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
박태균 지음 / 책과함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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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이성적이라는 인간을 가장 비이성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전쟁이다.



한국전쟁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이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한국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이었다는 점은 바로 전쟁의 기원을 찾기 위한 역사가들의 노력의 일단을 보여준다.



결국 트루먼은 일본에 두 발의 원자탄을 투하하는 것을 승인하였다.

원자탄이 가져올 인류의 피해는 안중에 없고, 단지 일본 열도 상륙작전으로 발생한 미군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눈앞의 이익만 보았을 뿐이다.

둘째, 원자탄 투하는 일본의 전범들에게 면죄부를 마련해주었다.

셋째, 원자탄 투하는 일본에 소련군이 발 들여놓지 않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소련군의 일본 진주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일본에게는 항복의 명분이 필요했고, 바로 그 시점에서 원자탄이 투하된 것이다.

할복을 하면서라도 끝까지 저항하겠다던 일본으로서도 원자탄을 받고 나서는 항복의 명분을 찾을 수 있었다.



여운형은 김일성과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 때문에 최근까지도 여운형에 대해 색안경 끼고 비난하는 시각도 있지만, 진정한 좌우합작을 위해서는 북한의 공산주의자들과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바로 그 점이 여운형과 함께 좌우합작운동을 한 김규식과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김규식 역시 미군정 및 우익과 가까운 관계였으며 좌익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소련군이나 북한의 공산주의자들까지 포괄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

좌우합작운동을 실패에 이르게 한 것은 바로 여운형이라는 한 지도자의 죽음이었다.



세계적으로 냉전이 심화되기 시작한 것은 1947년 2월이었다.

미국은 그리스와 터키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자 트루먼독트린을 발표했고, 서유럽이 소련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하기 위하여 마셜 플랜을 실시하였다.



한국전쟁의 개전에 대한 국내외 학계의 주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북한이 침략했다는 남침설, 남한이 침략했다는 북침설, 그리고 남침유도설이다.

여기서는 특히 남침유도설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한국전쟁의 개전과 관련하여 최근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미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을 침략하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마셜 플랜은 서유럽을 중심으로 유럽 경제의 부흥을 목표로 삼았다.

2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유럽 사회는 공산주의 번식에 적합하기 때문에 경제복구와 부흥을 통해서 유럽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케넌은 중요한 몇 개 지역의 부흥이 극대화되면, 세계적 차원에서의 봉쇄가 가능하리라고 전망하였다. 케넌이 꼽은 지역은 영국을 비롯한 서부 유럽, 독일 중심의 중부 유럽, 그리고 아시아의 일본이었다.

(...)

아울러 일본이 소련의 영향권 안에 들어갈 경우 서태평양, 나아가서는 동남아시아의 미 군사기지에 대한 공격거점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미국이 일본을 장악하게 되면 직간접적으로 소련의 중요한 공격거점이나 방어거점을 봉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이 발발할 경우 소련의 군사행동을 초기에 방어할 수 있다. 게다가 아시아 본토와 일본 부근의 소련 열도에 대한 군사작전을 기획할 수 있다.



자체 방위를 위한 목적이기는 하지만, 재무장을 추진한다는 것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일본은 1951년의 샌프란시시코 조약이후부터 한국전쟁 기간 동안 자연스럽게 자위대를 창설하였고, 자체방위를 목적으로 재무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은 중국을 중요한 동맹으로 간주하고 일본에게는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을 무장해제하고 더 이상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민주화를 진행시키는 것이 일본에 대한 정책이었다.

그런데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일본은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부상하였다. 당시 일본만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군사력과 선진사업을 보유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1949년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는 법정에서 '김구가 여순사건을 조종하여 대한민국의 국헌을 문란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안두희의 주장과 달리 여순사건은 남조선노동당의 군대 내 프락치들이 일으킨 것이었지만, 이런 주장이 나왔던 데는 여순사건에 좌익의 활동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다른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스탈린 : 북쪽이 먼저 남침해서는 안 된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북한 인민군은 남조선 군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하지 못하다. 내가 알기로는 북한군이 수적으로도 남한에 뒤진다.

둘째 남한에는 아직도 미군이 있다. 적대관계가 일어나면, 미군이 개입할 것이다.

셋째 38선에 관한 미소협정이 아직도 유효하다.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측이 이 협정을 파기한다면, 그것은 미국이 개입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전쟁이 터졌다. 사람들은 그것이 어떤 전쟁이 될지 감잡을 수조차 없었다.

대한민국의 고위직 인사들과 공무원, 경찰들은 서둘러 짐을 싸서 피난을 떠났건만, 일반 국민들은 여느 때처럼 그저 38선상의 충돌이겠거니 하며 집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전쟁이 자신들의 삶을 얼마나 할퀴고 지나갈지 알지 못했다. 이때 피난가지 않은 것이 나중에 비도강파 또는 부역자로 몰리는 빌미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한국전쟁 이전의 빨치산을 구빨치라고 하며, 전쟁 때 미처 후퇴하지 못하고 산으로 올라간 빨치산을 신빨치라고 한다.

구빨치와 신빨치의 차이는 후자가 정규군 출신이라는 점이다. 또한 이들은 산에 올라가 '남부군'이라고 하는 빨치산 특수부대로 재편되었다.

남부군은 1990년대 중반, 소설과 영화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다.



미국의 38선 돌파 결정으로 10월 1일, 한국군과 유엔군은 38선을 넘었다.

10월1일을 국군의 날로 정한 것은 바로 이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은 미국의 전략 중 가장 큰 실패로 역사에 남게 된다.

우리에게는 압록강까지 누가 빨리 도달하나 경쟁을 벌인 멋진 전쟁 시나리오인 38선 이북으로의 북진이 어째서 미국에겐 실패작이 되었을까?



아무튼 중국은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10월 13일 참전을 전격 결정하였다.

전쟁에서 패배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미국이 북한 지역까지 점령할 경우, 대만과 한반도 양쪽으로부터 포위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더 컸던 것이다.



한국전쟁 중 핵무기 사용이 검토되자 영국은 강력하게 반대했으며, 이것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면 만약 통일이 되지 않고 북한 정권이 붕괴한다면, 그 지역을 누가 통제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 정부가 당연히 그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갖는다. 그러나 유엔의 승인안에 따르면, 대한민국 정부가 통치권을 가질 국제법적 근거가 없다.



유엔군이 억류하고 있던 반공포로 2만7천여명을 일방적으로 석방시켰다.

이것이 바로 반공포로 석방사건이다. 이 사건은 공산군뿐만 아니라 유엔군으로서 묵과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전쟁이 일어난 직후 대한민국 정부는 이승만의 서신 한장으로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유엔군 사령관에게 넘긴 상태였기 때문이다.

(...)

이 사건은 한미관계에 갈등을 가져온 중요한 요인이 되었으며, 이후 1950년대에 미국이 이승만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 시발점이기도 하다.



마오쩌둥의 하나뿐인 아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중국군들이 전장에서 죽었으며, 사회주의 혁명 사업들이 연기되었고, 대만을 점령함으로써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려고 했던 계획도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전쟁을 통해 미국과 군사적으로 맞섰다는 자부심을 얻었다.



일본은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해 전쟁 특수를 챙겼다.

또한 자위대를 출범시키며 재무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한국 전쟁 기간에 이루어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면죄부를 챙기고자 했다. 이 회담에서 일본은 독도문제를 자기들 입맛에 맞게 처리할 수 있었다. 일본의 극우세력들은 지금도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우기고 있다. 독일 역시 혜택을 보았다. 한국전쟁 시기를 통해 유럽에서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을 강구하고 있었던 미국은 독일 경제의 재건과 함께 재무장이 소련에 대한 봉쇄에서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독일과 일본의 재무장을 막고자 했던 소련의 정책은 한국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실패하고 말았다.



남한 지역을 점령한 북한은 '국군 장교와 판검사는 무조건 사형에 처한다', '면장, 동장, 반장 등은 인민재판에 부친다'고 규정하였다.



이렇게 한국정쟁 동안 벌어진 민간인학살은 보도연맹원 학살 약 20만명, 형무소 수감자 학살 약 5만명, 빨치산 토벌과정에 약 5만명, 북한군 및 인민위원회에 의한 학살 약 10만 명 등으로 추산되고 있다. 아마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을 합치면 훨씬 더 많은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불과 3년 사이에 40만 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학살된 것이다. 



전쟁의 비극은 남한에서만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에서도 수많은 비극이 일어났을 것이다.

실질적인 자료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북쪽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는 서술하지 않았다.

북한이 발표한 자료만을 근거로 삼기도 어려우며, 그렇다고 남한의 자료만을 이용하는 것 또한 객관성을 잃기 쉽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핵 미사일은 1991년 남북한 사이의 비핵화 선언이 이루어질때까지 계속 남쪽에 남아 있었다.



지주들은 한국전쟁기간을 통해 몰락했다. 대부분의 지주들은 농지 몰수의 대가로 받은 지가증권의 가치가 하락해 재기하기 어려웠다.

인민재판에서 학살된 지주들도 적지 않았으며, 학살을 피하기 위해 피난을 떠나는 과정에서 상당한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한반도에서 수백 년 동안 지배신분으로서 특권을 누렸던 지주 계급은 한국전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미국은 1954년 프랑스가 디엔비에푸에서 호찌민에게 패배하여 베트남에서 물러날 때에도 개입하지 않았다.

한국전쟁의 경험은 베트남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가로막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점 또한 한국전쟁이 미국의 대외정책에 미친 중요한 변화가 될 것이다. 38선 이북으로의 진격이 가져왔던 엄청난 실패는 그 후 10년이 지나도록 미국이 제 3세계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미국은 남베트남에 대한 은밀한 지원으로 공산주의자들이 영향력을 확대하지 못하게 막는 데 주력하였다.



또 다른 방안은 미국 외의 다른 국가에게 원조의 일부를 떠안기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이 한반도에 대한 원조를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미국은 한일 간의 관계가 정상화되도록 한일회담을 주선하였다.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한 정책은 1950년대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의 하나였다. 

그렇지만 이승만 정보는 반일 이데올로기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고 있었고, 국민들 역시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10여 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에 대해 크게 반달했다. 결국 1960년대에 가서야 한일관계를 정상화시킴으로써 한반도에 대한 부담을 일본에 넘기려는 미국의 정책은 성사될 수 있었다.



1957년 소련은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에 성공했다.

스푸트니크의 발사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의미했다. 

첫째, 소련이 우주에서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당시 미국의 언론 매체들은 소련의 인공위성이 하늘에서 미국을 공격하는 만화들을 양산해냈다.

둘째 대륙간 탄도탄의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가장 중요한 증거는 국가보안법의 존재다.(...)

전시가 아니라면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를 구속하는 상황이 왜 계속되어야 하는가? 한국처럼 민주주의 체제가 발전한 나라에서 광범위한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반민주적인 법이 언제까지 존재해야 하는가?



한국전쟁 연구의 가장 큰 공로자의 한 명인 브루스 커밍스에게 빨간 딱지를 붙이고 있는 나라는 아마 전 세계에서 한국뿐일 것이다.

미국 학자들도 커밍스가 다소 삐딱하게 역사를 본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빨갱이'로 보진 않는다. 그는 미국의 정책에 비판적일 뿐 공산주의자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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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특히 한국전쟁과 관련된 책은 넘친다.

그런데 여태 한국전쟁에 대한 책 중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책은 없다.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브루스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왜 그럴까?

사실 한국전쟁에 대해 우린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일반 대중뿐만 아니라 역사학자들도 그렇다.

북한의 자료가 공개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진영 이데올로기때문에 좌우 한쪽으로 치우친 이념공방의 책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현대사 관련 도서는 함부로 집어들지 않는다.

아예 모르는 것이 더 객관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내가 보수 또는 진보 성향을 띠고 있더라도 대놓고 한쪽으로 치우친 책은 물론이거니와  교묘한 문장으로 객관성을 담보하는 양 포장하는 책 또한 그것을 읽는 순간 독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 책은, 이 책을 쓴 박태균 저자는 나의 이러한 고민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었다.

전작 <베트남 전쟁>을 읽고 그 동안 몰랐던 이면과 전체적인 큰 줄기를 익히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라 

이 책을 고르는 데 크게 일조하였다.

공개된 국제 자료와 서신을 발췌하여 객관성을 도모하였고, 그 해석에 있어서도 판단을 열어두는 점이 단연 돋보인 책이었다.

다만, 이런 강점은 전쟁 스토리를 빈약하게 만드는 단점을 지닐수 밖에.

하지만 그 동안 수많은 영화와 책에서 애국심에 도취되어 열광해왔지 않은가. 



한국전쟁에 대한 자료를 근거로 '다르게' 이야기 할 수 있음을 '빨갱이'나 '수구꼴통'으로 모는 세상은 

현재도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음을, 그리고 그 상처가 얼마나 깊고 처절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안타까운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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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박사조만장자 2019-09-29 0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북프리쿠키 2019-10-04 14:49   좋아요 0 | URL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조만장자는 억만장자 위에꺼 맞지요?^^

행복박사조만장자 2019-10-04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북프리쿠키 2019-10-19 16:58   좋아요 0 | URL
ㅎㅎ 닉넴이 재미있습니다. ^^;;

행복박사조만장자 2019-10-04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북프리쿠키 2019-10-19 16:58   좋아요 0 | URL
네네 감사합니다..^^;;
 

6살 딸내미가 직접 수업합니다.
엄마랑 아빠 청강중~

가르치는 것보다 재미있고 효과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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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9-22 2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꼬마 선생님께서 교안을 작성하시느라 고생했겠네요. 더구나 수준높은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느라 고된 하루를 보냈겠습니다 ㅋ

북프리쿠키 2019-09-22 22:49   좋아요 1 | URL
ㅎㅎ 선생님이 하도 웃으시면서 가르쳐서 제대로 배운 게 없네요.
10분도 채 안되서 체육시간이라 합디다^^



페크pek0501 2019-09-23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멋진 일 같습니다.

북프리쿠키 2019-09-28 19:20   좋아요 0 | URL
네 스스로 설명한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아이가 웃음보가 터져 너무 좋아하네요.^^
 

 

 

4장_ 통하였느냐? : 양생술과 쾌락의 활용

 

 

 

p 136

술을 물처럼 마시고 멋대로 행동하며 술에 취한 채로 성교하여 정을 고갈시키고 진을 소모하며, 정을 채워둘 줄 모르고 아무때나 신을 써서 마음의 쾌락에만 힘을 씁니다. 이렇게 양생의 즐거움에 역행하여 생활에 절도가 없기 때문에 50세만 되어도 노쇠하는 것입니다.(내경편_신형,14쪽)

 

 

p 137

동의보감에 따르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수명은 120세다(내경편_신형, 20쪽)

 

 

p.139~140

어떻게 하면 내 안에 있는 이 자연의 동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양생의 출발점이다.

(...)

핵심은 '형과 기가 맞는다'는 사항에 있다.(...) "기가 실하면 형도 실하고, 기가 허하면 형도 허한 것이 정상이다. 이것과 반대되면 병이다. 맥이 실하면 형도 실하고 형이 허하면 혈도 허한 것이 정상이다. 이것과 반대되면 병이다" (잡병편_변증, 920쪽)

(...)

따라서 태과(넘침)은 불급(모자람)만 못하다.

태과는 덜어내야 하고 불급은 채워야 하는데, 덜어내는 것이 채우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기 때문이다.(...)

몸에 좋은 것은 다 섭취하겠다는 발상도 양생에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p.141

양생술의 첫번째 테제는 '정을 보호해야 한다'.

정은 생명의 물질적 기초라는 광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 핵심은 신장에 저장되어 있는 정액(성호르몬)이다.

 

 

p.142~144

"늘 땅에 침을 뱉지 않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땀이나 피나 눈물이나 정(액)은 나온 뒤에는 돌이킬 수 없지만, 오직 침은 돌리킬 수 있다. 돌이키게 되면 낳고 낳는 뜻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내경편_진액, 195쪽)

(...)

나를 태어나게 한 행위가 도리어 나의 적이 될 수도 있다"(내경편_신형, 29쪽)

 

 

p. 146

저 어리석은 사람들은 입맛대로 맛있는 음식을 지나치게 먹으니 질병이 벌떼처럼 일어나 병에 걸리는 것이다.(내경편_신형,28~29쪽)

(...)

결국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런 것이다. 술에 취하고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한껏 불린 다음 성생활을 하는 것(...)

손진인에 따르면 이렇게 하면 오장이 모두 뒤집힌다. 술도 화기요, 기름도 화기요, 성(sex)도 화기니 몸이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격이다. 이렇게 하면서 오래 잘 살기를 바란다는 건 정말이지 어불성설이다.

 

 

 

 

 

p 147

미셸 푸코에 따르면 성이 과도하게 중시되면서 동시에 은밀하게 유통하게 된 것은 근대 국민국가와 임상의학의 합작품이다.

근대 규율권력에서 "섹스 문제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은, 섹스가 신체에 대한 감시와 인구통제, 이 두가지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성은 훈련, 강화, 힘의 분배, 그리고 에너지의 조정과 절약 등 인체에 대한 규율의 수단인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성이 유도할 수 있는 모든 글로벌한 효과와 함께 인구를 조절하는 수단이다.....사람들은 규율의 모태로서, 그리고 조절의 원칙으로서 성을 이용했다"(성의 역사1:앎의 의지,이규현 옮김, 나남 2004)

이렇게 국가가 성을 관장하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쾌락을 활용하고 조절하는 능력과 권한을 잃어버렸다.

자본과 상품의 조종에 의거하여 방탕하게 놀아나거나 아니면 깊은 죄의식에 시달리거나, 즉 성적 들뜸과 차가운 금욕 사이를 대책 없이 오락가락할 따름이다.

 

 

 

 

p. 153

치열하게 사랑하지만 상대에 의존하지 않고, 그 사랑이 그 자체로 자유와 환희로 이어질 수 있는 길, 다시 말해 집착과 쾌락에서 벗어나 '지금,여기'를 오롯이 향유하는 원초적 생명력으로서의 에로스를 말이다.

 

 

p.158~160

즉, 일상의 관계 안에서 스스로 자신의 기를 조절하는 주체가 되는 것, 그런 점에서 양생이란 철두철미 자기배려의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양기는 낮에는 몸의 외부를 주관한다. 새벽에 양기가 생겨나 정오에 융성해지고 해질 무렵에는 허해져 기분이 닫힌다. 그러므로 저녁에는 양기가 수렴되어야 내부에서 사기를 막을 수 있으니 근골을 움직이지 말고 안개나 이슬을 맞지 말아야 한다.

새벽, 정보, 해질 무렵의 시간에 거슬러 살면 몸이 힘들어진다"(내경편_기,60쪽)

그러니 밤낮을 뒤바꾼 삶이 얼마나 양생에 치명적인지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기의 조절은 우선 하루의 일상을 태양의 리듬을 따라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하루는 곧 일생의 축소판이다.

 

 

 

 

 

p. 162

"인생의 주로는 정해져 있네. 자연의 길은 하나뿐이며 그 길은 한번만 가게 되어 있네. 그리고 인생의 매 단계에는 고유한 특징이 있네.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으며 노년은 완숙한데, 이런 자질들은 제철이 되어야만 거둬들일 수 있는 자연의 결실과도 같은 것이라네"(키케로_노년에관하여/우정에관하여, 천병희 옮김, 숲 2005)

 

 

 

 

p 163

하루의 금기는 저녁에 포식하지 않는 것이고, 한달의 금기는 그믐에 만취하지 않는 것이고, 일 년의 금기는 겨울에 멀리 여행하지 않는 것이고, 평생의 금기는 밤에 불을 켜고 성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다.(내경편_신형,26쪽)

 

 

p.168

명리와 희로, 소리와 색, 기름진 음식, 신이 허하고 정이 흩어지는 것. 이 다섯가지를 비워야 한다.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건 다 비우라는 말씀? 그렇다. 비움 혹은 내려놓음의 과정에는 끝이 없다.(...)

게다가 양생의 테크닉이라는 것도 평범하기 그지 없다. 가장 좋은 음식은 '밥물이 걸죽하게 고인'것, 가장 훌륭한 삶은 담백하고 진솔한 일상, 수련법은 이빨을 맞부딪히는 고치법, 맨손체조, 식후 100보 걷기, 생각은 적게 몸은 많이, 일상적인, 너무나 일상적인!

 

 

 

 

 

p.169

젊을 때 철학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되고, 또 나이가 들어서 철학하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일에는 이른 것도 늦은 것도 있을 수 없다.

철학을 아직 시작할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자나 철학을 할 때가 더 이상 아니라고 말하는 자는 행복에 아직 도달할 때가 아니라고 말하거나 행복에 더 이상 도달할 때가 아니라고 말하자는 자와 같다.

따라서 젊을 때나 나이가 들어서나 사람은 철학을 해야 하며, 후자의 경우 신과의 접촉을 통해, 또 지난날들을 회고하며 회춘하기 위해 철학을 하고, 전자의 경우 어리더라도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미래 앞에서 확고해지기 위해 철학을 해야 한다.

(에피쿠로스_쾌락, 오유석 옮김, 문학과지성사,1998)

 

 

 

 

p.175

"사람은 각자 평생 먹을 양만큼의 식록을 갖고 태어나므로 서둘러 먹어 치울수록 빨리 병들어 죽는다는 미즈노 남보쿠의 가르침은 미신이 아니라. 소식해서 남은 음식을 남에게 베풀면 팔자에 없던 복이 생기고, 그 복이 자손에까지 미친다는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은 인과의 법칙에 따른 진리다"(손영기,_별난 한의사 손영기의 먹지마 건강법, 북라인, 2005,167쪽)(...)

 

그렇다. 중요한 건 우리가 가진 물질적 부의 순환이다. 이 점이 생략된다면 어떤 양생술도 도로아미타불이다.

왜냐하면 우리 존재는 이미 자본의 그물말에 꼼짝없이 얽혀 있다. 자본이란 일찍이 맑스가 설파했듯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피를 흘리며 등장한다".

다시 말해 수많은 타자들의 죽음 위에서 구축된 것이다. 고로 그 인과의 그물망에서 벗어나려면 증여의 동그라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기를 조절하는 것이 최고의 자기배려라고 했다. 그것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윤리적 실천과 긴밀하게 조응한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 있어 자기배려의 윤리란 바로 자본에 누적된 소유와 집적-기의 울체-의 인과를 해체하는 것과 무관할 수 없다. 주변을 잠깐만 돌아봐도 부가 주는 번뇌의 장은 엄청나다. 그런데 사람들은 번뇌의 원천이 돈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 상대방의 도덕적 결함이나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여길 뿐이다. 돈에 들러붙어 있는 무겁고 탁한 기운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해소하지 않고서 번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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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평소 책모임으로 알고 지내던 지인들을 만났다.

다양한 직종(의대생,자영업,공무원)에서 일하는 다양한 연령대(20대,30대,40대)의 지인들은 언제나 나에게 갇혀 있는 틀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삶의 활력을 준다.

이야기 도중에 동의보감을 읽은 소회를 피력하다 마침 의대에 다니는 친구가 있어 여러가지를 물어 보았다.

사실 양방과 한방의 관계는 전통적으로 갈등의 골이 깊은 줄 알았으나 이야기를 꺼내는 자체가 미안할 정도로 한의학에 대해 불신과 우려의 입장을 토로했다. 반대로 한의학 입장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모임 자체의 멤버들이 워낙 사고 자체가 유연하고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기본기가 탄탄한지라 민감한 분야의 주제에 대해서도 분위기는 시종 화기애애했다.(돌이켜 생각하니 또 짧은 지식으로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은 격인지라..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동의보감에서는 탐진치를 조심하라 했거늘, 게다가 말까지 많았으니..말탐..아~어렵구나..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토요일 저녁이라 일요일 아침까지 상쾌하다.

게다가 책 선물까지 받았으니. 이 고마움을 어찌 표현할꼬.

정성스레 읽고 소감을 남기는 것이 보답의 길이라 생각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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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4 0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8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파야 산다.

 

 

 

 

p. 128

질병이란 특수한 고통과 결여의 상태가 아니라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선 반드시 수반해야 할 필연적 조건이다.

(.....)

 

모든 존재는 원초적으로 질병을 안고 태어날 수 밖에 없다. 아니 질병이 곧 존재의 표현방식이다.

(.....)

 

완벽한 조건에선 차이가 형성되지 않고 차이와 균열이 일어나지 않으면 에너지나 열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

 

그런 점에서 평형상태란 곧 정적과 죽음을 의미한다.

 

 

p.130

일찍이 르네 듀보가 말했듯이, 건강은 근대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환상이다

"그에 따르면 건강은 생명체와 환경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인 적응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균형일 뿐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다"(강신익, <건강은 없다:복잡성의 진화와 의학>_인문의학 1집, 20쪽)

근대 이전에는 건강이라는 말이 없었을뿐더러 "영어단어 헬스(health)의 어원은 신성함, 전체성, 치유의 뜻에 있어 종교적 뉘앙스가 강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 해부병리학이 확립되면서 "질병을 신체의 부분적 현상으로 축소시켰다. 그리고 세균을 발견하여 병의 '실체'를 확인하 18-19세기, 항생제와 각종 첨단장비를 발명해 병의 실체에 직접 접근할 수 있게 된 20세기를 거치면서 건강은 점차 '질병의 부재'를 뜻하게 되었다.

(.....)

하지만 진화론적 관점에 의거하면 기본적으로 정상적인 몸의 상태라는 건 있을 수 없다.

진화란 거창한 설계하에 이루어지는 장엄한 작업이 아니라, 국소적 차원에 따른 우연한 변화들이 뒤엉킨 비뚤비뚤한 세계다.

이런 과정속에선 무엇이 정형이라 규정할 수가 없다. 또 인간은 질병이 있음으로 해서 고통을 받기도 하지만, 그 질병 때문에 목숨을 유지할 수도 있다.

<아파야 산다>의 저자 샤론 모알렘에 따르면 혈색증이나 당뇨는 분명 치명적인 질병이지만, 인간은 이 병들이 있었기 때문에 페스트를 이겨 내고 빙하의 추위를 견뎌낼 수 있었다.

결국 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병이 "있음으로 해서" 내가 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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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염불 정도로 치부하느냐,

공감하긴 하는데, 모든 내용을 은유와 상징으로 받아들이느냐.

저자는 이 2가지 반응에 다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공염불로 치부하지 않는 사람도 인간과 우주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에 대해 깊이 공감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헛다리를 짚고 온갖 신비주의적 망상을 싹틔운다고 우려한다.

우주에 지수화풍(地水火風)이 있듯이 곡기에 지수화풍, 음양오행의 기운이 다 담겨있고, 자신의 몸이 곧 자연이고, 우주임을 사무치게 깨달아야만 동양의학을 이해할 수 있다.

 

암에 걸린 사람들이 "질병은 죽을때까지 안고 가는 친구다"라는 말.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죽음 앞에서 첨단 의료 시술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들어가는 이의 내면적 고뇌와 그 이면의 통찰도 

함께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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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이정호 그림 / 알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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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을 처음으로 병력이라는 맥락에서 바라본 사람은 히포크라테스였다.



인간미 넘치는 임상체험을 글로 남기는 습관은 19세기에 절정을 이룬 후 신경학이라는 객관적인 과학의 도래와 함께 쇠퇴하였다.


겉으로 나타나는 장애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종종 거짓말쟁이나 얼간이로 취급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은 감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취급을 받는다.



'열등한'반구라고 불리는 멸시를 당할 정도로 우반구에 대한 연구가 소홀하게 다루어진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좌반구의 손상 부위와 그에 따른 증상을 밝혀내는 것이 비교적 쉬운 일이었던 데 반해, 우반구의 각 영역에 해당하는 증후군은 알아내기가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우반구는 좌반구보다 좀더 '원시적'인 것으로 비하되곤 했다.
반면 좌반구는 인간의 진화가 만들어낸 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 주장이 옳다.
좀더 정교하고 전문화되어 있으며 영장류의 뇌, 특히 인간의 뇌에서는 가장 나중에 발달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을 인식하는 능력 즉 생명체가 생존하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할 능력을 담당하는 것은 우반구이다.



우반구를 연구하는 일이 어려운 까닭은 환자 스스로 자신의 증상을 알 수가 없고 게다가 외부 관찰자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반구 증후군에 시달리는 경우, 환자 본인은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기가 어렵다.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좋다.



판단은 고등한 생활이나 정신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능임에도, 고전적인(계량적인) 신경학에서는 무시되거나 잘못 해석되어 왔다.


우리는 다리나 눈을 잃으면 다리가 없고 눈이 없다는 사실을 의식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면 그 사실 자체를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을 깨달을 자신이라는 존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물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그것이 너무도 단순하고 친숙하기 때문에 우리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늘 눈앞에 있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으로 탐구해야 하는 것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법이다. - 비트겐슈타인
(....)
자기 몸을 통제하고 움직이는 것만큼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이 우리에게 또 있을까? 그러나 그런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데다 아주 익숙한 일이기 때문에 정작 우리는 그것에 대해 관심도 갖지 않는다.
(....)
고유감각이야말로 매우 중요한 제육감이다. 그것이 없으면 몸은 느낄 수 있는 실체이기를 멈추고 본인 자신은 자기의 몸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느껴도 될 만한 오감이 있다.
그리고 그 오감 덕분에 감각세계를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오감 말고도 다른 감각이 있다. 그 비밀스러운 감각은 제육감이라는 것이다. 오감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지만, 제대로 인정도 대접도 못 받고 있다.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발휘되는 이 제육감은 역사적으로는 상당히 늦게 발견되었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막연히 '근육감각'이라고 불렀다.


1885년 샤르코의 제자인 질 드 라 투렛은 놀라운 증후군에 대해 발표했다.
그 중후군은 발표되자마자 바로 투렛 증후군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
투렛 증후군을 앓는 환자 역시 뇌 속의 흥분성 전달 물질, 특히 도파민 과잉 상태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중독이나 병에 의해 해방과 각성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정신과 상상력은 무뎌진 상태로 잠들어 있다는 사실, 그 얼마나 역설적이고 잔인하며 아이러니한 일인가!


실제로 '길거리 신경학'에는 존경받을 만한 선구자들이 있다.
그 가운에 한 사람인 제임스 파킨슨은 찰스 디킨스보다 40년 전이나 앞서 런던의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관찰했다.
그는 후에 자신의 이름이 붙게 된 병을 진료소가 아니라 런던의 혼잡한 길거리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사실 병원 안에서는 파킨슨병을 제대로 보거나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 원초적이고 충동적인 행동, 경련, 온몸의 마비현상, 도착증 등 이 병 특유의 성질이 충분하게 드러나는 것은 복잡한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길거리에서이다.
파킨슨병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생활하는 장소를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인용했지만 흄은 이렇게 썻다.
감히 말하자면 우리는 무수하고 잡다한 감각의 집적 혹은 집합체에 불과하다.
그러한 감각은 믿기 어려운 속도로 차례차례 이어지고 움직이고 변화하고 흘러간다.
흄의 생각대로라면 개인의 정체성은 허구에 불과하다. 우리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감각 혹은 지각의 연속에 불과한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때때로 '정신발작'을 일으켰고 발작시에는 '복잡한 정신 상태'가 되었다.
그 점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처럼 건강한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간질 환자들이 발작을 일으키기 직전에 느끼는 행복감을 상상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지극한 행복감이 몇 초 만에 끝날지 아니면 몇 시간, 몇 달 동안 계속될지는 우리도 모릅니다.

그러나 설령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모든 기쁨을 준다고 해도 이것과 바꿀 마음이 없는 것만은 확실합니다.(T.알라주아닌,1963년)


피아제가 어린아이의 마음을 연구해서 밝혀낸 것과 레비스트로스가 미개인의 마음을 연구해서 밝혀낸 것은, 형태가 다르기는 하지만 지적장애인들의 마음과 정신세계에서도 그대로 인정된다.


우리는 환자의 결함에 너무 많은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는, 상실되자 않고 남아 있는 능력을 거의 간과했다.
내게 이 점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사람이 리베카였다. 우리는 소위 '결함 연구'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여서 '내러톨로지(서사학)쪽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내러톨로지'야말로 지금까지 무시되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구체성의 과학'인 것이다.



니체는 "철학자는 우주에 내재한 교향곡의 메아리를 자기 내부에서 들은 뒤, 이를 관념의 모습으로 뒤바꾸어 다시금 외부세계로 투사하려는 사람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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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의식과 두뇌 기능을 이렇게 소설로서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올리버 색스의 능력이야말로, 
평소 뇌 질환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을 치료하는 만큼이나 훌륭한 것이다.
우린 겉으로 드러난 외상과 그에 따른 불편한 거동에만 반응할 뿐 내상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내상 중에서도 뇌 속의 결핍이나 과잉의 결과물인 병력적 상태뿐 아니라 내면의 감추어진 부분까지 파고들어 질병 때문에 달라진 인간의 존재방식까지 들여다 보게 해 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가장 큰 보람이 아닐까.
병은 곧 개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개인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병력, 그리고 그에 따른 증상, 특히나 정신과 질환 쪽에 속하는 뇌 신경의 내밀한 오류들.
책을 읽는 것이 '공감'능력을 키우는 것이라면
상대의 병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공감' 의 첫번째 단추이지 않을까?






덧붙임.
많은 대중들이 이 책을 읽게 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사례의 일화들을 과감히 삭제,  분량을 줄이는 것이 낫지 않을까.
물론 다 훌륭한 임상 스토리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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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9-21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몸의 증상을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몸의 증상을 이야기하는 것도 곧 내 몸을 이해할 때 말할 수 있는 삶의 서사예요. 그런데 건강을 강조하는 사회는 그런 이야기를 ‘개인의 건강 불만족’ 정도로 생각합니다. 이러면 건강한 사람은 아픈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해요.

북프리쿠키 2019-09-22 14:1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시루스님.
사람들은 남의 아픈 이야기를 듣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방송에 응급실이나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보면..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절로 나는데.
그때 뿐이자나요. 남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다가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의 몸상태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것 또한 함께 하는 삶의 하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