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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젊은 광대 이야기 -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든 청춘스럽게
우근철 글.사진 / 라이카미(부즈펌)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젊다는게 이런 것일까?
아직 나도 한창의 나이이건만, 한번도 이 책의 저자인 우근철님처럼 살아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안전한 곳, 편안한 곳만을 찾아 살아왔고, 모험심이라는 게 있더라도 행여나 고생길이 될 것같으면 나서지 못하는 게 바로 내 모습이었고, 아직까지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 책속에는 우근철님의 산티아고와 인도를 다녀온 이야기가 정확히 절반씩 들어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다들 치열하게 취업 준비를 하였건만, 그 숨통 막히는 세상에서 벗어나 무가지에서 발견한 '세상의 끝'을 찾아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에 오르게 된다. 적금을 깨고, 이렇게 저렇게 마련한 경비로 비행기표를 끊고 나니 남은 돈이 50만원, 그리고 프랑스에 도착해 열차표를 끊고 나니 남은 돈은 달랑 15만원. 그 돈만을 갖고 그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경비가 넉넉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여행이란, 그것도 우리나라처럼 의지하고 손벌릴데가 있는 아는 사람들 하나 없는 외국에서 그는 정말 젊음 하나만을 갖고 여행을 시작한다. 그의 영어 실력? How are you? 라는 질문에 고민하다가 I'm walking이라 호기롭게 대답할 정도. 그래도 그는 마음이 맞는 좋은 친구도 사귀고, 세가 할아버지 같은 좋은 사람을 만나 옷도 얻고, 신세도 질 수 있게 되었다.
값싼 참치로 하루 세끼를 떼우고, 물로 빈 배를 채우고, 그런 날이 지속되어도 아무리 저렴한 숙소 비라도 매일 내다보니, 결국 그는 돈이 바닥나고 ..
네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본 후에 네번째인 돈을 벌기로 결심한다. 대학동아리때 잠깐 배운 판토마임으로 분장 크림 하나와 면장갑 하나로 그는 거리 공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런 그의 모습은 신문 1면에 실리기도 하는 등, 자신도 모르게 노력하는 순례자의 모습으로 인기를 얻게 되었다.
제목과 표지만 보고서 여행 에세이를 상상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분장크림과 공연이 그의 주된 일과가 아니라 사실은 그의 여행을 지탱하기 위한 생존 수단이었음을 깨닫고, 주어진 돈 안에서만 최대한 불편없이 여행을 다녀오고자 노력했던 나와 너무나 다른 모습에 어떤 여행기가 나올지 하는 궁금함으로 페이지를 넘겼는데..
그의 고생스러움이 절절하게 느껴지면서도 사진 속 그의 젊음, 열정이 그대로 고스란히 느껴져 그가 충분히 아름답게 느껴졌다.
3일전 두고 간 볼펜 하나를 챙겨서 찾아주고 간 어느 아저씨. 자신의 영역을 빼앗은 거나 다름없는 불청객인 그에게 자신이 하루종일 피땀흘려 번 돈을 모두 건네주며, "Buen Camino"라고 축복과 응원을 전해주고 간 악사 청년.
적당히 누군가를 도와 주고, 항상 그것에 대한 보답을 바랐던 내게 평생 가슴 속에 담아둘 감동을 안겨 준 그가 맴돈다. 87p
부모님이 생각나고, 너무 배고파 힘들었던 여행길이었지만, 세상의 끝에 도달 한 후 0.00km를 본 그 희열은 그의 고생이 없었으면 빛이 나지 않을 영광이었을 것이다.
돌아와 한국에서 원하던 직장에 취직을 해 유명 연예인들의 cf 조감독으로 열심히 살다가, 치열한 일상의 돌파구가 필요한 무렵, 그는 두번째 일탈을 꿈꿨다. 여행자라면 마지막에라도 꼭 가길 원하는 인도로 말이다.
여행하면, 편안한 휴양지를 가기를 희망하고, 인도의 타지마할은 보고 싶지만, 사기꾼이 너무 많아서 관광하기에 부적합할거라는 편견이 팽패했던 나는 그의 두번째 여행기가 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 청년 또 얼마나 고생을 하려구? 하지만, 그는 무사히 잘 다녀왔고, 우리 앞에 그의 멋진 여정을 소개해준다.
어떤 고난에서건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겠군. 하는 믿음을 주는 청년의 여행기. 편안하게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한국에서 자격증 몇개를 더 따고 하는 사람들보다 독특하고 창의적인 이력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다해도 사서 고생이 너무 심한데? 하지만, 젊지 않은가? 같은 젊음이라도 이 정도는 불살라봐야 하지 않겠는가?
인도에 가면 거지나 행인 모두가 성인이 된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의 말을 듣자면, 모두가 깊은 성찰에 빠진 듯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 하지만, 그러다가 도둑을 당하기도 쉽상이라니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는 그래 그랬군 하고 생각해볼일이지만,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그리 달가울 법한 일이 아니다. 그래도 그는 그런 인도에서 많은 것을 겪고, 보고 경험하고 온다. 호숫가를 거닐다가 어느 상점 주인에게서 한달 일해볼 생각없냐는 제안에.. 하루 한 잔 짜이나 달라며 일을 하겠다 나서고..
"푸시카르는 성지라서 맥주 반입이 안돼. 그런데 오늘 밤 마을 밖에서 댄스파티를 하거든? 거기서 맥주를 마실 수 있을 것 같아"
댄스파티라....! 내 머릿속에는 이미 사리를 입은 매혹적인 인도여인이
야릇한 미소를 띠며 춤을 추는 모습이 자동으로 연상되었고, 꼭 그 여인과 로맨틱한 불장난이 이어질것만같은 환상에 빠져들었다.
2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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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라도 모여들 것 같은 오묘한 음악을 배경으로 까만 수염이 북슬북슬한 인도 아저씨들이 뒤엉켜 들썩대고 있는 모래판.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봐도 여인의 향기는 어디서도 느낄 수 없고 오로지 텁텁한 남자들만 신이 나서 내 눈을 버리게 하는 저질댄스를 추고 있었다.
거기에 보리차처럼 밍밍한 맛의 김빠진 맥주까지. 여기가 인도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이게 무슨 파티라는거야?"
"술이 있고 음악이 있으면 파티지 뭐야?"
216p
밤 9시 반에 도착한다던 기차가
열한시간이나 늦어져 다음날에 오더라도
내가 시킨 음식 말고
얼렁 뚱땅 다른게 나오더라도
앞에 서 있는 아저씨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내무릎 위에 짐 보따리를 올려놓더라도
태연히 지금 운전을 배우는 중이라고 말하는
택시기사에게 나를 맡기더라도
그들이 언제나 말하듯
No Problem!
222.223p |
인도에서 아버지를 닮은 사람을 만나, 아버지의 백내장에 얽힌 옛 이야기를 생각하고, 불가촉천민으로 살고 있는 도비 (세탁)일을 하는 아버지를 둔 아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어머니의 힘겨운 사연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힌다. 인도, 그 곳에서 청년은 혼자 살아온 그 이상의 것들을 보고 배웠다.
인도에서도 그의 분장 공연은 이어지고, 여전히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도 쌓아간다. 그의 여행기 속에는 그보다 나이많은 나도 겪거나 배우지 못한 인생경험들이 너무나 많이 녹아들어있었다. 고생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 그가 느낀 것을 나는 글로 사진으로 간접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며 씨익 웃어줄 수 있는 바로 그, 젊다는 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