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지중해에 빠지다 - 화가 이인경의 고대 도시 여행기
이인경 지음 / 사문난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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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50에 인생의 한 고비를 넘으면서, 마치 잊고 있었던 고향, 아무 문제 없고 모든게 행복했던 곳을 떠올리듯, 나만의 마법의 주문, 신화와 판타지가 잠재의식 위로 떠오른 거였다. 맘껏 펼쳐보고 원 없이 환상을 즐겼다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별게 아니었다고 거기서 졸업했으련마는, 나는 억지로 빼앗긴 보물처럼 미련이 많았고, 무슨 만병통치약, 마법처럼 여겼던 모양이다. 어린 내게는 위로와 기쁨이었으니까. 18p

 

그전까지 나는 한려수도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바다라고 믿었었다. 에게 해에서 한려수도와는 또 다른, 분명히 다른데, 못지 않게 아름다운 바다가 있다는 걸 알았다. 한려수도가 섬, 육지와 바다가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라면, 에게해는 육지 풍경이 대체로 보잘 것 없어 바다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는 것. 그냥 그래도 바다! 그저 바다! 그래서 바다만 남았다! 22.23p

 

여자에게 있어 나이란 무엇일까? 한참 공부하던 10대에는 얼른 20대가 되어 마음껏 자유로이 살고 싶었고, 20대에는 뭐가 그리 바빴는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지냈었다. 그리고 30을 코앞에 둔 29살의 나이에는 옆에 남자친구가 없을때라 30을 그냥 맞이하는게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와 30이 되면 세상에 큰 변화라도 일어날 줄만 알았다. 그저 크나큰 불안감이 자리했달까? 정작 30이 되어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29살때보다 오히려 더 자신있고 당당해진 나를 발견했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신랑을 그때 소개 받아 연말에 결혼까지 하였다.

 

그리고 아직 맞지 않은 여자 나이 마흔과 쉰.

요즘 읽고 있던 펄 벅의 여인의 저택이라는 소설에서도 여자 나이 마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직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싶어서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던 그 마흔에 대해 마치 인생의 전환기인양 주인공은 크나큰 결심을 하고 모두가 말리는 그 결심을 실천한다.

그리고, 이 책.. 아줌마가 지중해에 빠지다는 소설 이상으로 내가 좋아하는 장르인 여행 에세이인데, 쉰이라는 그녀의 나이를 염두에 두고 여행을 다녀오고 또 글을 쓴 작품이다. 화가인 이인경님은 바쁘게 살아오느라 30, 40을 무심히 넘겼다가 50이 되자 비로소 자신의 나이에 대한 인지를 하게 되었다 한다. 그리고 마치 기념여행인것처럼 훌쩍 자신이 너무나 가고 싶었던 지중해로의 과감한 일탈을 꾀하였다. 바로 여자 혼자서!

 

모든걸 결정하고 예약, 결제까지 한 후에 부모님과 남편에게 통보하자 모두들 깜짝 놀랐다. 그리고 여자 혼자 어딜 가느냐, 가려면 엄마와 함께 가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나 또한 정말 우리 부모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자식은 언제까지나 자식인가 보다. 이제는 나이로부터도 자유로워져서 정말 여행을 맘껏 즐길 나이가 되었다고 말하는 저자분의 명쾌함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 분의 나이가 그래서 더 빛나보이고 여행기가 더 즐겁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여행에세이 치고 사진이 거의 없고 글로 가득해서 그 점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리스식 정통 만찬에 대한 상세한 묘사라던지 미술을 전공한 덕에 파르테논 신전에 대한 배경 지식이 풍부해서 우리가 모르고 있던..아니 나만 모르고 있던. 그런 정보를 함께 얻을 수 있던 것도 좋았다. 아직 못 가본 나라들이었음에도 막상 내가 직접 가서 본다 한들, 파르테논 신전이 그 전에 상아와 금, 청동으로 장식되어 있다가 지금은 대리석만 남은 그 사연에 대해 꼼꼼이 알 수 있었겠는가? 신화의 주인공들이 살아 숨쉬는 곳이 아닌지라 생각보다 밋밋해서 이제 바다만 남은 여행이라 평했던 여행기였어도 내 눈에는 충분히 매력적인 여행이었다. 그리고 드물게 보여준 사진이었을 지언정 에게해의 바다는 정말 신이 창조한 듯한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감람나무가 올리브인것도모르고 있는 무식한 나, 사실 궁금한게 있을때마다 찾아보면 새로이 알게 되는게 많은데 어려서는 꼼꼼이 찾아보던 그 습관이 어른이 되니 오히려 잊혀진 추억이 되어버려 모르는게 있어도 그냥 넘어갈때가 많았다. 그런 나의 무지를 촘촘하게 채워주는 책들을 만날때마다 행복함을 느낀다. 

 

이집트를 좋아하면서도 막상 이집트에 대해 아는게 너무나 부족함을 깨달았다. 람세스, 클레오파트라, 투탕카멘 등만 알고 있었고 핫셉수트 여왕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처음 들었는데, 너무나 놀라운 여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막강한 권력 못지않게 놀라운 사실은 그녀가 모세의 양어머니였다는 사실! 이집트 공주가셊모세의 양어머니였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놀랍긴 해도 그녀의 존재에 대해서는 모세에 가려 덜 알려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막강한 실권자였다니..

 

이 책에 등장한, 그리스, 이스라엘, 이집트 모두 다 나 또한 매력을 느끼고 있는 곳들이었고, 어렸을때의 나 만의 공상에 어울리던 나라들이었다. 그 공상을 부끄러워했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어떠했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친구가 수업시간에 일어나 다른 친구의 장점을 추천하라는 말에 "@@이의 상상력을 본받고 싶습니다." 라는 발표를 하자, 모두들 웃어버려서 나의 상상력이 빨강머리앤에 나오는 앤의 공상처럼 헛된 시간이었나 하는 자괴감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어떤 계기에선지 나의 공상은 더 이어지지 않았고 말이다. 저자가 그리스를 더 꿈꿔왔다면, 나는 사실 이집트에 더 매료가 되어 있었다. 나의 전생은 이집트 신화 속 여주인공이 아니었을까? 하는 망상과 더불어 웬지 멀고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그 나라가 나의 소중한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자리잡았다. 늦은 나이라고는 하나 당당히 자신의 옛 꿈 속으로의 여행을 떠난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라면, 아직 그 나이가 되어보지 못해 모르겠지만 저자처럼 당당히 자신의 꿈을 찾아 홀로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자신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동생아, 나 그냥 수다 떨고 싶어서 쓰고 싶어서 썼어! 그러니까 너도 있지도 않은 정답 알아내려고 앞뒤 맞춰가며 분석하지 말고 그냥 재미나게 읽어주렴. 너 나랑 얘기하는 거 좋아하잖아! 215p

 

아줌마라는 당당한 이름을 제목으로 내걸고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은 이인경님, 이 책을 쓴 목적이 뭐냐는 사촌동생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며 책을 마무리하였다. 그래, 나도 정말 이 분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즐겼어. 그럼 되는거지. 여행에세이는 사진이 많아야하고, 여행 책이면 일정 같은게 촘촘해야하고,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저 작가가 해주는 이야기를 충분히 즐길 준비가 되어 있으면 되는 것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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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가 하늘을 날 수 있지? 모 윌렘스의 인지발달 그림책 2
모 윌렘스 글.그림, 홍연미 옮김 / 살림어린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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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아들이 좋아했던 캐릭터, 모 월렘스의 야옹이랍니다.

이 시리즈로 먼저 두 권의 책을 보여줬었는데, 책 낯가림이 있는 우리 아들도 선이 분명하고, 그림이 보기 편한 이 책은 처음 본 순간부터 관심을 갖고 끝까지 집중해서 보더라구요. 엄마에게도 자꾸 읽어달라고 가져오는 완소 책 중의 하나가 되었구요.

 

<아기 양아 이제 잘 시간이야> <강아지야 넌 어떤 소리를 내니? > 두 권의 책으로 이미 야옹이를 사랑하게 된 우리 아들은 새로 만난 <누가누가 하늘을 날 수 있지?> 또한 더욱 반가운 마음으로 펼쳐들더라구요.

 

모 월렘스 작가님의 책을 읽다보니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바로 비슷비슷한 상황과 동물들의 행동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다가, 마지막에 반전같은 재미난 일이 발생한다는거죠.

어른들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이 상황이 무척 재미나게 느껴질 것 같았어요.

 

예를 들면 아기양아 이제 잘 시간이야에서는 잠자리에 들기전에 동물들이 여러 잠자리에 들기전의 행동을 하고 야옹이는 반복적으로 질문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밤에 자지 않는 부엉이가 짜잔하고 나타나지요. 부엉이와 야옹이는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요?

 

강아지야 넌 어떤 소리를 내니? 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의성어 동물 소리를 내는 동물들이 나란히 등장해요.그리고 마지막에는 토끼. 정말 토끼는 어떤 소리를 낼까요?
 

이번 책에서도 역시 그 법칙은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아이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궁금해지는 그 답변에 모 월렘스 만의 재치있는 반응으로 즐거이 넘어갑니다. 그리고 다른 동물들도 사랑으로 답변을 해주고요.

 

우리의 예쁜 야옹냥, 이번 편에서도 어김없이 호기심 많은 질문쟁이 친구가 되었네요.

우리 귀여운 아기들도 이렇게 질문을 하러 다니는 때가 곧 오겠지요?

 

꿀벌아 꿀벌아 하늘을 날 수 있니? 라는 질문에 그네타던 꿀벌이 "잘봐" 하면서 답변을 하고 윙~윙~ 소리를 내며 멋지게 비행을 합니다.

새야 새야 하늘을 날 수 있니? 라는 질문에는 모래놀이하던 새가 잘봐 하고 답변하고서 파닥파닥 소리를 내고 곡예하며 날아가지요.

호기심 많지만 예의도 바른 야옹이는 정말 솔직하게 표현을 하지요. "와 멋지다"라면서요.

 
 

 인지발달 그림책이라는 어려운 말이 붙어있는 모 월렘스 시리즈지만,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고 즐기는 사이에 짤막한 글과 그림에도 얻는 것이 많은 것 같아요.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궁금증을 야옹이가 대신 물어봐 줌으로써 조금은 해결이 되구요. 그리고 동물들의 날아가는 소리가 의성어로 등장함으로써 재미난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거지요. 또 질문과 답변이 반복적으로 진행이 되니, 질문 답변 형식의 대화법도 배우고, 하늘을 하는 동물에 대해 배우게 되는 거지요. 누가누가 하늘을 날 수 있나? 하나하나 짚어 보며 아이들은 하늘을 나는 새, 곤충,박쥐 등에 대해 조금씩 인지하게 됩니다
 

어, 그런데 하늘을 날 수 없는 동물이 등장하네요. 혼자서 스프링 오리를 타고 있던 코뿔소를 보고 모두들 긴장합니다. 코뿔소는 과연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을까요? 야옹이처럼 덤블링을 하는 걸까요?

 

다음엔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엄마까지 궁금해지는 재미난 모 월렘스의 그림책,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엄마도 재미없는 그림책은 읽어주기가 싫은데, 이 책은 엄마도 재미있으니 같이 읽는 시간이 더욱 행복한 시리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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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말레이시아
조경화 글, 마커스 페들 글 사진 / 꿈의열쇠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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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책자는 이렇게 씌여진게 좋더라."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으신 아버지의 평이셨다. 보통은 내가 먼저 아빠, 이번 책은 어떠셨어요? 하고 여쭙곤 했는데, 이번에는 먼저 말씀을 하시는 걸 보니 마음에 흡족하게 드셨던가 보다. 그래서 어떤 내용일지 더욱 궁금해졌었는데..책을 읽고나니 아, 아버지께서는 이래서 좋아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캐나다인 남편(한국인으로 귀화한)과 한국인 아내의 말레이시아 자유 여행기를 담고 있다.

부부가 글을 쓰고, 남편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여행의 첫 시작서부터 여행지에서의 각종 이야기를 정말 편안하게 들려준다. 글씨도 크고, 내용도 시원시원하다. 아버지께서도 아내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더라 하시는 걸 듣고 생각해보니 사실 남편의 글은 다소 일기처럼 나열식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여행을 좋아하고, 더위를 못 참는 부부는 여름마다 한달 정도씩의 해외 여행을 다녀오곤 하였다. 금전적인 압박도 고려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처럼 동남아쪽에 눈을 돌리게 되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말레이시아를 선택하게 되었다는 것. 사실 이번에 나도 태국은 남들도 많이 가지만, 시국이 불안정하고 필리핀은 아직 매력을 못 느끼겠고 여타의 이유로 말레이시아를 바캉스로 선택했던 터라 그녀의 여행 선택과 비슷했던 것 같아 시작부터 동지애를 느꼈다.

 

물론 그녀처럼 남편과 호젓이 한달씩이나 자유여행을 다닐 일정도 여유도 없는 나로서는 남들처럼 짧은 며칠 동안 코타키나발루 한 곳만 다녀올 생각이긴 했다. 그녀가 다녀온 콸라룸푸르, 페낭, 멜라카는 이번 여행에서 못 가보지만, 그래도 말레이시아 특유의 여러 정보들은 여행을 가기에 앞서 참고하기에 좋은 자료가 되었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일본,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말레이시아는 비로소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여행을 할적에는 분명히 한국인임을 밝히라고 조언한다. 그들도 일본인을 혐오한다기에..

 

살아 꿈틀거리는 인생이 여기에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같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다. 잘난 인간도 못난 인간도 없다. 조금씩 다른점들이 생활이 양념이 되어 주는 거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생각을 시끌벅적한 장터에서 해보았다. 133p

 

사실 그녀도 말레이시아에 대해 여행 책자 두권으로 준비하고 떠났다고 하였다. 모르기에 더욱 다녀오고 싶은 곳이었다고 하였듯이 사실 나도 잘 모르고 있던 것들을 그녀의 여행 에세이를 통해 배워간다. 메가 세일이란 것은 들어는 봤지만 실제로 경험했다니 부러울 따름이었고.. 지역은 다를지언정 음식은 비슷할테니 맛있게 먹었다는 사태 (우리나라의 꼬치와 비슷하다. 표지의 사진이 바로 먹음직스런 사태 사진이다.) 와 너무나 달콤하면서 맛있다는 화이트 커피도 이번 여행에서 꼭 먹어보고 싶은 품목이었다.

 

마사지도 유명하대서 욕심이 나기는 하되, 아기와 신랑과 셋이 가는 여행인지라 마사지를 받을 수 있을지는 사실 미지수다. 그저 우리는 휴양지에서 쉬면서 아이와 물놀이 하고 그리고 선셋을 감상하며 맛있는 먹거리 (말레이시아 또한 미식가의 천국이라고 하니..) 를 즐기다 올 여정으로 간단히 계획중이다.

 

페낭은 동양과 서양이 만나 만들어 내는 다양함이 흥미로웠다. 극과 극이 만나 전혀 새로운 독특한 문화가 탄생되어 이채롭고 신비로웠다. 우리 부부도 그럴까? 어쨌든 누가 말레이시아를 여행한다면 페낭을 가장 먼저 추천해주고 싶다. 만약 우리가 말레이시아에서 살아야만 한다면 페낭에서 살고 싶다. 164p

 

아, 이런.. 페낭이 그토록 매력적이라니..나는 코타키나발루로 계획했는데.. 그래도 일정을 바꿀 순 없으니 저자가 코타키나발루를 여행해보지 않아서 다른 곳과 비교하기 힘들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하였다.

 

여행을 앞두고 그 곳의 여행기를 읽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곧 갈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니 다른 여행지보다 더 눈을 크게 뜨고 읽게 되었고, 머릿속에도 쏙쏙 잘 들어왔다.

 


 

지금은 말레이시아의 태양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가물가물하다. 그 곳에서 만났던 거지들조차도 그립다. 인도음식을 비롯한 싸고 맛있는 온갖 종류의 음식 냄새는 아직도 선하다.

생각만 해도 당장 달려가고 싶다. 정말 부러운 신선하고 풍부한 과일들이 그립다.

우리는 이 음식 때문에라도 말레이시아에 꼭 다시 가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온갖 종류의 사람들, 열심히 살지만 여유가 온 몸에 배여있는 사람들,

인생의 고통조차도 껴안고 웃으며 사는 사람들이 보고 싶다.

 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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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최악의 여름 우리문고 22
사소 요코 지음, 이경옥 옮김 / 우리교육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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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 요코는  1996년 발표한《우리들의 최악의 여름》으로 제30회 일본아동문학자협회 신인상과 제26회 아동문예 신인상을 수상했다.

 

아동과 청소년 문학에 관심이 많은 터라, 특히나 미국의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품들을 재미나게 읽고 나니, 일본에서도 아동문예 신인상을 탔다는 이 책에 관심이 가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표지를 보기만 해도 시원한 마치 일본의 만화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까지 들지 않는가?

 

"모모이와 구리다, 복숭아와 밤이로군(일본어로 모모는 복숭아, 구리는 밤)"

열세살의 주인공 모모이는 친구들과 계단에서 뛰어내리기를 하다가 옆반 구리다의 선전으로 내기에서 지자, 격분해서 무리해서 뛰다가 그만 깁스를 할 정도의 부상을 입고 만다. 이 일로 시합에 참여한 모든 학생들에게 방학 내내 수영장청소라는 엄벌이 내려지고, 모모이의 친구들과 옆반 아이들의 하기 싫다는 뜻을 감지하고 모모이는 자기 때문이라는 자책감에 혼자 자원했다가 의외로 모모이를 도와 같이 청소하겠다는 구리다의 의견으로 둘이서 방학 내내 수영장을 청소하게 되었다.

 

 나는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떠들썩한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친구들과 있을때는 남들의 몇 배나 떠들어 대지만, 그렇지 않으면 바로 기운이 빠져 쪼그라들어 버린다.

"그런 사람을 '아랫목 대장과 심술쟁이 속'이라고 하는거야."

"아랫목 대장은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는 잘난척, 강한 척 하지만 낯선 곳에서는 조용해지는 아이를 말하지. 심술쟁이는 비뚤어진 심사를 가진, 남의 말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골치 아픈 아이를 말하는 거야." 52p

 

 이런 나와 달리 어쩐지 구리다는 혼자서도 고독을 즐기고 성숙해보인다. 내기에 진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그가 마음에 안들었던 터라 서로 거의 말도 않고 일만 열심히 하였다.

남말 하기 좋아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구리다네 가족이 어머니가 집을 나가시고, 큰 집에서 허허로이 살고 있음을 듣고, 모모이 또한 자기 집의 불화를 친구들이 알까봐 입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우연찮은 기회에 구리다의 여동생을 만나게 된 모모이는 다음날부터 구리다와 할말이 무척 많음을 알게 되었다.

 

일본 소설임에도 국내 여건과 비슷해 우리나라 소설이라 해도 믿을거라 했던 이야기를 정말 책을 읽으며 실감하였다. 특히나 모모이의 형 이야기는 워낙 뛰어난 수재였던 터라 주위의 지나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낙오자가 되자 스스로를 테두리 안에 가둬 버린 메기가 되어버리고, 그 아픔이 가족들에게도 전해져 모두들 우울함 속에 살 수 밖에 없었다. 친구들에게 가족의 불운을 알리기 싫어 더 당당하게 행동하려 했던 모모이.

 

형의 웃는 얼굴을 '카하하' 하는 건강한 웃음소리와 함께 드라이아이스 상자에 넣어서 선물로 들고 가고 싶었다. 91p

 

강인한듯 하나 착하고 약했던 모모이가 좋은 친구 구리다를 만나 서로가 견고해지고 더욱 강해지는 모습은 우리들의 여름을 최악에서 최고로 승화시켜주는 그런 이야기가 되었다. 떼지어 몰려다니는 친구가 아닌 서로의 일에 열중하면서도 진실한우정을 찾을 수 있는 성숙함을 만들어주는 이야기.

 


 

이런 나를 없애고 싶은 '첫번째 나'와 그것이 불가능한 '두번째 나'가 싸우면 당연히 '두번째 나'가 이긴다. 그래서 나는 오늘까지 꼴사납고 창피한 채로 살아왔다. 하나도 태연하지 않지만 태연한 척 하면서 살아왔다. 틀림없이 앞으로 몇 십년 동안 나는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콘크리트 틈으로 돋아난 잡초처럼 끈질기게.

102p



 

장난꾸러기인줄 알았던 모모이가 차츰차츰 성숙해나가는 그 과정이 자못 진지했고, 그들의 즐거운 우정이 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으로까지 이어져서 더욱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올 여름 따뜻하면서도 재미난 이야기가 생각난다면, 어른 아이 할 것없이 모두 이 책을 한번 읽어보는게 어떨까 권유하고 싶은 즐거운 만남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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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먼로의 죽음
닉 케이브 지음, 임정재 옮김 / 시아출판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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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살 난 어린 아들을 두고 있어서인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마치 내 아이인양 가슴이 저리고 아플때가 있다. 이 소설 버니 먼로의 아들인 버니 주니어를 보면서도 또한 그런 마음이 들었다. 가슴이 아프고 또 아파서..읽으면서 몇번을 쉬었는지 모른다.
 

저자가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속뜻을 헤아리고 느껴야 할텐데, 우선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니 버니 먼로라는 그 토끼라는 순수한 이름을 지닌 이의 난잡한 행각들이 지나치게만 보였다. 사랑하는 아내가 낳은 자신의 아이를 보고서도 영 정이 가지 않고, 사랑이 가질 않는다. 그저 자기는 안녕이라고 말하고 그 자리를 떠야 할것같았고, 산후 조리를 도와주기 위해 온 아내의 친구의 엉덩이를 성적으로 움켜쥐는 등 도저히 보통 사람들이라면 하기 힘든 행동들을 한다. 갈수록 그의 뻔뻔한 외도 행각은 심해져만 가고, 외면하려 한 아내는 그가 외도하는 날이면 밤마다 눈물로 지새우며 우울증을 키워 간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사랑하는 아들을 놔두고 자살을 하고 말았다. 

 

아이는 아무래도 자신이 길고도 긴 시간동안, 마치 100만년에 걸쳐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아이는 곧 집을 나온지 겨우 3일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240p

 

아내가 죽고 난 이후에도 남편은 달라지지 않았다. 유명한 가수 에이브릴 라빈, 카일리 미노그를 성적인 대상으로 상상하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성모 마리아까지 야릇한 상상으로 치부한다. 어쩌면 좋을까.

모든 여자들이 다 그에게는 그저 하룻밤 대상으로 보일 뿐이다. 심지어 아홉살 난 아들을 대동하고 다니면서도 자신의 행위에 방해가 된다며 귀찮아하기까지 한다.

음식점에서 세살난 어린 여아를 음흉스레 바라봐 엄마에게 일갈을 듣기까지 했으니 그는 정말 상식을 벗어난 난봉꾼이었다.

그의 곁에 함께 하는 아홉살난 아들.

난 그가 걱정이 될 뿐이었다.

 

엄마조차도 정신 나간 아빠라고 말했지만, 또한 아빠가 텔레비전이나 잡지에 나오는 다른 아빠들- 이를테면 아이가 장님이 되지 않도록 안약을 사주거나 공원에서 놀이용 플라스틱 원반을 던져주는-처럼 좋은 아빠는 아니지만 아이는 아빠를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수백 년이 지나도 아빠를 다른 아빠와 바꾸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아빠를 떠올리며 미소를 짓고 있을때 버니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버니는 바지를 발목에 걸친채로 황폐하고 낡은 계단을 겅중겅중 뛰어 내려온다.

'도대체 어떤 아빠가 이럴 수 있을까?' 263p

 

안약을 넣지못해 심하게 부어오른 눈을 아빠의 선글라스로 간신히 가리고 있음에도 술에 쩔고 다음 대상 찾기에 골몰하는 아버지는 아들의 상태를 보고도 파악하지 못한다. 돌아가신 엄마가 사주신 백과사전 하나를 품에 꼭 껴안고 학교도 못간채 아버지의 이상한 일에 따라다니는 아들.

 

분명 아버지 버니의 이야기였고, 그가 주인공인 소설이었지만, 내 눈에는 아들 버니 주니어만 보였다.

할아버지를 꼭 닮은 아버지, 부전자전이라는 난봉꾼 유전자를 손자는 받지 않은 걸까? 아직 어린 아홉살난 아들이 헤치고 나가야 할 세상은 너무나 험난해보였다. 못난 아버지일지언정 미친 사람처럼 이상하게 행동하는 아버지일지언정 아무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아들.

그 사랑스러운 아들이 있어 버니의 끔찍한 행동들이 용서가 된다는 것일까? 그가 한 행동들은 모두에게.. 그를 아는 모두에게 야유받을 것이었고, 용서받지 못할 일이었으나 단 하나 그의 아들, 버니 주니어만이 그를 용서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일까..

 

만약에 모두가 그를 용서한다 해도 나는 버니를 용서하지 못하겠다. 그가 여자들에게 한 못된 짓을 다 묻어둔다해도..아버지로써 너무나 못났던 그의 모습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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