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 제2회 중앙 장편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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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냥꾼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분을 알고 있어서, 이 책의 제목이 처음부터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단지, 그 책 사냥꾼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 왜 책사냥꾼이라는 직업이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졌다. 그리고, 책에 붙은 놀라운 찬사.

 

우리가 꿈꾸는 불가능하고 환상적인 목록들로 가득한, 좌뇌와 우뇌를 함께 출렁이게 할 흥미진진한 판타지이다. 하루키의 위트, 보르헤스의 자유로운 상상력, 에코의 광대한 지식을 모두 갖춘 이 소설을 읽는 것은 우리가 꿈꾸는 책의 은하를 항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하루키와 보르헤스와 에코의 만남이라니.. 게다가 문학상 수상작임에도 대중성까지 겸비한 흥미진진한 판타지라고 해서 쉽게 읽히는 그런 판타지 소설을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 대가의 만남이라는 부분도 간과해서는 안되는 거였는데..

처음에는 정말 문학성과 대중성을 오가는 양, 혼란스러운 구도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번에 읽었으면 좋으련만, 어쩌다보니 며칠에 걸려 나누어 읽게 되어서 더욱 그 얽히고 설킨 실타래가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작가가 제시해주는 놀라운 책들, 세계의 책에 이르게 되는 비밀의 단서가 되는 각종 책들의 소개와 나열, 사실 그 안에 진실도 있고, 허구도 있을 것이기에 찰리가 하는 이야기, 그리고 반디가 하는 이야기 작가의 이야기 모든 것 중에 어느 것이 진실이고 허구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진실은 그랬다. 책 속에는 허구의 책도 있고, 실제 존재하는 그가 참고한 책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모든 책들이 다 처음 접하는 책들이라 생소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그리고, 책탐이라 말할 수 있었던 나의 책 욕심은 작가의 그것에 비하면 엄청 미미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새삼 깨달았다. 책을 읽어보았노라 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책을 읽고, 새로운 구성으로 책을 파헤치고, 책의 일생을 짚어볼 그런 대작을 꿈꿔 볼 수 있어야 하는것이었다.

 

당신이 이 우주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찾는다면 그 이야기는 <세계의 책 > 속에 있다. 36p

 

아, 세계의 책이란 무엇인가.

자기 소개를 할듯 말듯, 보여줄듯 말듯한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서두가 다소 혼란스럽기는 하나, 책을 읽어내리면서..또 스토리에 몰입하면서는 빠르게 이해되기 시작한다.

 

책사냥꾼 반디, 그리고 그의 직업에 대한 간략한 소개.

반디는 이 책의 주인공이자, 책사냥꾼의 중앙핵심이랄 수 있는 미도당으로부터 베니의 모험이라는 어느 책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의 의뢰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가 책을 추적하면서, 책사냥꾼계에서 악명이 높은 검은별과 경쟁 구도를 형성하게 되고, 윤선생이라는 미도당의 중심인물의 음험한 속내에 대한 그의 불길한 직감이 서서히 맞아떨어짐을 암시하면서 이야기가 흘러간다.

 

-여기는 꼭 책들의 무덤 같군요. 사라진 책들의 무덤

-저는 그보다는 책들의 요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태어날 책들을 위한 자리. 114p

 

지금처럼 책을 자유로이 읽고, 교류할 수 없는 어느 미래의 한국.

그 속에서 책은 불태워지고, e 북으로 통일되려는 강압적인 정책이 추진된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싶지만, 과거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의 역사상으로도 믿기 힘든 정책이나 법안이 통과된 예는 흔히 있어 왔다.

우리나라도 커피가 사치 식품으로 여겨져서인지 유통이 금지된 적이 있지 않았던가.

종이 값을 아끼겠다는 정책으로 페이퍼북을 마다하는 사회가 오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책은 더욱 희귀해지고, 특히나 헌 책 중에서도 소장가치가 높은 책들에 대한 관심은 더욱 증폭되어 간다.

이 책 이전에도 이미 책사냥꾼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책 속에서는 책사냥꾼이 마치 스파이, 첩보 요원처럼 실제 존재하는 직업으로 설명이 된다. 그리고 반디라는 인물은 책사냥꾼 중에서도 꽤나 능력이 있는 전설적인 인물이었고..

 

반디를 통해 보는, 그리고 그의 대학 친구들 소리, 제롬, 고박사 등의 어울림이 예사롭지 않게 흘러감을 보여주면서 인간과 책의 관계, 그리고 책이 시사하는 가치 등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하는 자리를 마련해준다. 지금은 그저 읽고 읽히는 존재에 지나지 않으나 먼 훗날 정말 책이 하나의 자원이 되고, 어쩌면 파괴되어야 할 가치가 될지 모르는 그런 세상을 생각하게 하면서 말이다.

 

책에 대한 깊은 애정과 통찰. 작가의 그  모든 것들이 이 책을 만들어내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책이 책을 만나고, 사람이 책을 통해 만나고, 책이 사람을 통해 만나고, 책이 사람을, 사람이 책을 만나고 있었다. 그런 만남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345p

 

내가 예상했던, 그런 결말은 아니었지만, 책을 즐기고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새삼 느끼게 해주는 그런 소설이었다. 누군가의 제약이나 간섭없이 읽고 싶은 종이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지금의 자유. 당연한 그것이 없어질 그 순간을 예상조차 하기 힘들었는데, 책 속에서 마치 스파이처럼 활약하는 반디를 보며 지금의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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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지구를 탐하고 뜨거운 사람들에 중독된 150일간의 중남미 여행
조은희 지음 / 에코포인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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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않은 곳이 TV에 나오면 당장이라도 그 곳에 달려갈 것같은 역동적인 표정이 된다는 작가 조은희. 서른 다섯 살인 그녀는 지금도 "넌 커서 뭐가 될래?"라는 말을 자주 듣고 산다고 한다.

 

150일간 중남미를 여행하고 돌아온 조은희 님의 이야기, 여행의 이유.

하늘과 땅이 구분되지 않는 너무나 멋진 곳에 서 있는 표지를 보고 한눈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여행을 좋아하는 지라 어떤 내용일까 궁금한 마음에 펼쳐드니, 이건 좀처럼 책을 덮기가 어려워 유모차를 끌고 가는 길가에서도 짬짬이 읽고, 책을 덮으면 그 다음 내용이 궁금할 정도로 재미나게 쓰여진 읽을 거리가 풍성한 그런 책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지만, 중남미를 일생에 한번이라도 가게 될 거란 예상은 하기가 힘들 정도로 그저 보수적인 삶을 살고 있는 나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세계 곳곳을 내집처럼 누비며, 그것도 홀로 배낭 하나 메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돌아다니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은 낯설기만 할 줄 알았는데 무척 재미나고 유쾌한 경험이었다.

 

비행기표가 너무 비싸 중남미여해을 사람들이 결정하기 힘들다면? 하고 그녀는 답을 내어준다.

유럽에 비해 항공권은 비싸지만, 하루에 드는 숙식 비용이 저렴해, 한달의 여정으로 계산해보면, 유럽과 남미 여행이 같은 비용이 나온다는 것.

그 이야기를 동생에게 해주자, 아, 정말 그렇겠네 하면서 무릎을 친다. 시간과 여유가 닿는다면, 중남미 여행이 그렇게 무리될 것도 없겠다는 생각마저 드니, 그녀에게 아주 단단히 세뇌가 되어가는 듯 하다.

 

너무 진지하게 살아온 나였기에 그녀의 뭐 이런건 어때? 식의 화통한 해결방식이 속 시원히 와닿았는지 모른다.

우리나라 항공사에서도 낯설어하고, 미국 직원조차도 "아니, 그 더럽고 위험한 나라는 왜가요?" 어리둥절해하는 그런 나라-콰테말라로 흔쾌히 떠나는 동양의 작은 여성, 중남미에서 영어보다 통용된다는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영어도 아닌 또다른 외국어를 여행 중에 배운다는 그 새로움이라니) 과테말라부터 첫 여행의 시작을 잡았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리고, 그녀. 또 에콰도르에서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아파트를 한달 세내어 과감히 눌러앉기도 한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나는 그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한번도 그래 본적이 없다.

늘 내가 짜놓은 루트대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그 길을 따라만 가고 있었던 것이다.

보고타로 다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다이어리에 이렇게 써놓았다.

'여행이란게 그냥 하고 싶었던 것을 길에서 하면 되는 거였네.....' 89P

 


 

여자 혼자 하는 여행에 대한 여러 에세이를 읽어봤지만, 생각이 낙천적이신건지 운이 더 좋았던 건지 이 책에는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즐겁고 유쾌한 기억이 더 가득하다. 아직도 독재정권으로 자국민들의 해외여행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쿠바 같은 딱딱한 나라서부터 치안이 걱정되는 여러 중남미 나라를 둘러보고 왔음에도 그녀는 한없이 유쾌하고, 길 위에서 따뜻한 사람, 정열적인 사람들을 만나 행복했노라 기술하고 있으니 말이다.

 

마치 여행을 다니면, 이런게 위험할거야. 하고 잔뜩 움츠려 있는 내게, 괜찮아~ 내가 조금 조심만 하면~ 하면서 어깨를 툭툭 쳐줄 것 같은 그런 말투.

 



 

두 눈을 꼭 감고 있다가 떠 보니 '짠' 하고 나타난 것만 같은 이곳!

정말 비현실적이다.

 문득 쿠바 산타클라라에서 예쁜 곳으로 데려가 주겠다고.

그리고 거의 다 왔으니 우선 눈을 감아 보라고 했던 아주머니가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남미 전체, 이번 여행 자체가 나에게 그 아주머니, 이 오아시스 같다.

 아무것도 모르고 왔는데 계속 놀라운 것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157P

 


 

여자 혼자 여행하다보니 늦은 밤에는 되도록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아무래도 더 조심을 하게 되는데, 여행지에서 만나 사귄 건장한 남자 친구 둘과 함께 동행하며 밤의 축제도 즐기고, 또 그 중 한 친구의 지대한 관심을 받으며, 로맨스로 발전할 단계를 커트하는 아쉬움을 겪기도 한다. 한국에 두고 온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을 해서라며.. 여행을 하는 설렘으로 여행자끼리 쉽게 마음도 트고, 우정도 교류할 수 있어 좋은 것 같기도 하지만, 내가 그러질 못하니 (쉽게 우정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쑥맥인지라) 그저 그녀의 이런 행복한 여정길이 부럽기만 할 뿐이었다.

 

컬러학습대백과나 티브이 다큐멘터리에서나 본 듯한 마추픽추에서, 그녀는 어느 배낭족을 만나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듣기도 한다.

난 계속 여행해. 1년에 6주만 빼고. 179P

딱 6주만 영국의 시장에서 이하고 나머지는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에 있는 물가 싼 나라들을 여행한다는 이야기였다.

저자 뿐 아니라 나까지 놀라서 입이 딱 벌어질 그런 이야기.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간단 그녀의 생각에 나도 크게 공감되었다.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이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10일간도 머무르게 해주고 또 다른 도시 여행지였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삭막한 인정에 상처받았을무렵, 우루과이에서 온 여행자였던 친구가 선뜻 자신의 나라로 초대를 해서, 역시 3일을 편안히 친구 집에서 먹고 놀기만 하기도 한다. 그녀의 인복은 스스로도 이번 여행은 복터졌다! 할 정도로 부러움의 연속이었다. 떠나고, 사람을 믿고, 사귀지 않았으면 얻지 못했을 것들이기에..

 

여행을 떠나도 마음의 경계를 쉽게 풀지못하는 나로써는 평생 꿈꿀 수 없는 희망일 수도 있겠다.

 



 

한국에서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그 동생과 맥주 한병씩을 놓고 이 일에 대해 한참을 수다 떨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애는 여행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떠나고 싶어 미칠 지경이라고 중얼댔고, 나는 길에서 마주쳤던 우연들이 떠올라 다시 길 위에 서고 싶었다.

 

그랬다.

 

떠나고 싶은 이유는 역시........'사람'

230p

 


 

행복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덧 아쉬운 막바지에 이르른다. 그리고 잘 먹고 잘 웃고 유쾌한 그녀의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독자들의 마음 속에 쏙 들어와있는건지..

짧은 휴가 기간 동안 그녀를 만나기 위해 삼만리가 걸리는 여정을 감수하고 온 남친. 30시간이 걸렸다 했던가?

행복한 그녀의 여정 끝에는 남친의 프로포즈까지 로맨틱하게 곁들여 있었다.

 

그렇게 장장 150일간의 중남미일주를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뉴욕을 경유하게 되었는데..

여기서도 덜컥 그녀는 아파트를 얻어 반년을 그냥 그대로 머물다 돌아오게 된다.

아, 예정에 없던 일정이란 그녀 삶에도 없던 여행 방식이었으나 여행자들을 통해 배운 그 여행을 그대로 누리고 오게 된 것이다.

앞으로도 내게 그런 시간이란게 올까?

주부라는, 아기 엄마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내게는 아마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그녀를 통해, 행복한 여행을 다녀왔음을..

다행히 그녀가 소매치기 한번 겪지 않고, 좋은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온 것이 그래서 이렇게 즐거운 에세이를 읽게 해준것이 정말 고마운 일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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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1 밀레니엄 (뿔)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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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밀레니엄 시리즈에 붙은 수식어는 "불멸의 문학"이라는 최고의 찬사 외에도 가히 놀라운 숫자로 대변되는 것들이었다. 2005년부터 3년에 걸쳐 스웨덴에서 출간된 후 현재까지 전 세계 41개국과 판권 계약을 맺고 30여개국에서 출간되었다. 현재까지 스웨덴에서 350만 부(스웨덴 인구 910만명 중 1/3이상), 덴마크와 노르웨이에서는 인구의 1/5이상 밀레니엄 시리즈를 읽은 것을 시작으로 미국 900만 부, 영국 700만부, 독일 560만부, 프랑스 330만부, 이탈리아 320만부, 스페인 35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년전 이미 출간되었던 작품이었지만, 예상외로 저조한 판매율을 보였고, 다시 또 세계적 흥행에 힘입어 이번에는 웅진 문학이라는 대형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다. 또한 그 전에는 미처 듣지 못했던 밀레니엄의 아성을 재출간과 동시에 나 또한 알게 되어 같이 흥분하게 되었고 말이다. 뒤늦게 합류한, 그러나 지금부터가 시작된 밀레니엄의 신화.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심장마비에 의한 사망으로 10부가 예정되었던 작품이 아쉽게도 3부에서 끝이 나고 말았지만, 3부까지의 여정은 결코 짧은 여정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토록 이 책은 흡입력이 강하다. 처음에는 스웨덴 특유의 인명과 지명이 낯설어 책을 읽으면서도 긴 호흡, 게다가 생소한 이름에 자꾸만 거리감이 들기도 하였으나, 어딘가 다른 이야기들이 진행되다가 결국 연결되는 그 방식, 게다가 그 주인공들이 어떻게 인연을 맺고, 어떻게 사건이 펼쳐질지에 대한, 도입 단계에 지나지 않은 1부의 1권을 읽은 것 만으로도 장을 넘길수록 빨라지는 몰입도와 호흡에 힘입어 그 다음권에 대한 깊은 갈망이 생겨났다.

이미 과거에 나왔던 밀레니엄을 다 읽어본 사람들이 몹시 부러워질정도로 말이다.

 

그녀가 가져오는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기막힌 것 뿐이었다.

아르만스키는 리스베트 살란데르야말로 유일무이한 재능의 소유자라 확신했다. ..

뭔가 밝혀내야할 수상쩍인 것이 있을 경우,

그녀의 정밀한 시선은 마치 컴퓨터에 의해 조종되는 크루즈 미사일처럼 조사 대상 위에 내리꽂히곤 했다. 53p

 

자신의 가장 유능한 정보원이 거식증 환자처럼 비쩍 마른 데다 엄청 짧게 커트한 머리에 코와 눈썹에는 피어싱까지 한 창백한 여자라는 사실이었다. 56p

 

책을 읽기 전부터 사실 두 주인공, 그 중에서도 특히나 너무나 특이한 여주인공에 대한 설명에 미리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지 걱정되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헐리웃 영화나 일반 소설 등에서 여주인공은 아주 정상적이거나 혹은 오히려 아주 비범한 캐릭터이기 마련인데, 책속 주인공 리스베트 역시 천재이기는 하나, 정신병자로 분류될 정도로 사회적 약자로 취급되는 그런 존재이다. 외양도 특이하고 무엇보다도 사회 부적응자 같은 행태에 정부에서는 그녀를 결국 후견인이 필요한 존재로 못을 박아두었다. 우리나라와 너무나 다른 스웨덴의 사회복지제도. 복지가 뛰어난 나라 같으나 사실은 후견인의 도움이 전혀 필요치 않은 사람조차도 족쇄를 채울 수 있는 그 제도의 허상을 짚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스티그 라르손이 기자 출신이어서일까? 그가 바라보는 문학과 현실은 따로 놀지만은 않는다. 지극히 정상적인 데이터, 그러면서도 끔찍한 현실의 수치가 인용구처럼 소제목에 붙어서 다음의 사건을 암시한다.

 

하지만 웬일인지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견고한 도움과 후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62p

결국 그 후원인제도로 리스베트가 받은 성적 억압과 불평등은 그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사람으로 자신을 지목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느끼게 해준다.

 

 

 

 

 

"하리에트 방예르야. 내 형 리샤르드의 손녀지. 그 해 여름, 그녀는 자네를 데리고 여러 차례 놀아주었다네.

자네는 아마 세 살 정도 됐고, 그녀는 열두살 이었지." 118p

 

또다른 주인공 미카엘 블롬크비스트. 밀레니엄 잡지의 편집자이자 대표로 활동중인 그는 아주 강직하고 소신있는 기자였으나 어느 한 사건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위기에 내몰린다. 그가 나서지 않았어도 될 것 같았던 어느 한 경영진의 비리사건을 파헤치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피고에 대한 명예훼손죄로 유죄를 선고받기에 이른다. 직장 동료이자 유부녀인 대학 동기와 애매한 불륜 관계에 있는 바람둥이로 보이는 그가 사실상 업무 처리 능력만큼은 깔끔하고 탁월했음에도 스스로 기름을 붓고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행동을 한것에는 많은 이들이 의문을 품었고, 자신 또한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 덫 속에서 괴로움을 면치 못하였다.

 

그러다 이 책의 첫 시작에 나오는 놀라온 사건과 드디어 엮이게 된다.

하리에트 방예르.

기업 재벌 가문인 방예르 가문의 한 소녀의 실종 사건. 40년이나 지난 그 사건은 소녀의 죽음을 밝혀내지 못한채 종결되었고, 매년 소녀를 아꼈던 할아버지의 생일날 선물로 배달되는 압화만이 할아버지와 전직 수사관을 미치게 할 뿐이었다.

 

저보다 훨씬 능력있는 경찰들과 전문 수사 인력이 지난 수십 년간 매달려 왔지만 결국 해결하지 못한 미스터리를 ,

 갑자기 마술처럼 '뿅' 하고 해결하라는 소리입니다.

또 발생한지 40년이 지난 범죄를 지금 와서 해결하라는 소리이기도 하고요.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이죠? 168p

 

전재산을 잃고 기자의 생명도 끝이 났다 할 수 있는 미카엘에게 내밀어진 구원의 손길은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와 전혀 무관할 것 같았던 리스베트의 인연도 아주 우연히 시작되었다. 그렇게 라그손은 부패한 사회제도와 기업가의 비리 등을 파헤치는 거대한문제에서부터 밀실 미스터리로 갇힌 40년 전의 해결되지 않은 사건 등을 결합시켜 독자들의 관심사를 조심조심 증폭시켜 간다.

 

미칠것같이 짜증나는 세상에 대한 반발. 그 복수를 아주 통쾌하게 해내는 리스베트를 보여주면서, 앞으로 펼쳐질 라그손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진행될지 기대감마저 심어준다. 불멸의 문학, 그 속으로 이미 난 한발자국 내딛었고,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들어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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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벅을 좋아하나요?
안치 민 지음, 정윤희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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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벅의 대지, 소설을 읽어보지는 않았어도 그녀의 이름과 작품명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거라 생각한다.

미국 여 작가로써 처음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작품이고, 같은 작품으로 퓰리처 상까지 수상하였다. 이 책은 그녀가 살았던 중국의 삶, 그 중에서도 빈농이었던 주인공이 부농이 되기까지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었다.

 

무척 유명한 작품이었음에도 제목과 줄거리만 훑고 지나쳤던 기억이 남고, 읽었던 기억이 나지 않아 사실 부끄러웠다. 그러다 최근 몇달전에 읽게된 펄벅의 다른 작품, 여인의 저택.

여자 나이 마흔을 다룬 여인의 저택이라는 책 역시 중국 여인의 자존감을 그려내는 펄벅의 깊은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미국 여인이 어떻게 중국의 삶에 대해 이토록 해박한 지식을 갖고 세세히 그려낼 수 있을지 의문이 남았다.

오죽하면 학창 시절의 친구 중 하나는 펄 벅이 왜 중국 사람인데 이름이 외국 이름 같을까? 라는 우문까지 던져 주었다. 중국 여인으로 오해받을 만큼 그녀의 작품은 철저히 중국의 삶, 그 자체였다.

 

나는 펄에게 미국이 그립냐고 물었다. 펄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런 기억도 없는데 어떻게 그리울 수가 있겠어?"

61p

 

너무나 유명한 사람이면, 오히려 그 사람에 대해 알기가어려운 법일까. 아니면 정말 등잔밑이 어두운 법이라 그녀에 대해 알아볼 생각을 못했던 것일까.

나또한 그녀가 몹시 궁금해졌다. 그저 선교사의 딸로 중국에서 살았기에 그들의 삶을 잘 알았다라고만 짧게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삶이 궁금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깜짝 놀랄만큼 놀라운 사연을 가진 소녀 윌로우와 만나게 되었다.

 

펄 벅과 평생을 교류한 진정한 벗 윌로우.

엄청나게 가난하여 상상하기도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고, 그녀의 아버지, 할머니 모두 펄벅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기독교로 개종하고, 그녀의 삶에 가까워진다.

윌로우 역시 펄벅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자라면서도 그녀의 부모의 도움도 얻고, 펄벅의 도움도 많이 얻어 공부도 할 수 있었고, 펄 벅과 함께 우정을 쌓아가며 진정한 사랑 앞에서 고뇌하기도 한다.

 

이 놀라운 중국 소녀, 윌로우. 그녀는 사실 작가 안치민이 창조해낸 허구의 인물이었다.

펄 벅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기 위해, 그리고 그녀의 비밀스러운 삶을 조심스레 전해주기 위해 작가가 펄 벅의 오랜 중국인 친구들을 수소문해 하나의 소녀로 재창조해낸것. 엄청난 대격변기의 중국의 근대사의 이야기까지 윌로우를 통해 전해들을 수 있었고, 펄 역시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고, 삶의 위기에서 구해졌는지를 상세히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었다.

 

펄은 내게 소설을 쓰는게 구원의 손길과 같다고 말했다.

글쓰기는 딸에 대한 고뇌를 떨칠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딸의 병은 고칠 수 없어도 소설 속 인물들은 마음대로 고칠 수 있었으니까. 166p

 

정말 아무 것도 몰랐던 펄 벅의 삶. 그녀의 결혼 생활부터 로맨스와 재혼등의 여러 이야기뿐 아니라 무엇보다 그녀가 힘겨워하고 가슴아파했던 하나뿐인 피붙이 캐롤의 이야기까지.. 딱 하나밖에 갖지 못한 자녀가 선천성 대사질환으로 심각한 지체장애를 앓아 자살까지 고민할 정도로 그녀를 힘들게 하였다.

 

사실 이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 역시 독특하였다.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펄벅을 미국 제국 주의자로 비난하라는 지시를 받은 어린 10대 소녀였던 저자는 조국의 부름과 가르침에 세뇌 받아 한치의 의심도 없이, 그녀의 책 대지는 읽어보지도 못한채 맹렬히 비난을 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미국에 건너가 서점에서 우연히 선물받은 대지를 읽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게 되고, 그 반성의 일환으로 이 책을 결심했던 것이다.

 

진심으로 중국의 소작농을 바라보고, 진정으로 중국을 사랑한, 외모만 미국인이었던 진정한 중국인인 펄벅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그녀는 펄벅의 최고의 친구 윌로우가 되어 소설 속에서 용서를 구했던 것이다.

 



 

루즈와 나는 우리의 식견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비단 우리 가족만 이런 고통을 받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백만의 가족들이 똑같은 불운을 겪고 있었다. 1969년말, 문화대혁명은 중국의 유구한 역사 중에서도 가장 파괴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나는 노동감옥에서 5년을 복역한 후 고향인 전장으로 귀향을 갔다.

앞으로도 쭉 죗값을 치러야만 했다.

나는 죽기 전까지 육체 노동자로 복역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때가 80세가 접어들 무렵이었다. 326p

 


 

실제로 많은 펄 벅의 중국 친구들이 어쩌면 그런 고통을 겪었을 지 모른다. 그저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마오쩌뚱 아내의 미움을 산, 펄 벅에 대한 화살이 그들을 향해 빗발쳤을지도 모른다. 소녀가 모르고 지나쳤던 중국의 현실, 그리고 펄 벅의 모습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들이 책 속에 가득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중국에 대한 펄의 무한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중국에 내렸던 뿌리는 죽어야 해!" 라고 울부짖었을 때, 펄이 얼마나 화나고 외로웠을 지 상상해보았다. 396p

 

펄벅을 좋아하나요?

 

이 책을 읽으면 펄 벅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겠지..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 이상의 책이었다.

읽는 내내 놀라웠고, 그녀가 얼마나 중국을 사랑했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고, 힘들었던 중국의 근대사에 대해 (우리나라 역시 순탄치 못한 삶이었음에도 ) 국민들이 느꼈을 고통을 조금은 짐작케 해주는 그런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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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카페여행 바이블 - 반짝 반짝 보석처럼 숨어 있는 도쿄 카페로 떠나는 시크릿 여행
조성림.박용준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월
품절


도쿄 + 카페 + 여행 + 바이블, 내가 좋아하는 단어로만 조합된 멋진 이름의 책.



책 한권 읽을 적마다 여행을 갔더라면 벌써 몇번, 아니 열번 이상은 다녀왔을 도쿄지만, 아쉽게도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한 꿈의 여행지.

그리고, 직장 다닐때도 그저 가끔 즐기던 커피가 임신하고, 입덧을 하면서 갑자기 땡겨서 하루 한 잔씩 (임신때 많은 카페인 섭취는 좋지 않다해서 자제한다고 한것이..) 정도로 제한해서 마시기 시작했던 커피가, 지금은 하루 한 잔 이상 꼭 마시지 않으면 어쩐지 너무 서운한 그런 벗이 되어버렸다.

또, 여행. 이런 저런 제약으로 많이 다니지 못했으나, 그저 근처 콧바람 한번 쐬는 것에도 너무나 행복한 사람이기에 여행이라는 설렘을 책을 통해 대리만족하고 있던 나.



그 모든 것의 조합의 완성인, 이 책과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일 수 밖에 없었다.



삶의 키워드가 음식, 여행, 카페, 언젠가는 음식, 여행 , 카페를 모토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회사를 세우겠다는 당찬 꿈을 꾸는 그녀는 오늘도 여전히 벤치마킹중. -저자 조성림. 음식, 여행, 카페라니... 내 삶의 키워드 또한 여기에 책을 하나 더 추가했을뿐 그녀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 멋진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노력하는 그녀의 빛나는 삶이 참 아름다워 보였달까?



2008년 1월 도쿄를 경유한 브리즈번 휴양지 여행 계획을 세운 적이 있었다. 시험 공부하는 남편 옆에서 거의 몇달을 혼자서 여행 계획을 짜가며, 랜덤의 도쿄 백배즐기기가 너덜너덜해질때까지 밑줄 긋고 읽고 또 읽었다. 인터넷 삼매경은 기본이었고, 여러 여행 카페에 가입해서 좋은 정보를 많이 얻어 스프링 노트 한권에 조심스레 일정을 담던 행복한 기록이 남아 있다. 항공권 티켓과 도쿄 호텔도 모두 취소하고, 무엇보다도 1등 상품으로 받았던 (다시는 오지 않을 행운의 )코란코브 무료 숙식박 여행권을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게 만들었던 일대의 대 사건은.. 바로 지금 만 두돌쟁이가 된 우리 아기의 임신이었다. 첫 임신을 실패로 넘기고, 일년만에 얻은 소중한 행복이었기에, 나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이 하나만 바라보게 되었다.


그 때 이후로 아기 키우고, 책 읽고 그냥 소소한 일상을 보내다보니, 도쿄는 한동안 꿈에만 그릴 뿐, 여행책을 읽으며 언젠가 가볼 희망만 품고 살고 있었다. 다만, 아기가 어느 정도 자라 아장아장 걷게 된 무렵부터 엄마는 가끔 동생과 아기와 함께 카페에 가서 아주 잠깐이라도 커피를 마시고 바깥 공기를 코끝에 묻히는 행복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런 행복이 가끔씩 진행되다 보니, 이제 28개월인 우리 아기, 제법 카페에서 자기 좋아하는 딸기 쥬스 마시고, 와플 먹을 줄 아는 카페를 즐기는 아기가 되었다.


아기도 어느 정도 자라고 나니, 다시 도쿄에 대한 설렘이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언젠가 꼭 아기 손을 붙잡고 행복한 여행을 다녀오고 싶은데..

아기엄마가 되니 이제 모든 것이 아기를 위한 시각이라, 빡빡한 일정도 싫었고, 여유있게 즐기는 여행이 좋아졌다. 카페를 테마로 한 도쿄 여행, 그래서 더 눈에 띄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읽어내려간 책에는 무수한 인덱스가 붙기 시작했고, 결국 인덱스 붙이는 것도 귀찮아져서 나중에는 아까운 책을 마구 접기 시작했다.



저자가 귀여운 것을 너무 좋아해서 기치조지의 카렐 차펙 스위츠에 가서, 설레는 마음에 마구 셔터를 누르다보니 저장된 사진만 백장에 이르렀다고 했는데, 나도 그에 못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며 소개하고픈 사진을 찍어대다보니 사실 한장 한장의 사진이 다 놓칠 수 없는 멋진 사진들이어서 수십여장의 사진을 찍어대고 말았다.



일본의 많은 카페, 특히나 그녀와 공동저자인 또다른 여행작가 박용준님이 소개해주는 그런 유명한 카페들은 의외로 카페 같지 않은 그런 곳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첫 방문에 여기가 정말 맞을까? 싶은 작가의 말들이 정말 많이 실려오고, 간판 하나 없는 일반 주택 가옥부터 복층 아파트를 개조한 곳, 그리고 너무 허름해보이는 곳까지..다양한 카페들이 소개되었다. 카페가 곧 일상이 되어버리는 일본, 그 안에서 진정한 삶의 향기를 느끼게 해주는 고즈넉함. 나무의 향기가 물씬 느껴지는 그런 곳들이 무척 많아 보는 즐거움이 더욱 배가 되었다.


시부야 속의 숨겨진 명소 아틱 룸도 대표적인 그런 곳이었다. 너무 허름하고 낡아 실망스러웠으나 들어가 보니 카페의 인기석이라는 다락방이 숨겨져있어 100% 연인들을 위한 비밀스러운 설렘가득한 추억을 준다는 곳. 사실 이층 침대에 대한 로망이 있던 터라 학생 시절에는 무척이나 갈망했으나 정작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서 높다란 이층 침대에 배정되었을때는 정말 너무 괴로웠었다. 예쁘장한 침대가 아닌 정말 고소공포증이 느껴지는 침대여서 어찌나 힘이 들던지.. 잠을 험하게 자던 나는 자다가 이불을 아래로 낙하시키고 추워서 비몽사몽간에 사다리타고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는 곡예도 감수해야했던 아픔이 있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다락방이라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 우왓~ 비밀 아지트같은 그런 곳에서 편안히 쉴 수 있다니..얼마나 멋진 일인가?


또, 저자가 도쿄, 아니 일본 전체를 통틀어 가장 사랑한다는 치쿠테 카페도 빼놓을 수 없다.

너무 좋아하는 곳이라 이곳에 관한 글을 쓰며 원고를 몇번이나 통째로 뒤엎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도쿄, 아니 일본을 통틀어 내가 가장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장소가 바로 여기다. 세련된 분위기,솔직 담백한 빵맛, 아기자기한 소품등 치쿠테 카페가 가진 매력들도 작용을 했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지금 떠올려도 가슴 뭉클한 비밀스러운 추억이 고스란히 밴 곳이기 때문. 74P


복층아파트가 개조된 카페 오더네어 (일본발음 카훼 오-디네-루)

각 카페의 이름이 영어, 혹은 일본어, 한자를 있는 그대로 표기하고 일본식 발음을 함께 달아 실제 도쿄를 방문했을때 카페 이름을 말하고 듣는데 도움이 되도록 한 배려가 돋보인다. 사실 우리가 우리 식으로 읽고 쓴다고 해도, 일본에 가서 물어보거나 찾는데 어려움이 있으면 안되지 않는가.

카페와 여행 못지 않게 책 또한 사랑하는 나조차 부러웠던 카페 오더네어, 그 진하고 맛있는 커피 맛을 나도 즐기고 싶었다.

부드럽고 진하게 혀끝에 감치는 그 맛은 커피 맛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을만큼 좋았다.

더불어 카페에 가득 퍼지는 커피의 향이란 정말!

자기 마음에 쏙 드는 카페가 필요해 살던 아파트를 카페로 개조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커피, 책, 음악으로 가득 메운 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매력적인 일이란 말인가! 88P


큼지막하게 구워낸 레몬 머핀을 들어 크게 한 입 베어무니 상큼한 레몬 향이 입안 가득 감돌았다. 눈이 찡긋 감길 정도로 신맛은 아니었지만 적당히 상큼한 맛이 달콤함과 균형을 이뤄 쌉싸래한 아이스티와도 잘 어우러졌다. 나의 도쿄, 시모키타자와의 토요일 아침과 같은 상큼한 맛. 나는 집으로 돌아가면 상큼한 레몬 필을 가득 넣어 레몬 머핀을 구워봐야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거리로 나섰다. 94P 델리 앤드 베이킹


어쩐지 놓치면 아쉬운 최고라는 단어. 도쿄 최고의 빵맛을 자랑한다는 산겐자야의 시니피앙 시니피에도 그래서 놓칠 수가 없었다.

무화과빵에 꼭 와인을 곁들이라는 친구의 조언대로 모닝 와인을 마셔야했던 저자.

'휘그 앤 휘그'라는 이름의 무화과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호밀로 만든 담백한 빵에 과즙이 살아 있는 흑 무화과와 백 무화과, 향이 진한 헤이즐넛이 함께 어우러져 씹히는 그 맛이란! 한 입 맛을 보니 왜 친구 녀석이 그렇게도 꼭 와인과 함께 먹어야 하다고 신신당부를 했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146P


카페에 대한 멋드러진 소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정보들이 언급된다. 주소, 실제 가는 법, 전화, 오픈 시간, 폐장 시간 그리고 점수를 매겨서 분위기, 맛, 서비스, 친구와 함께, 연인과 함께, 혼자만의 여행 등에 별점이 매겨져있어 많은 카페 중에 꼭 가보고 싶은 카페를 선택하는데 도움을 준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가서 시켜보면 좋을 메뉴들까지 일본어 표기와 발음, 가격까지 명시되어 있어 가기 전에 가격을 몰라 걱정하거나 하는 두려움을 없애준다. 또 포인트라고 팁을 적어주어, 카페에서 참고하면 좋을 점등이 눈에 쏙 들어오게 되어 있는 것도 이 책의 멋진 카페와 음식 사진들 못지 않은 강점이 아닌가 싶다.


호랑이 네 마리가 나무 주변을 뱅글뱅글 돌다가 노오란 버터가 되어 그 버터로 노릇한 팬케이크를 구워 먹는 동화 < 꼬마 검둥이 삼보> 속 한 장면. 나처럼 동화 속 팬케이크에 환상을 가지고 팬케이크에 몰두하는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신기하고 반가웠는지 모른다. 169P 아, 어떻게 호랑이가 버터가 될 수 있을까 나 또한 궁금증을 안고 읽었던 동화였는데, 아는 이야기가 나오니 또 반가운 사람이 되었다. 귀여운 추억의 팬케이크는 보이보이라는 이름이 찍힌채 천국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별미였다 하였다. 아, 정말이지 읽을수록 배가 고프게 하는 그런 책.


카페라면 그저 커피와 스위츠(달콤한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는게 아니라, 일본에서는 카페에서 간단한 식사나 술을 함께 판매하는 곳도 제법 많다. 그래서 말이 카페 여행이지, 사실은 근사한 맛집 탐방의 일환일 수도 있었다. 여행 가서 디저트만 먹고 올 수는 없으니 멋진 카페에서 여유있는 식사를 하며, 여행자로써의 행복을 만끽하는 여유를 누리고 오면 얼마나 좋을까? 브런치로 유명한 선데이 브런치부터 나카메구로의 인기 프랑스 레스토랑 카페 위트까지.. 특히나 반짝반짝하게 멋있던 위크의 모습은 정말 내 눈을 그대로 고정시켜버렸다. 작가 또한 애인과 같이 오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는 명소들이 제법 있었으나, 이 곳이 가장 더 아쉬움을 남게 했던 곳이 아닌가 싶다.

당신과 나의 반짝반짝 빛나는 추억. 우리가 더욱 행복해지는 로맨틱한 공간 카페 위트. 222P




책에는 핵심적인 도쿄의 10개 지역, 그 중에서도 저자가 하나하나 취재하며 찾아낸 50여곳의 카페들에 대한 실제적인 가이드와 분위기, 여유, 달콤한 맛이 멋드러지게 조화된 그야말로 카페여행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10 곳의 명소들 중에서도 특히나 냉정과 열정사이의 시모키타자와를 빼놓을 수 없었고, 이노카시라 공원의 매력으로 도쿄인들이 가장 살고 싶은 곳 1위로 선정된 기치조지, 카페의 카페에 의한 카페를 위한 지역이라는 기치조지, 여자들이 행복해지는 자유의 언덕 지유가오카를 지나 온전한 휴식을 위한 산겐자야를 지나고 도쿄의 일상 니시오기쿠보의 분홍 코끼리의 매력에 빠지다보면 어느새 천천히 거닐고 싶은 고엔지에 다다른다. 사실 카페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가볼 만한 도쿄의 명소가 새로이 더 늘게 되었다. 예전에 미처 몰랐던 그런 지역들이 많이 소개되었으니 말이다. 알면 알수록 신비한 카페의 세계. 한 번의 여행으로 다 만나볼 수 없는 곳들이겠지만, 여행갈 적마다 꼭 몇군데씩은 들려보고 싶은 바램이 생겼다.


고엔지의 해프티넷의 너무나 동화스러운 예쁜 아기자기함. 카페가 이렇게 다양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다양한 도쿄의 문화였다.

앞머리를 내린 귀여운 소녀가 그려진 카페라테와 하얀 생크림 얼굴이 몽실몽실 웃고 있는 구운 초콜릿 케이크!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귀여운 모습들이다. 이렇게 귀여운 디저트라면 맛이 그저 그래도 용서가 될 법한데

진하디 진한 생초콜릿 케이크는 신선한 생크림과 어우러져 칼로리 따위는 잠시 잊게 될 정도로 맛있었고 라테 역시 수준급의 맛이었다.

이 곳의 인기는 단지 동심을 자극하는 분위기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귀엽고도 맛있는 디저트의 공도 크다! 344P




책을 읽으며 너무 맛보고 싶었던 수많은 메뉴들. 그 중에서도 정말 눈에 밟히는 몇 메뉴들이 있어 더 괴로웠는데, 행복한 것은 이 음식들을 도쿄에 가보지 않고도 맛 볼 수 있게 행복한 꿈의 레시피가 실려 있다는 것이었다.

델리앤드 베이킹의 레몬 머핀, 베이스 카페의 콩이 들어간 키나코 라테, 저자가 나만의 심야식당이라 부른 라이온 식당의 버터 간장밥 등의 메뉴가 포함된 20가지의 레시피. 오호..사진을 다시 봐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비록 부족한 솜씨일지라도 당장 떠나지 못하는 한국 땅에서 직접 만들어볼 용의가 충분히 있었다.



카페가 이토록 다양하고 멋진 곳들이 많은데, 아쉽게도 내가 사는 지역에는 이렇다할만한 멋진 곳을 발견치 못해서, 언제나 프랜차이즈 카페들만 다녀보게되었다. 서울에 살적에는 그래도 제법 괜찮은 곳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한채 언젠가 도쿄 여행을 가서는 이렇게 눈으로 즐겼던 카페 중 몇 곳의 행복을 직접 아기와 함께 누리다 오고 싶다.



행복했던 눈의 여행, 도쿄 카페 여행은 내게 또 하나의 희망을 심어준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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