. 누가 범인인지도 나중에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이야기가 소설인지 사실인지도 헷갈리는 부분도 여럿 있었다. 바쁜 와중에 읽어 짬짬히 보게 되었음에도 너무나 뇌리에 남을 듯한 소설.
기이하게도 결혼은 시간을 납작하게 압축해 세월의 흐름을 감추는 재주가 있다.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은 서로 뒤얽혀 가까운 풍경은 먼 풍경이 되고 먼 풍경은 더욱 멀어져
이윽고 새로운 것도 오래된 것이나 다름없어지며 과거는 어처구니없이 새롭고 낯설게 느껴졌다. 165p
분명 사랑하지만, 서로 평행선을 이어 나가는 관계가 되어버린 남자와 여자. 작가의 재주에 휘말려 내가 여자임을 망각하고 남자의 시선에서 사건을 바라보다가 여자의 심리를 잊어버리는 경지까지 이르기도 했다. 정말 그 주인공에게 그때그때 빠르게 몰입하게 만들었다. 물론 부정적으로 몰입이 절대 안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짜증만 내는 앨리스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토록 헌신적인 사랑을 베푸는 남자가 뭐 어떻다고 그러는 것일까? 싶었는데.. 책을 정신없이 읽어나가다보면... 앨리스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아름다웠던 몸매가 망가지게 되고, 그녀의 정신적인 피폐가 일어난 원인이 무엇인지 제목과 연관되어 설명이 된다. 그리고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다 해도 그녀가 남편을 용서할 수 없었음에 동의하게 된다.
어떻게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지워버릴 수가 있는지 그는 의아했다.
유일하게 남은 건 침대에 누운 한나 뿐이었다.
.. 한나는 용하게도 두 사람이 함께하는 인생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138.139p
앨리스가 죽은 후 남편을 용의자로 모는 두 명의 형사, 그들 중 해스트롤의 이야기이다. 앨리스와 데이비드의 사건을 보면서 그는 그와 아내 한나의 이야기를 되돌아본다.
무엇이 그녀를 스스로 침대 안에 격리하게 만들었을까? 같은 여자임에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던 한나의 심리상태. 그저 우울증이 극에 달한것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남편을 몰아세운다는 느낌이었다. 굳이 말로하지 않아도 힘든 그런 상황.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이 소설 속에서는 보이지가 않는다. 한때 눈부시게 사랑했던 연인들이었고, 부부가 된 이들이지만, 이제는 서로 날카롭게 부딪히고 이해하지 못하는 선상에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듯 걸어가고 있다.
직장일에 바쁜 신랑 탓에 가끔 집안일에도 좀 신경을 써달라고 투정 아닌투정을 부려보기는 했지만, 극단적인 생각까지는 가져본적이 없었다.
이 책의 세 부부는 정말 결혼생활의 파국을 보여주는 듯 하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결혼에 대해 꽤 깊이있게 통찰하는 그의 서술들은 유난히 귓가에 남는다.
부부간의 문제는 절대 밖에서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이라 하였다. 그들만의 문제들, 마치 살아본듯한 아니 어쩌면 아주 일부분은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을지 모르는 그런 상처를 줄 수 있는 말들. 사랑하면 사랑하는대로 아내에게 남편에게 충실하면 될것을 그러지 못하는 이들의 배회가 자꾸만 가슴아프게 느껴져 책을 덮고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