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손택 누님의 <타인의고통>을 읽고
보스니아내전을 찾아봤어요.

지옥과 다름없는 전쟁의 한복판 사라예보에서
사무엘베케트 <고도를기다리며>
연극을 올렸다지요.

요즈음은 어떤가요?
20세기동안 20개가 넘는 나라에 침공을 해서 8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이라는 나라.
눈앞에서 산산조각난 부모와 아이들을
두눈으로 보고 자라온 그들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상해 본적 있나요?

지금 누님이 살아계셨다면
트럼프 땀좀 흘렸을텐데 아쉽습니다

‘삶을 지배하는 것은 고통‘이라는
베케트의 말처럼,
‘삶은 아비규환, 그 자체다‘라는
요조의 말처럼,
고통을 이해하는 길이
삶의 본질에 한걸음 다가서는 게 아닐까요.

이 책이
타인의 고통을 잘~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음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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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2-21 1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전쟁의 기술과 권력의 법칙꺼정...?!
반갑네요!!! 나도 쫌 아는데. ㅋㅋ

북프리쿠키 2017-12-23 10:51   좋아요 0 | URL
오옷..텔라님도 이런 책을 읽으세욤..? ㅎ 제목이 여자분들께 별로 안 땡기지 싶은데..(하하..이것도 차별적 발언이라면 용서하소서..^^;)

유혹의 기술도 사고 싶은데..매물이 잘 안나오네욤...ㅋㅋ

2017-12-21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3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21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화를 기다리며... 전쟁의 고통에 지배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일 것입니다.

북프리쿠키 2017-12-23 10:55   좋아요 0 | URL
싸이러스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늘 해박하고 품격있는 글들 써주셔서 제 눈은 호강합니다 ㅎㅎㅎ
내년도 올해처럼 좋은 글 많이 써주시고,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4.

[우리는 지나치게 겉모습을 보고 행복을 판단하며,
가장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행복이 있다고 상상하여,
있을 수 없는 곳에서 그것을 찾는다.
쾌활함은 아주 모호한 행복의 표시일 뿐이다.
쾌활한 인간은 흔히 타인을 속이려고 애쓰며, 자기 마음을 딴 데로 돌리려고 애쓰는 불행한 인간일 뿐이다. 모임에서 아주 잘 웃고 활달하며 기분이 청명한 사람은 거의가 다 자기 집에서는 우울하고 잔소리가 많다. 그리하여 그들의 하인은 주인이 사교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제공한 즐거움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진정한 만족은 명랑하지도, 흥겹거나 쾌활하지도 않다.
사람들은 몹시도 달콤한 그 감정을 소중히 여겨, 그 감정을 맛보면서 생각하고 음미하면서도 그것이 증발해버리지나 않을까 두려워한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으며 웃지도 않는다.
이를테면 그는 행복을 그의 가슴속으로 껴안는다.
떠들썩한 놀이와 기쁨뒤에는 싫증과 권태가 숨어있다.
반면 우울은 즐거움의 벗이다.
연민과 우울은 가장 달콤한 즐거움을 동반한다.
엄청난 기쁨은 웃음보다는 눈물을 자아낸다.

(.........)

세상 사람들은 온통 가면을 쓰고 살고 있다.
거의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지 않기에, 자신에게로 돌아가야 할 때에도 그는 항상 자기 자신에게 낯설고 편하지 못하다.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으며, 오로지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만이 문제이다.]- <에밀> p.419~410쪽





나는 행복하다. 행복하다. 행복하다....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에게 나의 행복함을 보여주려는 그 행위, 그 욕망은 다자이오사무. <인간실격> 주인공 요조의 ‘익살‘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사람은 주먹을 꽉 쥔 채 웃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인간실격 p.10>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인간의 삶에는 충만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저는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 따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저도 익살로 아침부터 밤까지 인간을 속이고 있으니까요]-<인간실격-p.27>

다자이 문학의 한 특징이 되고 있는 요설체 -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수기>를 연상한다. 물론 전후관계는 반대가 되겠지만요

[나는 하다못해 나 자신 앞에서만큼은 완전히 솔직해질 수 있을까? 곁들여 지적하자면 하이네는 믿을 만한 자서전이란 거의 있을 수 없다고, 인간이란 스스로 자신에 대한 거짓말을 늘어놓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 예를 들어 루소는 저 고백록에서 틀림없이 자신에 대한 거짓말을 늘어놓았고 심지어 허영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머리까지 굴려가며 거짓말을 늘어놓았다는 것이다.
나는 하이네의 생각이 옳다고 확신한다]-<지하로부터의수기.민음사>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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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0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4 2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1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3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0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4 2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기만의 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0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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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에 쓰게 될 첫번째 문장은 바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성을 염두에 두면 치명적이라는 것입니다.
순전한 남성 또는 순전한 여성이 되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인간은 남성적 여성이거나 여성적 남성이어야 합니다.
여성이 어떤 불평을 조금이라도 강조하거나,
정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어떤 대의를 변호하는 것, 어떤 식이건 여성으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치명적인 일입니다.
여기서 ‘치명적‘이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의식적인 편향성을 가지고 쓰인 것은 필연적으로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비옥해질 수 없지요. 그런 작품은 당장 하루 이틀동안은 빛나고 효과적이며 강력한 걸작처럼 보일지 모르나, 해 질 무렵이면 시들어 버립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서 자라날 수 없는 것이지요.창조적 예술이이루어질 수 있으려면 먼저 마음속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이 협력해야 합니다.
마음속에서 반대되는 성들이 결합하여 신방에 들어야 하지요.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온전히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으려면 마음 전체가 활짝 열려 있어야 합니다.
자유가 있어야 하고 또 평화가 있어야지요. 바퀴가 삐걱거리거나 빛이 깜빡거려서도 안 됩니다.
커튼을 완전히 내려야지요. 작가는 일단 자신의 경험이 끝나면 드러누워서 자기 마음이 어둠속에서 결혼식을 거행하도록 두어야 합니다.
그는 어떤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거나 질문을 던져서도 안됩니다.- <자기만의 방. 157~158쪽>


감정의 붉은 빛이 아니라 진실의 흰빛으로 쓰여진 울프의 글. 남성인 나를 끌어당기고, 담담히 공감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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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책 속에 수록된 단편<3기니>

 

 

전쟁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 지 거의 20년이 지난 뒤에 발표된 <3기니>를 통해서,

울프는 너무나 분명하거나 부적절해서 입에 올린다거나 골똘히 생각해볼 것조차 없다고 여겨지던 것,

그러니까 전쟁은 남성의 유희이며, 살육 기계도 성별을 갖고 있는 바 그것도 남성이라는 성을 가지고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추는 독창성을 보여줬다

(이 책이 그녀의 저서 중 가장 환영받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p.22

 

 

 

2.플라톤 <국가론>

 

실제로 갈가리 찢긴 육체가 매혹적이라는 것을(내가 아는 한) 최초로 인정한 언급은 정신적 갈등을 그린 최초의 묘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가론>제4권의 한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플라톤은 이 구절에서 부끄럽기 그지없는 욕망이 이성을 압도하게 되는 경위 그래서 자아가 자신의 본성 가운데 하나인 욕망에 화를 낼 수 밖에 없는 경위를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설명했는지 보여준다.-p.145

 

 

 

3. 조르주 바타이유 <에로스의 눈물>

 

성애적인 것을 다룬 위대한 이론가들 중 하나인 조르쥬 바타이유는 1905년 중국의 한 죄수가

"백 조각으로 찢겨 죽는 형벌"을 당하던 광경을 찍은 사진 한 장을, 매일 아무 때나 볼 수 있도록

자신의 책상 속에 평생 간직했다고 한다.

(거의 전설이 되어버린 이 사진은 1961년 바타이유가 살아 생전에 출판한 맨 마지막 책 <에로스의 눈물>에 실렸다.)

바타이유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이 사진은 내 삶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황홀하기 그지 없으면서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이 이미지, 고통의 광경을

담은 이 이미지는 평생 나를 사로잡았다"-p.147

 

 

4. 수전손택 <사진에 관하여>

여섯편의 에세이가 실린 <사진에 관하여(1977)>의 앞 부분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한 바 있다.

사진으로 찍혀 보여진 바가 전혀 없는 사건보다는 사진을 통해서 널리 알려진 사건이 훨씬 더 현실적인 것처럼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사진에 찍힌 사건도 반복적으로 노출되다보면 결국 점점 덜 현실적인 것처럼 보일수 밖에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연민을 더 많이 자아내면 자아낼수록, 그런 사진은 연민 자체를 점점 더 사그라지게 만든다고 쓰기도 했다.

-p.156

 

 

5. 워즈워스 <서정가요집>

 

1800년, 워즈워스는 <서정가요집>의 서문에서

"매일 국가적 사건들이 발생하며, 모두 획일적인 직업을 가진 탓에 기이한 일들을 열망하게 되고 이 열망을 급속한

저보 전달이 매시간 충족시켜 주는 도시로 사람들이 점점 더 모여들고 있다는 사실"이 야기한 감수성의 붕괴를 고발했다.

이렇듯 사람들이 지나치게 자극을 받게 되면 "정신의 분별력이 무뎌질"뿐만 아니라 "정신이 미개하다고 할 만큼 무감각해지는 상태에 빠지는"결과가 빚어진다는 것이다.-p158

 

 

6. 기 드보르 <스펙터클의 사회>

 

주체적 삶을 영위하도록 하기보다는 수동적인 관중으로서 삶을 '시청'하게만 만드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해

유명해졌다. 특히 그의 작업이 총결산된 <스펙터클의 사회>는미디어 이론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p.161

 

 

7. 장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오늘날 존재하는 것은 이미지와 가상현실밖에 없다고 믿으라고 주장하는 장 보드리야르의 저서들과 관계있다.-p.162

 

 

8. 알렉시스 드 토크빌 <미국의민주주의1,2>

 

유럽과 미국사이에는 늘 적대감이 잠복해 있었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아주 복잡하고 양면적인

그런 적대감 말입니다. 미국은 새로운 유럽이었습니다. 1831녀 이 신생국가를 방문한 뒤 프랑스로 돌아가 제 조국을

다뤘던 책들 중에서 지난 1백70여 년 동안 가장 뛰어났던 <미국의 민주주의>를 집필했던 알렉스시 드 토크빌-p.193

 

10. 카프카의 <유형지에서>

 

어린 시절에 마구잡이로 책을 탐독하다보니 얼마 안 있어 또 다른 독일의 책을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특히 카프카의 <유형지에서>를 읽고는 두려움과 불의라는 것을 알게 됐죠.-p.209

 

11. 토마스 만 <마의산>

 

 

간략히 말해서 유럽 문명 한가운데에서 벌어지는 이상의 충돌을 주제로 다룬 <마의산>만큼 제 인생에서 중요했던

책은 없었습니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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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다양한 사진과 그림은 책 속에서 보시고 느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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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배내옷은 이제 그만 사라져야 할 악습이다.
육체적 성장에 필요한 움직임의 자유를 구속하기 때문이다. 배내옷의 제거뿐 아니라, 움직임이 자유돕도록 언제나 넉넉한 옷을 아이에게 입혀야 하는 것은 옷 입히는 습관의 기본철칙이다.-p.34

˝아이가 어머니의 태내에서 떠나 움직이는 자유와 사지를 펴는 자유를 맛보자마자 사람들은 그에게 새로운 속박을 가한다. 배내옷을 만들어 입히며, 머리는 고정시키고, 다리는 죽 뻗게 하고, 두 팔은 몸에 가지런히 붙여 잠을 재운다. 그는 자세 바꾸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온갖 종류의 헝겊과 띠로 휘감겨 있다.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조이지 않으면 그래도 다행이다. 뱉어내야 할 물이 스스로 흘러나올 수 있도록 옆으로 눕혀주는 주의만이라도 기울여준다면 천만다행이다. 그에게는 물이 입에서 용이하게 흘러나오도록 머리를 옆으로 돌리는 자유마저 주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p. 72
[뷔퐁 <박물지>제4권.190쪽]

그리하여 성장을 위한 신체 내부의 충동은, 그 충동이 신체에 요구하는 움직임에 대한 극복할 수 없는 장애에 부딪히게 된다.
어린아이는 계속해서 힘써보지만 소용이 없다.
힘을 다 써버림으로써 발육이 지연될 뿐이다.
아이는 배내옷을 입고 있을때보다 태내에 있을 때가 더 좁지 않고 불편이 덜했으며 조임이 덜했다.
나는 그 애가 태어나서 득을 본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이의 사지를 잡아 매어두는 데서 오늘 활동 부족과 속박은 피와 체액의 순환에 지장을 초래하여 아이가 강해지고 성장하는 것을 막으며, 체질의 변화를 방해할 뿐이다. 그런 터무니없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곳에서는 인간은 모두 키가 크고 튼튼하며 몸의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자유롭게 움직임으로써 신체가 일그러지지나 않을까 두려워 사람들은 서둘러 아기의 몸을 억눌러 일그러뜨린다.
그들은 신체가 엉망이 되는 것을 막는다며 오히려 아이들을 불구로 만드는 것이다.-p.72~73

당신들은 그 아이를 태어나자마자 괴롭힌다.
그가 당신들에게서 받는 최초의 선물은 쇠사슬이며,
그가 받는 최초의 대접은 고문이다.-p. 73

˝옛 페루인들은 아이들에게 아주 헐렁헐렁한 배내옷을 입혀 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있도록 했다.
배내옷을 벗길 경우에는, 땅을 파고 헝겊을 두른 구멍에 아이를 자유롭게 내버려 두었다.
그 구멍 안으로는 아이의 하반신이 들어가 있게 되는데, 그럴 경우 팔은 자유로우며 머리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몸 또한 그렇게 움직일 수 있지만 넘어지거나 다칠 염려가 없었다.
걸음마를 하기 시작하면, 걷도록 하기 위한 미끼로 좀 떨어진 곳에서 아이들에게 젖을 내보여주었다.
흑인 아이들은 때로 젖을 빨기 위해 훨씬 힘든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그들은 그들의 무릎과 팔로 어머니의 한쪽 허리를 잡는다.
그들은 어머니의 허리를 아주 세게 거머쥐기 때문에 어머니팔의 도움 없이도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있다.
그 아이들은 그들의 팔로 어머니의 젖에 매달린다.
하지만 그들은 어머니의 계속되는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방해를 받거나 넘어지지 않고 젖을 빤다.
그 아이들은 2개월부터 걷기 시작한다.
-p.104~105 [박물지 제4권,192쪽]

수전손택이 <문학은 자유이다>란 연설에서 인용한
문장이 생각나는데요.
˝문학의 임무 중 하나는 문제를 명확히 제기하고,
널리 만연된 경건함을 반박하는 겁니다. 그리고 뭔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때조차도 예술은 자연스럽게 반대쪽으로 나아갑니다.
문학은 대화이자 응답입니다˝- <수전손택, 타인의고통 속 부록 1. 문학은 자유이다 p. 207>중에서

배내옷에 대한 널리 만연된 경건함을 반박하고 문제를 명확히 제기하는 측면에서 보면 루소의 에밀 또한 문학이자 예술이기도 하네요.

---------------------

배내옷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루소가 살았던 시대와는 달리 요즘의 배내옷은
개념과 명칭, 활용조차도 당시의 것과는 많이 다르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배내옷이든 꽁꽁 싸매는 속싸개(?)든
얼굴에 손톱상처를 내는 등의 사고를 막기 위해 팔다리의 활동을 제약하는 용도로도 쓰입니다.
반대로 아기가 엎드려 있을 때 그 제약으로 종종 돌연사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지금 신생아를 키우고 있는 부모님들은
아이의 안전과 속박에의 자유라는 절충선을
어느 눈금에 맞출지 한번쯤 고민해 볼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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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10-28 18: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배냇옷을 생각없이 입혔는데, 배냇옷이 아이에겐 ‘구속복‘이 될 수 있겠군요... 아내와 이야기해보니, 연의는 배냇옷을 정말 싫어했다네요... 북프리쿠키님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북프리쿠키 2017-10-28 18:48   좋아요 2 | URL
겨울호랑이님은 <에밀>을 읽으셨을것 같아요~ㅎㅎ
다행히 연의가 싫어해서 덜 입혔으리라 생각합니다.
호랑이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그렇게 키웠으리라 생각합니다.
구속복이라 하시니 그 ‘어린 수형수‘가 안타깝네요.
이미 울 힘조차도 없는 아기가 얌전하다고 생각하면서 나의 평화를 찾았을테니까요 ㅠ.ㅠ

겨울호랑이 2017-10-28 18:51   좋아요 2 | URL
북프리쿠키님처럼 깊이 있게 읽지 못했네요.ㅜㅜ. 이번 기회에 좀더 문제 의식을 가지고 읽어야겠습니다. 그래도, 배냇옷을 입히는 편이 자기 아이를 고아원 보내는 것보다는 낫다고 스스로 위안해 봅니다 ㅋ

북프리쿠키 2017-10-28 18:59   좋아요 2 | URL
ㅋㅋ 볼테르에게 호되게 당했지요..흔히들 ‘천재들의 광포한 이기주의‘라고 위안을 삼기도 ㅋ
그러고보니 허름한 허세도 마누라 요양원보내고, 3형제 친척집에 보내더니...
오롯이 창작의 열기를 ^^

저도 그냥 그냥 읽고 있어요.ㅎㅎ 호랑이님께서 재독하시면 좋은 의견 참고하겠습니다^^







커피소년 2017-11-12 12:15   좋아요 2 | URL
두 분이 배내옷에 대한 생각 잘 읽고 갑니다.. 배내옷.. 다른 것을 중점으로 두고 있어서 크게 생각하지 못 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여러 방면으로 아이를 위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존경심을 느끼게 됩니다..^^

cyrus 2017-10-30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베네옷을 입히는 것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기를 키워 보지 않은 미혼자라서 옳은 생각일 수 없겠지만요. 친구 부부가 딸을 출산해서 딸을 보러 간 적이 있어요. 아기가 입은 베넷옷이 답답해 보였고, 베넷옷의 단점을 알고 있어서 이 얘기를 했다가 핀잔 들었어요. 친구는 제가 미혼자라서 잘 모른다고 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