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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1 ㅣ 신의 카르테 1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채숙향 옮김 / 작품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임신하고, 아기를 낳은 후 처음으로 퍼머를 한 날인줄 알았는데, 동생 왈, 언니 결혼하고 펌 한거 처음이잖아? 라고 알려주었다. 그랬구나. 거의 일년에 한두번씩 하나로 묶을 수 있을 정도로 커트하러 미용실 간거 말고는 미용실은 나와는 거리가 먼 그런 곳이었다. 며칠전 커트를 하고, 드라이를 했는데, 끄트머리만 살짝 고데기를 한 그 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반응들이어서, 펌이라도 하라고 등떠밀려서 미용실에 갔다. 혹시나 하고 책 한권 옆구리에 끼고 갔더니, 역시나.. 주말의 미용실은 특히나 번잡하고 바빴다. 게다가 오랜만에 가니 두피 케어까지 받으라고 해서 장장 네시간을 미용실에 묶여 있었다. 혼자라면 무척이나 지루해 못 견뎠을 그 시간동안 나는 "신의 카르테"라는 무척 재미난 소설을 다 읽었고,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서 그동안 연락 못해 미안했던 친구들에게 문자로 꼼꼼히 연락을 했다.
제 10회 소학관 소설상 수상, 제 7회 서점대상 2위 등의 화려한 수상경력을 차치하고서라도, 아니, 그런 수상 경력은 다 빼고 책만 순수히 읽어도 정말 감동적이고 재미난 소설이었다. 미용실에서 혼자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갑자기 콧등이 시큰거려서 살짝 화장실에 갔다오기도 하고, 옆에서 누군가가 계속 지켜봤으면 웬 여자가 원맨쇼를 하는 구나 싶은 그런 모습을 연출하면서 나 혼자만의 세계로 흠뻑 빠져 있었다. 잡지 책, 만화책등에 빠져 있는게 아닌 나만의 소중한 책에 빠져 있음이 너무나 행복해지는 그런 시간이었다.
1년 365일, 그리고 하루 24시간 단 한시간도 쉬지 않고 풀가동중인 400병상 정도의 지방 병원. 의사 인력은 부족하면서 시간은 풀가동이니, 의사와 간호사에게 돌아가는 로딩은 어마어마할 수 밖에 없다. 괴짜 의사 선생님 구리하라 이치토는 하루하루, 거의 매일을 밤샘하며 결혼기념일도 놓치고, 잠깐의 커피 타임을 누릴 여유조차 없는 열악한 근무 조건을 견뎌내고 있는 중이다.
나쓰메 소세키님의 광팬이라, 그분 작품의 말투를 따라 하다보니, 저절로 괴짜 선생으로 통하게 된 이치토. 대학생때부터 그는 괴짜로 통했지만,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해도 그는 그 나름대로의 소신이 있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모두 대학병원 의국에 남을때, 혼자서 호젓할(?) 지방 병원으로 내려와 엄청나게 밀려드는 환자들을 밤에는 응급의사, 낮에는 내과 의사라는 명찰만 바꿔찬 상태로 열심히 맞아들고 있는 것이었다. 5년의 세월동안 그는 꽤나 많은 내공을 쌓았고, 그러는 동안 다시 대학병원 의국으로 돌아오라는 스카웃 제의를 받게 되었다. 최첨단 의료 시설을 갖추고, 적은 수의 환자를 많은 수의 의사가 여유롭게 보면서, 의사의 전문 지식을 더욱 쌓을 수 있다는 그곳으로 말이다.
"안다고,이치토. 그 귀여운 미즈나시 씨와 난 완전히 '미녀와 공룡'이야. 하지만...."
"지로, 일단 공룡에게 사과하게." 25p
혼조병원의 괴물같은 의사, 외과의사인 스나야마 지로는 그가 한마디로 괴물, 도깨비라 칭할 정도로 비호감의 외모를 지닌 사람이다. 놀라운 외과의 실력을 갖추고 있으나 여자앞에서는 초등학생보다 못한 감각을 갖춘 그. 진지하고 심각한 상황이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어느 한군데쯤은 숨통을 트여줄 재미난 요소가 놓여 있어야 살맛나는 법이거늘, 이 소설 속에서는 그 유머러스한 장치의 역할을 바로 스나야마에 대한 이치토의 반응이 보여주는 듯 하다.
똥의사, 된장의사로 불리우는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는 경력이 짧은 수련의에 대한 묘사도 웃겼지만, 암튼 이치토, 괴짜로 불리지만, 정말 만만치 않은 그런 사람이기도 하다.
"선생님은 역시 멋져"라는 도요시나 씨
"피곤한 얼굴도 멋져"라는 아카시나 씨
"왠지 부끄러워"라는 구라시나 씨
나는 그녀들에게 매우 사랑받고 있다.
아니, 지레짐작하면 곤란하다. 그녀들의 평균 연령은 예순아홉살이다. 세명을 합치면 이백살이 넘는다. 32p
무심코 거기에 응수하여 "제가 그렇게 인기인입니까?" 라고 물으면, 어머 선생님 너무하시네. 젊은 남자라면 누구라도 상관없어요" 라고 대답한다.
과연 합쳐서 200년의 세월은 겉멋이 아니다.
카르테에 기재했다.
'조기퇴원' 33p
누군가 아는 이가 옆에 있었으면 이것 좀 봐~ 하면서 같이 웃었을 것을.. 혼자서만 키득키득 웃어야 하는게 못내 아쉬웠다.
인력의 이치토라 불리우는 의사. 밤샘을 해도 꼭 환자를 몰고 다니는 듯, 심각한 중환서부터 엄청난 수의 환자들까지.. 병원에서 일하다보면 모두 그런 사람들이 있나보다. 유난히 그 사람과함께 있으면 환자가 몰리는 그런 사람. 정말 그런 일을 겪어 본적이 나도 있기에.. 나도 일을 타는 편이었지만, 정말 대박 일을 탄다고 소문이 났던 k선생님의 경우에는 같이 당직을 한 이들이 모두 3시까지 점심을 먹지 못하는 일이 발생키도 했었다. 1년중 가장 바쁘게 느껴졌던 그때의 그 당직. 아직도 생생하다.
징크스라고 해야할까? 이치토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신과 함께 당직하기를 꺼리는 간호사들때문에 씁쓸해지기도 하는.. 하지만, 적어도 그는 아무리 바쁘고 열악해도 환자들에게 충실한 모습을 잃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초진 외래에서 갑자기, 그것도 하필이면 "반년 안에 죽을테니 지금은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라니...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쉽게 억누를 수가 없다.
..."저 , 여기로 돌아오면 안 될까요?"
"다시 저를 진찰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선생님?"
그 말과 함께 아즈미 씨의 손끝에 눈물방울이 뚝 떨어졌다.
암선고를 받았을 때도 고통이 시작됐을 때도 결코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차분했던 그 아즈미 씨가 울고 있었다. 108p
너무나 바쁘고 힘들지만, 이런 저런 일들이 유쾌하게 진행되는 터에 웃음짓기도 하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정말 울컥하고 말았다.
그래, 사실 우리나라 병원의 현실도 이렇지. 환자 본인에게 말하지 못해서 그렇지, 사실 보호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경우는 거의 허다하지 않은가. 어찌할 수 없다라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생채기를 내고 있지 않았던가? 우리 엄마 교통사고 나셨을 때도, 만에 하나 있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다리길이가 짝짝이가 될 수도 있다는 등 하고 말을 하는 응급의사를 보고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지 않았던가. 사실 그렇다.
거의 살인적인 밤샘을 지속하고서, 신의 카르테의 주인공 이치토처럼 인간적인 의사가 되기란 너무나 어렵고 힘든 현실일 수 있을 것이다.
의국제도라는게 우리나라와 일본은 상당히 다른 것 같았지만, 어쨌거나 환자에게 상냥한 의사보다, 그렇지 않은 의사가 더 많은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눈물을 떨군 아즈미씨. 간호사와 의사 모두에게 오히려 고마운 마음을 갖게 하는 상냥한 환자 아즈미씨의 가슴 아프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끝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우리의 주인공 이치토가 있었다.
이치토의 아내와의 사랑이야기서부터 시골 의사로써, 허름한 여관에서 하숙하며 같은 이웃들인 남작, 학사 등과의 우정을 교류하는 이야기들까지.. 병원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이야기 외에도 이치토의 주변 이야기도 아주 살포시 뭍어나온다. 그러면서도 참 매끄럽게 흘러가는 모든 이야기들이 참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올해 영화로 개봉될 예정이라는 신의 카르테.
사실 난 이 영화보다도, 2권이 씌였다는 그 다음 소설이 더 궁금해졌다.
인술을 펼치는 의사, 이치토를 다시 또 만나고 싶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