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나 사물들의 본질을 해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던 철학이 칸트에 이르러서야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즉 ‘나‘와 ‘나의 생각‘에 대한 관심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리 인간의 고독한 윤리적 주체의 결단과 그 책임의 문제까지 숙고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서문에 불과하지만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진지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시간투자대비 이해도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물론 나의 기준에서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신해철 형님이 생각난다.
철학과를 졸업한 전공을 살려 한때 ‘비트겐슈타인‘이라는 그룹을 결성하고 음반을 낸 적이 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청년 시기에 쓴 <논리철학논고>에서 ‘말할 수 있는 것만을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이 탄생한 것은 그가 포로수용소에서 동료들과 <순수이성비판>을 읽었던 것에 영향을 받았으리라.
즉,어떤 행위에나 책임이 뒤따른다는 칸트의 윤리적 관심사가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언어의 윤리성, 즉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려고 했던 <논리철학논고>의 탄생에 영향을 끼쳤고 이 작은 책 한권으로 그는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시대의 아픔과 윤리적 부재에 늘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까지 신랄하게 비판해 온 신해철 형님이 그룹 <비트겐슈타인>을 만든 것도 아마 이러한 맥락이 숨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의 노래 ‘일상으로의 초대‘를 듣는 지금 이전에 무의식적으로 듣던 그 느낌과는 확연히 다르다.
중저음과 고음의 간극만큼이나 음률과 가사의 철학이 풍부한 감동으로 스며드는 아침이다.
* 사드의 <소돔의 120일>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칸트를 공격하는 정신분석학의 핵심비판 중에 표면적으로 보면 순수한 결단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내면세계에 ‘초자아‘라는 불순한 계기가 작동하는 예를 든다.
라캉의 논문 <사드와 함께 읽는 칸트>에서 자신이 왜 칸트의 윤리학에서 새디즘의 냄새를 맡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니 칸트의 자율적 주체 역시 사회의 습관적 반응체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또 다른 책 <소돔의 120일>에서 발견해 낼 수 있을까...
후...그 오물에 뒤덮인 역함을 견딜 수만 있다면 말이다.
* <소돔의 120일>책은 업로드 했다가 표지 그림에 19세 이상만 표기되어 있어 포스팅에 실패했습니다.
다시 제대로 추가하려면 PC에서만 된다고 안내를 하니 귀차니즘에 포기해 버렸다.

