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2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2
EBS 역사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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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에서 역사 e를 방영할 적에 제대로 본 적이 거의 없지만, 책으로 만난 역사 e는 미처 몰랐던 역사적 사실들을 가감없이 전해주어 충격과 재미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외면해서는 안될 진실들, 꼭 알고 넘어가야할 것들, 그러나 교과서에고 어디에서고 못 만나봤던 그런 이야기들. 요즘 역사 교과서 문제로 참 시끌시끌한 때라 그런지, 더욱 역사 e가 와닿는다. 역사란 너무나 중요한 사실인데도 왜곡된 역사를 배운다면 그것이 진실인줄 알고 배운 학생들이 잘못된 역사 인식관을 갖게 되어 문제가 커질 것이다. 일반 책도 아니고 교과서는 철저히 검증된, 사실에 의한 것만 배운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 누군가의 의도가 숨어있을 수 있다 생각하니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어린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란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선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 나온 역사 e를 읽었다. 짧고 굵게 방송되었던 내용이 임팩트있게 소개되고, 연이어 그에 대한 상세한 소개글이 덧붙여져서, 꼼꼼히 알아야할 사실들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준다. 아무리 중요한 사실이라도 일반 다큐멘터리처럼 줄줄줄 이야기해주는 것보다 임팩트있게 호기심을 키우고, 다시 부연설명을 해줘서, 더욱 귀에 쏙쏙 들어오게 해주는 역사e 방송 방식이 책에도 연계가 되니, 책으로 만나도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주로 양반들, 집권층의 기록이 주를 이룬다. 맨처음 등장한 책쾌에도 소개되었지만 집권층은 지식을 다른 계층과 나누려 하지 않았다. 아주 드물게 양반이 아닌 출신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예도 나오지만 정말 드문 경우이고, 이번에 소개된 천재 시인의 이야기는 정말로 금시초문의 이야기였다. 김홍도에게 영감을 주고 정약용, 박제가도 울고갈 천재라 하였던 이.

그는 노비의 신분으로 최고의 한시를 쓴 정봉, 정초부였다. 정초부는 정씨성의 나무꾼이라는 뜻이고, 실제 이름인 봉은 많이 알려져있지 않다 하였다. 노비가 감히 한자를 알기도 힘든 사회였거니와 귀동냥으로 익혔던 한자 실력으로 한시를 능수능란하게 써낸 그의 재주로, 그의 주인이었던 여춘영은 그의 노비 문서를 없애고 양인으로 만들어주었다. 부잣집 노비의 신세가 오히려 밥을 굶지않기엔 더 나은 상황이었으나 그는 가난할 지언정 나무를 하고 한시를 쓰며 살았다. 기록에 남은 아주 드문 예이지만, 기록에 남지 못한 세상에 기억되지 못할, 신분의 벽에 가로막힌 천재들이 또 얼마나 많았을까.

 

 

 

당나귀를 타고 진료를 보러갔던 조선인 최초의 여의사 박 에스더의 이야기도 눈에 들어왔다. 구순구개열을 치료받고, 정상인의 입술로 돌아온 것을 목격하고 의학도가 될 꿈을 꾸었다는 그녀. 그녀를 위해 남편인 박유산은 미국 유학 도중 아내의 뒷바라지를 위해 닥치는 대로 막일을 해가며 아내의 학업을 돕다가 일찌감치 생을 마감했다 한다. 그녀 역시도 조선에 돌아와 수많은 여성 환자들을 치료하고, 목숨을 구했지만 정작 그녀는 남편과 비슷한 30대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유학의 길이 다양하게 열려있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드나들며 자유로워진 오늘날의 세계와 달리 조선 시대에 미국까지 유학을 가서, 최초의 여의사가 된다는 것은 정말 구한말이라 해도 놀라운 일대 사건이 아닐수 없었을진대, 그녀는 정말 오늘에 비해 몇십배 몇백배는 어려웠을 그 길을 단호한 의지로 남편과 함께 견뎌내고, 조선을 위한 의사가 되었다. 누군가가 다져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은 정말 너무나 쉬운 일이겠구나 싶은 안도와 함께 감사함, 그리고 죄송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세자의 유모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자신이 키운 세자가 왕이 되면 육조판서보다도 높은 벼슬인 종 1품을 수여받기도 했다는 유모.

사대부 가문에서 유모를 구하려 했으나 사실 어려운 문제였기에 천민 출신 중에서 건강하고, 마음까지 유순하고 고운 사람을 골라 세자의 유모로 삼았다 한다. 유모와 아기가 맺는 관계란 참으로 끈끈한 관계이기에 세자가 유모에 대해 어머니와 비슷한 감정을 갖는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수 없을 것이다. 어릴 적에 불우한 일을 많이 겪은 왕일수록 유모에 대한 애착이 더욱 깊었다고도 한다.

 

 

 

파락호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의 다른 책에서 읽었기에 다시한번 되짚은 기억으로 남게되었고 새로이 놀랐던 것은 옛 우리 선조들은 장애를 가진 이에 대해 편견을 두지 않고 고르게 등용을 시켰다는 점이었다. 계급사회는 존재했을 지언정, 양반 중에서 장애를 문제삼기보다, 그가 가진 능력을 더 높이 샀다 하니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에 더욱 관심이 생겼다. 조선 초기에 우의정과 좌의정을 맡았던 척추 장애인 허조,  중종때 우의정을 지낸 간질장애인 권균, 광해군때 좌의정을 지낸 지체 장애인 심희수, 영조때 대제학과 형조판서에 오른 청각장애인 이덕수, 영정조때의 명재상 체제공은 시각장애인, 기형아로 태어나 생육신이 된 권절 등 . 흥미로운 것은 조선왕조 실록에서 장애인 관료들의 신체 결함을 언급하는 내용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다. 120p

장애인에 대한 구분을 짓고, 공정하지 않은 처우가 시작된 것은 근대 이후라 하니 아쉬움을 금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늘 뉴스에 오르락거렸던 야스쿠니 신사. 일본의 전쟁 망령등이 위패로 모셔진(?) 곳이라 들었는데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는 , 혹은 하지 않는 일본 지배층의 이야기도 접할 수 있었다. 그들 또한 정치적 의미를 크게 부여하는 그 곳을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서서 구경을 가고, 생각없이 참배하기도 하는 것인지.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아니기에 도리가 아닌 행동을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소설 등의 재미난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이 이야기에는 사건 뿐 아니라 사연이 제대로 담겨있는 책이었기에 역사 이야기임에도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역사e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우고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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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어른 -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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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의 에세이를 묶은 울지 않는 아이를 선보인지 5년만에 다시 우는 어른이라는 에세이를 내놓게 된 에쿠니 가오리.

우리나라에서는 이 두권의 책이 동시에 출간이 되었다. 짝을 이루어 같이 읽어야할 책처럼 말이다.

동시에 나오니 또 동시에 읽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성장일기 같지만, 성장일기 느낌과 또 다른 그런 에세이 속에서 소설 속 그녀가 아닌 실존하는 그녀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때로 소설이나 에세이 등에서 결혼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건 아닌가, 너무 속박으로 여기고 있는건 아닌가 싶어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나의 예상과 달리 그녀는 참 "잘 살고 "있는 듯 하였다. 엄마의 말 중에 "넌 개나 남자나 너무 받들어서 탈이라니까" 12p라는 대목이라거나 일상의 잡다한 일에 관해 "나는 없는 사람이라고 쳐"하고 등을 돌리는 남편에게 최대한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100p 등의 말 등을 보면 , 결혼 생활이 꽤나 귀찮은 굴레인듯 언급했던 그녀의 냉철한 이야기와 달리 남편에게 무척 잘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분명 잘 살고 있는 분들일텐데, 왜 난 걱정하고 있었던 걸까. 어찌 됐건 괜찮아 보이니 다행이라며, 오지랖 넓은 기우를 접어두었다.

 

 

또다른 그녀의 에세이에서 하이디의 검은 빵 흰 빵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나 역시 어릴적에 본질적인 이야기 외에 그 하얀 빵에 대한 호기심으로 한동안 목말라있던 적이 있었기에 에쿠니 가오리가 그 이야기를 해서 무척이나 공감을 한 적이 있었다.

하루 세 끼 맛있는 것만 골라 먹는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접하며 (물론 그녀는 나와 달리 무척 호리호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지만) 먹는 다는 행위 자체를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고 하나의 인생의 큰 기쁨으로 여기는 그녀의 태도에 무척 호의적이 되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에세이에서 먹는 것에 대한 묘사와 구체적인 언급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런데 레이즌 버터라니?

호사스러운 덩어리라며 버터를 무척 좋아하는 자신의 식습관을 이야기했는데 버터를 얼마나 좋아하냐면 어릴 적에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할때도 버터를 만나는 것을 행복해했고, 지금도 빵에 버터를 바르는게 아니라 얹어서 먹는다는 것이다. 버터를 좋아하는 친구와 레스토랑에 갈 적에는 버터가 맛있는 식당을 고른단다. (치즈에 빠진 친구는 봤어도 버터에 빠진 친구는 아직 본 적이 없어서, 참으로 생소하였다.) 그리고 책 속에 인용된 사진이 네모난 버터 사진이라서, 레이즌 버터라는게 순수한 버터 덩어리인가? 싶었다. 그런데 술안주로 레이즌 버터를? 빵에 발라먹는다는건 이해가 되지만 또 와인에 치즈가 궁합이 잘 맞는다며 먹는 사람들도 봐왔지만 술안주로 버터라니, 그냥 버터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하긴 일본사람들 식습관 은근히 특이한 면이 많았다. 술안주로 우리나라 나물 밑반찬 같은 것을 먹지를 않나, 그냥 우리식으로 입맛없을때 대충 떼우고 마는 밥에 물말아 먹기를 오차즈께라 하며 대단한 고급요리인양, 중역들이 그렇게 드라마 속에서 분위기 있게 차려먹고 서양 영화 속에서도 따라하는 걸 보면 참 미화하기 나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너무 궁금하기에 인터넷에 찾아보니 레이즌 버터로 나오는 게 없었다. 다만 레이즌이 건포도라는 것은 알게 되었다. 건포도가 박힌 버터려나? 하고 생각하다가 아주 우연히 어느 블로그에서 그 사진을 보았는데 실제로 건포도가 박힌 버터를 안주로 먹는 예가 있단다. 다른 책 어디에서고 보지 못한 이야기였기에 정말 특이하게 느껴졌다. 나 또한 어릴 적에는 맹맛 같았던 버터를 좋아하지 않다가, 어른이 되어 빵에 바를 버터가 살짝 녹았을때의 그 부드러움에 단단히 반하고 말았는데 엄청나게 살찔것을 생각해 즐겨 먹진 않는데..그냥 덩어리로 술안주로 먹다니. 게다가 에쿠니는 칼로리가 살짝 부담되지만 뼈가 단단해진다 생각하고 즐긴단다. 아마 많이 먹지는 않나보다.

 

공기가 맑은 시골에 가면 정말 색감이 청량하고 뚜렷하게 보인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녀가 다녀왔던 야마가타의 느낌을 바로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마치 현실에 없는 곳인양 묘사가 되어 있었다. 자기 색이 무척 강한 작가라, 그녀가 기억하는 머릿속의 지도는 인상깊은 먹을 것으로 대표되는 어디, 혹은 사랑하는 친구 누구가 살고 있는 어디 이런 식으로 아주 강렬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하였다. 극히 주관적으로 말이다. 야마가타에서 그녀가 발견한 이상한 것은 동그란 곤약과 빨간 벌레. 포장마차에서 산 동그란 곤약은 사준 지인이 겨자를 너무 많이 발라 매운 맛으로만 기억을 하고 있었단다. 그리고 돌 위에 앉았다 일어날때 옷에 붙어있던 현실감 잊은 깨끗하고 밝은 빨간색의 벌레에 대한 기억과 묘사도 아주 인상이 깊었다. 어느 지역에 대해 이렇게 아주 색다른 견해로 묘사하고 기록하는 작가도 아주 드물 것이다. 가보지 못한 야마가타지만 나 또한 그녀의 이야기에 푹 빠져 버렸다.

 

양서류 키우는 기분이었다며 엄마가 딸을 시집보내며 안도할 정도로,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고 몇시간이고 목욕을 즐기는 에쿠니의 독특한 습관에 대해서도 나온다. 집을 고를때도 남편과 함께 목욕탕을 가장 중시하며 골랐다 하니, 목욕 문화가 발달한 일본 내에서도 특히나 그 문화에 더 빠져있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특히 그녀는 욕조에 두시간 이상 머물며 추리소설 읽기를 좋아한단다. 욕조에서 책을 읽는 일도 있다고 들었지만 책이 젖을까봐 식겁하게 되는 나로써는 아마도 실천하기 힘든 호사가 아닐까 싶었다.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고, 이야기를 더 하기 싫다며 등돌리고 잠들어버리는 남편을 두고 도저히 그대로 잠이 들지 않을때면 무작정 집을 나선다는 에쿠니 가오리. 사실 나도 처음에 부부싸움을 했을때 분이 안풀려 그대로 집을 나섰는데 막상 갈 곳도 없고, 어딘가 카페라도 가서 책이나 읽을까도 싶었지만 사실 신혼 초에 그렇게 무작정 집을 뛰쳐나오는 것도 무척 안좋은 습관인 것 같아서, 결국 신랑 전화 기다리며 고민만 하다가 소심하게 신랑 먹을 초밥을 사다가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있었다. 마조앤 새디던가? 남자 만화가가 집에서 살림을 겸하다가, 부부싸움을 하고 한밤중에 갈데가 없어서 새벽 마트에 가서 장 보고 온거랑 비슷한 상황이랄까.  그런데 에쿠니 가오리는 새벽에 집을 나가서도 아예 어디선가 밤을 지새우고 마음이 다 풀려야 돌아온다니 나보다는 좀더 용기가 많은 편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런 때가 꽤나 왕왕 있는가보다. 호텔에 가려했지만 아무때나 간다고 재워주지 않는 걸 알고, 처음엔 패밀리 레스토랑 몇곳에 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는 커다란 북센터에 가서 밤새 시간을 보낸단다. 그녀와 함께 3대 여류 작가로 손꼽히는 야마다 에이미를 몰래 본 적도 있고 (북센터에서), 나름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가장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는 것. 나 역시 그런 공간이 있다면 시간을 보내다 오고 싶지만, 아이가 있으니 아이와 신랑을 두고 팩~ 하고 집을 나가버리는 것은 좋지 않을 듯 하다. 참, 신랑이 그때 내가 집을 나가도 걱정하지 않았던 것은 친정이 바로 옆이라 당연히 친정 간 줄 알았다고.

 

우는 어른 이야기 중에서는 남성 친구 라는 생소한 단어에 대해 많이 언급이 되고 있었다. 남성친구라 함은 남자친구와는 좀 다른 느낌이라는데, 남자면서 친구인 뭐 그런 단계가 아닐까 싶었다. 그녀에게는 그런 부담없는(?) 친구들이 제법 있단다. 결혼을 하면 이성 친구를 만나는 일조차 안된다 생각했던 나와는 무척 다른 개방적인 사고 방식. 내가 좀 딱딱한 것일까. 친하게 지내는 여자친구들에게는 쉽사리 부탁을 할 수 없는 일조차 남성 친구 (그녀도 그 친구도 각자 배우자가 있다.)에게는 얼마든지 부담없이(?) 부탁을 하게 된단다. 여자들은 하나를 부탁하면 그 일이 확대해석되기도 하고, 확대해서 갚아야할 우려가 있는데, 남자에게는 하나를 부탁하면 하나만 갚으면 된다니 음, 참 예리한 관찰이다 싶었다. 사실 나도 여자이고, 남자를 잘 모르지만 남자와 여자는 분명 다르고 오해의 소지는 분명 여자친구 간에도 큰 골로 자리한다. 그녀가 지적한 부분은 분명 일리있는 부분이 있었다. 확대 해석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남겨둘 필요는 없겠지.

 

두껍지도 않은 그녀의 에세이 한편을 읽고 또 많은 이야기를 중얼거려 버리고 말았다. 에쿠니 가오리는 참 내게 말을 많이 하게 한다. 그녀의 문체는 참으로 간결하고 깔끔한데, 난 주저리주저리 참으로 말이 많아진다. 나도 그녀처럼 간결하고 청아한 문체로 말해보고 싶은데 닮지도 못하면서 말은 참 길어지니. 그것 참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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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아이 -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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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읽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오히려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무슨 말로 시작해야할지 몰라 막막할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8년간의 에세이, 울지 않는 아이.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라는 부제가 달려있고, 울지 않는 아이, 우는 어른의 두권의 에세이집이 나왔다. 같이 읽어주는게 옳을 것 같은 느낌.

부제가 주는 신선함도 있었지만, 제목 탓에 이 책은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겠구나 섣부른 짐작을 했는데..

그녀의 어른으로써의 일상의 이야기를 만나 볼 수 있었다. 물론 어린 시절의 추억도 곁들여 있었지만 말이다.

 

 

8년간의 이야기다보니 참으로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참고로 말을 하자면 나는 에쿠니 가오리란 작가를 참 좋아한다. 처음 만난 책이 냉정과 열정 사이였나? 이후로 그녀의 책들을 전부는 아니지만 꽤 많이 찾아 읽었는데, 모든 책이 다 마음에 드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가장 마음에 든 것은 그녀의 단아한 문체. 게다가 읽으면 읽을수록 어쩐지 소설 속 여주인공에 오버랩되는, 차분하면서도 차가운 듯한, 어른스러우면서도 단아함을 잃지 않는 그녀의 실제 모습이 겹쳐지는 느낌에 작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에세이 속의 그녀 모습을 보면 정말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때때로 뭔가에 서툰 모습도 보이고, 나같은 사람이 가까이 하기 어려울 것 같은 그런 인상을 주다가도 작고 소박한 것에 감탄하고 집착하는 모습은 또 그녀만의 '남과 다른 ' 정신세계를 만난 것 같다고 해야할까? 음, 개인적으로 만났다면 친해지기 힘들었을 것 같은 캐릭터면서 은근히 그녀가 쓴 에세이 등을 읽어보면 의외로 나와 비슷한 생각 또한 꽤 많이 했다는 공통점에 반가워 몸서리를(?) 다 친 적도 있었다. 별것 아닌 일에 깊이 있는 상상을 해보기도 하고, 또 그러기에 그녀만의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아뭏든 그 전체적인 느낌은 참 "좋다"라는 것이다.

결혼을 지나치게 냉철하게 보는 그녀의 느낌은 낯설지만, 그렇다고 전혀 수긍할 수 없는 것만은 아니다. 생각은 약간 다르지만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싶다. 가족에 대한 그녀의 견해 역시 마찬가지다.

 

뭐랄까 냉철한 안목같은게 있다고 할까? 미처 표현하지 못한 것을 그녀는 날카롭게 보고 딱 적절하게 표현한다는.

그래서, 어찌 보면 좀 지나치게 차가운 건 아닐까? 싶은 부분도 있지만 그녀의 글에 무조건 차가움만 있지만도 않다. 어쩐지 좀 피상적으로 가고 있는 나의 글이지만, 그녀의 글에 대해서는 뭔가 자꾸 막 이야기하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어 이야기가 산으로 가고 있는지 어떤지도 모른채 중얼거리게 된다.

 

그녀의 '울지 않는 아이'를 읽으며 괜찮았던 부분들을 사진으로 남겨볼까했는데 나도 모르게 너무 많은 사진을 찍어버릴 정도였다. 그래서 여기 올리려면 추려야할 정도로 말이다. 사진은 거의 없는 책이었는데 글 하나하나가 그냥 넘기기 아까운 그런 이야기들. 나와 다르게 느꼈건, 공감하게 썼건 모두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들.

 

늘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 헤어진다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즐기지도 않았던 나와 달리 그녀는 회전 목마를 통해 어렸을 적에는 부모로부터의 해방같은 자유를, 지금은 거의 이별의 끝에 와 닿는 연인과의 헤어짐을 조금 아주 조금 만끽하는 모습을 보인다. 슬프고 두려우면서도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는 느낌이랄까. 정말 그럴까 싶지만 그녀라면.

 

또, 가족과 함께 한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더불어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한 이야기도 곁들여진다.

독서 일기 같은 부분은 서평을 즐겨 쓰는 나의 글들- 가벼움이 느껴지는 나의 서평-과 달리 정말 그녀의 남다른 표현이 깊은 울림을 주는 그런 느낌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왕이면 읽어본 책들이면 더 좋을텐데.. 대부분 다 읽어보지 못한 책들이라 내가 읽은 책의 느낌과 비교해보지 못해 아쉬웠을뿐. 그래도 그녀의 표현들을 보니, 읽어보고 싶은 소장 목록에 올려도 좋겠단 생각이 든다. 그중 가장 인상깊었던 책은 그녀가 비로소 책에 반하게 만들었던 초등학교 어린 시절의 바로 그 책이랄까.

너무나 짧고 쉬운 책이었지만 그 책에 단단히 반해 몇번이고 읽어보게 만들었다는 책

<지푸라기 하나로 부자가 된 사내>

우화 같은 책이 아닐까 싶은데 그렇게 딱 인상깊이 남아있는 나만의 책이 있을까 하고 떠올려보니 어릴적에 나한테 인생의 책으로 기억될 책은 따로는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초등학교 저학년때 부모님이 사주셨던 210권의 책을 우리 삼남매 중에서는 내가 가장 잘 활용했다는 기억만 남아있을뿐. 그 안에서 재미난 책들을 찾아 읽는 재미에 빠져 시간가는줄 모르고 날이 어두컴컴해질때까지 골방, 책장 앞에 앉아 혼자 책을 읽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내가 좋아했던 책들도 세계의 우화, 민화, 전설 이런 책이었는데, 나중에는 창작 책을 읽으면서 (창작책이 우리나라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많아서 시대적 공감은 좀 어려웠지만 ) 누가 어떻게 읽으라 하지 않아도 나 혼자 다양하게 독서의 세계를 넓혀갔던 기억이 나는데 말이다. 글밥이 다소 많은 책들로 (두께가 보통 어른책 정도의 두께라) 210권을 꼼꼼히 읽다보니 사실 대부분의 이야기책들은 다 읽었다 할 정도가 되었고 더 읽을 책이 없어서 반복해서 읽고 하며, 책의 진정한 재미에 빠져들었던 때인지라 지금처럼 너무 많은 책의 범람에, 책 자체도 엄마가 권해주는 책으로 정신없이 읽어대라 강요하는 세상과 또다른 세상을 살아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푸라기 하나로 부자가 된 사내는 어떤 내용인지 짐작은 할 것 같은데 그녀가 말한 딱 그 제목의 책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전래동화 등의 옛 이야기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도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식인이나 괴물 등의 이야기는 아이가 무서워할까봐 좀 가려주어야하나 고민을 했었는데, 그런 고민을 하기에 앞서 전래가 왜 중요한지 왜 필요한지등을 느끼게 해주는 그녀의 이야기와 덧붙여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엄마의 걱정은 기우임을 설명해주기도 하였다.

 

그녀의 가족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저자의 아버지가 6살난 에쿠니 가오리의 첫 일기를 보며 칭찬부터 시작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오늘은...나는..등으로 시작하지 말라며 마치 초등학생 다루듯 꾸지람을 한 대목은 아이에게는 상처가 될 대목이었을 테고.

조금은 아이는 아이답게 대해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뭔가 화려하게 꾸민 그녀를 못마땅해 하며 파푸아뉴기니 여자도 아니고, 하며 시시때때로 꺼낸 말씀이라는 "파푸아 뉴기니 여자." 나도 공감했던 것이 우리 아빠도 뭔가 나의 허황된(?) 면을 비판하실적에 "허영에 들떠갖고 그게 뭐냐." 하셨던 기억이 난다. 나란 사람이 예나 지금이나 사치스럽거나 한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다만 욕심이 좀 많았기에 눈이 높다고 뭐라고 하신 것 같긴 하였다. 작가님의 파푸아 뉴기니 여자는 우리 아빠에게는 허영에 들떠갖고서와 똑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 뭔가에 빗대어 혼을 냈다는 부분으로서는 내게는 좀 닮은 꼴로 와닿았다.

 

여동생에게 취직하지 말라는 언니는 또 어떠한가.

에쿠니 가오리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취직하지 말고 나랑 재미나게 놀고 살자고 졸랐다한다. 취직하기 어려워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참 이상한 논리가 아닐수 없지만, 에쿠니에게는 그럴만한 사연(?)같은게 있었다. 공감이 마구 되는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녀의 여동생은 참으로 완벽한 재주(?)를 가졌달까? 완벽할 것 같은 에쿠니 가오리보다 현실면에서 더 완벽한건, 아니 편집증적으로 보일 정도로 자기 일에 딱딱 계획적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편리를 제공할 줄 아는 재주를 지닌 초 슈퍼우먼 여동생이 등장한다.

티브이 스케줄을 신문에 나온 프로그램 수준이 아니라, 정확히 분 단위로 다 기억할 정도로, 그래서 스포츠를 제대로 즐기고 싶은 언니에게 얼마든지 원하는 장면을 하루에 다섯번이고 몇번이고 볼 수 있도록 스포츠 뉴스와 프로그램을 꿰차고 일일이 일러준다.

일을 하느라 바쁜 언니가 언제 딱 내려와서 볼 수 있게 시간까지 지정해줄 정도이다.

 

게다가 언니는 홍차 끓이는 여자, 동생은 떡 굽는 여자로 통할 정도로 인절미를 딱 가족들이 원하는 정도로 제대로 구워내는 여자라니.

참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소해보이는 그런 면들이 그녀와 그녀 가족에게는 참으로 대단해보이는 그런 면들이 아닐수 없겠다 싶었다. 그런데 학교 성적 이런것보다 실제회사에서 일을 할적에는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는 그녀의 평소 능력이 회사에서도 참 제대로 활용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기에 그녀와 그녀 가족들이 동생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것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역시나 그녀는 신입 1년차임에도 밤낮을 바꿔가며 일할 정도로 회사 일에 매진하고 있다고 하니, 완벽한 업무 능력을 제대로 회사에서 발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길지는 않았지만 생각해보게 만드는, 또 내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난 에쿠니 가오리가 좋아. 또 이렇게 공감하게 만드는 에세이였다.

그녀의 소설이 재미날지라도 공감하게 만드는것은 그녀의 에세이. 역시 에쿠니 가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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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에서 우수리뷰로 거의 뽑혀본적 없고 포토리뷰만 간혹 뽑힌적있는데..

 

마이리뷰는 거의 첫 선정인 것 같네요.

 

감사드립니다.

 

 

이달의 마이리뷰로 선정되시면 발표 후 3일 이내에 알사탕 4000개를 축하금으로 지급합니다.
당선작으로 선정된 글을 3개월 이내에 비공개/삭제하시면 당선 여부가 취소되어 축하금도 반납해주셔야 합니다.

2013년 12월 마이리뷰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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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점
메타포의 미학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읽고) - 착한시경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뭐라고요?""메타포라고!""그게 뭐죠?"시인은 마리오의 어깨에 한 손을 얹었다."대충 설명하자면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비교하면서 말하는 방법이지.""예를 하나만 들어주세요."네루다는 시계를 바라보며 한숨지었다."좋아, 하늘이 울고 있다고 말하면 무슨 뜻일까?""참 쉽군요. 비가 온다는 거잖아요.""옳거니, 그게 메타포야"-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중 28쪽에서 - 메타포가 위험하다는 것을 나는 이미 말한 적이 있다.사랑은 메타포로 시작된다.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작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사랑은 시작되는 것이...

10점
맨얼굴의 나를 연결해주는 가교架橋《감정수업》 - 드림모노로그
<강신주의 감정수업>
봄날 내내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지’는 벚꽃엔딩에 빠져 지냈는데 이제는 눈내리던 겨울밤을 추억하는 계절이 왔다. 언제나 계절은 내가 인지하는 것보다 한 템포 더 빠르게 다가온다. 아직도 봄날과 함께 하였던 감정의 덩어리들을 다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데 시간은 그렇게 빠르게 흘러만 간다. 그 안에서 내가 막연히 기억하고 있는 삶의 희로애락 喜怒愛樂 사이에 수도 없이 많은 감정들의 실체를 나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이성은 시간을 기억하지만 감정은 시간을 담아내지 못한다. 마치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가는 ...

10점
유배지에서 보낸 명상록 - 윤스리
<나무는 간다>
유배지에서 보낸 명상록_이영광,『나무는 간다』 언제부턴가 시와 독자 간의 거리가 멀어졌다. 시가 독자들에게 멀어진 건지, 독자들이 시에서 멀어진 건지 순서를 가르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미래파’라 불리는 난해한 언어로 무장한 현대시의 한 얼굴과 책에서 TV로, 스마트폰으로 멀어진 독자들과 난해한 시보다 더 난해한 해석방식을 요구하는 국어교육과 단번에 읽어 이해하기 힘든 시를 붙잡고 씨름할 여유가 없어진 이 시대, 무엇을 탓할 수 있겠는가. 문제가 복잡할수록 답은 간단한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 가장 명쾌한 대답은...

10점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워야 앞으로 나아간다,검은 모래 - 서란
<검은 모래>
삼다多의 섬 제주도에서 특히나 여자의 삶은 그야말로 '억척'이라 말할 수 있다. 거센 바람과 돌이 많은 땅을 일구고 바다에서 잠녀들에 의해 건져 올려지는 해산물까지 그녀들의 삶은 억척스럽지 않으면 섬에서 견디어내기 힘든,그것이 나라를 잃고 더불어 가난이 모두의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악스럽게 현실과 맞써야 했을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남성 보다는 여성이 더 위기대처에 능수능란함이 드러난다. 식구들 입에 풀칠할 것을 억척스럽게 마련하는가 하면 거기에 자식들 교육까지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은 굶어도 새끼...

10점
내가 그를 믿는 이유 - 섬사이
<책으로 가는 문>
갈색 마룻바닥 위에 책들을 가지런히 주욱 펼쳐놓고 앞치마를 두루고 앉아있는, 저 머리카락도 하얗고 수염도 하얀 할아버지가 미야자키 하야오다. 여백이 많은, 군더더기 없는 공간 속에서 무릎까지 꿇고 바닥에 펼쳐놓은 소년문고 책들을 조용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듯한 이 사진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전부를 다 본 것도 아니고, 본 것들을 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라고 하면 막연히 무조건 '보고 싶다'고 느끼는 편이다. TV로 봤던 <빨강 머리 앤>이나 <...

8점
누구를 위한 역사논쟁인가 - 무진
<잊혀진 근대, 다시 읽는 해방 전前사>
누구를 위한 역사논쟁인가국사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이다. 논쟁의 중심에 있던 교학사 국사교과서를 둘러싸고 벌어진 소위 역사학자들의 이야기는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어떻게 보면 역사란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모든 해석은 그 해석을 하는 사람의 가치관과 목적에 의해 바라봐 지는 것이기에 해석의 결과는 천치차이가 날 수도 있음을 안다. 하여, 각기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역사는 지난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이며 앞으로 나...

10점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되나요? - 가연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호기롭게 리뷰를 쓰겠다, 장담했지만, 정작 다읽고 나니 어떻게 리뷰를 써야 될지 잘 모르겠다. 이 서재를 둘러보면 알다시피 에세이에 관한 리뷰는 없다. 소설에 관한 리뷰도 몇 개 없다. 그러고보면 옛날에 신간평가단 담당자분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왜 과학/인문 계열과 소설 계열에 동시에 지원을 못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는데, '과학/인문 계열 쪽에 쓰이는 리뷰와 소설을 쓸때의 리뷰는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는 것이 그 대답의 요지였었다. 그때는 그렇구나, 라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넘겼지만, 시간이 지난 뒤 돌...

10점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 - guiness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재생 마지막 페이지에서 결국 막혔다. 아직도 감을 못잡는구나.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거구. 베로니카와 토니 사이에 40년간 한결같이 흐르던 그 철벽같은 '감'의 부재가 줄리안 반스와 나 사이에 턱 하고 나타나 가로막았다. 나 바보? 엄마가 아닌 누나라니. 나름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읽으면서 정독을 했는데.. 대체 뭘 놓친 거지. '아이가 토니의 아이일까'와 같은 가정은 감은 커녕 최소한의 근거나 논리도 없는 막장 드라마의 영향이다. 다시 머리를 굴려본다. 아이의 외형은 에이드리언의 유전자를 강하게 물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10점
오지랖과 비례하여 키워야 할 것은? - 양철나무꾼
<오늘, 수고했어요>
오지랖이 넓기로 치면 열두폭치마와 어울려서도 부족하고,온갖 잡기에 관심을 보인게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우물을 파도 한우물을 파야 한다는 옛말대로라면, 난 될 성부르기는 커녕 싹수가 노랗다.그런데 어쩌겠는가? 3씨(마음씨, 솜씨, 맵씨)가 되어주시는 관계루다가,좀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변덕이 죽 끓듯 한 관계루다가,나의 잡기에 대한 관심사는 철철이로도 부족해, 달달이 바뀌는 실정이다.얼마전까지는 헝겁으로 수제 인형을 만들어댔고,친구가 저 대문에 걸린 그림을 그려 보내준 무렵과된장님이 이 귀한 그림을 보내주신 후부터,그림에 재미를...

10점
보이지 않는 힘은 보이는 세계를 지배한다. - 모카프라푸치노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이 책이 말하는 것은 한마디로 규정짓자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는 마치 우리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펼쳐진 매트릭스에 살고 있다는 말이다. 다만 우리가 이런 매트릭스의 존재를 알고 살아가는 것과 모르고 살다가 허망하게 인생을 종료하는 것은 크나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자기 계몽을 통해, 자기계발의 덫에 갇혀 점점 차오르는 패배감에 빠지느니, 나 스스로를 인식하고 사물을 보고 파악할 줄 알며, 벌어진 사건의 앞과 뒷면의 본질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

8점
What happened to Anna K. - Jeanne_Hebuterne
<안나 K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그래요. 닫혔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고 앞으로도 죽 그럴 겁니다.-안나 카레니나 모호하고 불확실한 무엇. 아무리 달콤한 말도 구태의연한 것으로 들리게 하는 재주. 소용돌이 속에서 헛발질하는 개구리 같은 모양새. 남김없이 소진해 버릴 것이라는 헛된 다짐. 왜곡된 시선. 본의와는 무관한 해석. 작가가 전혀 의도지 않은 데에서 홀로 엉뚱하게 감동하는 독자. 단순간 어디론가 뻗어 나가 돌아오지 않는 생각. 안나 케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러시아계 유대인 소설가 이리나 레인이 현대 뉴욕을 무대로 재구성했다....

10점
다시 배우는 배움 - 탕기
<공부하는 삶>
2013년 12월 8일 짤막한 지식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때가 온다. 사람마다 시기는 다르리라. 나는 중학생 때였다. 지도를 좋아하던 나에게는 세계의 곳곳이 그리도 궁금할 수가 없었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곳은 단어와 수식, 그리고 기호로 이뤄진 곳이 아니라 하나하나 이야기가 살아 있는 곳이었다. 나는 왜 그 이야기들을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든 과목을 세계 각지의 이야기 속에서 배울 수 있을 텐데. 나중에야 알았다. 그 이야기를, 재미있는 세상을 알고 있는 선생님들도 그걸 가르치지 않는 교과 과정 속에 ...

10점
사랑은 칼날을 숨긴 종이'다. - 곰곰생각하는발
<롤리타>
사랑은 칼날을 숨긴 종이'다. " 나의 다른 책들에서처럼 어떠한 사회적 논평도 제시하지 않고, 어떠한 교훈도 입에 담지 않는다. 이 책은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지도 않고, 인류에게 올바른 출구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 - 절망,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영문판 작가 서문 中 나는 첫인상에 대한 감응력을 뜻하는 " 첫눈의 힘 " 을 믿는 편이다. " 첫눈에 ~...... " 는 설명되거나 덧대는 과정 없이 어떤 대상을 편견없이 바라볼 때 생기는 직관'이다. 그러니깐 온갖 말이나 빳빳한 명함으로 덧씌운 이미지'가 아닌 날것에 대...

10점
다락방의 이야기 씨앗 - 마노아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중학교 3학년 겨울에 이사간 집에 다락방이 있었다. 좁은 집이었고, 언니들도 독방이 없는 터 내방은 당연히 없었는데, 잡동사니가 가득한 다락방을 내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열심히 치우고 정리하고 닦고서 가만히 누워 보았다. 햇볕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고, 뭔가 따뜻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햇볕에 데워진 먼지 냄새였다. 아무튼! 나만의 그 공간에 집에 있던 문학전집도 몇 권 갖다 놓고 책도 좀 읽었더랬다. 나만의 조용한 시간이었고 독립된 공간이었기 때문에 빨간 머리 앤이 살던 그 집이 떠오르는 낭만적...

10점
내가 지구 훼손에 일조않는 법. 유기농 - AppleGreen
<희망의 밥상>
온몸에 종기가 나있던 연어 살코기 표본을 사설 연구소와 정부 소속 연구소로 각각 보냈다. 한곳에선 모든 표본에 박테리아가 우글거리며, 살아있는 배양접시와 마찬가라는 답변을,한 곳에선 박테리아 미발견이라는 답변을... 대중이 알아야 할 정보의 순결이란 정보화시대 도래와 동시에 사라졌다. 이권과 야합해 악의적으로 노출하는 정보로 대중의 판단을 가리고 자신들이 자행하는 만행을 덮고 미화시키는 수단일뿐이다.미국은 GMO작물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다.콩의 81%,옥수수의 40%, 캐놀라의 73%, 면화의 73% 등.미국과 캐나다 정부는 ...

10점
다시『월든』을 만날 시간 - oren
<주석 달린 월든>
『월든』의 경이로운 문장들을 읽어보십시오. 그것들은 우리의 가장 절실한 체험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 마르셀 프루스트 * * *(『주석달린 월든』 31쪽)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쓴 책은『월든』과 『주석달린 월든』달랑 두 권만 갖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 봄에 한꺼번에 무려 여덟 권을 더 샀었다. 그때 마침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날 예정이었던 히말라야 트레킹 때 짐꾸러미에 챙겨 넣을 책을 고르고 있었는데, 소로우가 쓴 책이라면 따져볼 필요가 없겠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신들과 함께 걷는 곳'이 히말라야가 아니던가....

10점
처음 뵙겠습니다 - 희선
<비트겐슈타인 평전>
처음 뵙겠습니다, 비트겐슈타인 님. 저세상에서 비트겐슈타인 님은 잘 지내고 있습니까. 저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게 언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철학자라는 것도요. 언젠가 우연히 알았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 뒤로도 그냥 이름만 알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한국에는 ‘비트겐슈타인’이라는 밴드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때 제가 이름을 기억한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음악은 어땠더라, 안 들은 지 오래돼서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그래도 그거 재미있지 않나요. 밴드 ...

10점
가장 인간적인 소설의 세계 : 앨리스 먼로의 작품에 대한 몇가지 생각 - Bomisl
<디어 라이프>
“아마도 언젠가 당신은 이 날이 당신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의 날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걸요.” (『디어 라이프』중「아문센」p.85) 앨리스 먼로의 소설집 『디어 라이프』를 만난 순간을 이렇게 표현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말이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으리라. 이 책을 읽어보고 나서 드는 첫 번째 느낌이 아마도 쉽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에, 소박하고도 단순한 사건들이 여운을 남기는 정도라고 여겨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이 작품이 노벨상 수상작가의 주요 작품이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우리엄마한테도 이런 방 하나 만들어드리고 싶다 - 러브캣
<2천만원으로 시골집 한 채 샀습니다>
시골에서 살아 본 사람도 아니고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여자가 시골 생활을 꿈꾸기란 참 어려운 일이건만. 저자는 그렇게 자신이 꿈꾸는 바를 추구하고 실천해냈다. 시골 생활이란 집안 살림을 하는 여자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어서, 입식 생활, 서구식 생활에 익숙한 도시 여자들이 시골로의 귀농..

시골에서 살아 본 사람도 아니고 도시 생..
도시 속 삭막한 생활에 지쳐, 시골의 여유..

처음에는 서울에서 가까운 강원도부터 시..

그녀의 집은 밖에서 볼 적엔 평범해보이..

아파트 생활이 익숙해서, 시골 생활을 미..

분내나는 방이라 그가 이름붙인 단칸살이..

8점
그녀만의 서점은 그녀만의 것이 아니다 - blanca
<오래된 빛>
1층 아이의 책장에는 화려한 채색삽화와 이야기가 가득한 책으로 채워져 있었다. 엄마와 그 아이의 책을 구경하고 우리집으로 올라가던 길 나는 처음으로 '부러움'과 '시새움'이라는 단어가 주는 강렬함의 무게를 느꼈다. 엄마가 내가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그 전집을 사주었는 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부터 나는 책이 고프다,는 느낌을 알게 되었다. 시험이 끝나면 아들 둘을 다 서울대에 보낸 아저씨가 운영하는 서점에서 책 세 권 정도를 살 수 있었다. 너무 오래 고르고 재면 뒤통수가 괜시리 따가웠다. 엄마가 한번씩 들러 아저씨...

10점
천국보다 낯선 - 이장욱 - Breeze
<천국보다 낯선>
같은 시간을 공유한 연인을 보아도 그들이 기억하는 그 시간들은 조금씩 다르다.다른 언어, 다른 시간에 있었던 듯, 함께 공유한 시간을 전혀 기억 못하는 사람도 있고, 그 시간들을 세세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나의 경우도 그러했다. 신랑과 처음 연애하던 시절을 나는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데, 신랑은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잠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고 나서의 기억들은 나는 자세히 기억하는 반면 신랑은 또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말을 하곤 한다. 어느 사람에게는 한없이 소중한 기억들도, 다른 이에게는 그저그런 시간들이었는게 참 아이러...

8점
이 책의 의미를 생각한다 - hnine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우선 저자 소개를 찬찬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사유한 모든 것을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어로 옮겨놓은 허무주의 철학자, 수필가.사르트르 이후 프랑스 최고의 지성으로 불린다.우수적 기질을 보이긴 했으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는데 이미 그때부터 불면증과 자살에 대한 충동에 시달렸다.니체와 쇼펜하우어에 심취, 20대에 첫작품 <절망의 끝에서>를 펴낸다. 이 책이 바로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라고 번역된 위의 책이다. 이 책으로 장래 촉망되는 작가의 대열에 서게 되고 ...

8점
공존, 화합, 균형의 세계로 - 아이리시스
<유빅>
없어야 하는데 있는 세계를 보여주는 게 범죄물(스릴러)이라면, 있을 법한데 없는 세계를 구축하는 건 SF다. science fiction(공상과학소설)으로 일컬어지는 SF의 시초는 쥘 베른의 <해저 2만리>, 오손 웰즈의 <타임머신>이며, 주로 인간이 닿을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존재할 법한) 세계를 상상과 기술에 기초하여 써내려간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인간의 예측, 기대, 추정이 이른 최초의 세계가 '바다'와 '우주'인 건 묘하지만 충분히 그럴 법하다. 둘 다 미지의 비밀을 다량보유한 세계이자 지구인이 제...

10점
'여기 앉으실래요?'라는 초대 앞에서 - 분홍신
<붉은 소파>
조금은 떠들썩했던 분위기의 사진수업시간. 갑자기 선생님께서 화통하게 웃으셨다. 아이들은 일제히 선생님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선생님은 들고 있던 사진 한 장을 우리들을 향해 내보여 주셨다. 그건 그 선생님 앞에 앉아 있던 학생의 작품이었는데, 우리들은 그 작품을 보자마자 박장대소하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 사진에는 엄청난 용기와 불굴의 의지와, 그리고 성인이 된 청춘이라면 환호할만한 '섹시(sexy)'가 한 자리에 있었으므로. 설명을 더 해보자면 이렇다. 사진은 시청 앞 잔디밭에 덩치 커다란 3인용 소파를...

10점
당신의 긴 겨울을 위해, 온기의 뉴웨이브를... - 헤르메스
<죽음의 한가운데>
혹시라도 매튜 스커더가 자신의 창조주 로렌스 블록을 70년대에 실제로 만났더라면, 가장 먼저 무엇을 했을지 나는 짐작할 수 있을 듯 하다. 미스터리 소설 역사상 가장 유명한 하드보일드 탐정 중 하나로 만들어주었으니 고맙다면서 악수나 포옹을 할 것 같다고? 아니, 그건 오산이다. 그렇게 말한다면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읽어보았다면 분명 이런 내 짐작에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로렌스 블록의 얼굴에 일단 주먹부터 날리고 볼 거라는 걸. 그래도 로렌스 블록은 기꺼이 이해하리라. 자기가 그에게 무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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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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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술이라도 쓰는게 아닌가 하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다독량은 정말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신간을 읽은지 얼마 안되었는데 연이어 나온 또다른 신간 소식에.. 헉! 하는 소리가 나옴과 동시에 얼른 따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필력을 갖춘 드문 작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 옛날 순정만화 등을 즐겨 읽을 적에는 어느 작가의 만화가 많이 쏟아져나오거나 하면, 그의 문하생이 대신 그린 거라 그림이 엉망이라는 둥의 소문도 들렸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모두 명불허전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그의 작품이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다행히, 내가 읽은 작품들은 하나같이 다 평타 이상이었고, 정말 재미나다 최고의 작품이다 꼽을 작품들도 그 몇권 안되는 독서 중에 있었으니 그의 남은 작품들을 모두 다 읽어보면 어떨까 싶은 궁금증이 들 정도이다.

 

꽤나 좋아하고 너무나 읽고 싶었던 히가시노 게이고.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다작을 하는 만큼 짧게 대충 써내는게 아니라 남들은 몇년에 한권 내기도 힘든 두께의 소설을 꽤 자주 내시고 계신거 보면 밥은 드시고 일하시는 건지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하게 된다. 이번 책 역시 상당히 두꺼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잡자마자, 어느새 진도를 쑥쑥 나가 밥먹으면서 봤는데도 1/4을 읽어버린 걸 알 수 있었다.

 

뻐꾸기라는 새는 자신의 알을 다른 새의 둥지에 낳아 도둑 양육을 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하는 제목을 보고 앞 부분 쯤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고민하는 바를 금새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사실이 꼬이고 꼬여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간 결말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지만 말이다.

 

유명 스키 선수였으나 굵직굵직한 대회에서 큰 수상을 하지 못했던 히다는 자신의 딸을 아주 어렸을 적부터 스키 연습을 시켜서, 유럽처럼 조기 영재 교육에 성공해서 자신의 못다이룬 꿈을 대신 이루게 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자신이 유럽에 나가있는 동안 혼자 배부른 열달을 보내고, 아기를 낳기까지 한 아내의 출산 소식에 그 아이가 딸이라는 이야기에 기쁨과 동시에 아버지의 딸을 통한 대리 욕구 또한 샘솟기 시작하였다. 사실 아버지의 못다이룬 꿈을 자식에게 대입시킨다는 것만큼 자식에게 부담되는 일도 없을텐데.. 그걸 잘 알면서도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아이에게 대입시키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곤 한다. 스포츠에는 전혀 문외한이고 전혀 관심도 없는 나도, 다른 방면에서 내 아이가 내 못 이룬 꿈을 이뤄주길 바라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으니 히다의 마음을 이해할 수있었다. 게다가 그의 딸이라서 그랬는지 놀랍게도 어렸을적부터 천부적인 소질을 보이며, 누구보다 발군의 실력으로 쑥쑥 커나가는 스키 꿈나무 딸을 보며 아버지는 더더욱 그런 자긍심을 드높일 수 있었다. 사랑하던 아내가 자살을 하고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은 그에게 유일한 낙이자, 희망 그 자체였다. 이사를 가기 위해 대청소하던 어느 날 아내가 스크랩했던 신문 기사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천재적인 스포츠 실력은 노력 외에 유전자의 힘으로 이뤄낼수 있다 믿는 연구소의 직원으로부터 (마침 히다의 딸이 소속되어있는 회사이기도 하였다.) 자신의 딸이 그 최고의 스포츠 유전자 f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말과 함께 그러니 아버지 스키 선수 역시 f유전자를 갖고 있는지 비교 검사하게 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히다는 그 요구에 절대 응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회사에서는 집요하게 아버지의 유전자검사를 요구한다.

 

그런데 히다 카자미를 대회에 출전시키지 말라는 협박장이 회사에 날아들기 시작하였다. 대회에 출전시키면 카자미의 목숨이 위태로울 거라는 협박 말이다. 그러던 때에 훈련을 하러 나가있던 히다 카자미가 마침 타려던 버스가 사고가 나는 일이 발생하였다. 경찰 조사 결과 단순 사고가 아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장치해놓은 사고였다 한다. 카자미는 마침 두고 온 핸드폰 때문에 버스를 타지 못하고 버스에는 기사와 카자미의 팬이라는 승객 한명이 타고 있었는데 그 승객은 의식불명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부모의 우수한 유전자를 바탕으로 타고난 선수들이 잘할거라는 기대감이 있겠지만, 그렇게 타고 났기에 다른 건 하지 못하고 무조건 스포츠 선수로 키워져야한다는 것은 재능을 타고난 이들에게도 불운한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피겨 퀸 김연아 선수처럼 정말 잘 해내는 선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그 길이 아이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면 타고난 유전자때문이라는 말로 아이에게 그 길을 강요하는 것만이 과연 능사일까 싶었다. 아이의 진로와 장래를 기업의 영리추구를 위한 목적으로만 쓰고자 한다면 그 아이가 유명한 선수가 된다고 해서 정말 행복했노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타고난 유전자에 대한 연구도 중요한 소재가 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인 가족의 비밀 같은 것이었다.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어떤 사정에 의해 아이가 어떻게 자라게 되었는가.

어느새 후루룩 책을 다 읽고 나니, 짧은 한숨이 내쉬어졌다. 한 가족에게는 비극으로 끝난 삶이 다른 가족에게는 그나마 행복으로 이어진거라고 보아야하는건지.

정말 재미나게 읽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이제 질풍론도를 읽어야지. 읽는 속도보다 신간 나오는 속도가 더 빠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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